77세 김우중 ‘새로운 도전’ [2]

◇화교네트워크에대항한다

―왜국내가아니고해외인가.

"우리나라는운명적으로많이밖에나가야한다.한국사람은유태인이나중국인과맞붙어서이길정도로우수하다.덮어놓고나가라는것이아니다.우리가500명을키웠다치자.혼자하면리스크가있다.중국사람들은자기들끼리도와주며투자한다.우리도(YBM)동기들끼리,회원들끼리같이투자하는식으로운영하면화상(華商)과도경쟁할수있다.우리연수생들이(성장해)중견기업가가되면서로투자하면된다.리카싱(李嘉誠·홍콩의부동산재벌)이세계최고부자라는데,그는돈많은거외에도(중국에)투자한것도엄청많다.서로투자하고공생하는거다."

―회장님본인은이제못하니까,후진을양성해대신’제2의세계경영’을하도록하겠다는건가.

"(YBM청년들에게)사업을하더라도여기를베이스로해서하라고한다.본사가여기로와야한다는거다.남자고여자고간에,여기에뿌리를내려결혼도여기서하고죽을때까지산다는생각을하라는거다."

―YBM은어디까지클수있나.

"우리나라는(글로벌)중견기업역할이중요하다.연간매출200억달러,300억달러하는기업이많이나와야한다.만약500개했는데,200개가성공했다고하자.본사를여기로하고,한국에투자하고,싱가포르에서기업공개하고….그런식으로가면커지지않겠나."

―YBM을베트남에서만하는거아니죠?

"내년에미얀마에서도시작하고인도네시아까지갈생각이다.우리나라에는아세안(ASEAN)나라가제일중요하다.그중에서도미얀마·베트남·인도네시아가제일크다.땅이나인구,머리면에서(세나라가)제일중요하다.투자할때도마찬가지다.앞으로한50년간가장빨리커질수있는나라들이다."

―아세안중에왜미얀마인가.

"(다른경쟁자보다)먼저들어가야(성공하기)좋다.(옛대우도)항상(신흥시장에)처음들어갔다.미얀마는시장개방을한지얼마안된다.우리로선묘미가있다.그래서거기가서사람을고용하고,외화를벌어주는수출이중요하다.미얀마는땅이크니까식량사업등을할수있다.앞으로미얀마에선한국의농과대학출신을뽑아서보내가르칠예정이다.고무나무같은사업말이다."

지난24일베트남하노이사범대학에서특강을마친김우중전회장이한국에서온청년연수생들과함께강의실을나오고있다.세계시장을섭렵했던왕년의비즈니스거인을청년들은마치아버지를대하듯웃고떠들며왁자지껄하게배웅했다./하노이=오종찬기자

◇아버지처럼자상하게

―고급노하우를전수해주는’김우중사관학교’를만든셈인데.

"내가해온게있기때문에쉽다.(YBM청년들이)15년안에창업하기를기대한다.(청년들이)자신이생기면뭐든지할수있다.백화점에서파는모든물건을다할수있다."

―교육이스파르타식으로강행군이라던데.

"제일문제는요즘젊은이들이한국에서(편하게)자랐기때문에….여기에적응해서일을해내도록해야한다.그게제일어렵다.아침5시반부터밤10시까지훈련한다.이렇게10개월간공부시킨다.이걸따라오라,배겨내라는거다."

―정리정돈을특히강조하신다고들었다.

"남자들은군대갔다와서정리정돈을잘하는데오히려여자들이문제다.여기있는청년들에게내방에와서보라고한다.어떻게돼있는지말이다.공장이자기집보다깨끗해야한다.나는(대우시절)공장을인수한뒤리노베이션하고이발소까지만들었다.지저분한머리로일하면흐트러진다.창고정리못하면가망성없는회사다.투자를많이하는것보다청소잘하는공장이성공한다."

―아버지가자식대하듯자상하게신경쓴다고하던데.

"교육생들을한달에4번은만난다.학생들잠자리가편해야하는데이불홑청도내가직접골랐다.(대학기숙사에)뜨거운물이안나와샤워시설을마련했다.신발장도만들어1인당한칸씩5켤레씩놓도록해주었다."

―이들을채용한현지기업반응은?

"이곳기업들은(YBM졸업생들을)현지직원채용이아니라본사직원대우로뽑는다.해외수당까지주고,서울에서온직원과똑같이해주겠다,한국서온사람과갈등이안생기도록하겠다는거다."

―요즘청년들은삶의조건을따지는데여기까지와야할절박한이유는.

