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산악인’ 홍성택

‘5극지(極地)’탐험기를펴낸…’숨은산악인’홍성택

"가야할길"가야할길이면열어주시고…제게두려움이길강한심장을주소서"
"생존욕구로봉지를물어뜯습니다凍傷(동상)걸린입술딱지서피가뚝뚝…
하얀설원에빨간눈꽃이핍니다"
"등반사고로돌아오지못해도슬퍼하거나애석해말기를내가좋아서선택한것이니"

무더운날‘아무도밟지않은땅,5극지(極地)‘라는책을읽고는얼음구덩이속에빠진기분이들었다.남극점·에베레스트봉·북극점·그린란드·베링해협을탐험한산악인홍성택(47)씨자신의얘기다.

사람은겉모습만으로판단할수없는모양이다.그는용인대(유도학과)산악부출신,가늘게찢어진눈,힘좋은충직함,말술(斗酒)등의이미지로만내게남아있었다.

"지난날원정을어떻게이처럼생생하게쓸수있었소?"

"원정을가면밤마다텐트안에서꼭일기를썼습니다.보관된일기장이열댓권됐습니다.지난18년동안겪은제시련의추억들을세상과공유해야겠다고생각했습니다."

그는화려한조명을받은적이별로없었다.스타산악인인허영호·엄홍길·박영석원정대의대원으로서이들의성공에일조했다.그렇게20대중반부터’보조역할’을하다보니어느새그런원정들이자신의성공기록으로남았고,다음과같은글을쓸수있게된것이다.

‘설상내가등반이나탐험을하다가어떤사고로돌아오지못한다하더라도친구나나를아는많은사람이내죽음에대해서슬퍼하거나애석해하는것도원치않는다.어디까지나내가좋아서선택한것이기때문이다.’

그를만났을때나는다시탐험기에대한감동과의문을표시했다.

―외모와다르게이렇게섬세할줄몰랐소.극지원정때는피곤해모든게귀찮았을텐데일기를써왔다니.

"남극점도보탐험(1994년)때허영호형이매일기록하는것을봤어요.그걸보고배웠습니다.극한의추위에는볼펜도얼어붙어연필로썼습니다."

―허영호대장과의인연은어떻게?

"1992년첫해외등반으로중앙아시아의칸뎅그리봉(7010m)에갔습니다.그때정상에올랐더니’무식하게체력좋고등반잘한다’는소문이났어요.이듬해허영호형이에베레스트봉원정을꾸리면서대원으로참가하라고제게연락을했어요.영호형은그때최고산악인이었지요.신이나서원정대의막내로서뒤치다꺼리일을다했지요.그원정에서영호형이등정에성공했어요.그런인연으로1994년남극원정에참가하게됐던거죠."


―남극원정에서식량과장비를실은160㎏썰매를끌면서"내가소도아니고이걸어떻게끌고가란말인가"라고내심불평했다면서요.

"그때까지수직등반을해왔지,극지탐험은처음해보는것이었어요.등반이3000m달리기라면극지탐험은마라톤입니다.등반준비를할때면살을빼고폐활량을늘리는운동을해야합니다.하지만추위속에서계속걸어야하는극지탐험은반대로살을찌워야합니다.이걸모르고갔으니남극에도착해서는몹시겁을집어먹었어요."

―원정을떠나기전에는고상한열망으로불타오르지만막상문명세계와격리된상황에놓이면머릿속에는원초적인생존욕망,온통먹는생각뿐이라고했소?

"원정에서짐무게를줄일수있는것은식량뿐입니다.에너지소모는많고먹는양은늘부족합니다.하루종일’한국에돌아가면무얼무얼먹겠다’를상상하면서짐썰매를끌었어요.운행하다가간식을먹을때면장갑을낀채비스킷봉지를물어뜯습니다.동상(凍傷)에걸린입술딱지도같이뜯겨피가뚝뚝떨어져요.하얀설원위에빨간피가눈꽃처럼피어납니다.형들은간혹비스킷조각을실수로떨어뜨리는데,저는그것을봐두었다가눈속에서찾아먹었어요."

