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산사랑도비극적으로끝날까
그뒤나의산행생활에는나이가전매특허처럼붙었다.누구든나만보면우선내나이를언급했다.그리고는면전에서직접그것에대한놀라움을표시했다.놀라움이클수록나에대한선심이라고생각하는것같았다.나는통과의례라고생각했다.
그런내가세상으로나와뒤늦게산악회에갔을때,얼마간멍한상태가지속되었다.사람들은나를보면우선내나이부터인식했다.나는나이이외에는아무것도없는무생물같았다.나는세상사람들의상식을처음으로무섭도록느꼈다.그건너무도견고하고높아서절대로넘어설수없는철벽처럼서있었다.잠시생각에잠겨발밑을내려다보고있었을것이다.그러나철벽이열두개쯤서있다해도나는역시그것을넘어나의길을가야했다.내인생은타인의생각에의해달라져선안되니까.나는밀고나가기로했다.
어색하게클라이밍아카데미,즉골수회의산행에따라나섰다.
배낭에등산학교에서배운대로등반장비를챙겨넣고묵직한무게를느끼며포돌이광장으로갔다.
11월의을씨년스러운날이었다.
온갖사념이꼬리를물고일어났다.너는왜이렇게묵직하고고통이수반되는쪽으로자꾸가느냐,좀가볍고즐거운데가서놀다오면안되겠느냐,이무거운짐을지고산을올라갈텐데매번반복할수있느냐,등반도엄청힘들터인데번번이감당하겠느냐…….선선히자신있게대답할수는없었다.그러나어쨌든나는골수회회원들을따라산으로오르고있었다.단풍이거의다진산은으스스했다.토머스하디의<테스>가생각났다.그소설은11월의이렇게스산한날로부터시작되고있었다.앞으로다가올여주인공의비극적사랑을암시하기위해서였다.나의산사랑도비극적으로끝날지모른다는생각이들었다.
우리는선인봉의표범길과박쥐길밑에서배낭을풀었다.뜨거운차를한잔씩마신뒤개인장비들을찼다.나도내장비를찼다.내장비는현장에서보니빈약하기짝이없었다.선등자는물론이요다른이들은나보다네댓배이상의장비들을차고있었다.거기에로프까지챙겨왔으니얼마나무거웠을까.나도저렇게하고다닐수있을까걱정스러워졌다.
두팀으로나뉘어표범길과박쥐길로올랐다.초심자인나와최용준군을위해등반대장이1피치에남았다.우리는두번씩표범길의첫피치를올랐지만너무도역부족인것을느끼지않을수없었다.표범길은출발지점부터너무어려웠다.두손을바위홀에끼우고온몸을당겨올려야하는데,힘도달렸고기술도부족했다.피치마지막부분의왼쪽으로트는트래버스에는이르지도못하고내려오고말았다.대장에게미안하고송구했다.그는우리들의훈련을위해서자기등반도못하고오늘하루를흘려보낸거니까.
표범길과박쥐길에서내려온일행들과함께점심을먹었다.해는산뒤로넘어가버렸고,그늘진선인봉은아침보다더욱써늘했다.세찬바람에시퍼렇게언얼굴을모두들가리개로덮어쓰고어깨를웅크리고있었다.아직준비되지않은우리의몸에갑자기찾아온추위는겨울보다더혹독했다.
오후에도추위에바들바들떨며설우길1피치를연습했다.설우길또한녹록지않았다.
집에돌아오며나는실내암장에다녀야겠다고결심했다.노력없이이루어지는일은없었다.
수유암장에다니게되었다.집에서걸어가는거리였으므로여러모로편했다.
첫날암장에가보니등산학교동기인정창연씨가이미그암장에다니고있었다.정창연씨는나보다나이가15년가량아래였지만어릴적친구를만난것처럼반가웠다.
창연씨는같은동기생인송태웅씨를불러우리기수의연장자단합대회를열었다.나는잘의식하지못하고있었는데등산학교시절우리가1번,2번,3번이었다는것이다.그러니까나이가제일많았다는것.나이순으로세명이모인셈이다.
암장근처호프집으로가서맥주를마셨다.알고보니송태웅씨는시인이었고,작가회의쪽에서활동하고있었다.광주에있는내친구들을잘알았고,거기에서발행되는문예지에내소설이실린것도보았다고했다.그문예지는광주에서발행되고있었지만전국규모의잡지였고,나도후배평론가의주선으로그책에소설을실었었다.그책의발행인이송태웅씨의막역한친구인모양이었다.또한주간은한동안친하게지냈던내후배였다.우리는문학에대한얘기를주고받았고,서로의고충을느낄수있었다.태웅씨는신념에대해,신념의실현에대해몸을던져고민하는철학적인사람이었다.
한달정도우리는재미있게암장에다녔다.
맨처음90도벽에서기본루트를연습하게되었다.벽에박힌홀드를제대로잡거나밟지못해낑낑거리는내게뒤에서예외없이조언이날아오곤했다.
“에이,왼발이아웃으로들어가야지.그래야그홀드가잡힐거아냐.”
