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원 여행작가의 <유럽에 미치다⑤-체코 프라하1>

시간이멈춰선불타바강의보헤미안랩소디

▲너비60m,길이700m에이르는바츨라프광장.체코민주주의의상징과도같은장소다.ⓒ이석원

1969년1월칼바람이부는바츨라프광장기마상앞.22세얀팔라치는멀리프라하성을응시한다.카를대학교에서역사와정치경제학을전공하는대학생인얀팔라치는지난해알렉산드르두브체크가‘사람의얼굴을한사회주의’를표방하며개혁노선을펼치던‘프라하의봄’을생각했다.불과7개월만에소련의탱크에수백명이목숨을잃으며막을내린‘프라하의봄’이었다.하지만얀팔라치의가슴엔더크고찬란한혁명의불이당겨지고있었다.

그리고다시한달후인1969년2월,같은대학교후배인20세의얀자익도얀팔라치가온몸에불을당겼던그자리에다시섰다.국가가위기에처하면중부보헤미아블라비크산에서내려와조국을구한다는바츨라프왕의웅대한기마상앞에서그또한‘프라하의봄’을생각하고,체코의민주주의를외치며온몸에불을붙였다.

▲바츨라프기마상앞에마련된프라하카를대학생얀팔라치와얀자익의추모동판.이두청년은1969년1월과2월,’프라하의봄’이좌절된것에분노해이장소에서분신자살했다.ⓒ이석원

그리고그들의그숭고한죽음을목격한이가있었다.후일체코의대통령이되는극작가이자정치가인바츨라프하벨.그는얀팔라치와얀자익이온몸에불을당겨체코의민주주의를외친지정확히20년후인1989년,그두젊은이의거룩한죽음의터에서소련의탱크와장갑차를물리치고체코의민주주의를완성했다.

프라하여행의출발점을굳이바츨라프광장으로잡은것은체코가처절하고지난한고통속에서도결국아름다운꽃을피웠기때문이다.

▲바츨라프광장의동쪽끝,국립박물관앞에있는성바츨라프기마상.1887년부터1912년에걸쳐만들어진이기마상은이후1920년4명의체코수호성인(성루드밀라,성아그네스,성프로코피우스,성아달베르트)동상이추가돼현재모습을갖추고있다.성바츨라프는10세기중부보헤미아지역의공작으로,빈부와남녀노소를차별하지않은이상적인왕으로추앙받고있다.ⓒ이석원

서기7세기초사모왕국으로시작되는체코의역사는9세기모라비아왕국을거쳐10세기초보헤미아왕국때프라하를수도로삼고번창하기시작한다.특히1347년집권한카를4세가1355년신성로마제국의황제가되면서체코는유럽의중심국가가된다.그러나체코는1526년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왕가로편입이되면서모국어도체코어대신독일어가강요된다.1918년겨우오스트리아지배에서벗어나체코슬로바키아공화국을선포했지만그것도겨우20년.세계제2차대전발발과함께나치독일의지배에들어간다.1945년해방됐지만사실상소련의지배에놓이게된다.그리고1968년프라하의봄과1989년벨벳혁명을거쳐겨우‘진짜’독립된민주주의국가가된것이다.

▲프라하시내에서가장넓은공간인바츨라프광장은지금은프라하최고의멋쟁이들이모여젊음을만끽하는공간으로유명하다.ⓒ이석원

그래서바츨라프광장은체코민주화의상징이다.1918년체코슬로브키아공화국선포도,나치에저항하던독립운동도,‘프라하의봄’과벨벳혁명도바로이바츨라프광장에서이뤄졌다.지금은프라하에서가장비싸고활기찬공간이다.온갖유명한패션브랜드를비롯해크고작은상점들과백화점,은행,호텔들이늘어서있다.그래서프라하를찾은여행객들은물론프라하젊은이들로늘북적이는곳이다.

프라하를남북으로가르며독일엘베강까지이르는불타바강은프라하의젖줄이다.그리고이강위에프라하를더욱더반짝반짝빛나게하는존재가있다.바로카를교다.

