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벽에세이 10
[암벽에세이|아름다운시절10]낯선별에서의하루

잠자리떼가하늘높이날더니비가쏟아졌다.그리고는곧장마가시작되었다.

산행다운산행을몇번해보기도전이었다.

아쉬웠다.일년중암벽을할수있는시기가얼마되지않는다는생각이들었다.봄들어잠깐,여름이되니장마가들고,한더위에는바위가달구어져암벽화가미끄러지고,가을에몇번하다보면벌써11월말,그해의마감이었다.

덧없는시간이빗속에흘러갔다.

반짝해가날라치면번개치기산행이계획되었다가취소되고는했다.

비에지친열성당원들이2박3일의설악산산행을감행했다.나도따라가고싶었지만토요일에중요한약속이있어서동행하지못했다.야영짐과먹을거리,암벽등반장비를산더미처럼지고우중에따라나선다는것이약간겁나기도했고,산간계곡에서여럿이숙식을같이하는일도아직은주저되었다.아침에눈곱낀눈으로일어나비를맞으며계곡물에쌀을씻어밥을해먹을일이낭만보다는스산함으로다가왔다.나는야영에대한부담감을버리지못하고있었고,식구가아닌사람들과맨얼굴로지내는일이낯설었다.

혼자서울에있자니서울이텅빈것같았고,마음이허허로웠다.

살다보면비행사가기상이변으로불시착하듯이낯선곳에내려두리번거리는경우가있는데,내산행에도그런일들이생겼다.

나는약속자리를끝내고집으로돌아오고있었다.두터운구름뒤로숨었던태양이눈부신빛무리를펼치며고개를내밀었다.오랜만의해후였다.설악산에간사람들은좋겠구나부러운마음이들었다.나는발길을돌려암장으로갔다.암장운동이라도해야조금쯤마음이풀릴것같았다.

암장에는마침정창연씨가와있었다.햇빛이환하게난날어두운실내암장에서불을켜고운동하자니기분이가라앉았다.우리는말없이자기운동만했다.

운동이끝날무렵창연씨가내게내일어디가느냐고물었다.우리산악회는설악산에가고없기때문에그냥쉬어야할것같다고대답했다.그렇다면자기네산악회에따라가자고했다.자기들은선인봉에간다는것이다.나는선뜻그러마고하지못했다.따라가고는싶었지만암벽산행은특수산행이었다.내다리로,내힘만으로할수없는일이생길지도모르고,그것은누군가에게부담을주는일이었다.나를알고,그러한사태가양해된상황이라면모른다.또젊은남자라서힘을쓸수있는경우라면다르다.그러나나는여건상낯모르는사람들을따라무턱대고나설수는없었다.내망설임을뜨뜻미지근한성격으로파악한창연씨는볼멘소리로화를냈다.누구나자기산악회가있지만,뭐산악회가아니더라도같이다니는사람들이있겠지만,동행하기에마땅치않은날이생기고,그런애매한날에다른팀을따라가는게뭐가나쁘냐고.운신의폭을넓힐여분의팀이하나둘쯤있어야된다고.

맞는말이었다.사실은나를제외한거의모든사람들이산과관련해서폭넓은인간관계들을지니고있었다.산에다니다보면자연많은얼굴들을익히게되고,그런알음알음으로이리저리동행하는게상례였다.다만나는암벽산행에관한한특수한입장이었으므로여러가지를따져볼수밖에없었다.그러나결국기세에떠밀려가겠다고대답했다.

일요일아침에부지런히포돌이광장으로갔다.

창연씨한사람만을알고갔으므로첫대면에서그쪽눈치를탐색해여차하면나혼자워킹을하리라마음먹었다.

그러나포돌이광장에서만난산빛산악회사람들은의외로부드럽고친절했다.정말나를반기는것같았다.‘산빛’이라는산악회이름때문인가하고나는산마루를올려다보았다.운무가짙게끼어있는산은푸르렀고,여름꽃들을은닉하고있었고,발치에부드럽게안개를드리우고있었다.문득두보의‘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이라는시구가떠올랐다.‘산빛이푸르니꽃은불붙는듯하도다.’그런뜻이었다.철쭉은졌지만다른여름꽃들이열심히꽃망울을터트리고있을터였다.애틋하게고향을그리워하던대시성의마음이나를휩쌌다.‘산빛’이라는예쁜이름.봄날의산빛은연둣빛이리라.‘봄날은연두에물들어’라는시구도있으니.나날이짙어져가는연둣빛속에노랑분홍의꽃들이화사하게피어날것이다.여름에는짙은녹음속에하얀꽃들이성시를이루고,가을에는오색창연한단풍이화려하게수를놓겠지.그리고는순백의겨울…….그모든빛깔과모습을아우르는산빛,산빛산악회…….나는거듭발음해보았다.산빛산악회사람들의마음이아름답게다가왔다.그들은나를처음보았는데도마치고향의친지를만난것처럼대했다.나는외갓집에온기분이었다.조금있으니나와등산학교동기인양규옥씨가왔고,암장친구인송경옥씨도왔다.너무도반가웠다.든든한원군이생긴나는편한마음으로그들을따라선인봉아래로갔다.

