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여행작가의 <유럽에 미치다⑧-오스트리아 빈1>

위대한여제마리아테레지아치마폭에취하다

▲빈의역사는대충2000년으로잡는다.하지만1908년빈인근빌렌도르프에서발견된비너스상이2만2000년~2만4000년전의것으로판명됨에따라오스트리아의역사는그만큼거슬러올라가게됐다.중세와근세,그리고근대와현대의문화가어우러진빈의전경이다.ⓒ이석원

굽이굽이찬란한자연의형형색색신비로움을담고있는도나우강,아름답고순수한향기가온대지를적시는알프스,2000년의역사를지닌오스트리아의수도빈(Wien영어명비엔나Vienna)을대표하는2가지의이미지는모차르트,베토벤,하이든,슈베르트,브람스,요한스트라우스등으로대변되는음악의도시라는것과합스부르크왕조다.흔히클래식음악의고향이라는이미지가강하지만,유럽역사에있어서가장화려한궁정문화를지닌합스부르크왕조는오늘날의오스트리아국민들의또다른자부심이기도하다.

빈은그합스부르크왕조의찬란한역사와문화가고스란히숨쉬는공간이다.1273년루돌프1세를시작으로1918년카를1세에이르기까지무려645년동안유럽의절반을지배했던왕조.유럽의중세를관통하고,르네상스와근세를거쳐근대에이르기까지가장화려한문화를꽃피웠던그합스부르크왕조의번영과쇠락을동시에경험할수있는곳이바로빈이다.

▲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조는알자스와스위스북부지방을다스리던소영주였지만13세기후반에이르러오스트리아의국왕이된다.그찬연한600년영광이한껏담겨있는곳이빈구시가중심에있는호프부르크왕궁이다.ⓒ이석원

오스트리아의역사는6세기초로거슬러올라간다.신성로마제국(독일)의오토3세때‘동쪽의나라’라는뜻의독일어‘Osterriche’에서비롯된것이오스트리아라는국명이다.그러다가11세기경스위스에자그마한산성을쌓고일대를지배하던소영주의후손이신성로마제국의황제가부재하던대공위시대독일의국왕에뽑히면서시작된것이합스부르크왕조.그합스부르크는이후645년동안상상도할수없을정도로위대한문화유산을만들어냈고,오스트리아는물론독일과체코,폴란드와헝가리를아우르는위대한음악을만들어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빈여행은합스부르크왕조의역사여행과위대한음악가들의음악여행이될수있다.오늘은합스부르크의역사여행을떠나본다.

빈은크게링크(Ring)안쪽과링크바깥쪽으로나눈다.링크안쪽은합스부르크왕조의정궁인호프부르크(Hofburg)를비롯해미술사박물관과자연사박물관,최대번화가인케른트너거리와빈영광의또하나의얼굴인성슈테판대성당(St.Stephansdom)이모여있는곳이다.

▲빈최고의번화가이면서문화의중심을이루고있는케른트너거리는,과거에는왕족과귀족이마차를타고다니던길이다.지금은보행자전용도로로조성돼있기때문에자동차는물론마차도다닐수없지만성슈테판대성당부근에서주변길로는관광을위한마차가운영된다.ⓒ이석원

▲케른트너거리는밤에더욱빛난다.사위가어두워지기만하면주말이든평일이든자유롭고활발한빈의젊은이들이케른트너거리로쏟아져나온다.그들은17세기가살아숨쉬는공간에서21세기를한껏내뿜고있다.ⓒ이석원

▲국제도시인빈은더이상오스트리아사람들만의것이아니다.빈의심장이라고불리는케른트너거리에는세계각국에서몰려온수많은젊은예술가들이자신들만의예술혼을불태우고는한다.ⓒ이석원

빈여행의출발지로유명한케른트너거리는과거합스부르크왕조시절엔왕족과귀족이성슈테판성당에가기위해화려한마차에몸을싣고누비던거리다.빈음악의상징으로도불리는국립오페라극장에서부터성슈테판성당에이르는약600m정도의큰길인데,지금은길양옆으로화려한상점과멋진카페레스토랑이즐비한보행자전용도로다.1년365일사람들의발길이끊이지않고,온갖거리의예술가들로가득한공간이다.전통복장을한음악회호객꾼이하루에도수십군데서열리는음악회티켓을들고여행자를유혹하는가하면,화려한손재주와말재주를지닌장사치들로도넘쳐난다.

