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내나이가화살처럼날아오기까지…
나의이야기는2010년에서시작된다.2010년은퍽이나이상한해였다.새해로바뀐직후일부전자기기들이날짜와시각을잘못인식해은행의현금인출기에서카드만료기간이지났다고돈을내주지않는가하면,1월1일에발송된메일이스팸으로분류되는일도있었다.소위Y2K10문제였는데,10년전의밀레니엄쇼크때와는달라서모두들금방적응하긴했다.
중부지방에기상관측이래최대의폭설이내렸다.
봄에도영하의날씨가정신병자처럼찾아오곤했다.미친그친구는따사로운삼사월이제집이아닌지도모르고사흘나흘일주일씩머물렀다.식물들은제대로싹을틔우지못했고,사과꽃배꽃들이겨우꽃을피웠다가는얼어붙었다.
태평양건너남미에서는강진이발생,수십만명의사상자가났고,미국의건강보험개혁안이연방하원을통과했다.
김연아선수가올림픽에서역대최고점수로금메달을땄다.
봄의신령은아직도겨울에발목이잡혀빠져나오지못하고있었다.농작물들은냉해를입어정상적인수확이어렵다고했다.
스산한날들이지나갔다.
4월이되자아이슬란드에서화산이분화했다.시커먼화산재가온유럽을뒤덮어항공기들이한달이상공항에묶였다.
성북동길상사에서법정스님이돌아가셨다.
여름이되었지만기온은여전히예년을밑돌았다.그러다가비가쏟아지기시작했다.하늘이찢어진듯몇년치의양을한두시간에쏟아내온나라를돌아가며홍수로뒤덮었다.
그런데도나는주말이면산에있었다.같이산행을하는대여섯명의친구들과함께였다.우연히알게된K를중심으로결집되어2년째같이산에다니고있었다.살다보면예측못한일들이많았다.우리들은고향친구나선후배,학교동창관계도아니었고,업무나일때문에사회에서알게된사이도아니었다.그저어쩌다가이리저리규합이된,아무공통점도없는,나이도들쑥날쑥인모임이었다.이런관계의조합은나로서도처음이었다.
그러나같이다니다보니더없이편했다.각자속해있는사회가다르고사교채널이달라생각나는대로아무얘기나해도되었고,친구라든지상사,집안식구흉보기에도좋았다.우리들은주말이면우비와랜턴을챙기고어김없이산밑에서만났다.누구에게서비롯된것인지불가사의한열기에감염되어모두들어처구니없는열정을불태우고있었다.비를쫄딱맞으면서도남덕유산과지리산에다녀왔고,때로는야간산행도서슴지않았다.뇌성벽력이치는가운데캄캄한운무속의남덕유철제계단을뒤돌아내려오던장면이아직도환상처럼뇌리에펄럭이곤한다.
북한산이었는지도봉산이었는지모르겠다.그날,너무도기분이야릇해서,감각이한쪽으로만쏠린탓인지장소가정확하게떠오르지않는다.하여튼우리들은서울근교의산에오르고있었다.잠깐햇빛이났고,숲속은‘풀밭위의점심’처럼투명하게빛났다.나는눈을가느스름하게뜨고나뭇잎들사이로비쳐드는맑은햇살을바라보았다.신비했다.마네가그려낸퐁텐블루숲보다더아름다웠다.빛의향연에초대된듯기분이아른아른해졌다.나는폐를불룩하게부풀려숲의공기를들이마셨다.푸른입자가내몸으로아른아른들어와핏줄을타고다녔다.나는싱그러움에떠내려갔다.꿈속의이상향에서노니는것같았다.그때,공기의유동이느껴졌고,내앞에서올라가던K가정상쪽에서내려오던자기친구를만났다.그친구는이름이A인모양이었다.그들은반갑게악수했다.그러더니갑자기K가나를A앞으로끌어당겼다.
“아,참,인사해라.둘이동갑일걸?”
