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기자의 글쓰기 교실①

글은’재주’로쓰는게아니다

‘유식하고점잖게’써서과시하려는잘못된선입견이글을망친다.
머릿속생각을차분하게정리,쉽고진솔하게’말하듯’써라.

여러분과글쓰기를함께하게되어기쁘게생각합니다.20여년간기자로활동하면서받아본많은부탁중에서도빼놓을수없는부탁이하나있습니다.“이글좀다듬어주실래요”하는부탁입니다.글쓰는게직업이고,전공까지국문학이다보니가족·친척들은물론이고많은지인들이글좀잘써야하는일이있으면제전화를두드립니다.

학교작문과제,입시용자기소개서는물론이고집안어르신의특허출원제안서문장도다듬어봤습니다.아들녀석초등학교시절,어느교사의특정종교편향적인수업태도에문제를느낀학부형들이학교측에집단항의를할때도‘항의문’작성은제몫으로돌아왔습니다.

이런글다듬기부탁을해오는사람들이하는공통적으로하는말이있습니다.“내가글재주가없어서말야…”“아들놈이머리는좋은데글재주가없어요…”라는식의말입니다.글쓰기에관한중대한오해가스며있는말입니다.글쓰기는‘재주’가아닙니다.문인으로세상에이름을빛내려면선천적능력도있어야겠지만,일반적인글쓰기란특별한소질을타고난사람만잘할수있는일이아닙니다.

그런데도꽤많은사람들이글쓰기가요리나공예같은재주인것처럼여깁니다.하지만글이란손끝으로쓰는게아니라머리로쓰는겁니다.생각을차근차근잘정리하는태도를갖추면누구나좋은글을쓸수있습니다.학생들이입시전형과정에서온힘을다해쓰는‘자기소개서’를생각해봅시다.자신을표현하기위해어떤사실들을추려내고정리하느냐에글의성패가달린것입니다.미사여구로화려하게수식하는등의기교는좋은글에도움이되는게아니라글을망치는독이될수있습니다.

“말은잘하는데글을못쓴다”는것도정확한말이아닙니다.그잘하는말을문자로자연스럽게옮기면좋은글이될수있습니다.그런데도글은무언가말과는달리좀‘유식하고점잖게’써야한다고여기는사람이의외로많습니다.잘못된선입견이글을어떻게망쳤는지를보여주는글한토막을소개합니다.실제로여러해전어느고등학교교지에실렸던학생수필의일부입니다.

사철의구분을명확하게구분하고틀에박힌思考(사고)로써오늘을알고내일을예시할수있다는거룩한生活方式(생활방식)은매년찾아오는春夏秋冬(춘하추동)의뚜렷한시간적공간을규정짓지못하고생활속에자신을스스로잊게될때마다불가항력적인무언가어색한불만을갖곤한다.

여러분어떻습니까.변화하는계절을보며떠오르는생각들을표현한것같기는한데무슨내용인지도무지모르겠습니다.교지편집진이학생수필중에서그래도괜찮게썼다고선정한글인데놀랍습니다.이글은‘우리가왜글을쓰는가’를새삼생각해보게합니다.글은남에게무언가생각을전하기위해쓰는것입니다.읽는이에게전달되지않는글은존재이유를무너뜨리는글입니다.여러단어들도뜻에맞게사용되지못하고있어난삽할뿐입니다.새로알게된단어들을글에끼워넣어남에게과시라도하고싶은청소년의치기마저엿보입니다.
또한편의글을봅시다.작년에제가맡은‘학생기자아카데미’를수강한한고교생의글입니다.

학생두발자유화는경기도에서는작년부터시행하고있던것으로,시행중큰사건사고가없었던경기도에서의선(先)시행이이번서울시의결정에큰영향을미치게되었다.

먼저읽어본고등학교교지의글보다는낫습니다만이글역시매우이해하기불편합니다.‘선(先)시행’같은이상한한자어를써서글을더어렵게만들고있습니다.이걸한번고쳐보겠습니다.