케른트너거리의한쪽끝에엄청난위용을드러내며서있는성슈테판대성당은오스트리아건축예술의완성이라고평가된다.‘빈의혼’이라고도불리는성슈테판대성당에는슈테플(Steffl)이라고불리는137m높이의첨탑이있는데세계에서세번째로높다.외벽은무려23만개의벽돌로지어진것으로유명하다.

▲빈의주교좌성당인성슈테판대성당.케른트너거리의끝에서있는이성당은올려다보는것만으로도시선을압도하고,눈을행복하게해준다.독특한지붕의문양과성당오른쪽에있는높이137m의슈테플이인상적이다.ⓒ이석원

▲성슈테판대성당의겉은정교하고섬세한수많은조각으로치장돼있다.이미수백년전어떻게저런조각이가능했을지의문이들정도다.ⓒ이석원

▲마치프랑스파리노틀담성당의장미스테인드글라스를닮은성슈테판대성당의스테인드글라스는시계의기능을겸하고있어더욱인상적이다.ⓒ이석원

사실성슈테판대성당은합스부르크왕조가성립되기전인1147년에기독교최초의순교자로알려진성슈테판의이름을따서지어졌다.하지만14세기본격적인합스부르크의신화를쓰기시작한루돌프4세가로마네스크와고딕양식으로새로만들었다.체코의지배자였던신성로마제국황제카를4세의사위이기도했던루돌프4세는장인이세운프라하의성비투스성당을따라잡겠다는일념으로성슈테판대성당을완성했던것이다.

▲성슈테판대성당은밖에서본외관도장엄하지만내부의모습은장엄하고신성하다못해경외심마저느끼게해준다.전면의주제대는마치스스로빛을만들어내는듯찬란함의극치를보여준다.ⓒ이석원

▲모차르트의결혼식과장례식이열린것으로전해지는성슈테판대성당은,지금도가톨릭신앙심이투철한오스트리아국민들에게는가장사랑받는기도의공간이되고있다.오스트리아는전국민의80%가가톨릭신자다.ⓒ이석원

성당내부는겉에서보는것보다더압도적이다.까마득한천정이주는느낌은차라리공포감이다.짙은회색의기둥들과벽들은성스런성당이라기보다두려움의공간처럼느껴진다.하지만조금눈을돌려주위를보면아름다운조각과성상화(이콘)들이빛나고있다.제대는여행자가눈길을뗄수없을정도로아름답게만들어졌으며,고딕양식의스테인드글라스를통해들어오는찬란한색깔의햇빛에성당자체가빛나는보석이된다.

▲대성당에서빈시내를조망할수있는곳은남쪽탑과북쪽탑,그리고슈테플등모두3곳이다.유럽의성당첨탑이저토록높게위치한것은하느님과좀더가까워지려는욕심때문이기도하지만,그곳에오르는것또한고행의일부라고인식한듯하다.ⓒ이석원

▲대성당의첨탑슈테플오르는계단.상층부로가면제법넓은공간이나와지친다리를쉴수도있다.ⓒ이석원

▲대성당슈테플에서바라본빈시내.유럽에서세번째로높은성당전망대인셈이다.ⓒ이석원

남쪽탑과북쪽탑에올라빈시내를조망할수있다.빈전체는414.6평방km로605.2평방km인서울3분의2크기지만인구는200만명이채안돼서울에비해훨씬한산한분위기일수있다.하지만이미국제적인상업도시이고,국제원자력기구(IAEA)등여러국제기구의본부가모여있는국제도시다.그래서체코의프라하같은중세도시의풍미나프랑스파리의평평한느낌보다는중세와근대,그리고현대가잘어우러진모습을지니고있다.

빈역사여행의하이라이트는600년동안합스부르크왕조의정궁역할을했던호프부르크다.합스부르크왕조가성립된13세기부터1918년까지줄곧역대왕들의거처였던호프부르크는,그렇기때문에프랑스파리의베르사유,영국의버킹검과함께유럽3대왕궁으로통한다.

