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에세이|아름다운시절9]
표범길,박쥐길에대한단상
암장에서는그런대로회복해가고있었지만막상산에가자팔이무거웠고,움직일때마다철사심같은아픔이근육사이로번뜩이며지나갔다.마치감기를앓고난뒤집에서는나은것같았지만겨울찬바람속으로나가자증세가도드라지듯말이다.나는나도모르게팔을감싸쥐며한숨을쉬었다.그동안그토록열심히치료했는데별로나아지지않았구나하는생각이기분을암담하게했다.
그날나는선인봉밑에혼자앉아있었다.골수회에서는두팀으로나뉘어표범길과박쥐길을오르는중이었다.나는차마어느팀에도낄수없었다.같이가자고권유하는사람들이있었지만부상당한사람한테는사실아무도강권할수없는것이다.무리하게바위에붙었다가팔힘을못쓰면중간에서오도가도못하게되고,필경더다치게될경우아주낭패이기때문이다.나도그게두려워배낭지기로눌러앉았다.
박쥐길은괜찮지않을까,차라리표범길이낫지.속으로열두번도더계산했지만결국포기하고말았다.욕망을버리고현실을받아들여야하는건자연의법칙이었다.그것을산이묵묵하게가르쳐주고있었다.팀원들은테라스까지만갔다온다고했다.그들은항상크럭스가끼어있는중요부분을등반하고다른루트의크럭스부분을또등반하길즐겼다.정예멤버들은특별조를짜서하루에세루트,네루트까지도등반하는경우가있었다.
3월의하늘은청아했다.이미봄이온대지에태동하고있었지만골바람이차갑게내목덜미를훑고지나갔다.가져온옷들을모두꺼내겹쳐입고노숙자의생활을짐작해보았다.서울역을지나면서그들을따듯한눈으로바라보지않았다는생각이들었다.안온한방에서잠자고언제나먹을수있으니까마음속으로는나와관련없는사람들이라고여겼던게분명했다.왜깨끗하게지어놓은국제역사에와서이렇게지저분하게빌붙어살까눈살을찌푸렸는지도모른다.그러나비로소그들의삶이,한기가,세상에대한감정이조금쯤이해되어왔다.나는보온병에서뜨거운물을따라커피를타마셨다.추위가곧다시달려들었다.견딜수없고,해결될리없는추위였다.앞으로노숙자를만나면따듯하게대해주리라결심했다.오죽하면집을나와,아니집이없어져버려그렇게되었겠는가.매일같이길거리에서잠잔다는게보통일인가.마음속으로동정하고연민하는건내가선수였다.그러나막상그들을위해행동하는것은다른사람들이었다.이상하게도행동가들에게서는연민이나동정따위의부드러움이느껴지지않았다.연약한부드러움같은걸가지고서는사회적인일을할수없나보았다.공감해주는것과실천하는것사이의차이를실감하며행동하는지성이되지못한나자신을속죄했다.
일어나서이리저리서성거려보았다.동료들이표범길첫째마디의확보지점에오종종매달려있었다.어깨를맞대고바짝붙어나란히매달려있는모습이유난히사이좋아보였다.박쥐길날개위앵커에도오종종사이좋게매달려있었다.아이들처럼,혹은좀멀리서보면개미들처럼쪼르르붙어있는모습은언제보아도우습고,마음을훈훈하게했다.땅에서의모든이해타산과호우호관계를버리고지금저기서만큼은오직한마음으로절대집중해등반하는모습이아름다웠다.가슴뭉클한단합이암벽곳곳에꽃처럼피어있었다.빨강노랑분홍으로피어난꽃잎들을나는사진찍듯눈에담았다.
표범길은그길을개척한사람들중한명의별명이표범이어서붙여진이름이라고들었다.그가개척도중입대해전방에서사망했기때문에그를기려붙여진이름이라고.표범은내가아주좋아하는동물이다.우선용맹하고,날렵하고,몸의무늬도멋지다.내인생에서최고로후회되는일은어떤여행에선가표범을만져볼기회가있었는데,이러저러해서어루만져보지못한것이다.용맹하기로는표범보다사자가더많이인용되고,그래서다행이라고나는생각한다.왜냐하면부정적인내용에인용되어명예가훼손되는경우가많으니까.
마키아벨리는그의책에서통치자란모름지기‘사자처럼용맹하고여우처럼교활해야한다’고썼다.나는젊은시절그문장을읽고경악했었다.민주주의개념이생기기도전16세기얘기였지만.그의주장은통치자가선하면권좌에오르지도못하고,올랐다해도곧비명횡사하고말거라는것.그러므로정의롭게행동하기보다정의롭게행동하는것처럼보이는게중요하다고했다.교황권이허물어지면서비열무도한무정부주의가판치던15세기이탈리아의상황이배경으로깔려있고,통치자에게힘을실어주어왕과왕실의호의를얻으려는속셈이있었지만.마키아벨리의바람은헛된희망으로끝났다.