산빛산악회의산행은연간계획이월단위로미리짜여있는것같았다.그날계획은들었던대로표범길이라는데,등반대장은초짜인내가느닷없이끼어들었지만루트를바꿀생각이없어보였다.나는드디어표범길에오르게된것이다.한편으로는기뻤고,다른한편으로는겁이났다.

김문섭대장은겪어보니말수가적고점잖은분이었다.지금생각해보건대그는창연씨가나를데리고갔을때아마도처음에난감했을것이다.내가나이든여자인데다,암벽도제대로못할게뻔하고,로프도가져가지않았으니까.그런데도그는조금도티를내지않고나를자기바로밑에붙여등반시켰다.염려스러웠고,안심할수없어서였으리라.그는피치내내직접내빌레이를봤다.때로는용기를주고,때로는루트를안내하고,때로는힘으로끌어올리면서실력이부족한내가안심하고오르도록조용조용히격려했다.그는선인봉에와본지꽤오래되었다고하면서먼시선으로앞의루트를찾곤했는데,아무리난이도높은코스가닥쳐도충분히해낼만한실력의소유자라는것을알수있었다.나는그의덕택에처음으로루트다운루트,즉표범길에올랐다.잊을수없는날이었다.

테라스에올라서서쉬고있을때옆팀의여자가자기가얼려온과일칵테일을모두에게한입씩나누어주었다.모두들도구가없어서그녀가떠먹여주는대로받아먹었다.기절할정도로시원하고맛있었다.내가평생먹어본음식중가장맛있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천국에서맛보는진기한후식이이럴까생각했을정도였다.그녀는아는사람모르는사람가리지않고테라스에있는사람전부에게달콤새콤차가운진미를선사했다.마치표범길에오르느라고수고했다는듯이.

신선한바람한점을만난것같았다.

그녀가여신처럼보였다.

하강길에도대장은나에게특별히신경썼고,내하강이끝나자비로소안심하는눈치였다.

그는책임감이매우강한사람이었다.어쨌든오늘자기네산행에참가한사람이므로나를포함해팀원전체를끝까지자기가책임져야한다는의식이있었다.

뒤풀이장에서도그는‘대장이니까’,‘오늘수고했으니까’따위의특별대접을거부했다.

그는팀원들과똑같이취급되기를바랐다.

겸허함이전해졌고,진실한인품이느껴졌다.

지금도김문섭대장을생각하면내산행생활에서아주우호적인느낌의지대가열리고,그맨윗줄에그가앉아있는게보인다.단한번뿐이었지만최초로형성된느낌은변하지않아서,그가동문운동회같은때초등학생인듯싶은아이들을데리고오면,그아이들에게마저무척정감이인다.

밤이되어헤어질때,산빛친구들은하나같이“또오세요”,“언제든또오세요”하고복창했다.입에발린인사가아니라,진정어린얼굴들이었다.

이런분위기가어디에서나오는지나는고개를갸웃거렸다.나는그들에게해준게아무것도없는데,폐만끼쳤는데…….

그들과헤어지는게아쉬웠다.

외갓집에이별을고하듯작별했다.

강물이푸르니새는더욱희고

인연이란묘한것이어서나는산빛산악회사람들과또한번의피치산행을하게되었다.일부러그들을따라간게아니라,모든동문들이간현에모였을때,어쩌다가그들과함께등반한것이다.

이번에도창연씨가역할을했다.

내가어느팀에도끼지못하고어정거리고있자“이리오라”고,“왜그러고다니느냐”고나를붙잡아자기들팀에합류시킨것이다.

나는골수산악회지만당시에는정선생님과사모님을빼고는다른사람들과개인적친분을쌓기전이었다.