▲합스부르크왕조의정궁인호프부르크정문.645년간단일한왕조를유지해온힘의원천이기도하다.ⓒ이석원

▲합스부르크왕조의상징은매다.그래서호프부르크곳곳엔매의모습이나매의형상을닮은사람들이조각돼있다.ⓒ이석원

600년이넘는시간동안숱한왕들이먹고자고마시고죽어간곳이다보니그규모는가히세계최고다.무려10개의건물이단지를이루고있다.왕들마다자신이집권하던시기새로운양식의건물을추가해짓다보니다양한건축양식의박물관이돼버린곳이다.10개건물에들어선방의개수만도2600개에이른다고하니그규모를짐작하게한다.현재는오스트리아대통령의집무실과국제회의장이이곳에있다.

호프부르크에서가장관심을끄는곳인왕궁예배당은그다지크지않다.이름그대로왕과그의가족들이미사를보는공간이다.그런데이곳이세계적으로유명하게된데는‘천상의소리’빈소년합창단이있다.1498년신성로마제국막스밀리언1세에의해왕궁예배당의성가대로시작한빈소년합창단은원래일반인에게는전혀알려지지않은존재다.외부공개가일체이뤄지지않은,오로지합스부르크왕과그의가족들을위한존재였다.그런빈소년합창단이외부에알려진것은합스부르크왕조의몰락때문이다.1918년세계제1차대전의패배와혁명으로왕조가무너지고공화국이성립된후빈소년합창단은스스로먹고살길을찾아야했고,그래서비로소일반인들에게소문으로만듣던그천상의소리를들려주게된것이다.1924년부터자구책으로세계연주여행을시작한이후빈소년합창단은합스부르크의울타리를벗어전세계적인합창단이된것이다.지금도빈을찾는여행자들이매주일요일왕궁예배당미사에입장료를주고참례하는것은빈소년합창단의노래를듣기위해서다.

▲호프부르크의내부는여느왕궁이나마찬가지로호화롭다.왕궁을최대한화려하고호사스럽게꾸미는일은왕조의힘을과시하기위해서도당시로는당연한일이라고한다.특히호프부르크는독일어권국가들의궁정문화의완성을보여준다고평가된다.ⓒ이석원

▲왕조의권위를돋보이게하는중요한수단중하나가사치의극치를이루는왕관등의장신구.호프부르크안에있는황실보물관에는합스부르크왕들의엄청난보물들이전시돼있다.그런데보물관한쪽에있는종교유물관에는예수의십자가조각,최후의만찬에쓰인식탁보조각이라고주장되는유물도전시돼있다.물론확인불명이다.ⓒ이석원

호프부르크와관련해가장유명한인물은프란츠요제프황제의부인이었던카롤린엘리자베스황후다.유럽역사상가장아름다운왕비로꼽히는엘리자베스는‘시씨(Sissi)’라는애칭으로더유명한데,아직도오스트리아국민들에게가장사랑받는인물이다.

▲카롤린엘리자베스,’시씨’로더유명한프란츠요제프황제의황후가화장을하던공간인파우더룸.유럽역대황후들중가장아름다운여인으로유명했지만평생을우울증에시달리며살아간비운의왕비이기도하다.사진속초상화가시씨황후의모습.ⓒ이석원

그러나국민들의사랑과는달리오스트리아역사에서시씨는‘비운의황후’로통한다.재능많고발랄한미인이었던시씨는사촌인프란츠요제프의눈에띄어그와결혼하게됐지만,실상그녀는엄격한합스부르크왕조의분위기와는전혀어울리지않는자유분방한여인이었다.과묵한프란츠요제프황제의사랑을받고는있지만늘외로움을탔고,엄격한시어머니조피대공비는그런그녀를눈엣가시처럼여겼다.4명의아들중첫째가죽은이후양육권도시어머니에게빼앗겼고,황태자였던아들은치정에얽혀자살하는등그녀는‘시집’을잘못간것이다.결국우울증과애정결핍으로인해외모치장에모든시간을투자했고,그러다가1898년스위스제네바에서산책을하다가한아나키스트의칼에맞아숨을거둔다.

엘리자베스황후시씨가불운한합스부르크의여인이었다면,그보다100년을앞서살았던마리아테레지아는합스부르크유일의여제이고,가장화려하고강력한합스부르크시대를주도했던여걸이었다.

