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실크로드 7000㎞ 대장정②

진황후의질투와실연,흔적없는무덤…

사랑은사랑으로존재할때아름답다-(서안2)

서안시내로들어서니사방으로통하는길목에종루(鐘樓)와고루(鼓樓)가반갑게맞이한다.모두명나라때세워진것인데종루의종은성문을여는아침을알리고,고루의북은성문이닫힌후밤시간을알려주는시계역할을하였다.한당(漢唐)의수도였던서안은거대한성벽이도시전체를에워싸고있었다.지금도웅장한성벽이서안곳곳을에워싸고있지만,이는명나라때건설한것이다.성곽의위치나건설공법에차이는있겠지만크기는별반차이가없으리라.종루와고루를돌아보고성곽의동문인장락문(長樂門)에들어선다.순간,나는2150여년전의한무제(漢武帝)를떠올린다.

서안종루(鐘樓).
“만일내가아교(阿嬌)를아내로맞이한다면반드시황금으로된집을지어줄거예요.”

한무제의이름은유철(劉徹)이다.어린시절,고모인관도(館陶)장공주(長公主)앞에서그녀의딸인아교를황후로삼겠다고약속한다.장공주는유철의약속에가슴이벅차오른다.그래서황제이자오라버니인경제(景帝)에게유철이14명의황자가운데가장영명하다고끊임없이간언한다.장공주의부단한노력은경제로하여금유철을새로운황태자로옹립하게하는데결정적역할을한다.아울러자신의소망이이루어졌음에뛸듯이기뻤다.황태자유철은16세에황제에오른다.아교를황후로맞이하여장공주와의약속도지킨다.아교는무제의첫번째황후인진(陣)황후가된다.

무제도어찌못한황후아교

진황후는예뻤지만자존심이강하고질투심도많은여자였다.그도그럴것이어머니장공주는선황제와각별한사이인데다남편을황제로만든주인공이기에진황후는무척거만했던것으로알려져있다.무제는자신의권력으로정치를개혁하고싶었다.하지만초기10년은힘겹게보낸다.관도장공주의힘이너무강했기때문이다.자신을황제에앉혀준데다고모이자장모였기때문에함부로대할수도없었다.

서안고루(鼓樓).
구세력의정치적보루인진황후와개혁으로국가의면모를일신하려는젊은황제.이둘의관계는일반적인부부사이와는달리미묘한갈등이내재되어있었다.물론소년시절황태자유철은아리따운아교의모습에반했을것이다.그녀에게‘황금으로만든집’을지어주겠다고했던것도사랑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진황후를앞세운외척들의견제가강해지자무제는그녀에게서점점멀어졌다.황후의성격도나긋나긋하지않았으니부부사이는이미허울뿐이었고자식이생길리만무하였다.황후보다더초초한사람은장공주였다.그녀는황후를위해9,000만냥이나들여온갖용하다는처방을써보았지만백약이무효였다.부부의애정을어찌약이대신할수있으랴.

아이는없고,밖으로나도는무제…파탄조짐

황자를생산하지못하면황후라도권력의심장부에서밀려날수밖에없다.자식을갖지못한진황후는급기야히스테리까지부렸다.무제의관심은더욱밖으로향한다.자신의정치역량부족과부부관계의우울함을달래기위해수렵에몰두한다.신하들이보기에는무제가바깥으로나도는것처럼보였지만,사실은황제의권력을회복하기위한절치부심(切齒腐心)의시간이었던것이다.

서안성곽.
어느봄날,무제는장안동쪽을흐르는패수(覇水)에서불계(祓禊․재앙을물리치고복을기원하는제사)를마치고돌아오는길에첫째누이인평양공주(平陽公主)집을방문한다.평양공주는열여덟살의동생무제가적적해함을알고비녀(婢女)들을알현시킨다.무제의마음에든여인은위자부(衛子夫)라는가희(歌姬)였다.아비가누군지몰라어미의성을딴사생아였다.

가희(歌姬)와화장실에서나눈사랑

무제는이여인과‘헌중(軒中)’에서사랑을나눈다.헌중은곧‘화장실’을의미하니,화장실에서정사(情事)를벌였다는말이다.당시화장실은욕조와간이휴식용침대까지갖춰져있었다.황제의사랑은받은위자부는그날로궁궐로들어간다.그리고마침내무제의두번째황후인위황후가된다.누이평양공주가동생의마음을든든히지켜줄배필을마련해준것이다.

무제의사랑을듬뿍받은위황후는1남3녀를낳았다.넷째로황자거(據)를낳자무제는기쁨에겨워동방삭(東方朔)에게황태자탄생을기념하는부(賦)까지짓도록하였다.