학생두발자유화는경기도에서는작년부터시행하고있었지만아직까지큰사고가없었다.이에영향받아서울시도같은결정을하게됐다.

어떻습니까.훨씬이해하기쉽지않습니까.이런글이더좋은글입니다.난해한글을쓴두고등학생들은모두공부도잘하고머리가좋은학생들입니다.그들이능력이모자라서글을못쓴게아닙니다.글이란뭔가점잖고‘유식하게’써야한다는잘못된선입견을가졌기때문에,딱딱하고이해하기어려운문장을쓴것으로보입니다.저는학생기자아카데미를6기에걸쳐진행하면서의외로많은중·고등학교학생들이이런선입견을가진걸보고놀랐습니다.

이제부터여러분이작문과제든리포트든좋은평가를받는글을쓰고싶다면,제일먼저할일은글에대한오해를버리는것입니다.자기머리속에서잘정리한생각을군더더기없이진솔하게쓰는태도를기르는것입니다.어떻게쓰면좋은글인지를보여주는한편의예문을또봅시다.소설가김훈의에세이집‘자전거여행’의한대목입니다.

낭가파르바트봉우리가눈보라에휩싸이는밤에,비행진로를상실한새들은화살이박히듯이만년설속으로박혀서죽는다.눈먼화살이되어눈속에꽂혀서죽은새들의시체는맹렬한비행의몸짓으로얼어붙어있다.…그것들의시체위에서날개달린몸으로태어난그것들의꿈은유선형으로얼어붙어있고,그유선형의주검은죽어서도기어코날아가려는목숨의꿈을단념하지않은채,더날수없는날개를흰눈에묻는다.

인간을압도하는대자연의비밀스럽고신비한풍경하나를간결한문체로또박또박적어내읽는맛이각별합니다.다른글에서좀처럼못만났던‘알맹이’하나를분명히담고있기도합니다.이런글이좋은글입니다.앞으로함께할공부는이처럼읽는사람을기분좋게하는글을쓰기위한공부입니다.

세상살이에서글쓰기의중요성은점덤더커지고있습니다.학생들앞에닥치는논술,자기소개서의글쓰기는물론이고사회에나와서도‘글잘쓰기’라는과제가많은사람들앞에놓입니다.문필가나기자가아니더라도글쓰기능력을길러야하는직업은무척많습니다.정당대변인도자기만의표현을고민해야하며,맛집을소개하는블로거도좋은식당을발굴하는것못지않게글을감칠맛나게써야성공합니다.그런능력을기르는데도움을드리기위해이강의를마련했습니다.

다음주부터화·목요일에강의글을올립니다.화요일엔글잘쓰기위해알아야할것들을한회에한가지씩가르쳐드리겠습니다.목요일엔학생들이쓴실제의글을예로들어문제점을진단하고고칠곳을찾아내첨삭지도합니다.엄청난비결을새로배우기보다,좋지않은습관만버려도여러분의글쓰기가두배는더좋아집니다.컴퓨터키보드앞에서무엇부터어떻게써야할지막막한모든분들에게글쓰기의급소를하나씩하나씩명쾌하게짚어드리겠습니다.

김명환사료연구실장-

문화부기자로15년간활동하며문학·영화·연극·뮤지컬을취재하고수백편의영화와연극을비평.해리슨포드,케빈코스트너등세계적톱스타들을할리우드에서인터뷰했으며.1995년엔스티븐스필버그감독을국내최초로단독인터뷰했다.’할리우드혁명'(1994년)’세계의문화도시'(2000년)등해외현장취재시리즈를기획보도해주목받았다.1996년kmtv’김명환의영화이야기’진행.KBS라디오’안녕하십니까황인용·금보라입니다’등다수의방송프로그램에출연해영화해설과토크.
  • -서울대국어국문학과졸업/조선일보수습21기입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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