▲호프부르크한복판마리아테레지아광장에우뚝서있는여제마리아테레지아의동상.그녀는프랑스부르봉왕조의’태양왕’루이14세에비견될정도로합스부르크왕조에서도가장위대한계몽군주로통한다.645년합스부르크왕조시대를통틀어문화적으로나정치적으로가장탁월한시대로유럽의역사가들은마리아테레지아시대를꼽는다.ⓒ이석원

마리아테레지아는카를6세의장녀이자토스카나의대공인프란츠슈테판의부인이다.그러나역사책에따라마리아테레지아가실제황제였는지,아니면남편인프란츠슈테판을대신해섭정을한것인지의견이분분하다.마리아테레지아는부왕인카를6세가갑자기죽자합스부르크의모든영토를상속받았고,또부왕의국본조칙을통해당당한왕위계승자였다.하지만합스부르크의힘에눌려있던주변국들에의해오스트리아왕위계승전쟁이벌어지고전쟁중마리아테레지아는남편슈테판에게황제의위를넘겨준다.하지만전쟁이후에도슈테판1세는정치와는담을쌓고살면서부인인마리아테레지아에대한헌신적인사랑과쇤부른궁전을가꾸는일에만몰두해사실상마리아테레지아가황제의일을다했다.그러다보니마리아테레지아에대한공식적인황제명이없고유럽의일부역사가들은마리아테레지아집권기를슈테판1세집권기로표시하기도하는것이다.

▲처음궁전을짓기시작한것은1569년이고,1696년재건됐지만,마리아테레지아의집권기인18세기중반프랑스파리의베르사유궁전을모델로보완이이뤄졌던쇤부른궁전.그러나채반세기만인1805년나폴레옹이빈을정복했을때는나폴레옹군대의사령부로사용되면서수많은유물들이프랑스로반출되는아픔을겪기도했다.ⓒ이석원

마리아테레지아의숨결을가장그윽하게느낄수있는곳이쇤부른궁전이다.물론마리아테레지아때에도합스부르크왕조의정궁은호프부르크였다.그러나마리아테레지아는여름별궁인쇤부른을더사랑해그곳에서지내는것을좋아했다.유럽역사에있어서가장강력한여성군주였지만자신에대한헌신적인사랑으로똘똘뭉쳐진남편프란츠슈테판이정성들여가꾸고꾸민궁전이그녀에게는더아늑했는지도모른다.

프랑스에베르사유궁전이있다면오스트리아에는쇤부른궁전이있다고말한다.16세기부터유럽역사에서가장강력한라이벌이던프랑스부르봉왕조와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조는모든것에서경쟁을해왔는데,마리아테레지아의시기엔그런경쟁이궁전을짓는것에서도드러났다.루이14세가지은베르사유를동경하던마리아테레지아는이미1696년부터지었던쇤부른궁전을증개축해오늘날의쇤부른으로만들었다.루이14세의손자인루이16세가마리아테레지아의딸인마리앙투아네트와결혼했으니말하자면루이14세가마리아테레지아에게는사돈댁어른인셈인데사돈댁궁전을능가하는궁전을세울생각이었던듯하다.

▲쇤부른궁전의정원.베르사유의그것과비교하면훨씬작은규모지만마리아테레지아의남편인프란츠슈테판의부인사랑이듬뿍담겨있는공간이라는점에서훨씬낭만적이라는평가를받고있다.ⓒ이석원

▲쇤부른은’아름다운우물’또는’아름다운분수’정도로번역이된다.쇤부른궁전정원에서언덕위글리로에테중간에있는분수는아름다운조각이돋보인다.ⓒ이석원

▲마리아테레지아가프로이센과의전쟁에서승리를거둔것을기념해만든글로리에테.마리아테레지아는이곳에앉아서쇤부른궁전과빈시내를바라보는것을즐겼다고한다.지금은멋진레스토랑과카페가들어서있어서마리아테레지아와같은위치에서쇤부른궁전과빈시내를조망할수있다.ⓒ이석원

건물의규모에서는호프부르크에뒤지고,정원의크기에서는베르사유에못미치지만쇤부른은예술적인면에서결코그들에뒤지지않는다.바로크양식으로지어진궁전의외관은유럽의그어떤궁전과비교해도뒤지지않는우아함을자랑한다.게다가궁전맞은편언덕위에지어진글로리에테(Gloriette)에앉아서쇤부른궁전을바라보면,그뒤로펼쳐진빈시내와함께합스부르크마리아테레지아의영광이한눈에쏙들어오는놀라운경험이가능해진다.

