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꾼의꿈,그것은칠삭둥이허약한신체로태어난나의그림자
두달뒤오빠가돌아가셨다.갑작스런죽음이었다.내바로위의작은오빠였다.나보다겨우네살위였고,자랄때부터나와가장친했던사이였다.
작은오빠는1년전쯤위암진단을받았었다.진단받기두달전까지식사를아주잘했고,건강한상태였다.우리가족은모두희망을가졌다.의학의발달로암은거의극복됐다고나는오빠를위로하곤했다.위장을완전히절제한사람들도잘살고있다고병문안갈때마다나는새된소리를냈다.실제로내주변엔그런친구가둘이나있었다.그중한친구는위장과함께비장까지다들어냈는데도10년넘게해맑은얼굴로친구들모임에참석했다.바싹야위고위태해보이긴했지만생명에는지장이없는것같았다.나는은연중안심하고있었다.오빠는입원과퇴원을반복하며항암치료를받았다.6차까지는성공적이었다.오빠는얼굴에뽀얗게살이올라내가해간찰밥을맛있다며두공기나먹었다.그러나그뒤급격히나빠졌다.
허망했다.울음도나오지않았다.뜻하지않은결과였다.부모님이돌아가셨을때와는아주기분이달랐다.
나는죽음을건너왔다고생각했었다.건방지다고욕할사람이있을지모르지만나는죽음같은늪에서기어나와소설가가된사람이었다.매일매일유서를고쳐쓰던시절이있었고,자살시도도했고,또소설을쓰느라죽음을쫓아다녔다.시부모님과친부모님네분의죽음을직접치렀고,걸출한연출가였던친구와진정한소설가였던친구두사람을이미잃은뒤였다.어떤면으로나자신보다더가까웠던친구들의죽음을통해나는오히려내생래적인기질을완전히접었다.
나중에밝히게될지모르지만나는불안을태중에서물려받은개체였다.그런탓인지회한과우수를체질로삼고살아왔다.나의사춘기시절과젊은시절은온통데카당과전후문학,허무주의로점철돼있었다.그러나절친한두친구가순간에가버리는것을보고나는얼마남았을지모르는내여생을무조건환한태양아래서보내기로작정했다.죽음자체가두려운건아니었다.늘그것한가닥을마음밑에깔고살고있었으니까.열살스무살에죽은사람도있는데이정도살았으면많이살았다고늘되뇌고있었고,내일죽어도여한이없다고여기고있었다.다만가는과정이좀짧고고통이적었으면하고바랄뿐이었다.그것조차내마음대로할수없다는것을너무나잘알고있었다.
그런데도밤에자리에누우면
허허어이없어하며나는잠속으로빠져들었다.
그러나아침에깨어나서생각해보니아주근거가없지도않다는느낌이들었다.시점이내가죽은시점이고,이승과저승의경계지역에서라면,충분히있을수있는대답이었다.나는지금살아있으므로,
소설은……소설에대해서는마음이복잡했다.그러나소설은어느정도써봤고,한은풀었다는생각이들었다.앞으로오래건강하게살아사라마구처럼칠십대중반에<눈먼자들의도시>같은걸작을쓰고(그는그소설로노벨상을받았다),내가지금까지쓴분량만큼더쓴다면아주좋을것이다.그러나한두권만더쓰고(그건이미초고가되어있으니까)못쓴다해도어쩔수없다는느낌이들었다.거기에는소설에대한내투정,야속함,절망같은게들어있었다.살아있는한어떻게든더쓰려하겠지만,절대로포기하지않겠지만,아무튼그순간암벽등반이소설을뚫고솟아올랐다.암벽등반을못해보고간다면……암벽등반을못해보고죽는다면……정말정말아쉬울것같았다.
지금까지소설때문에,단한순간일망정소설을위해쓰고자외면했던열망이마그마처럼들끓었다.그것은뜨거웠고,펄펄살아있었다.
왜하필암벽등반인가,나는생각해보지않을수없었다.무의식적인순간나도모르게터져나온열망에나도당황스러웠다.
