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봄날,무제는장안동쪽을흐르는패수(覇水)에서불계(祓禊․재앙을물리치고복을기원하는제사)를마치고돌아오는길에첫째누이인평양공주(平陽公主)집을방문한다.평양공주는열여덟살의동생무제가적적해함을알고비녀(婢女)들을알현시킨다.무제의마음에든여인은위자부(衛子夫)라는가희(歌姬)였다.아비가누군지몰라어미의성을딴사생아였다.
가희(歌姬)와화장실에서나눈사랑
무제는이여인과‘헌중(軒中)’에서사랑을나눈다.헌중은곧‘화장실’을의미하니,화장실에서정사(情事)를벌였다는말이다.당시화장실은욕조와간이휴식용침대까지갖춰져있었다.황제의사랑은받은위자부는그날로궁궐로들어간다.그리고마침내무제의두번째황후인위황후가된다.누이평양공주가동생의마음을든든히지켜줄배필을마련해준것이다.
무제의사랑을듬뿍받은위황후는1남3녀를낳았다.넷째로황자거(據)를낳자무제는기쁨에겨워동방삭(東方朔)에게황태자탄생을기념하는부(賦)까지짓도록하였다.
무제의기쁨이클수록진황후의가슴은질투로타올랐다.불안해진진황후는무제의이궁(離宮)인건장궁(建章宮)의사인(舍人)으로있던위자부의남동생위청(衛靑)을죽이려고하였다.하지만위청은친구공손오(公孫敖)의도움으로위기를벗어난다.이사건이있은후무제는위청을건장궁소속시종무관(侍從武官)으로임명한다.이는무제의특기인인재발탁의지혜가번뜩인것이기도하지만,자신이더이상누구의간섭도받지않는당당한황제라는사실을외척세력들에게간접적으로선언한것이다.위청은이후무제의흉노정벌에일등공신으로활약한다.
진황후는점점더깊은실의에빠진다.어머니관도장공주도마찬가지다.초초하고위태롭고불안하면일을벌이는법.무제가즉위한지12년째인기원전130년,진황후가무고(巫蠱)의요술로위자부를저주한것이발각된다.무제는이사건을계기로외척세력을뿌리뽑고명실공히황제의권력을굳건히하기로결심한다.
쫒겨나는첫부인진황후
진황후는처형은면했지만폐위되어장문궁(長門宮)으로쫓겨난다.장문궁은장안성의동남쪽에있는이궁으로,관도장공주가자신의별장이었던것을황제에게헌상한것이다.황제가자신의딸과함께행복한시간을보내길갈망하며바쳤을터인데,딸이갇히는감옥으로변할줄이야.어머니장공주의마음이한없이아팠으리라.무제또한장공주의은의(恩義)를잊을수없었기에그나마진황후를살려준것이리라.진황후는장문궁에서10여년을칩거하다가쓸쓸히세상을떠났다.그리고장문궁에서멀지않은패릉(覇陵)낭관정(郎官亭)동쪽에묻혔다.
- 패릉묘원.
당나라의시인이백은진황후의기구한운명을〈첩박명(妾薄命)〉이라는시로표현하였다.
한무제가아교를총애한나머지,漢帝寵阿嬌
황금으로지은집을주었네,貯之黃金屋
하늘에서기침하다침이떨어지면,咳唾落九天
바람쫒아오다구슬된다고하였네.隨風生珠玉
지극하던사랑도시들해져버리고,寵極愛還歇
정이멀어지자투기만깊어졌네,妒深情卻疏
황제가장문궁앞을지나갈때에,長門一步地
잠깐이라도수레를돌리지않았네.不肯暫回車
빗물은다시하늘로오르지못하고,雨落不上天
쏟아진물은다시담기어려워라,水覆難再收
황제의사랑과황후의마음은,君情與妾意
동과서로따로흐르고,各自東西流
어제의아름다운연꽃도,昔日芙蓉花
오늘은뿌리잘린풀이되었네.今成斷根草
미색으로만사람을섬기면,以色事他人
좋은시절그얼마이겠는가!能得幾時好
진황후가잠들어있는낭관정을보기위해패릉으로향한다.패릉은한나라문제(文帝)의릉이다.하지만나의관심은패릉보다는낭관정에있다.패릉은관광지가아닌까닭에찾는사람도드물다.그래서인지몇번을물어야찾을수있었다.패릉은산전체를릉으로삼았는데,풍수가들은산의형세가‘봉황의입’모양이라명당자리라고한단다.
- 패릉의낭관정터.
황제의묏자리니당연명당자리일터.그래서인가,지금도공동묘지로사용되고있다.부근에낭관정이있을텐데찾을수가없다.마침공무원들이있기에물어보았으나낭관정자체를모른다.낭관정을찾을수없다는허탈감에젖어들즈음,할아버지한분이오신다.낭관정에대해묻자해박한지식과함께위치를알려주신다.
“옛날에는낭관정주변에300여개의비석이있었는데,문화대혁명때다파괴되고일부는사람들이가져갔다오.정자도그때다부서졌지.그러다가얼마전에남은비석들을모아서예전의위치에세워놓았는데,지금은얼마없다오.”
나무와풀더미만우거진곳,진황후묘는찾을길없어
풀숲을헤치고찾아간낭관정터에는7개의비석만이따가운햇살을피하는듯띄엄띄엄서있다.나무와풀더미뿐진황후의묘는찾을수도없다.미색(美色)이아무리출중한들심색(心色)만하겠는가.사랑은결국고운마음씨에서비롯됨을그녀는진정몰랐던것일까.풀들은더위에고개숙이고시간보다빠른바람만이풀숲을지나친다.순간,어디선가애절하게흐느끼는그녀의음성이들리는듯하다.
‘나를한번만더사랑해주세요.제발…….’
-허우범역사기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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