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메타나의조국,모차르트와베토벤을품다
▲‘유럽의음악학원’이라고불리는체코프라하의전경.18세기바로크음악의대가를비롯해고전주의와낭만주의를거쳐현대에이르기까지클래식음악의성지로일컬어지기도한다.ⓒ이석원
1946년5월12일체코프라하중심에위치한오베츠니둠(시민회관).그곳에서도가장큰연주장인스메타나홀무대중앙에선32세의라파엘쿠벨리크.체코필하모니오케스트라의상임지휘자인그는비장한마음으로지휘봉을꼭쥐었다.그리고지휘봉이허공을가르자비장한선율이흐르기시작한다.베드르지흐스메타나의연작교향시‘나의조국’중1번‘비셰흐라드’다.스메타나본인이영면하고있는그곳을그린이
그리고시간은44년을건너뛰어1990년5월12일.같은장소,같은오케스트라앞에선76세의쿠벨리크는조국체코를떠났던42년의세월을회상하며다시힘주어지휘봉을쥔다.스메타나의‘나의조국’1번‘비셰흐라드’에이어2번‘불타바’에이르러그의
1000만명이조금넘는인구를가진나라,그러나1년에외국관광객만1억명이넘는나라.쿠벨리크가그토록사랑했던아름다운나라체코는,쿠벨리크의정신적인스승이자음악혼의전부라고할수있는스메타나가먼저사랑하고,먼저투쟁하던나라다.
1824년맥주양조업자의아들로태어나아무도권하지않았지만음악에빠져천재라는소리를들었던스메타나.오스트리아합스부르크의지배에신음하며자기말인체코어대신오스트리아의말인독일어를쓰며음악
1848년30년전쟁의종전과
하지만그는불운했다.오페라‘팔려간신부’로이른바체코의‘국민작곡가’가됐지만1874년연작교향시‘나의조국’작곡을시작했을때부터청력을상실하고있었다.1번‘비셰흐라드’로시작해2번‘불타바’,3번‘샤르카’,4번‘보헤미아의숲과초원에서’,5번‘타보르’와6번‘블라니크’를완성한스메타나는1884년5월12일청력도잃고정신착란증까지앓으면서프라하의한
그리고그를62년만에다시살려낸것이쿠벨리크다.그렇다.쿠벨리크가시작한‘프라하의봄’국제음악제는바로스메타나의기일인5월12일시작한다.유럽에서잘츠부르크음악
앞선글에서체코민주화운동의상징인1968년‘프라하의봄’을소개한바있는데,사실‘프라하의봄’이라는명칭은1968년혁명보다22년이나이전인1946년처음열린국제음악제의명칭이었다.세계제2차대전종전으로독일의압제에서벗어난후라파엘쿠벨리크가자신이상임지휘자로있던체코필하모니오케스트라창단50주년을맞아스메타나의기일에맞춰처음음악제를열었던것이다.
우아한아르누보양식으로지어진오베츠니둠이라고도불리는프라하시민회관.1912년프라하시민들의성금과알폰소무하,카렐슈필라,얀프라이슬러등당시체코를대표하는예술가들의동참으로만들어졌다.시민회괸에서가장큰공간이바로스메타나홀이다.1918년10월28일체코슬로바키아가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으로부터독립한것을공식적으로선포한장소이기도하다.
스메타나홀에서는1년365일쉬지않고클래식음악연주회가열린다.프라하를일컬어‘유럽의
스메타나외에도안토닌드보르작과레오시야나체크등체코출신의세계적인음악가들도있지만프라하와깊은인연이있는음악가로는볼프강아마데우스모차르트를빼놓을수없다.
오스트리아잘츠부르크출신으로빈에서주로활동했던모차르트가프라하와무슨인연으로?,빈의귀족들과합스부르크왕가에서최고의인기스타였던모차르트는말년이나다름없는31살때인1787년나빠진건강을달래기위해풍광이아름답고물이맑기로유명한프라하에서
프라하시민들의그런열화와같은성원에모차르트는보답을하고싶었다.그래서그는로렌초다폰테의대본을가지고오페라‘돈조반니’를작곡했고,1787년10월29일프라하스타보브스케극장(에스타테스극장이라고도불림)에서역사적인초연을했다.물론지휘도모차르트본인이했고,직접극중
그날이후프라하에는새로운수식어가생겼다.‘돈조반니의도시’.그래서프라하시민들은모차르트에게평생잊을수없는선물을한다.노스티츠백작과프라하시민들은돈을모아모차르트를기념하는‘얼굴없는유령’이라는청동상을제작한것이다.그리고그것을모차르트에게선물했다.모차르트는청동상을고향인잘츠부르크로가져가려고했지만너무무거워당시의운반수단으로는꿈도꿀수없었다.그래서모차르트는청동상을다시스타보브스케극장에기증했다.영악한프라하시민들은모차르트에게선물도하고,그선물을자신들이영원히간직할수있었던것이다.아주후일모차르트의고향인잘츠부르크에서는이청동상을그대로모방한모작을만든다.하지만결국진품은프라하에그대로남은셈이다.