그러나요즘의정치행태를보면그의주장이선견지명처럼떠오른다.나는표범길밑에서표범이용맹함의대표상징이되지않아서여간다행이아니라고생각했다.차선이어서예봉을피하는경우가좀많은가.표범길은이제때묻지않은용맹성으로선인봉의인기루트가되어끊임없이사람들의사랑을받는것같다.동료들이표범길전면중앙의뚜껑바위를열심히언더홀드로뜯으며올라가고있었다.
박쥐길쪽을바라보았다.어두운기류가바람에실려내려왔다.팀원들이날개바위를넘어뒤쪽으로사라져아무도보이지않았다.빈그늘이을씨년스럽게나를내려다보았다.
박쥐길에는원래박쥐들이살았었다고한다.2피치날개바위안쪽에옛날부터대대로살아왔었던모양.그래서그곳을지날때면끽끽대는박쥐들소리가나기도했고,비오는날에는더러새끼들이떨어져죽어있기도했다고.그게싫었던어떤인간이어느날날개바위안쪽홀에휘발유를뿌리고불을확질렀다는것이다.박쥐들은전멸당했고,완전히사라졌고,이제는오직길이름으로만남았다.‘박쥐길’이라는이름.섬뜩하기도하고,어찌보면예쁘기도한이름.원래는박쥐들의집이었던곳.인간의발길이닿을수없는곳에,인간의영역이아닌거산기암괴석안에자기들둥지를틀었건만살육의전문가인인간들앞에는당해낼재간이없었으리라.나는시선을내렸다.박쥐들의영혼이푸드득푸드득날아오는것만같았다.나는뇌까렸다.박쥐길을오르는이들이여,2피치를지날때잠깐이나마고개숙여사라진박쥐들을추모해주길…….
하늘의사다리
내가선인봉까지따라가서표범길과박쥐길에오르지못한것을전해들었는지,아니면그냥생각이그리미쳤는지알수없지만어느날정승권선생님이노적봉에같이가지고하셨다.정승권선생님은내가등산학교에다닐때교장선생님이셨고,또한내가다니는암장의주인이시다.나보다한연배아래지만내가존경하는분이고또산과관련해서는워낙큰스승이라나는항상존대를쓴다.정승권선생님뿐만아니라내가등산학교적에배운민경오강사님과조규택강사님,또나를처음인수봉으로오르게한예종남강사님에게도나는존대를쓴다.그들모두나이로는나보다한참아래지만나는자랄때아버지에게서뭘조금이라도배운사람에게는경칭을써야한다고엄하게배웠고,또한우리문학동네에서는자기가존경하는사람한테는남자들도아래연배일지언정형이라고부르고존대를쓰는것이상례라나로서는어색하지않다.
그러나상대방들에서는내나이를의식해처음에는의아해하는기미도있었다.남자들의경우에는등산학교를졸업함과동시에나이순으로다시순번을매겨선생님이었던사람이친구나되거나후배로내려오기도했고,대부분엉거주춤하게호칭을아우르며친분을쌓아갔다.그러나내게는그런식의정서가맞지않았다.자랄적에익힌정서가체질로굳었다고나할까.내가분명하게공대하자상대들도자연스럽게받아들이게되었다.그들쪽에서는나를또깍듯이‘이청해선배님’이라고부른다.나이로는내가위니까.나는그들을‘선생님’이라고부르고그들은나를‘선배님’이라고부르는것이다.이정도면서로상대를존중한다는기분이전해지고,성공한호칭이라는생각이든다.
단한사람예외적인경우가있는데그건김지성강사다.그는등산학교적에나를가르쳤지만우리골수회의등반대장이라내가그냥‘대장님’이라고부른다.또워낙어리고동안이어서내가선생님이라고부르면웃기려고농담하는것으로들릴수도있다.김지성대장이등반하는모습은가히예술이다.그실력과기술,몸의자태등완벽이라는단어가저절로떠오른다.한국에서등반영화를찍는다면남자주인공으로그가제일먼저추천돼야한다고나는생각한다.
노적봉산행은정승권선생님이개인적으로계획한등반인듯했다.그런데팔을다친내가어느정도회복했고또등반할수있는지보려고일부러나중에끼워넣으신것같았다.암장에서도선생님은꼭필요할때그사람뒤에나타나서문제를해결해주는타입이었다.
봄의끝자락인데도날씨는무더웠다.
도선사왼쪽길로해서용암문으로올라갔다.
도선사에서하루재로오르는길은돌계단길이어서답답했는데,그길보다훨씬운치있었다.