또골수회는사실좀도시적이랄까,개인의독립성을중요시하는분위기였다.그래서누가누구를참견하지않았고,모두들자기등반력이향상되는걸추구했고,스스로알아서모든등반을결정했다.매주참석하던사람이안나와도그저무슨사정이있겠거니여겼다.

지금은오히려이런분위기가아주편하다.또여러사람들과친밀해진상태다.

그러나산빛사람들을만날때마다‘아참,이사람들은다르지’하고새삼느끼곤한다.

그날도나는엉겁결에산빛의품안으로들어갔다.지난번에같이등반했던사람들은팀을달리했는지그자리에없었다.체격이왜소하고어린남자가선등을서고있었는데,그는내가끼어들자마자기존의순서를바꾸어나를바로자기밑에서게했다.표범길에서의등반대장처럼자기가직접관할해야만안심할수있겠다는생각이들었던모양이다.2피치를지나3피치상단으로올라가자심한오버행이나왔다.게다가루트가나선형으로꼬여있어다른팀들은모두이구간을피해올라가고있었다.그는간현에별로와보지않은듯이루트가처음이라고하면서눈으로길을찾았다.그러더니원사이트로단번에올라갔다.대단한실력이었다.발끝동작이빠르고명쾌해서묘기를보고있는것같았다.그러나나는내실력으로올라가는게불가능했다.그는위앵커에서인내심을가지고계속줄을팽팽히잡아당겼다.이런저런말도하지않았다.지금이상황에서내게말따위가스며들지않는다는것을알고있는것같았다.다른선택의여지는없었고,나는그지점을통과해야만했다.어떻게했는지생각은나지않지만나는거의그의노력에힘입어용을쓰고마의지대를벗어났다.땀범벅이되어올라가서는고맙다고,미안하다고거듭인사하지않을수없었다.그는정말너무힘을쓴나머지얼굴이벌게져있었다.그런데도고맙다는인사를받는것을무척계면쩍어했다.내려오면서야나는그가산빛의부등반대장인이철호라는것을알았다.지방에살기때문에자주등반에참석하지못한다는것도.그는등반대장보다더말수가적은성격이었다.

내려온뒤에그를찾았지만그는이미사람들사이로사라지고없었다.물이라도한잔따라주고싶었는데그럴기회조차없었다.

암벽대회나빙벽대회때그가번번이상을타는것을보면서‘내가걸음마도떼지못하던시절저사람이오버행을끌어올려줬지,참힘들었을거야’생각하곤한다.

이후로산빛사람들을만나면내쪽에서먼저반가워서인사를하고,그러다보니다른사람들과도인연을맺게되었다.그들모두내특수성을이해해주고,번번이넘치는호의로대해주었다.

지금도산빛사람들의따뜻한마음이내게는불가사의하게느껴진다.그들은‘당신때문에힘들었어’라는표정을짓지않았다.당연히그럼직한순간에도끝까지봐주어야하는식구처럼굴었다.그들은사람을,인연을아주소중히여기는것같았다.우연한동행자에게마저진심을다하는분위기가못내부러웠다.

나는그들이남쪽나라에살고있는것같다.따뜻한감성의나라말이다.대비해서우리골수회는차가운이성의지대같다.인류역사이래이성과감성이각축을벌여왔지만둘다없어서는안될요소들이다.과학등역사의많은발전은이성에의해이루어졌다.또한감성없이는우리는하루도살아갈수없다.사람들은얼굴하나팔이두개똑같은것같지만내면으로들어가면같은것이하나도없다.생각하는것,가치관,살아가는방법이천양지차다.개인들이모여있는단체도개인이상의특질을지닌다.한두사람이주도해서분위기를끌고가는경우도있지만,구성원이많고집단형성이오래되었을수록대다수의공감을얻어야특질을유지한다.더불어살고,개개인이성장해야하리라.두보의시첫구절이생각난다.강벽조유백.강물이푸르니새는더욱희다는뜻.산빛의정감있는분위기를대하자골수의도시적인분위기가두드러졌는지도모른다.옳고그름은없을것이다.조화만이문제될터.

江碧鳥逾白(강벽조유백)강물이푸르니새는더욱희고
山靑花欲然(산청화욕연)산빛이푸른데꽃은불붙는듯하도다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올봄도또휙하고지나가니
何日時歸年(하일시귀년)어느날이돌아갈해일런가

두보는안녹산의난을피해성도로피난가서살면서고향인하남이그리워안타까운마음으로이시를썼다.그러나결국죽을때까지돌아가지못했다.인생의무상함이여!

  • 글·이청해월간산20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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