나는나만의감상에서깨어나얼떨떨하게K를바라보았다.의아스러웠다.K와나는동갑이아닌가.그렇다면K와나,그리고지금만난A가동갑인것이다.우리셋이동갑이라고하면될것을왜자기는뒤로빠지고A와나를마주세워동갑이라고하는지알수없었다.나는고개를갸우뚱한채A와악수했다.A가목례를남기고산아래로내려갔다.
나는배낭을추스르며이것저것생각에잠겼다.왜K가이런장면을연출했는지곰곰따져보았다.K는개성이강했고,장점과단점이두드러진사람이었다.추진력과에너지가넘치는대신독선적이었고,거역못할마력같은걸뿜어냈다.그흡인력때문에그의주위로사람들이모여드는것같았다.말하자면기인이었는데,기인의카리스마가지금우리그룹의리더노릇을하고있는게사실이었다.그는많은사람들에게서부름을받는것같았고,설핏스치듯알게된사람들에게자기나이를낮추어말하는모양이었다.때에따라열살,혹은스무살까지.그런다는걸더러들어알고있었다.그리고무슨이유에선지지금내려간A에게는,아니A가속한그룹에는여섯살아래라고소개했던것같았다.그각본에맞추어나를A와대면해동갑이라고인사시킨게분명했다.각본상자기는여섯살아래니까.실소가터졌고,어이가없었다.나이를가지고장난치나보다생각했는데진짜로나이를속이고있다니이런유치한일이어디있단말인가.어떻게그런식으로문어발식교유를하나.자기자신에대해그렇게도자신이없을까.2010년들어이상한일천지더니이거야말로진짜이상한일이었다.나는비아냥거리지않을수없었다.
“기억하기도힘들겠네.어디가서몇살이라고했는지잊어버리면어떻게하지?적어놓은공책있어?”
“머저리취급받는것보다는낫지.”
즉각화살이되돌아왔다.
“머저리취급?나이많으면머저리야?”
“당연하지.”
나는깔깔웃으려다가그만두었다.그가너무나정색을하고있었기때문이다.그래도몇마디더찔렀다.감정을꾹꾹눌렀지만언쟁이되었고,그러는와중에나는속으로으악놀라고말았다.그는늙음을머저리,등신,패자,폐인의동의어라고여기고있었다.K와이런대화를나누는건처음이었다.우리는늘산에서쓸데없는여담을주고받았고,주제있는얘기를나눠본적이없었다.K에게는물론특별한버릇이있기는했다.역으로세게받아치는말버릇.그는무슨얘기든지독한독설과역설로사람들을웃겼다.그러나이건농담이아니었다.나는그걸확연히알수있었다.더구나그는리처드도킨스의신봉자였다.책을전혀읽지않는줄알았는데,<이기적유전자>계열의책만읽는것같았다.그는삶을자아와타자의맹렬한투쟁으로보았다.맞는말이었다.그러나…,그러나….나는그냥넘어갈수없었다.
“인간에게는유전자와본능,이기심만있는게아니잖아?문화는어때?언어는어떻고?이성이전혀없다고생각하시나?철학,윤리,희생정신,박애주의같은것들은어때?”
“웃기네.사람은동물이상도이하도아니야.생존이외의문제는있을수없다고.강하고이기적이라야만살아남고,생명을부지하는거야.그런관점에서병들거나늙은건치명적이지.내가제일싫어하는말이뭔지알아?휴머니즘이라는말이야.그런위선적인말들때문에약자들이속아넘어가고결국이용당하는거야!”
그의입장은확고했다.나는입을다물어버렸다.곁눈으로그를일별했다.새카만머리에반들반들한얼굴….젊었다.원체외모에신경을쓰는탓에내아랫사람으로보였다.평소그가젊게차리고다니는것에대해양아치같다고야유를던지곤했는데그에게있어제일중요한건신체적젊음이었다는생각이들었다.그래서나이를속이고다니고,현실적으로자기나이보다훨씬젊어보인다는것에굉장한자부심과긍지를느끼는듯했다.당연히그의일과는온통젊기위한노력으로채워져있는것같았다.그러나거죽만그렇지동갑인내눈에는그의나이가고스란히다보였다.
