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영어관용구중에
그런히말라야가우연처럼다가왔다.간절히소망하면꿈이이루어진다는게이런것일까.지난해12월‘절친’인서울아산병원신경외과의전상용교수가솔깃한제안을해왔다.같은병원신장내과의김순배교수가고산병과관련한임상시험을위해히말라야안나푸르나원정대를꾸리는데참여하지않겠느냐는것이었다.
드디어지난2월22일.네팔수도카트만두를거쳐우리일행은프로펠러네팔국내선에몸을실었다.목적지는
“나마스테!”통상“안녕하세요”로통용되는네팔인사다.원래뜻은‘당신을존중한다.나의영혼과당신의영혼은통한다’라고했다.이곳사람들의인생관을반영하는인사말이다.
포카라만해도해발이870m이다.사람살기좋다는강원도평창(700m)보다높고북한산백운대(836m)보다도조금더높다.낮에는여름,밤과새벽에는좀서늘한날씨다.아열대기후이기때문이다.
트레킹첫날,일행은호텔에서차량으로1시간30분이동해출발지인칸데에도착했다.1770m.해발고도로만따지면설악산대청봉(1708m)이다.농담삼아,여기서는2000m정도는산으로쳐주지않는단다.그냥마을이고동산(?)이지.
포카라같은도시에서보이는히말라야설산들은그냥산이아니다.분명히높은산들이있고그위로구름과하늘이있는데,그하늘위에하얀궁전들이있는것같다.구름위하늘의신전이다.오랜세월그곳에서자란사람들은당연히경외심을가질수밖에없을것같다.신들이사는곳,자신들을지켜주고이끌어주는곳,인간이함부로접근할수없는곳이바로그곳이다.
계단식다랑이논·밭이있는고산마을들과롯지(숙소및식당)들을지나면서가파른길들을오르고내리기를반복했다.가끔씩양떼나당나귀같은가축들이지나갈때면길안쪽으로피하며먼지를뒤집어쓰기도한다.그렇게란드렁이란곳에도착했다.여기서부터는합판으로벽을만든2인혹은다인1실의
아래쪽에는비가내리지만3500m이상에서는눈이내린다.눈보라가휘날리고,눈사태도종종일어난다.계곡사이를가던중갑자기위쪽으로부터“꽝”하는소리를두어차례들었는데,현지셰르파족에따르면그것이바로눈사태가일어날때나는소리란다.
파란하늘아래설산을바라보고있노라면봉우리를타고구름이피어오르기시작한적이몇차례있었다.구름으로가려지기전에사진을찍기위해급히배낭을풀어사진기를꺼내면갑자기봉우리가사라졌다.그짧은시간동안구름에가려진것이다.히말라야는그렇게변화무쌍했다.천국과지옥이수시로,그것도어느순간갑자기뒤바뀐다는느낌이바로그런것이다.
2505m에있는도반까지는울창한숲이보이기도했다.하지만도반을출발해해발3000m정도에다다르자왠지주변이휑한느낌이들었다.나무들이사라지고눈이쌓인바위절벽들이나타난것이다.문득생명체가모두사라졌다는것을깨달았다.하늘엔독수리한마리,바위틈엔도마뱀한마리가눈에띌뿐이었다.올려다보이는4000m이상설산들이잔뜩위엄을지닌채마치말을하는것같았다.마음으로들리는경고였다.
그렇다.산은인간의접근을허락해줄뿐,인간이정복하는것이아니라는사실을저절로깨달았다.생각이여기에미치자알수없는경외심과함께약간의두려움이엄습해왔다.그때까지잊고있었던고산병에대한걱정이일기시작했다.사실증상이바로나타나지않아서그렇지,이때부터고산병증세가살짝왔던것같기도하다.본격적인증상은다음날안나푸르나베이스캠프(4130m,통상ABC라고지칭)에서였지만.
당초내경우4000m정도까지는고산병증세가오지않을것이라고생각했었다.이번안나푸르나행의목적이고산병예방을위한임상시험이었지만,그정도높이에서는멀쩡할것이라자만했었다.주사를맞는시험군과그렇지않은대조군을추첨을통해정할때도나는대조군으로분류가됐었다.
3230m데우랄리까지만해도쌩쌩했다.그러나
본격적인
사전교육도많이받았다.
나도그렇게한다고했지만,MBC에서ABC로가는눈길에서페이스를잃고난후뒷골이당기고몸이축처지는고산병증세가찾아왔다.
길은사방이눈으로덮여조금만길을벗어나도푹푹빠지기일쑤고,몸은천근만근이다.위에서내리쬐고아래로부터눈에반사되는자외선은마치돋보기를들이댄것처럼강렬했다.선글라스가없으면눈을뜰수없을정도였다.그러나눈부신파란하늘과순백의설원이이루는조화는순수함을더해온몸의고통을잠시나마잊게해주었다.
ABC분지초입에는‘케른’이라고불리는추모돌탑이서있었다.그너머로보이는안나푸르나1봉남벽어딘가에는지난해10월하산도중실종된박영석등반대장과강기석·신동민대원의시신이묻혀있을것이었다.마침갖고갔던안동하회탈열쇠고리를추모돌탑한쪽에놓았다.당초두개를가져갔는데하나는셰르파족팀장쿤산에게선물로주었다.12년전미국에갈때들고갔다가남은하회탈열쇠고리두개가12년후한개는히말라야셰르파족에게,또하나는히말라야의추모돌탑에놓이게되다니.사람이든물건이든다제주인이있게마련인모양이다.묘한인연의끈을생각하며히말라야의신께다시한번망자들의명복을빌었다.
히말라야의일출은그렇게화려한점등식으로시작된다.처음엔노란백열등처럼불이붙은봉우리들이어느순간붉은색으로변하는가싶더니마침내온통흰옷으로갈아입었다.
되돌아오는길50여㎞는이틀만에주파했다.올라갈때볼수없었던것들이내려올때는보였다.생각과상념도마찬가지였다.
오를때는앞길을모른채체력을조절해가면서한발한발전진해나갈뿐이었다.별다른생각을할겨를이없었고경치를즐길여유도없었다.오로지고산병에걸리지않겠다는의지만강했다.해발고도
신이허락한이곳까지만생명체가살라하고,더이상은오지말라했는데,인간은왜자꾸더높은곳으로올라가려할까.자연에순응하면서도도전하고정복하는것이인간의또다른본능이라지만위대한자연앞에서는늘겸손해야한다는점을다시한번깨달았다.도전과모험,무모함과교만에대해만감이교차했다.
올라가는처음이틀은저녁에술도한잔씩했다.춥고불편했지만손발도씻을수있었다.하지만2500m가넘는도반정도부터는어림없는얘기였다.술,담배는물론이고샤워,머리감기는금물이었다.태양열온수도있어돈만내면샤워도가능했지만그랬다가는자칫체온을빼앗겨고산병으로가는지름길이되기십상이다.머리는다시내려올때까지감지말아야하고,손발은물휴지로닦는수밖에없었다.
귀국직후고교동창회에갔더니모두가부러워하는눈치다.어서빨리히말라야경험담을들려달라고닦달이었다.마침앞쪽에앉은동창생도히말라야를갔다왔다하길래,“몇차례,어디를갔다왔냐”고물었다.“8000m이상정상만3차례등정”이라는답이돌아왔다.순간할말을잊었다.세상엔고수가널렸다.말을안해서그렇지숨어있는실력자들이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