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없으면 만들어라”

"길이없으면만들어라"경부고속도로건설

정주영은한국경제성장신화의대명사이다.그는무(無)에서유(有)를창조했고,국민소득이80달러에서2만6000달러까지오르는물꼬를텄다.참혹하고열악한당시현실에서엄두도못낼일을기획하고실행했다.자동차독자개발,조선사업,중동진출,올림픽유치등이모두그랬다.그가희대의사업에출사표를던질때마다사람들은“초등학교밖에못나와뭘몰라서그런무모한일에달려드는것”이라고했다.하지만그는도전했고창조했다.그리고한국경제성장의초석을다졌다.내년정주영탄생100주년을앞두고이역사적인인물의업적을시리즈로짚어본다./편집자

“정사장,지금진행하고있는공구가난공사라고하는데…”
고속도로공사현장상황을들어보기위해현장에있던정주영현대그룹회장(당시현대건설사장)을청와대로불러들여얘기를건네던박정희대통령은순간말을멈추었다.앞에앉아서얘기를듣던현장작업복차림의정회장이고개를떨구고졸고있었기때문이었다.잠이모자란데다겹친피로로몰려오는수마에대책없이깜빡했던것이다.박대통령은그대로조용히정회장을넌지시바라고만있었다.몇십초가지났을까.
“아이고이런,각하정말죄송합니다!”
정회장이소스라치게놀라깨서당황하며자세를가다듬었다.
“아니요정사장,내가미안하오,그렇게고단한데좀더자다깨었으면좋았을것을.”
역사적인경부고속도로건설사업을놓고두사람이함께쏟았던열정과집념,그리고그둘사이의관계를잘말해주는일화이다.

박정희대통령(가운데)과정주영당시현대건설사장부부(1964년)./조선일보DB

아스팔트를섞고콘크리트를개는일부터암반굴착기를쓰는일까지어떤현장인부들보다실무를잘알고한국에서는유일하게고속도로건설경험을가진현장맨정회장에게는공사현장이일터일뿐아니라밥먹는곳이고잠자리였다.당시50대초반의강철사나이정주영은공사를독려하고공사현장에긴장감을유지하기위하여밤낮가리지않고거의하루종일현장에서보냈다.미군의폐지프차를개조해만든비좁은탑차에서그큰체구를웅크리고잠을때우는일도다반사였다.터널굴착시수맥을잘못건드리면폭발적인강력한힘으로한꺼번에토사가섞인이수(泥水·흙탕물)가분출되어사람이매몰되어사고가발생할위험이따르게된다.이럴때인부가머뭇거리면정회장은직접착암기를뺏어들고앞장서는혈기를보였다.

한편청와대에서는박대통령이고속도로공사현황이적힌상황판을집무실뿐아니라침대머리맡에도비치해놓고점검하며수시로착안점과지시사항을메모하는열정을쏟고있었다.박대통령은예고없이현장으로정회장을찾아가현장을함께점검하고막걸리를나누며격려해주기도했다.

5·16군사혁명이후5년이남짓한1960년대중반,경제는말할것도없고정권기반자체도아직불안정한시기였다.당시우리의절대부족한식량은미국잉여농산물공여계획인PL480원조에의존하고있었지만그래도춘궁기에끼니를거르는세대가많은형편이었다.국방부분에있어서도무기,탄약,차량,연료는말할것도없고,많은부분의일반보급품과군의료부분에서도붕대,아스피린,간단한소화제까지미국의군사원조에의존하고있는상태였다.더욱상황을어렵게만들고있는것은이러한미국이박정희대통령의군사정권을그태동기부터껄끄럽게여기고있는점이었다.

이러한시기에박대통령이서울과부산,한국의종축을연결하는경부고속도로건설계획을들고나온것이었다.따라서미국은물론미국의영향권에있는세계은행도고속도로건설의타당성을부정하고나섰다.명분은한국의경제수준에비해아직시기상조이고민생부분등더시급한부분이많다는것이었다.당시국제정치에서오늘날보다더막강한영향력을가지고있던미국,더우기그토록경제국방등미국에전적으로의존하고있는한국정부가이런상황에서미국의판단을외면하고재원확보대책도없이밀고나간다는것은경제뿐만아니라정치적으로도엄청난모험요소를안고있었다.

그러나박대통령의의지는집요했다.빈곤을탈출하기위해산업발전기반을조성하는데있어서경부고속도로건설은무엇보다도선결되어야하는과제라는신념을가지고있었기때문이었다.그가이러한확고한신념을갖게된동기로는2차대전이후독일의소위라인강의기적을가능케한중요한요인중하나가이들이가지고있던기술기반에더하여잘구축된아우토반고속도로였다는것을독일방문시확인했기때문이다.또군시절뛰어난작전통이었던그가전쟁에서주보급로(MSR)구축이얼마나승패를좌우하는핵심인가를절실히파악하고있었던것도고속도로건설에집착한이유였다.