노스티츠백작이세운스타보브스케극장은1984년아카데미8개부문을수상했던영화‘아마데우스’의촬영장소로도유명하다.체코출신인감독밀로스포먼은실제무대인빈이아닌프라하에서모차르트의일생을다룬영화를찍은것이다.거의200여년전프라하시민의모차르트에대한애정이밀로스포먼에게서재현됐다고봐도좋을듯하다.스타보브스케극장은1년중거의대부분을오페라‘돈조반니’공연으로채운다.
프라하를특별히사랑했고,그래서지금까지도프라하를빛내는데힘을보태고있는또한명의위대한음악가가있다.바로루드비히반베토벤이다.
서양의클래식음악가의이름앞에붙이는수식어가여럿이다.‘음악의아버지’바흐,‘음악의어머니’헨델,‘교향곡의아버지’하이든,‘유럽음악의황제’리스트등등.그런데이수식어들은모두우리나라에서만통용되는것이다.독일이나영국에가서바흐를‘음악의아버지’라고수식하면공감하는사람이하나도없다.그런데우리나라에서나유럽에서나공통적으로사용되는수식어가있다.‘악성(樂聖)’베토벤이다.‘음악의성인’이라는뜻은우리나라뿐아니라유럽에서도베토벤의이름앞에늘붙는수식어다.
그런데독일태생으로오스트리아빈에서주로활동했던베토벤이왜프라하를사랑했고,또프라하의자랑거리가됐을까?합스부르크치하의유럽에서음악가는대개왕족이나귀족들의후원을받아음악활동을했다.그러다보니당시유명작곡가들은주로귀족들을위해작곡과연주를했다.그런데유독그런환경을싫어했던이가베토벤이다.그는귀족들을위해음악을만들고연주하는것에대해환멸을느꼈다.그러다보니궁핍함을면할방법이없었다.
그런베토벤에게오스트리아와독일의귀족이아닌체코프라하의귀족인로브코비츠가문이접근을했다.그리고이가문은베토벤을전폭적으로후원하면서도자신을위한음악이아닌베토벤본인을위한음악을하라고권했다.이에부응한베토벤은그의위대한교향곡들을작곡했고,기꺼이3번영웅,4번전원,그리고9번합창교향곡을로브코비츠가문에헌정했다.프라하성내에위치한로브코비츠궁전엔바로그교향곡들의원본악보가
프라하성아래쪽으로가다보면평범한주택가의골목길에베토벤의얼굴이부조된건물을볼수있는데,그의나이26살무렵인1796년경베토벤이잠시머물면서작곡에몰두했던집이다.지금은일반인들의평범한집이지만프라하의여행자들이베토벤의작은흔적하나를보자고숱하게몰려드는명소중하나이기도하다.
베토벤과프라하가짝사랑이아닌교감의사랑을200여년이어온보람은‘프라하의봄’국제음악제에서여실히드러난다.축제를스메타나의‘나의조국’전곡연주로시작해드보르작이나야나체크가아닌베토벤의교향곡9번‘합창’으로축제를마무리한다는것만봐도체코와프라하가얼마나베토벤을사랑하는지알수있다.
오스트리아의작은시골도시잘츠부르크가모차르트를팔아먹고사는곳이라면프라하는모차르트의‘돈조반니’를팔아먹고산다.스타보브스케극장이연중내내오페라‘돈조반니’를공연하는것과별도로마리오네트
물론일부클래식애호가,특히오페라마니아들은인형극‘돈조반니’를맹비난한다.모차르트의가장위대한오페라중하나를싸구려볼거리로전락시켰다며.그것도국가가관리하는극장을만들어1년365일공연하면서모차르트를웃음거리로만든다며분노하고있는것이다.그러나그런분위기와달리프라하를찾는여행자는카를교,프라하성과함께인형극‘돈조반니’를필수관광코스로인식하고있다.특히정통오페라에지루함을느끼는사람이라면오페라‘돈조반니’는본적없어도마리오네트인형극‘돈조반니’는봤다고할정도이다.
프라하는환상적인중세건축물의거대한박물관이면서,유럽음악의위대한고향으로유렵그어느도시보다아름다운문화의도시다.닿는발길이모두문화재고,눈길이머무는곳모두가예술이다.그래서유네스코는1989년프라하도시전체를세계문화유산에등재시키기도했다.하지만그처럼거창하고휘황찬란한문화말고도소박하고평범하지만그래서더욱빛나는거리의문화도있는도시가프라하다.
기념품은물론,싱싱한과일과채소,예술성높은그림과LP판을비롯해없는것빼고는다있다는재래시장하벨시장은프라하의또다른자랑거리다.성하벨교회인근에있는이시장은평일에는주로과일과채소를팔아서체코어로는‘오보츠니트르흐(과일시장)’라고도불리는데,주말엔프라하를사랑하는여행자들을위해마리오네트인형과수제공예품들,심지어는잘츠부르크가원조인모차르트초콜렛‘짝퉁’도판매를한다.
프라하를한번도가보지못한사람은프라하에대한짝사랑을품는다.프라하를한번다녀간사람은오랜시간동안연인과의아픈
-글·사진이석원여행작가/기자
<유럽에미치다⑥-체코프라하2>’유럽의음악학원’천천히걷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