"월급올라가는것을보면한국보다여기가훨씬높다.10년지나면(한국에서취업하는사람을)완전히압도할것이다.(청년들이)사정을알면다온다.여기있는베트남로컬업체에도취업할수있고,베트남관청이나은행도갈수있다.곳곳에깔려서네트워크를형성해서서로돕고하면(창업성공의)기반이만들어지는거다."

◇인생을걸었다

―결국나라전체가밖으로뻗어나가야한다는얘기인가.

"지도자들이어떻게잘하느냐에달려있다.앞으로지역주의가커질가능성이있다.그런경우에대비해서라도아시아경제권구축이중요한데,중국도일본도우리와손잡겠다고손을벌려오는국가가돼야한다.그러려면국내에만머물지않고해외에서힘을가져야한다.세계시장에서강력한네트워크를구축하면한국경제네트워크를누구도무시하지않고서로손을잡자고할것이다."

―사업재기가아니고교육에승부를걸었는데….

"이거해서(YBM졸업생들이)15년후에독립했다든지,중역이되는것을보고싶다.그러면(나의)흔적이남는것이다.(YBM사업이)20년후엄청나게커져서흔적을남길수있다.김우중이란사람이살았는데,실수해서그렇게됐지만(대우그룹해체를뜻하는듯)….사람은조그마한것이라도(살았다는)흔적을남겨야한다.(대우해체에대해)나는잘못했다고생각안하는데,잘못했다고생각하는사람들에게(YBM사업을통해)김우중이이렇게할수있구나를보여주고싶다."

―한국사회로부터재평가를받고싶은건가.

"(청년사업가들이)자라나는것을보면얼마나좋은가.그런마음으로끝까지가야한다.내가앞으로얼마나살지모르니까기본으로모델을만들어놓자는생각이다.나는돈을벌려고사업을하지않았다.나라를위해한창일하다보니결과적으로돈이생겼다.개인적으로돈쓴게없다.우리세대는’희생의세대’다.태어나죽을때까지말이다.나라를위해살았다고해주면제일좋다.일관되게난그렇게살았다.지금은(글로벌YBM을)시작했으니내꿈이실현되도록구십살,백살까지내인생을걸겠다."

김우중,대우해체이후14년간어떻게살았나[4]

김우중68개월유랑·수차례큰수술…사면후베트남체류


추징금18兆선고받아국내서사업再起는불가능전대우회장의동선(動線)은그동안베일에싸여있었다.간간이신병치료차국내에들어올때마다근거없는재기설(再起說)이나돌뿐이었다.

김회장이은둔한이유는무엇보다건강때문이었다.그는대우그룹해체이후1999년10월중국으로출국해5년8개월동안독일·프랑스·수단·베트남·중국등지에서유랑생활을했다.2005년귀국해재판을받을때링거를맞으며법정에들어설정도로그의몸은만신창이였다.2000년과2002년독일프랑크푸르트인근병원에서장협착증수술,2005년한국에서심장수술과뇌출혈치료를받았다.그리고2007년사면이후베트남하노이에서체류해왔다.

1973년대우실업기업공개직후(사진위맨왼쪽)와1979년수출탑수상(사진아래).

김회장은건강문제에대해"나자신과싸워이겼다"고표현했다.건강을회복했다는의미다.현재베트남에서는하노이와호찌민을오가며글로벌청년사업가(YBM)1기졸업생과대우출신현지사업가들을만나며지낸다.김용원전대우경제연구소회장은"일이없으면못견디는체질인김우중회장은YBM사업을통해할일을찾았고건강이좋아진계기가됐다"고전했다.또중국·싱가포르·미얀마·홍콩등지에서예전에사귄현지의전·현직정·관계실력자들을만나기도한다.

시간이아까워골프를치지않는다던그는해외유랑을하면서건강관리를위해골프를시작했다.오전5시에일어나9홀을돌며골프를치는데,공이그린에올라가면퍼팅을하지않는다.그는"퍼팅을하면스트레스를받고건강에오히려나쁘다"며"걸으려고골프장에간다"고말했다.

김회장은2006년추징금18조원을선고받았고,따라서본인명의재산은없다.소득이생기는족족압류당하기때문에국내에서의사업재건도사실상불가능하다.20조원분식회계책임을지고있기도하다.다만부인정희자(73)서울아트선재센터관장과사업을하는두아들(선협·선용씨),그리고이수화학김상범회장의부인인딸(선정씨·48)측으로부터재정지원을받는것으로알려졌다.김회장은현재하노이외곽의외국인이많이사는아파트에살고있다.한측근은"김회장앞으로들어오는수입은없다"고말했다.

하지만전세계곳곳의대우맨들은김회장에게큰힘이되고있다.대우해체후14년이지난지금도이들은끈끈한관계를유지하고있다.-조선일보/수정:2013.04.30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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