▲쇤부른궁전안에서가장인기잇는곳인’거울의방’.6살의모차르트가마리아테레지아와그의막내딸마리앙투아네트앞에서처음으로피아노연주를한곳이다.고풍스러운가구들이멋진조화를이루고있다.ⓒ이석원

궁전내부는모두1441개의방으로돼있는데,그중현재는45개의방을개방하고있다.그중가장큰인기를끄는방은‘거울의방(Spiegelsaal)’.이방은모차르트와마리앙투아네트의추억이깃든방이다.1762년6살이던모차르트는마리아테레지아의초대를받아처음쇤부른궁전에들어간다.여기서모차르트는천재적인피아노연주를선보이고,이내마리아테레지아의무릎에서1살연상이던마리앙투아네트에게청혼을한것이다.그런인연때문이었을까?모차르트는1770년마리앙투아네트가16살의나이에루이16세와정략결혼했다는사실을알고깊은시름에잠기기도했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

합스부르크왕조의종지부를찍은곳으로도유명한벨베데레(Belvedere)궁전.사실벨베데레는고유명사가아니다.‘좋은(Bel)전망(Vedere)의옥상테라스’라는뜻의이탈리아건축용어인벨베데레라는이름이붙은궁전은유럽여러나라에고루존재한다.1723년지어진빈의벨베데레궁전은본래합스부르크가아닌사보이왕가의소유였다.마리아테레지아는원래이궁전을사들이려고했는데,실패하자쇤부른궁전을증개축했다.그럴정도로벨베데레는아름다운자태를뽐내던궁전이다.1918년합스부르크왕조의마지막왕인카를1세는바로이궁전에서합스부르크왕조의종말을고하고,이후오스트리아는공화국으로탈바꿈을한것이다.

▲합스부르크시대사보이왕가가소유했던벨베데레궁전의상궁.오이겐왕자가오스만투르크를물리친기념으로세워여름별궁으로사용하던곳이다.현재상궁은오스트리아빈분리파화가인구스타프클림트와에곤실레의그림이상설전시되고있고,하궁은바로크시대의미술작품들이전시돼있다.ⓒ이석원

▲벨베데레궁전의정원.상궁과하궁의경계를이루기도한다.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조는이곳에서1918년왕조의종말을선언했다.ⓒ이석원

벨베데레궁전이유명한이유는이곳에서오스트리아가낳은천재화가구스타프클림트의걸작‘키스’와‘유디트’를볼수있다는것이다.아르누보계열의색채마술사로불리는클림트는정숙함과관능의경계를넘나드는여인과그여인을감싼황금색색채로근대미술의새로운세계를연것으로유명하다.특히벨베데레에전시된대표작‘키스’와‘유디트’는클림트미술의절정을보여준다.벨베데레궁전에아침이른시간부터입장을기다리며줄을서고있는사람들은합스부르크왕조의영광보다더찬란하게빛나는클림트의‘키스’를보기위해줄을서고있다고해도과언이아니다.

▲관능과극단적아름다움의결정체로꼽히는구스타프클림트의걸작’키스'(왼쪽)와’유디트’.벨베데레궁전상궁의하이라이트다.ⓒ이석원

스위스산골의작은영주에서시작해유럽역사상가장화려한문화와강력한권력을동시에구가했던합스부르크왕조.자식을희생시키는정략결혼을통해전유럽에영향력을행사했던합스부르크왕조는유럽문화의근세와근대를화려하게장식한장본인이다.그러나마리아테레지아여제의막내딸마리앙트아네트의비참한삶처럼굴곡진역사를지니고있는합스부르크왕조이기도하다.그래서빈역사여행은화려함과찬란함을만끽하면서도그위대한역사뒤에숨겨진권력의어두움을동시에볼수있는기회이기도하다.

글이석원여행작가/기자

<유럽에미치다⑧-오스트리아빈1>합스부르크600년의역사여행/2014-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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