▲해가뜨기직전카를교는하루중가장한가하게휴식을취한다.프라하는다른유럽의도시들과달리밤이요란한편이다.대개의여행자들은지난밤요란한시간을보내고이시간이면카를교와더불어휴식을취한다.ⓒ이석원

▲카를교의일출은유명하다.바다나산이아닌도심의한복판에서중세의건물들사이로떠로르는태양을카를교위에서바라보는것은상당한행운이라고한다.ⓒ이석원

▲프라하젊은이들이웨딩사진찍는장소로가장선호하는곳중하나가이른아침의카를교다.아직어슴프레한배경탓인지프라하의연인들이더멋져보인다.ⓒ이석원

해가막뜰무렵카를교는늦은밤까지다리위를가득메운인생들로앓았던몸살을겨우추스리고있다.간간히오가는사람들은그다지바쁘지않게하루를준비하고,이시간이아니면담을수없는그림때문에굳이새벽시간에다리위에서웨딩사진을찍는부지런한청춘들도있다.

카를교는체코역사상가장위대한왕으로추앙받는카를4세의이름을딴석조다리다.원래목조다리가있던자리에카를4세가아름다운고딕양식의돌다리를만들었다.폭10m,길이520m의보행자전용다리인카를교는다리양쪽난간에모두30명의보헤미아성인의동상이조각돼그아름다움을더한다.

▲신성로마제국의황제를겸했던카를4세.카를교를만든사람이면서체코역사상가장융성했던시기의주인공이다.체코가동유럽에인접해있으면서도가톨릭의전통을고수하고있는것도카를4세의치적중하나로통한다.ⓒ이석원

그런데이다리에는희한한수열의비밀이있다.135797531.1357년7월9일5시31분을뜻한다.카를4세가이다리의초석을놓은날짜를시간과분까지표시한것이다.79의순서가바뀐것은,유럽에서는영국을제외하고날짜가달보다앞에표기되기때문이다.

▲교교히흐르는불타바강을세계에서가장아름다운강중하나로만든카를교.이다리를더욱아름답게장식하는30개의보세미안성인동상은17세기후반부터만들어져20세기중반에완성됐다.ⓒ이석원

▲카를교위는1년365일언제나사람들로가득하다.거리의에술가에서부터여행자까지한데섞여북새통을이루는탓에고즈넉한카를교를보기란하늘의별따기다.ⓒ이석원

▲수년째카를교위에서멋진재즈음악을선보이는넉넉해보이는연륜의시니어밴드.프라하를다녀온사람들은공통적으로이들의연주에대해감탄사를늘어놓는다.ⓒ이석원

카를교는늘사람들로복잡하다.다리양옆으로는초상화를그려주는화가,불타바강을배경으로한풍경화를그리는화가를비롯해여러가지기념품을파는사람들로가득하다.그리고10년이상한자리에서공연을하는시니어밴드도있고,자비의손길을기다리는시각장애인도늘그자리를지키고있다.

▲존레논벽은,그가유명한평화주의자였던것과무관하지않다.그래서세계각국에서온여행자들은이벽에각각자기나라의정치적사회적상황에대한메시지남기기를즐긴다.이벽에서우리말로된한국의이야기를찾아보는것도어렵지않다.ⓒ이석원

▲존레논벽도카를교와마찬가지로늘웨딩사진을찍는프라하의젊은이들이많다.ⓒ이석원

중세에서시간이멈춰버린듯한프라하와는어울리지않는곳이존레논벽이다.프라하성쪽으로카를교를건너왼쪽캄파공원을향해가다보면벨코프르제로브스케광장이나오는데,그곳에그래피티인지그냥낙서인지모를것들로가득한요란한벽이존레논벽이다.누가시작한것인지는모른다.어느날아무도모르게이벽에존레논의얼굴이그려지고존레넌의대표곡인‘이매진’가사가적히기시작했다고한다.대략존레논이1980년12월8일밤11시경뉴욕맨해튼에있는자신의집앞에서마크데이비드채프먼이쏜총에맞아사망한후그얼마쯤후이벽에존레논의그림이그려진것으로추정한다.그이후이벽엔프라하시민뿐아니라전세계에서평화를갈망하는젊은이들이앞다퉈낙서를하고있다.이곳의낙서는반드시존레논과연관이있거나,아니면세계평화,민주주의,자유등의보편적가치를내용으로하고있다.

▲프라하성에서내려다본프라하시내전경.선명한붉은지붕들의책채감은유럽도시들중에서도최고의풍경으로꼽힌다.ⓒ이석원

프라하여행의백미는프라하성이다.프라하시내를내려다보는언덕에위치한프라하성은9세기부터16세기에걸쳐무려700여년동안다듬어져왔다.로마네스크양식에고딕양식이더해지는가하면다시르네상스양식까지더해져서지금에이르는데,성안에는왕궁과성비투스성당,성이르지교회,황금소로등이모여여행자들의발걸음을느리게한다.