용암문을통과하자노적봉의탄탄한암봉이나타났다.이름처럼푸짐하고탐스러운몸매였다.하나의거대한화강암덩어리인것같았다.언제누가이름지었는지알것같았다.아마도보릿고개에속한어느누군가가저것이노적가리라면얼마나좋을까하고명명하지않았을까.저만한노적가리라면자자손손수백대가먹고도남을양식이었다.
우이동쪽에서는보이지않던북한산의낯선봉우리들이기웃기웃내게말을걸었다.언젠가저들에게화답을하리라마음먹었다.
산정능선을거쳐노적봉아래로갔다.
정승권선생님이첫피치에줄을걸고나보고올라보라고하셨다.별로어렵지않아보이는슬랩이었다.그래도망설였더니,사모님보고먼저오르라고하셨다.사모님김미동씨가공연히나때문에쉬운슬랩을연습해보이셨다.나도용기를내그슬랩을연이어두번올랐다.어느정도몸이풀리고내가등반할수있으리라는판단이섰는지선생님은그옆슬랩으로옮기셨다.이번에는연습구간이아니라진짜루트였다.그것이반도A길이라는것을나는다녀오고나서야알았다.그날우리산행에는골수회의이태환씨가같이동행했다.이태환씨는나보다1년먼저,그러니까2009년에등산학교를졸업했다는데,짧은시간에눈부신발전을이루어지금은선인,인수의웬만한루트는거의다선등을설정도로뛰어난실력을갖추었다.나를제외한세분의실력으로라면훨씬더어려운루트로갔을텐데아마도나때문에노적봉의기초코스를택한것이아닌가여겨졌다.
정선생님이선등을서고내가빌레이를보았다.자일이한동부족해서연이어이태환씨가또선등을서고김미동씨가빌레이를보았다.나는경각심없이빌레이를보았으나김미동씨는집중해서긴장된모습으로자일을풀고또당겼다.나는선등빌레이의자세를곁눈으로배우고있었다.수십년의경험이있을텐데도흐트러지거나방만한동작이전혀없었다.
늘느끼는일이지만김미동씨에게서는‘바름’이느껴진다.그녀를대하고나면마치칸트나플라톤을읽고났을때처럼기분이안정되고‘정의로움’이나‘절대선’에대해생각하게된다.변할수없는,절대적인가치로서의바름말이다.요즘사람들에게서는거의사라진태도다.나도그녀의자세를본받아정자세로한눈팔지않고빌레이를보려했다.그러나줄이제대로풀려나가지않고막히곤했다.정선생님은워낙고수이시라내가빌레이를서툴게보는데도스스로조절해서잘올라가셨다.아마빌레이어가없는거나마찬가지라고생각하고등반하셨을것이다.
1피치는크랙과슬랩의혼합이었다.2피치도난이도가비슷했는데,네사람이순식간에올라갔다.나무옆앵커에확보한뒤3피치로나가자코바위오른쪽의크랙이나왔다.4피치는침니구간이었고,침니안에크랙이들어있었다.피치도길었다.어렵다기보다는노동력같은힘이엄청나게많이들었다.순간순간팔이아팠다.그런데어쩐지낫고있는아픔이라는느낌이들었고,그러자아픔에도쾌감이동반되었다.가려운곳을박박긁을때처럼시원함이기다려지는것이다.더이상팔에신경쓰지않게되었다.
5피치를직상으로올랐다.실크랙이세로로미세하게나있는바위가나타났다.실크랙위로는홀드가전혀보이지않았다.크럭스인것같았다.더구나바위가말궁둥이같은형상이어서바람이불면허공으로휙날아갈것같았다.간신히,조심조심기어서통과했다.
코바위목덜미의바람골계곡에서땀을식히며위쪽을바라보았다.짙푸른하늘을배경으로앞팀이경사심한슬랩을오르고있었다.천상으로오르는사람들같았다.문득천망회회소이불루(天網恢恢疎而不漏)라는문구가떠올랐다.하늘의그물은크고도넓어서성긴듯하나절대로새나가지못한다는말.노자에나오는말일것이다.죄를짓고는살지못한다는뜻.푸른하늘을우러러부끄럼없이살아야겠다는생각이들었다.
우리도하늘의사다리를타고올라갔다.
노적봉서봉.
널찍한테라스가품을벌려우리를맞았다.
이날을기점으로나는다시팀등반에합류했다.<계속>
필자약력서울에서태어나이화여대국문과를졸업했다.1990년중편‘강’으로KBS방송문학상을수상했다.이듬해<세계의문학>에단편‘빗소리’로,<문학사상>에단편‘하오’로등단했다.장편소설<초록빛아침>,<아비뇽의여자들>,<체리브라썸>,<오로라의환상>(전2권),<그물>,<막다른골목에서솟아오르다>가있으며,소설집<빗소리>,<숭어>,<플라타너스꽃>,<악보넘기는남자>,<장미회제명사건>이있다.[글·이청해월간산20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