나는창연씨의말대로왼발을바깥쪽으로짚었다.그러자손을모으지않고왼손을엇꼬아바로다음홀드를잡을수있었다.“몸을틀어.홀드모양을봐야지.오른쪽으로잡아당기도록생겼잖아.홀드모양을보고자세를잡아.”나는또그의말을좇아몸을기울였다.잘되지는않았지만조언이없던때보다는훨씬나았다.
“동작끝난다음호흡하고.그래야피가돌지.”
그는친구같은친근함과식구같은반말로사람사이를대번에좁히는재주를가진사람이었다.내가누구에게나존대를쓰는것을보고그것이나의커다란단점이라했다.어느정도는사실일것이다.나는상대에게바짝다가서는기술을터득하지못했다.언제나남처럼멀리서점잖은존댓말로상대를배려하고존중하지만오히려그때문에여간해서는친해지지못하는것이다.
사람에게있어서사교적인성향은선천적인것일까?아니면성장환경에서비롯된것일까?어떤게더큰영향을미칠까?
사람안에서이루어지는일이라비율을따지기는어려울것이다.아마도유전적소인이있을테지만,또배냇적부터,그전잉태무렵어머니의심상과도관계가있겠지만,태어난뒤보고듣고경험하여체득한부분이더많지않을까여겨진다.
창연씨는동두천에서태어나고등학교를졸업하고의정부에나왔다고했다.그때2층집과기차를처음으로보았고,문화적충격을심하게겪은모양이었다.그때의경험이오늘의그를만든것같았다.나는그의이야기속에서우리의지난날을느꼈다.가난했지만정이있었던,사람간에의리가있었던산간두메마을….어쩐지그가그런데서자란것같았다.
내가90도벽을한바퀴돌고간신히내려올라치면그는으레
“자,자,자,한바퀴더!”
하고나를부추겼다.나는젖먹던힘까지짜내다시한바퀴를더돌수밖에없었다.
모두들그저바라보기만했다면,데면데면모른척했다면나는아마상당히어색한몇달을보냈을것이다.
방학이되자학원강사였던태웅씨가광주의고향으로내려갔다.
나는90도벽의기본코스를열바퀴돌게되었고,두달이지나자서른바퀴돌게되었다.
운동에도재미가붙어갔다.팔에근육이생기는게신기했고,어제안잡히던홀드가오늘잡히는게신기했다.어제보다한바퀴더돌게되는게너무신기했다.내가나를잘안다고생각했는데,내몸에대해서는전혀알지못했었다는생각이들었다.
겨울이깊어갔다.
창연씨는여전히여기저기에툭툭농담을던졌고,그것으로사람들을즐겁게했다.그에게는이세상사람모두가편안한한식구인것같았다.
그는나보다1년정도먼저암장에다니기시작했다고한다.등산학교에가기전부터암장에다닌것이다.남자라힘이좋았고운동에욕심이많아진도가빨랐다.남자들은대부분철봉이나턱걸이,팔굽혀펴기등을해온터라암장운동에서여자들보다유리했다.대신여자들은유연한면이있었고,그것이장점이었다.남자중에서도특별히유연한사람이있었고,여자중에서도별나게힘좋은사람이있었지만.
창연씨는벌써고수들의자리에가서놀았다.
시간이지날수록그의진면목을알게되었다.그는겉으로는거칠거칠한척반항아인척건들거리지만사실은아주가정적이고모범적인중년이었다.딸의저녁을차려주러아내와약속한시간에꼭들어가고,아내에게수시로문자를보내며,퇴근해서운동을열심히한뒤에는곧바로집에들어갔다.더구나그가들어가는시간이거의정해져있었다.
영하10℃가넘는날에도나는빠지지않고암장에갔다.
암장운동은팔근육을집중적으로강하게쓰는운동이어서매일할수는없었다.월요일에암장에가고화요일에또가면저절로운동을할수없었다.손아귀에힘이모이지않아서홀드에매달려지지가않았다.그래서대부분하루걸러,또는일주일에두번정도암장운동을했다.나도처음에는월요일·수요일·금요일세번가다가운동량이많아지면서화요일과목요일두번만가게되었다.
암장의성시는저녁8시무렵부터였다.
퇴근한사람들이간단한저녁식사를마치고하나둘암장으로모여들었다.다른사람들은술집에서술을마시거나자기집소파에누워텔레비전을볼때,
나는암장에다니면서야이암장운동에도하나의커다란세계가있다는것을알았다.평생해도모자랄만큼무궁무진한세계가겹겹이들어있었다.나는산에가서자연암벽을잘하기위해암장에왔지만사실은암장운동만으로도훌륭한독립적인분야였다.그래서스포츠클라이밍이라는용어가생겼는지도모른다.이다음에암벽을못하게되면그냥암장에만다녀야겠다고마음먹을정도였다.
암장운동은전적으로개인운동이었다.이사람은여기서,저사람은저기서자기운동을할뿐이었다.그런데도운동하는사람들간에우애같은것이생겼다.한동안그사람이안보이면‘어디아픈가?왜안나오지?’하는생각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