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우범의 실크로드 7000㎞ 대장정⑤

감옥도시’장안’,선남선녀들의해방구’곡강지’

황제당현종(唐玄宗)과곡강(曲江)문화<서안5>

서안(西安)은유구한역사만큼이나유적지가많은곳이다.특히,당나라때의유적인자은사(慈恩寺),화청지(華淸池),흥경궁공원(興慶宮公園)등은서안을찾는사람이면누구나둘러보는명소다.그러나정작당대문화의꽃이던곡강지(曲江池)는찾는사람은많지않다.그냥호수가있는공원쯤으로생각한다.하지만곡강지는대당제국의최전성기인현종시기의문화를살펴보는데있어서빼놓을수없는중요한곳이다.
곡강지유적은시내의동남쪽자은사에서약5㎞정도떨어진곳에있는커다란연못이다.곡강은물이굽이쳐흐르기때문에붙여진이름인데,황실의원림(園林)인부용원(芙蓉園)과누구나자유롭게드나들수있는곡강지로구별된다.곡강은진한(秦漢)시대에황제가휴식을취하는이궁(離宮)이나황실의원림으로사용되었다.

곡강지입구.
진나라때에는의춘궁(宜春宮)을지었고,한나라때는낙유원(樂遊原)을만들었다.장안에서가장높고사방이평탄한곳이다.수나라때에는지대가높고불편하다는이유로사람들을살지못하게하고성밖의물을끌어들여부용지(芙蓉池)와부용원을만들었다.

오늘날과같은곡강지가태동한것은수나라때이지만번성은당나라현종때이다.현종은개원(開原)연간(713~741)에땅을뚫어막힌물을통하게하고자운루(紫雲樓)를지어명승지를만들었다.곡강지는성곽으로둘러싸인장안성안에서가장자유로움이넘치는낭만적인장소였다.그래서많은사람들의사랑을받았다.곡강지에서최고의구경거리는뭐니뭐니해도과거급제자들과의곡강연회(曲江宴會)다.

곡강지풍경.
오늘의곡강지는어떻게변했을까.먼저부용원을찾았다.지금의부용원은곡강지와함께서안시가관광지와시민들의휴식처로개발하여모두에게개방하고있는곳이다.입구에도착하니웅장한누각에큼지막하게‘대당부용원(大唐芙蓉園)’이라고쓴편액이먼저눈에들어온다.입장권을내고들어가니탁트인공간에넓은호수가자리잡고각종누각과아치형다리가연꽃과버드나무사이로아름다운자태를뽐내고있다.

인공폭포가요란하게포말을만들어주변은물안개로가득하다.넓은공간임에도사람들이분주하다.외국인들도상당수가눈에띤다.부용원은황실의원림답게모든것이조화롭고아름답다.호수에비치는누각,연꽃과버들가지의손짓,호수위를미끄러지는조각배등그야말로격조있는한폭의그림이다.

대당부용원-운무를내뿜는인공폭포.
당제국이번영한원동력은경제력뿐아니라적절한인재등용이었다.태종때부터시행된인재등용은현종시기에도이어진다.과거시험은해마다봄이면시행되는데전국의수험생들은가을부터장안으로모여든다.시험시간은하루종일이며,저녁때가되어서도답안을제출하지않으면3개의초를켜서제한시간을알린다.“3개의초가타면수험생의마음도다타버린다.”라는말은당시과거응시생의심정을나타내는실감나는유행어다.

과거급제자들의축제,곡강연회(曲江宴會)

과거시험에합격하면급제(及第)라한다.여러분야중에서도진사과를중시했는데,이때문에진사과는과거시험의대명사가된다.진사과응시자는많을때는2,000명까지몰렸고적을때에도1,000명이넘었지만,급제한사람은고작30-40명에불과하였다.10명미만일경우도있었으니급제는곧최고의영예인셈이다.

급제한진사는‘백의경상(白衣卿相)’이라불렀는데흰색삼베두루마기를입고시험을치렀기때문이다.급제한진사들은자색의관복을입고이부(吏部)에서주관하는시험인석갈시(釋褐試)에합격해야비로소관직을받을수있다.이때1등한사람을장원(壯元)이라한다.진사들은서로를동년(同年)이라부른다.과거시험관은지공거(知貢擧)라고하는데급제자들은이들을좌주(座主)라고부르고,좌주는급제자를문생(門生)이라고불렀다.

좌주와문생은부자관계처럼평생동안지속되는데학벌의형성과출세의배경이되었다.진사급제는개인의영광은물론가문의영광이기도하다.조상의덕을빛내고가문을일으키며‘의관호(衣冠戶)’라하여세금과부역을면제받는경제적혜택까지도누리기때문이다.

곡강은경치가제일빼어난곳曲江元勝地
봄날씨마저쾌청하구나.春日更淸眞
진사들몰려와제명회를여니來作題名會
황제은혜에보답할자들이로세.俱爲報主身

급제한진사들을위한행사에서가장중요한것은곡강연회다.이는급제한진사들이좌주와문생의예를갖춘뒤여러가지연회를베푸는것이다.황제가직접자운루에와서참관할때도있었고공경(公卿)들은사윗감을고르는절호의기회로삼았다.또한,그해합격한진사는자은사대안탑에서잔치를베풀고탑에이름을썼는데이를‘제명회(題名會)’라한다.

대당부용원.자은사대안탑이보인다.
하지만,급제자들이가장기다리는행사는따로있었다.이는‘평강지악(平康之樂)’으로당시기생집이많은평강리에서주악(酒樂)을즐기는것을말한다.정식관리가되면기생집출입이불편하기때문에자유로운신분일때한바탕놀아보자는것인데,정작관리가되어이를지킨자가몇이나되었을까.