최초의기억과최초의경험은선명하게각인되는것인가.나는연둣빛기억속,암벽산행과나의인연속으로들어갔다.20대초반에나는암벽산행을한적이있다.대학에붙자마자등산클럽을수소문했고,워킹산행으로만족치못하고암벽서클에따라다녔다.물론그때는장비도거의없었고,남자들중심이었다.그리고암벽등반을하는이들은대부분학생들이었다.고등학교산악부와대학교산악부가활발하게활동했고,일반인들은없었다.나중에가죽등산화를맞추어신기는한것같으나운동화에면바지차림으로다녔고,남자들도군용워커에자일을메고카라비너를한두개가졌을뿐이었다.다른장비들은전혀없었다.워커창이닳아반들반들미끄럼판처럼되었어도오직그걸신고인수봉과선인봉에줄곧오른걸보면당시의암벽꾼들은실력이대단했던것같다.
암벽산행에따라간첫날우이암위에서하필추락사고를목격했다.나는죽음을,더구나그런끔찍한죽음을처음보았다.떨어진사람은뇌가터졌는데,이불보에싸야할만큼부피가엄청났다.같이간친구들은무서워울며불며내려와,다시는산에가지않았다.
나는계속해서산에따라갔다.이유는모르겠다.아마나의기질탓이리라.나는겉으로유약하고자랄때는허약하기조차했다.그러나살아오면서외유내강이라는말을심심찮게들었고,같이지내본사람들은지구력이있다고들말했다.
그것과는약간다른얘기로,나는내가만일저항단체에속해있었다면행동대원이되지않았을까짐작한다.부당한일이나불가능한일앞에섰을때출렁요동치는피를느끼기때문이다.그러나대체로행동하지않기때문에,특히소설가가된뒤로는거리를두고관망하기때문에,어떻게하면저상황이나캐릭터를소설에가져다변형해쓸까궁리하기때문에내가슴속의출렁임이잦아들때까지조용히숨을고른다.남들이전혀눈치채지못하는,내안의반란이다.나는반골기질을타고난것같고,
지금도나는겉으로평범하지만보이지않는구석에파격이있어야직성이풀린다.머리를매끈하게빗고옷을얌전하게입었으면구두뒷굽이나마희한해야기분이난다.
사고를목격하고서도내가산에계속따라다니자등반대장도어느순간마음을풀었다.그는자기팀에여자가끼는것을제일싫어하던사람이었다.그러나사고바로다음주에여전히산에따라간나를그는나중술자리에서
당시에는하강기라든지하네스가없었다.그래서로프를가랑이사이에넣어앞쪽가닥을왼쪽어깨뒤로돌려오른쪽허리부분에서손으로잡고내려와야했다.속도가빠르면로프와의마찰로손가락이뻘겋게화상을입었다.심하면간혹문드러지기도해서오버행같은곳이나오면무척조심해야했다.초심자는하강중몸이뒤집어지거나줄을놓치기십상이고,그건바로목숨이날아가는사고이므로리더가다른로프로하강자의가슴을묶어위에서쥐고있으면서조금씩풀어주었다.
올라갈때에도초심자에게는같은배려를했다.즉등반자의가슴을묶은또하나의로프를먼저올라간리더나세컨이위에서쥐고있으면서조금씩끌어당겨주는식이었다.만일의경우에대비한안전장치였는데,그확보로프를‘앵커줄’이라불렀다.자기들은바위나나무에몸을확보한상태였지만다른사람을끌어올리거나내려주는안정성은오직그의손에달려있었다.그런형편이었으니여자들을데리고다니기쉽지않았으리라.여자들은장비도전혀없었다.외국물건이수입되기전이라남자들도남대문시장에가서밀수로들어온비나등을한개씩고가에사던때였다.
수십년이흘러K등과함께산에다니면서나는거대한바위들을올려다보곤했다.
필자약력
서울에서태어나이화여대국문과를졸업했다.1990년중편‘강’으로KBS방송문학상을수상했다.이듬해<세계의문학>에단편‘빗소리’로,<문학사상>에단편‘하오’로등단했다.장편소설<초록빛아침>,<아비뇽의여자들>,<체리브라썸>,<오로라의환상>(전2권),<그물>,<막다른골목에서솟아오르다>가있으며,소설집<빗소리>,<숭어>,<플라타너스꽃>,<악보넘기는남자>,<장미회제명사건>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