▲첨탑의최고높이124m,성당의총길이도124m,너비는60m에이르는체코건축예술의백미인성비투스성당.바라만보는것으로도압도당하는느낌이강하지만,성비투스성당은’프라하의보석’으로불린다.ⓒ이석원

▲성비투스성당의내부인성바츨라프예배당.압도적인실내공간은카를4세시대체코가어느정도의국력을가졌는지알게해준다.성당의내부는성바츨라프와관련된조각품과그의생애를다룬프레스코화가유명하다.ⓒ이석원

▲성비투스성당에서가장눈길을끄는것은스테인드글라스.모두2만6000장으로만들어졌다.그중에서도가장유명한체코출신의화가알퐁스무하의’그리스도와성메토디우스’는스테인드글라스예술의압권이다.ⓒ이석원

프라하성중에서도하이라이트는성비투스성당.첨탑까지의높이가124m에이르는탓에프라하어디서라도한눈에보이는곳이다.10세기현재자리에원형성당으로처음지어진후11세기에로마네스크양식으로재건축됐다가카를4세때인1344년웅장한고딕양식으로다시모습을바꿨다.그러나성비투스성당이완공된것은1929년이라고하니무려1000년에걸쳐지어진건축물인셈이다.

▲체코가낳은천재적인작가인카프카를속속들이들여다볼수있는카프카박물관.불타바강변에위치한이박물관은인생자체가혹독한번민의연속이었던작가의삶을보여주듯다소소박한느낌마저든다.ⓒ이석원

프라하성안에는천재소설가프란츠카프카의흔적도있다.낮은집들이옹기종기모여있는골목황금소로.원래프라하성의경비병숙소였던곳이다.그런데16세기후반에왕이고용한금세공사들과연금술사들이모여살게되면서황금소로라고불렸다.이곳22번지에서카프카는1916년11월부터1917년5월까지머무르며글을썼다.프라하성을나와카를교쪽으로가다보면카프카박물관이나온다.위대한문학가의박물관이라고하기엔소박해보이는곳이지만41년을볼꽃처럼살다간비운의삶이그대로녹아있는공간이다.

성비투스성당을통해느껴지는체코건축미학은프라하시내전체에골고루퍼져있다.프라하를‘유럽중세건축의보고’라고부르기도하는데,사실거기에는그다지유쾌하지않은사연도숨어있다.

▲구시청광장의한켠에자리잡은킨스키궁전.우아한로코코양식으로지어진이궁전은현재체코굴비미술관의일부로사용되고있다.ⓒ이석원

▲구시청광장에서킨스키궁전오른쪽에있는틴성모성당.1365년현재의모습으로완성됐는데,마틴루터보다100년먼저종교개혁을시작했던프라하종교개혁가얀후스를기리는후스파기독교의본산이다.2개의첨탑사이에는황금성배를녹여서만든성모마리아상이눈에띤디.ⓒ이석원

우리는흔히세계제2차대전이나치의폴란드바르샤바침공으로시작된것으로알고있다.하지만실은나치는바르샤바보다먼저프라하를침공했다.다만나치의침공에극렬히저항한폴란드인들과는달리체코인들은나치의침공을아무런저항도없이받아들였다.이유는프라하의그위대한건축물들이파괴되는것을막기위해서였다.그래서도시의80%가파괴된바르샤바와는달리프라하는거의전쟁의상흔을입지않았다.위대한중세의건축물들이고스란히남아있을수있었던것이다.일설에는젊은시절프라하의아름다움에넋을잃은히틀러가은퇴후프라하에서노년을보내기위해폭격을금지시켰다는이야기도전해진다.진위여부는알수없지만어쨌든그참담한전쟁속에서도프라하가중세의건축물들을지킬수있었던것은어느정도의치욕의대가였던듯하다.

▲순뱍의벽면과붉은지붕,그리고첨탑의초록색이어우러져마치이탈리아피렌체의두오모색감을연상시키는이성당은그다지큰규모는아니지만매일정오무료로아름다운파이프오르간연주를들을수있는곳이다.ⓒ이석원

그렇듯위대한프라하의중세건축물들은구시청광장을중심으로사방에널려있다.킨스키궁전이나틴성모성당,성미쿨라시성당등유명한건축물이아니라도구시청광장주변의건축물하나하나가중세건축양식의박물관과도같은아름다움을간직한곳이다.그주변의건물중2~300년된건물들은새건물이나마찬가지라고말할정도니.

구시청광장에서가장눈길을끄는것은오를로이천문시계이다.구시청건물의한쪽벽면을장식하고있는천문시계는,구시청건물이프라하시내중유일하게나치의폭격으로파괴됐지만용케온전히그모습을지킬수있었다.