남녀노소가즐겨찾는곳으로

부용원을나와서조금떨어진곡강지로향한다.‘곡강지유지공원(曲江池遗址公园)’이란푯말을지나니커다란바위에안진경(顔眞卿)글씨체로‘곡강지’라고쓴붉은글씨가보인다.곡강지는커다란호수를중심으로숲이어우러져있는데,여느공원이나다를바없다.하지만곡강지는남녀노소사람들로넘쳐난다.곡강지는상류층만의전유물은아니었다.일반서민들도누구나찾아와서즐길수있는공간이었다.황제인현종도이를적극적으로추진하였다.무슨까닭이있었던것일까?

현종도집권초기에는검약하였다.“덕은옛사람을따를수없지만검약함은옛철인도부럽지않노라.”며사치와낭비를없앴다.그가이렇게선언한것은정쟁의대상이었던태평공주를제거하고정권을장악하는과정에서필요하였기때문이다.

개원18년(730년),정치적입지가안정되고물질적풍요로움이넘치자현종은더많은욕심이생긴다.태평성대를이룬황제로서백성들에게은덕을베풀고자신또한천하에부러울것없는삶을누리고싶었다.이를위하여현종은곡강을명승지로개발하여관료들은물론이고일반백성들에게까지자신의치적을알리기로작정한다.

황제는이를위하여과거에합격한진사들을모아곡강연회를개최함으로서태평성대를이룬자신의능력을보여줌과동시에,신진관료들을격려하고그들에게자부심과책임감을부여해충성스런군신관계를맺으려하였다.여기에는유능한인재들을거느린자신의모습을천하에보여주려는의도도있다.

자운루의모습.
이러한의도가내재된연회이기에화려하고사치스럽다고하여전혀걱정될것이없었다.정치적안정과경제적풍요로움은모든백성들에게사치와향락을즐기게하였고아무도그것을문제삼지않기때문이다.오히려이런행락문화를누리지못하는것이부끄러운것이라는분위기가확산되고곡강지는차츰향락과사치문화의대명사로발전한다.그리하여백성들은국가에서치르는공식연회와상관없이음력이월초하룻날의중화절(中和節),음력삼월삼짇날의상사절(上巳節),음력구월구일날의중양절(重陽節)에는너나없이곡강지를찾았다.

곡강지는감옥도시장안의해방구

당시백성들은왜이토록곡강지를사랑했을까?장안성은수나라때부터당나라초기까지해질무렵부터통행이금지되었다.성안에만들어진108개의방은각각3m높이의방벽(坊壁)으로구분되어있는데백성들은그안에서북소리와종소리에따라일상생활을하였다.백성들은바둑판처럼잘짜인감시의틀속에서황제의명령에따라살아갈뿐이다.만약이러한규칙을거부하면죽음만이있을뿐이다.이런점에서실크로드의출발지이자세계적인도시장안도따지고보면황제의의도아래만들어진감옥같은도시인것이다.

상황이이러하니곡강지는장안백성들이속박에서벗어나자유를누릴수있는유일한탈출구였다.특히,선남선녀들에게있어서곡강지는필수적인해방구였다.

날씨도상쾌한삼월삼짇날三月三日天氣新
곡강지물가에미인들이모였네長安水邊多麗人
농염한자태뽐내며정숙하고순진한것이態濃意遠淑且眞
보드라운살결에균형잡힌몸매로다肌理細膩骨肉勻

봄과꽃,시와음주가무,선남선녀의사랑등이어우러진곡강지.하지만이또한황제가만들어낸축제에지나지않았다.그러함에도곡강지는과거급제자,청춘남녀,관료나귀족,기생,상인,일반백성등에이르기까지모든사람들이어우러진개방형문화향유의장소였다.이처럼복합적인성격을띤곡강지는당대의장안문화를더욱풍성하게만드는역할을하였다.

화려한곡강문화는안사(安史)의난으로크게위축된다.곡강지를에워쌌던수많은정자는불타고남은정자들도각종건축물의재목으로조달된다.훼손된곡강지를본두보(杜甫)는〈애강두(哀江頭)〉를지어자신의감회를읊었다.

소릉밖늙은이소리없이흐느끼며少陵野老吞聲哭
봄날남몰래곡강가로나아가니春日潛行曲江曲
강어귀궁전은모든문이닫혔는데江頭宮殿鎖千門
버들가지새로운창포는누굴위해푸르른가細柳新蒲爲誰綠

곡강문화의부활을위하여

두보는부용원터를거닐며보았다.얼마전까지환락의축제로들썩이던자리가이제는폐허로변한것을.쓸쓸한바람에휘날리는버들만있는것에진정가슴이아팠다.

대당부용원-한폭의그림같은풍경이다.
엄동설한에다시부용원과곡강지를찾았다.온통뿌연하늘은진눈깨비를흩뿌리고있다.오늘곡강지와부용원을찾은나는두보와는또다른감회에쌓인다.이제는도시의풍경을아름답게해주는명물로재탄생함과동시에외국인들을위한관광명소로탈바꿈하였으니역사를재현하고,나아가경제발전에도이바지하는일석삼조의곡강지가된것이다.

송나라이후폐허가되었던곡강지가오늘날이처럼부활한것은우연이아닌것이니,이모두가그옛날의화려한곡강문화를되찾고싶은중국인들의의지에서비롯된것이다.겨울임에도부용원입구에는외국인들이어수선하다.그입구너머로힘차게운무를내품던인공폭포가봄이오기만을애달프게기다리고있다.힘차게피어오르는운무에황룡을태우고싶어안달이난듯하다.

허우범/역사기행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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