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환 기자의 글쓰기 교실②

글구상할땐책상을박차라

편안하게책상에앉아서는심신이가라앉아걷거나일어서면생각잘풀린다
화장실에서아이디어떠올린사람도많아베토벤도아침산책하며악상떠올려

글쓰기의첫단계는무엇일까요.관련자료를찾아보면서글에담을내용을취재하는게사전준비라면,본격적글쓰기는구상(構想)으로부터시작됩니다.무엇을어떻게써야할지머리속으로떠올리는일이구상이죠.‘학교폭력,나는이렇게생각한다’는식의작문숙제를하든,‘우리강아지’란제목으로수필을하나쓰든,가장먼저넘어야할산은구상을마치는일입니다.수십년간직업적으로글을쓰고있는저에게도무엇을쓸것인지를고민해야하는구상의과정이제일힘든시간입니다.

컴퓨터화면을켜놓고멀뚱멀뚱글내용을구상하는사람보다는부지런히키보드를두드려대는사람이뭔가열심히쓰고있다고생각하기쉽습니다.하지만꼭그런건아닙니다.어떻게쓸것인가를머리속으로짜내고있는사람이더힘들게글을쓰고있는것일수있습니다.

문화부기자시절,마감시간은다가오는데제컴퓨터화면은허옇게비어있던때가있습니다.데스크가“기사빨리써내야지”하고독촉합니다.화면앞에서구상을하던저는이렇게대답합니다.“네,지금열심히쓰고있고요,거의다써갑니다.출력만하면됩니다.”글을구상하는일이머릿속에한글자한글자쓰는작업이라면,자판을두드려서글을완성하는작업은‘출력’이라고여긴겁니다.

구상은글의성패를좌우하는핵심적인과정입니다.이‘큰그림’을잘그려야좋은글을쓸수있습니다.그런데도충분한구상도하지않고일단첫줄부터쓰는사람이꽤많습니다.조선일보가개설한‘학생기자아카데미’에서가르칠때만난학생들도그랬습니다.작문과제를하나내고글을쓰라고하면거의대부분의학생들은곧바로사각사각연필을움직이며원고지를메우기시작합니다.

물론무엇이라도첫문장을적어놓으면이만큼썼다는안심이될지는모릅니다.그러나전체의설계가부실한채시작한글은,쓰다가문제가생기기쉽습니다.첫문장을남보다빨리쓴학생들의경우,쓰는도중에다른문장을새로끼워넣는대수술을하느라낑낑대며시간을오히려지체하는경우도많이봤습니다.

구상을할때가장유념해야할것은무엇일까요.논설문이라면생각을체계적으로정리해야할것이며,수필이나시처럼문학적인글이라면어휘와표현을고민해야합니다.어떤문인은“원고지를앞에놓고글을구상하려고하면머리속공간에수많은어휘들이빠르게마구날아다닌다.그중에서맘에드는걸낚아채는과정이나의구상이다”라고말하기도했습니다.

저는그같은마음의활동못지않게,글을구상하는사람의‘몸의태도’가중요하다는것을말씀드리고싶습니다.글을구상할때책상에가만히앉아있지말라는것입니다.자리를박차고일어나십시오.그리고걷거나몸을움직이면서머리를회전시켜보십시오.훨씬더생각이잘풀릴것입니다.이건20여년간글쓰는일을직업으로삼으면서깨닫게된체험적진실입니다.일종의‘영업비밀’인데여러분께특별히알려드립니다.

글을쓴다고책상앞에만가만히앉아있으면구상이잘되던가요.저의경우쓸데없는게임을하거나인터넷서핑을하며시간을낭비하기도합니다.잘못하면잠이살살오기도합니다.몸이편안하기때문에심신(心身)이가라앉아일종의휴식상태로돌입한것입니다.책상을박차고일어나움직이십시오.불편한몸의자세가가라앉아있는마음을깨우는일이많습니다.산책이어려우면거실을왔다갔다해도좋습니다.가만히앉아있을땐생각하지못했던재미있는아이디어가떠오를가능성이많습니다.빨리컴퓨터를두드려쓰고싶어질수도있습니다.

저의경우멋진첫문장을흔들리는만원버스속에서떠올린적도있습니다.심지어화장실에서볼일을보다재미있는생각이갑자기떠올라화장지에메모한적도있습니다.떠오른아이디어를놓치지않으려고화장실에메모지와연필을준비하고사는사람도있습니다.

실제로사람이불편한자세를취할때아이디어를잘떠올릴수있다는연구결과를본적도있습니다.무언가골똘한생각을하는사람이사무실에서일어나뒷짐지고왔다갔다걷는일이많은것도두뇌를좀더활발하게움직이려는자연스런태도인것이죠.

제가담배피우던시절,마감시간은다가오는데글이잘안써질때는잠시일어나흡연실로갔습니다.담배를한모금피우다보면아이디어가떠오르기도했습니다.휴식하면서담배를피워서생각이풀린걸로여겼는데지금생각해보니가만히앉아있지않고일어나걷고움직인덕택이아닌가합니다

위대한음악가베토벤도작곡할때피아노앞에만앉아있지않았습니다.오스트리아빈에서살던때,베토벤은아침을먹고나면자기집이있는하일리겐슈타트의오솔길을산책하며악상(樂想)을떠올렸습니다.그의호주머니엔작은수첩과오선지와연필이들어있었죠.산책하다가뭔가영감이떠오르면베토벤은한참을그자리에서있거나미친사람처럼손을휘젓기도하고종이에뭔가를적기도했다고합니다.

하일리겐슈타트의오솔길을산책하며작곡을구상중인베토벤.그는작곡할때피아노앞을떠나산책하며악상을떠올렸다.산책길엔조그만수첩과오선지를꼭들고나갔다.
노년에거의청각을잃었을때도베토벤은그숲길을걸으며전원교향곡이라는걸작을또만들어냈습니다.지금그길은‘베토벤의산책로’라고이름붙여져있습니다.전세계에서몰려든수많은관광객들이베토벤이걷던길을따라걸으며여러생각들을합니다.

여러분도베토벤처럼걸으며글을구상해보세요.하일리겐슈타트의오솔길이아니면어떻습니까.동네한바퀴를걷다가도번득이는생각이떠오를지모릅니다.베토벤처럼수첩이나연필을번거롭게준비할필요도없지않습니까.여러분의스마트폰메모장엔책상앞에서미처떠올리지못했던좋은아이디어와좋은어휘들이한글자한글자적힐겁니다.

김명환사료연구실장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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