이천문시계는15세기에시계기술자인미쿨라스라는사람이만들었다.그런데이시계의아름다움이다른나라와도시로도전해지면서미쿨라스는똑같은시계를만들어달라는요청을받는다.하지만프라하시청측에서는그것을용납할수없었다.그래서미쿨라스의눈을멀게만들었다.앞을못보게된미쿨라스는시계를한번만만져볼수있게해달라고부탁을했고,그가시계를만지자시계는갑자기서버린후400년동안을멈추었다고한다.그리고1860년에와서야이시계가다시작동했다는이야기가전해진다.

▲프라하가가장자랑하는문화유산중하나인오를로이천문시계.구시청사한쪽벽면에30m크기로만들어진천문시계는매시정각을알리는타종퍼포먼스로유명하다.시계탑의전망대에오르면매시간마다퍼포먼스를보려고구름처럼몰려든여행자들이일제히하늘을향해우러러보는기이한장면을목격할수있다.ⓒ이석원

▲천문시계의퍼포먼스를보기위해몰려든사람들.ⓒ이석원

이천문시계는위쪽은칼렌다륨,그리고아래쪽은플라네타륨이라고부른다.칼렌다륨은천동설의원리에따라해와달과천체의움직임을묘사하여1년에한바퀴를돌면서연,월,일,시간을나타내고,플라네타륨은12개의계절별로장면을묘사하여그당시의보헤미아지방의농경생활모습을보여준다.

매시정각이되면이천문시계는해골모양의인형이밧줄을잡아당겨모래시계를뒤집으면시계위쪽에있는두개의창문이열리면서예수님과열두제자가차례차례지나간다.이때해골옆에있는아랍인과반대편에있는지갑을든유태인,거울을든인형들이춤을추는듯한동작을보여준다.그리고마지막으로황금색수탉이홰를친다.이모습을보기위해프라하의여행자들은매시간이천문시계앞에모여고개를쳐들고있는것도볼만한장면이다.

▲해질무렵불타바강에는보트를타는연인들이또다른풍경을만들어낸다.교교히흘러프라하의젖줄이되고있는불타바강은체코인들에게는특별한민족감정을고취시키는공간이면서동시에가장편안하고아늑한휴식공간이되고있다.ⓒ이석원

해가지고불타바강에어둠이드리워지면프라하는찬란하게되살아난다.체코가지나온그길고고단한역사를보상받기라도하려는듯민주화이후프라하는밤에더화려한옷으로갈아입는다.

프라하의밤은마치내일이오지않기를바라는이별을앞둔연인같다.깊은사랑에서빠져나오지않으려는듯시간을움켜쥐고서로를부둥켜안은팔에서힘을풀지않는다.그곳이삶인사람이든,새로운추억을쫓아흘러들어온사람이든,이미프라하의깊고화려한밤에서그누구도헤어나오려하지않는듯하다.

그래서일까유럽대부분의도시가짧고단순한밤을지니고있지만프라하의밤그끝을알수없는긴소설처럼한없이이어지고있다.교교히흐르며프라하를충분히적셔주는,그흥건한흥분으로밤새몸서리쳐지게하는불타바강의열정이프라하를내내휘감고있는것이다.

▲불타바강과함께하는야경을보노라면눈물마저흐른다.지극한아름다움에대한경외심을말릴수가없다.ⓒ이석원

▲유럽에서가장야경이아름다운도시를꼽으라면많은여행자들이헝가리부다페스트를말한다.하지만부다페스트의야경과프라하의야경을따로놓고비교해서본사람들은어느것이더멋진지구분하지못한다고도말한다.ⓒ이석원

▲프라하성에서내려가는계단은야경의또다른아름다움을보여준다.수백년전부터그대로있었을듯한돌계단의거친질감이오히려은은한조명을뽀샾한느낌이다.ⓒ이석원

프라하의밤은전염성강한바이러스처럼여행자의심장을부여잡는다.마치노스텔지어처럼열병을앓게하고,이제시작하면서도이별의고통을느끼게한다.결코놓아주지않겠다고고집부리고,두팔로죽어라부둥켜안은채이밤을놓아주지않는다고고함친다.프라하의밤은그래서낮보다더치명적인중독증세를보이나보다.

시간이멈춰선중세의광장에서사랑의노래를부른다.

-글·사진이석원여행작가/기자

<유럽에미치다⑤-체코프라하1>광장에서민주주의를외치다/2014-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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