그러나박정희대통령이직면한도전은여러면에서너무나엄청난것들이었다.최우방국인미국은물론국내에서도거센반대에부닥쳤다.관계와경제부처는내놓고반대의사를적극적으로내비치지는못했지만같은입장이었다.학계등전문가집단도반대했다.야당은물론,당시집권세력의주축인5·16혁명주체들로구성된공화당핵심그룹에서도반대의견이거셌다.우선극도로궁핍한나라살림에막대한소요재원조달방안이없다.또미국이반대하는마당에무리하게강행하다가국가경제가파국에이르게되면앞으로경제개발계획의성패는차치하고라도민생이더어려워질것이다.그결과민심이이반되면혁명자체가실패할수있는위기가올수있다는것이그이유였다.그러나박대통령의너무나도확고한의지와그의개성을잘아는이들은누구도먼저나서서박대통령에게반대의사를전하는것을꺼리고있었다.

이때이들이생각해낸인물이있었다.공화당당의장과국회의장을지낸이효상씨이다.그는박대통령이대구사범시절그의은사였다.박대통령은그가통치에대해서부정적인조언를해도경청하는것으로알려져있었다.그래서그를앞세우고중진몇사람들이용기를내어경부고속도로건설계획철회를위해청와대로대통령설득방문을하게된다.그러나박대통의의지는요지부동이었다.

태국나라티왓고속도로건설현장.이고속도로는1965년11월현대건설이최초로해외공사로수주했다.이건설경험이경부고속도로건설에기술적으로도움이되었다./조선일보DB

그러나현실은박대통령에게큰난제들을가지고압박해왔다.초기예산은잘알려진바와같이당시파독간호사와광부의피땀어린급여를담보로독일로부터겨우얻어온차관,그리고미국으로부터받는파월장병의피와생명을건급여,그리고일부시장에서현금화한PL480대금등성격으로보아참으로가슴저리게눈물겨운재원을겨우마련했다.그러나그못지않은난제가기다리고있었다.그것은국내에어느누구도고속도로를건설해본경험이있는회사가없다는것이었다..따라서어떻게예산을세울지,설계는어떻게할지,어떻게필요한기술과장비를확보할지막연한상태였다.

이때떠오른것이정주영회장의현대건설이었다.경부고속도로건설계획이추진되기몇해전인1965년현대건설이처음으로태국파타니나라티왓고속도로의짧은구간공사를해봤기때문이었다.이공사는현대건설이경험이없는상태에서현지기후,지질,장비,기술에대한철저한조사와대비도없이그야말로멋모르고뛰어들어엄청난적자를보며겨우공사를끝낸뼈아픈경험을하게한공사였다.이런배경에서정회장이박대통령에게천군만마와같은존재가되게된것은너무나당연스런귀결이었다.

우선일차적으로소요예산을파악해야했다.문제는여기에도있었다.우리국토의지형적특성상유별나게산과계곡이많고뚫어야될터널도많은데누구도이런조건에서일반도로도아닌고속도로예산작업을해본경험이없었다.현대가태국서해본것도규모나지형등조건에서너무차이가커서크게도움이못되는형편이었다.박대통령은넓게의견을구해본다는취지에서정부관련기관에예산작업을지시했다.먼저주무부처인건설부가650억원,수도권도로공사경험이있다는서울시가180억원,예산전문부처인재무부가330억원,군사도로공사를많이해본육군공병감실이440억원을제시했다.마지막으로민간업체인현대건설이280억원을제시했다.되돌아보면기가막힐일이다.아무리경험이없다하기로서니고속도로라는국가적인대역사를앞에놓고한국의엘리트들이모인전문기관에서낸예산계획이란것이30~40%가아닌400%가까운차이가났으니말이다.한편으로이는경부고속도건설이라는대역사에대하여우리의여건과준비가얼마나터무니없이미흡했는가를극적으로보여주는일례였다.

1969년12월10일경부고속도로의서울-대전구간이완공되어개통식에참석한박정희대통령내외와관련인사들이테이프를끊고있다(위).1970년7월7일최종공정을끝내고웅장한모습을드러낸경부고속도로(아래)./조선일보DB

이러한어려움과극적인우여곡절을거친경부고속도로는박대통령과정주영회장의혼신을다바친열정과집념,그리고처음해보는공사지만사력을다해열심히일한현장근로자들의헌신과희생에힘입어정회장이제시한280억예산에근접한비용으로완성했다.이것은세계고속도로건설역사상단위거리대비가장저렴한비용으로,그리고수없는난공사구간에도불구하고최단시일내완공이라는대기록을남기는것이었다.이렇게건설된경부고속도로는그후한국의눈부신경제발전에역동적인활력을불어넣는국가대동맥역할을하게되었다.

정주영탄생100주년기획/박정웅메이텍인터내셔널대표/조선일보2014,04,15.-

전국경제인연합회국제담당상무를약14년간역임하면서정주영현대그룹회장이전경련회장을일할때국제업무를보좌했다.태평양경제협력위원회(PBEC)한국위원회사무국장과유니파이컴뮤니케이션스코리아대표를지냈다.중견기업연합회국제담당부회장도역임했다.지금은국제프로젝트컨설팅,무역,IP개발사업을하는메이텍인터내셔널대표로재직중이다.
저서에정주영회장일화를묶은‘정주영-‘이봐,해봤어?’’가있으며,정주영회장의기업가정신을주제로방송출연,기고,학교강의,경제모임강연등활발한홍보활동을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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