―오래전(2003년)나는박영석대장의북극원정에참여했을때그런경험이있어요.운행을마치고텐트안에서꿀꿀이죽을끓여같이먹으면숟가락이바쁘게왔다갔다해요.순식간에코펠바닥이보일때먼저숟가락을내려놓는게인격과수양이아닌가하는생각을했어요.

"극한상황에서인간의품위를유지하는게…,다무너졌어요.저는저녁밥을지을때열량을위해죽에넣을생버터를형들몰래한입에털어놓고삼켜버린적도있었어요.살아남아야겠다는본능같은것이었지요."

―극한상황에처하면사소한일에도대원들간에감정과원망이싹트게되죠.

"불신과적대감이생기기도합니다.그걸바깥으로표현하는순간원정대는무너집니다.자제하고스스로해결해야하는거죠.이런경험으로저는후배들에게’원정과정에서는어떤고통과불만도의문없이받아들여라’고강조합니다."

―그렇게갈망했던원정도시간이가면’괜히왔구나’후회를하게된다면서요?

"짐썰매를끌면서’여기서끝냈으면좋겠다.이정도면충분히겪었고내가보여줬다’는마음도많이들었어요.매일12시간을걷다보니먹은음식이모두에너지로소모돼장속에찌꺼기만쌓였는지.열흘이상변을못보기도했죠.언손가락으로항문을후벼팠으니까요.정상적인생활로부터가족과친구에게서떨어져이고생하는것은정말미친짓이죠."

44일만에한국인으로서처음남극점에도달했다.이원정으로허영호대장은’3극점(에베레스트봉·남극·북극)’성공기록을세웠다.

"귀국하자기자들이비행기까지올라와서취재했어요.그때제게는’이는잠시지나가는순간이니착각하지말자.본디모습에서달라지는건아무것도없다’는생각이떠올랐어요."

홍성택씨는“극한상황에놓이면머릿속에는원초적인생존욕망,온통먹는생각뿐이었다”고말했다.이명원기자

―원정하는동안’다시는이런짓안한다’고다짐을하고서막상귀국하면다시짐을꾸릴생각을하지요?

"그게사람을미치게하는겁니다.고향어른들은’언제철이들래.이러려고대학다녔느냐’고했어요.직장을얻었습니다.하지만떠나고싶은열망이또꿈틀거렸어요."

그는이듬해인1995년휴가를내고박영석대장의에베레스트봉원정대에참여했다.정상공격을앞두고이런기도를했다고한다.

"가서는안될길이라면가지않게하시고,가야할길이라면길을열어주시고,시련과고통은감수하겠으니가혹한위험은없게하소서.두려움을느끼지못하는강력한심장과지치지않는근육을주시고,정확히판단할능력을주시고나를불쌍히여기소서."

정상을밟은뒤그는탈진한채로내려오고있었다.무전기를잃어버린상태였다.그때다른원정대의후배는조난직전상황이었다.한셰르파는추락했다.나중에그는"무전도받지않고의리없는놈,어떻게너만살려고내려왔느냐"는비난을받았다.

"구차하게변명하기싫었어요.추락사한셰르파를생각하며침묵을지켰습니다.하산과정에서저도미끄러져추락했어요.돌출된바위에부딪혀멈췄어요.죽었다고생각했어요.살아온삶도후회되지않았고,남은삶에도미련이없었어요.의식을잃었는데누군가가흔들어깨우는겁니다.눈을떠보니아무도없고바람만불고있었어요."

생환한그는멈추지않았다.2005년북극점에재차도전하는박영석대장의원정대에참여했다.이원정을위해그는11년간다니던회사를그만뒀다.

"저는인간이라면한번쯤자신을얽매고있는현실과손에쥐고있는빵을버릴줄알아야한다고생각했어요.자신에게맞는일과사명을찾아매진할때비로소행복과존재의미,열정과보람을느끼거든요."