무제의기쁨이클수록진황후의가슴은질투로타올랐다.불안해진진황후는무제의이궁(離宮)인건장궁(建章宮)의사인(舍人)으로있던위자부의남동생위청(衛靑)을죽이려고하였다.하지만위청은친구공손오(公孫敖)의도움으로위기를벗어난다.이사건이있은후무제는위청을건장궁소속시종무관(侍從武官)으로임명한다.이는무제의특기인인재발탁의지혜가번뜩인것이기도하지만,자신이더이상누구의간섭도받지않는당당한황제라는사실을외척세력들에게간접적으로선언한것이다.위청은이후무제의흉노정벌에일등공신으로활약한다.

진황후는점점더깊은실의에빠진다.어머니관도장공주도마찬가지다.초초하고위태롭고불안하면일을벌이는법.무제가즉위한지12년째인기원전130년,진황후가무고(巫蠱)의요술로위자부를저주한것이발각된다.무제는이사건을계기로외척세력을뿌리뽑고명실공히황제의권력을굳건히하기로결심한다.

쫒겨나는첫부인진황후

진황후는처형은면했지만폐위되어장문궁(長門宮)으로쫓겨난다.장문궁은장안성의동남쪽에있는이궁으로,관도장공주가자신의별장이었던것을황제에게헌상한것이다.황제가자신의딸과함께행복한시간을보내길갈망하며바쳤을터인데,딸이갇히는감옥으로변할줄이야.어머니장공주의마음이한없이아팠으리라.무제또한장공주의은의(恩義)를잊을수없었기에그나마진황후를살려준것이리라.진황후는장문궁에서10여년을칩거하다가쓸쓸히세상을떠났다.그리고장문궁에서멀지않은패릉(覇陵)낭관정(郎官亭)동쪽에묻혔다.

패릉묘원.
당나라의시인이백은진황후의기구한운명을〈첩박명(妾薄命)〉이라는시로표현하였다.

한무제가아교를총애한나머지,漢帝寵阿嬌
황금으로지은집을주었네,貯之黃金屋
하늘에서기침하다침이떨어지면,咳唾落九天
바람쫒아오다구슬된다고하였네.隨風生珠玉
지극하던사랑도시들해져버리고,寵極愛還歇
정이멀어지자투기만깊어졌네,妒深情卻疏
황제가장문궁앞을지나갈때에,長門一步地
잠깐이라도수레를돌리지않았네.不肯暫回車
빗물은다시하늘로오르지못하고,雨落不上天
쏟아진물은다시담기어려워라,水覆難再收
황제의사랑과황후의마음은,君情與妾意
동과서로따로흐르고,各自東西流
어제의아름다운연꽃도,昔日芙蓉花
오늘은뿌리잘린풀이되었네.今成斷根草
미색으로만사람을섬기면,以色事他人
좋은시절그얼마이겠는가!能得幾時好

진황후가잠들어있는낭관정을보기위해패릉으로향한다.패릉은한나라문제(文帝)의릉이다.하지만나의관심은패릉보다는낭관정에있다.패릉은관광지가아닌까닭에찾는사람도드물다.그래서인지몇번을물어야찾을수있었다.패릉은산전체를릉으로삼았는데,풍수가들은산의형세가‘봉황의입’모양이라명당자리라고한단다.

패릉의낭관정터.
황제의묏자리니당연명당자리일터.그래서인가,지금도공동묘지로사용되고있다.부근에낭관정이있을텐데찾을수가없다.마침공무원들이있기에물어보았으나낭관정자체를모른다.낭관정을찾을수없다는허탈감에젖어들즈음,할아버지한분이오신다.낭관정에대해묻자해박한지식과함께위치를알려주신다.

“옛날에는낭관정주변에300여개의비석이있었는데,문화대혁명때다파괴되고일부는사람들이가져갔다오.정자도그때다부서졌지.그러다가얼마전에남은비석들을모아서예전의위치에세워놓았는데,지금은얼마없다오.”

나무와풀더미만우거진곳,진황후묘는찾을길없어

풀숲을헤치고찾아간낭관정터에는7개의비석만이따가운햇살을피하는듯띄엄띄엄서있다.나무와풀더미뿐진황후의묘는찾을수도없다.미색(美色)이아무리출중한들심색(心色)만하겠는가.사랑은결국고운마음씨에서비롯됨을그녀는진정몰랐던것일까.풀들은더위에고개숙이고시간보다빠른바람만이풀숲을지나친다.순간,어디선가애절하게흐느끼는그녀의음성이들리는듯하다.
‘나를한번만더사랑해주세요.제발…….’

-허우범역사기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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