“내장이삭을대로삭아방귀를뿡뿡뀌어대면서나이만젊다고거짓말시키고다니면다야?사고방식은고루하다못해전근대적이면서.열살,스무살젊어보인다고사람들이감탄했다고?예의삼아인사치레로하는건데그런걸다믿어?사람들은누구에게나그렇게말해.당신바보아냐?”
“젊기위해매일죽도록노력하는데20년밖에젊지않다니억울하다!200년정도는젊어야지.그래야직성이풀려!”
“아이구,아이구…불로초를사드세요.”
나는입을딱다물어버렸다.더이상의사소통을할수없었다.마음한구석으로슬픔이밀려들었다.공감이가지않았다.젊음이최고라고기를쓰고강조하는,이걸걸치거나바르거나먹으면젊어진다고온갖방법을동원해효과적으로선전하는,그래야물건이지속적으로많이팔리는상품선전에수십년간속아온극단적결과같았다.뭐강장제나화장품,의류같은…보양제,장신구,스포츠용품등성인광고의80~90퍼센트는젊음을신으로떠받들고있지않은가.
어쨌든나는그순간내나이를자각했다.뚜렷하게.예순셋이라는내나이를.나는마흔무렵에서예순셋으로불현듯떠올랐다.동산위의달처럼.낯설었다.남의눈에비칠예순셋을느껴보았다.노인이었다.경우에따라서는완전한노인.이제죽을날만남은폐인인지도몰랐다.K가저토록숨기고또부정하고싶어할만큼.나만그걸망각하고있었다.그렇다.나는내나이를완전히잊고있었다.그동안남다르게살아온탓일것이다.나이에관한인식에있어서나는아마특별한경우에해당할거라는생각이들었다.
서른세살무렵에나는처음으로나이를심각하게앓았다.결혼생활과육아,직장생활,시집살이로거의초죽음이된데다꿈이내게서멀어져가고있다는것,그리고당시젊은이들을강타한
어떤일상도지속되면익숙해지기마련이다.어떠한아픔도지속되면둔화된다.나는그냥그렇게,어쩌면아무렇지도않게,약간나른한기분으로몇해를흘려보냈다.
마흔이다가오고있었다.
지금은마흔,쉰이된여성들도미니스커트에긴생머리를늘어뜨리고몸짱이되어인터넷을뜨겁게달구지만당시의사회분위기는매우달랐다.마흔이면불혹이요,중후한중년이요,아리따운여성으로서의생명은끝나는거나마찬가지였다.말하자면서른아홉까지가여성이었다.여성적아름다움과매력이이제내게서영원히사라진다는데에절망하지않을수없었다.나는제2의사춘기를더아프게앓듯이제2의나이병을더욱심하게앓았다.직장을그만둔나는커튼을치고어두운방안에서나가지않았다.프루스트처럼3파장스탠드아래서하루종일무언가를읽거나썼다.나는읽어버린시간들을찾아헤맸고,그것이결집되어튼튼한소설이되었다.나는드디어소설가로등단했다.팡파르가울렸고,나는새로탄생했다.
소설가로서의삶은이전의삶과는비교할수도없을만큼벅차고외로웠다.외로움이라면아예맨밑바닥까지내려가서똬리를틀고앉는게소설가의일상이었다.스트레스가주기적으로넘실댔고,쓰나미가되어나를덮치기도했다.그래도종국에는남는게있었다.계획한것을다쓰고났을때의뿌듯함과긍지,그리고결과물이었다.마흔이넘은삶에도,아니마흔이넘은삶에야말로진정한무엇들이있었다.나는사람들의인생을탐구하며한살한살나이를먹었다.내나이가전혀의식되지않았다.한권의책을내고,또한권의책을내고…쉰살이되고예순살이되어도나는나이를몰랐다.남들이내나이를가리키며손가락질해도나는아무렇지도않았다.그렇게나는예순세살이되어있었던것이다.그날K를투과해내나이가화살처럼날아오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