북극원정은그에게가장어려웠던원정으로남아있다.영하40도이하로내려가는추위와블리자드,난빙(얼음언덕),리드(얼음사이갈라진틈)가원정대를괴롭혔다.이원정에서그는일곱번이나리드에빠졌다.두번은사신(死神)과입맞춤한거나다름없었다.

"순식간에북극바닷물에얼굴까지빨려들고말았어요.허우적거리며팔을뻗어도얼음두께가2m나돼얼음위에손이닿지않았습니다.한쪽얼음판이서서히움직이며다가오고있어내몸은저엄청난얼음판사이에껴압사할것같았어요.’얼음판에내장과심장이터지는걸내눈으로뻔히보면서숨이끊어질것이다.제기랄,이렇게죽고싶지는않다’고하면서20분이상물속에서돌아다녔어요.마침내얇은얼음판을찾아서밖으로나왔을때온몸은꽁꽁얼어붙어있었지요.그제야도착한대원들이저를발견하고텐트를치고버너를켰습니다."

원정대는54일만에마침내북극점에도달했다.이원정의성공으로박영석대장은’산악그랜드슬램(히말라야14좌+남·북극)’의기록을달성했다.경비행기로철수할때대원들은베이스캠프에서공수해온기름기있는음식들을미친듯이먹었다.경비행기에는화장실이없었다.한대원은엉덩이밑에쇼핑백을대고설사를하는’기록’을남겼다.

2007년에는그는엄홍길대장의로체샤르봉원정대에참여했다.이때엄홍길은’히말라야16좌’등정기록을세웠다.

―산악인으로는유일하게허영호·엄홍길·박영석대장과원정을모두경험했지요.리더십을비교하면?

"영호형은세심하고전략적입니다.영석이형은카리스마가있고후배들을아껴요.대장은책임지는자세를보이고,대원들이믿고따라올수있게끔동기를부여하는게중요합니다."

그뒤로그도대장을맡아2010년개썰매로그린란드를종단했다.2012년에는한국최초로베링해협(러시아와알래스카사이에있는대륙간해협)도보횡단에성공했다.

"베링해협은끔찍했습니다.어둠속에블리자드가불고얼음판은태평양을향해빠르게떠내려갔죠.불과몇초사이에5m거리에서한대원이제눈에서사라졌어요.갑자기제가서있는얼음판도솟아오르더니몸은얼음에처박히고다른얼음덩어리가밀려왔어요."

―지금까지살아남은게운(運)일까실력일까요?

"원정을떠나면성공할수있지만실패할수도있고,동상(凍傷)으로신체일부가잘릴수있고,아예못돌아올수도있습니다.운인지실력인지는모르나매번죽음의지대에서저는살아서돌아왔어요."

그는’5극지’로멈출것같지않다.올가을’로체봉남벽(南壁)’을계획하고있다.아무도성공한적이없는루트다.히말라야14좌를최초완등한라인홀트매스너가두번시도한적있다.세계두번째14좌완등자인예지쿠쿠츠카는이로체남벽에서추락사했다.국내에선여섯번도전했지만실패했다.

―욕망은한계가없는게아닌가하는생각이들때가있소.

"저는지금껏마음속에오래꿈꿔왔던탐험과등반을해왔습니다.이제로체남벽만남았습니다."

―모험의난이도를계속높이면결국죽음과마주할수밖에없어요.

"스키선수나카레이서들은엄청난빠른속도로달립니다.우리보기에는너무나위험하고무모하지만,이들은’그렇게보일뿐사실은안전하다’고합니다.이처럼등반에대해서도잘알고있으면위험요소는많지않다고봅니다."

―이에대해부인의견해는?

"아내가많이아는걸원치않습니다.제가돌아오는모습에익숙해져있고요.하지만이번에아내가제책을보면서혼자눈물을흘리더군요."


[최보식이만난사람]최보식조선일보선임기자/

http://db.chosun.com/site/data/html_dir/2013/07/08/201307080089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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