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스톡홀름에서오후5시에출발한크루즈실야라인은두세시간스톡홀름인근2만여개의섬사이를돈다.그리고저녁을먹을시간즈음마침내호수처럼잔잔한발트해로들어서동남쪽으로뱃길을잡는다.5월중순이면시작하는백야의바다는바람한점없이평화롭고,파도의일렁임조차전혀느낄수없다. 백야는신비롭다.6월의발트해는밤11시가넘어도해가지지않는다.배뒤편에서해가지는수평선쪽을바라보노라면시간은이미의미를상실한다.시간이지니고있는고유 스톡홀름에서라트비아의수도리가(Riga)까지는뱃길로530여km.16시간정도밤을달려오전9시쯤되면 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와함께1991년구소련에서독립한라트비아의정식명칭은라트비아공화국(RepublicofLatvia).북쪽으로는에스토니아,남쪽으로는리투아니아,그리고동쪽으로는러시아와국경을맞대고있고남동쪽으로벨라루스와도접하고있다. 라트비아의수도인리가가도시로 독일인들이세운나라나다름없는라트비아피지배의역사는길다.독일은라트비아와에스토니아를통합해라보니아공국을세웠다.16세기말에이르러서는폴란드가라트비아를점령했고,1629년에스웨덴의구스타프2세가폴란드로부터다시라트비아를빼앗았다.하지만그것도잠깐.채100년이되기전러시아와의전쟁에서패한스웨덴은라트비아를내줘1721년부터제정러시아의지배아래들어간다.아이러니하게도이때부터라트비아의수도리가는눈부신발전을거듭한다.당시리가를‘유럽으로향한러시아의창’으로여긴제정러시아의황제들은리가를발전시켜상트페테르부르크와모스크바에이어제3의도시로키운것이다. 1991년이전라트비아가독립국으로살아본것은1918년부터1939년까지21년정도다.볼셰비키혁명으로제정러시아가무너지고소련이건국한후레닌은라트비아의독립을인정해준다.나름민주주의정부를수립하고,의회를구성한후헌법을제정해근대국가로의틀을갖추지만라트비아에게주어진시간은너무짧았다.1939년제2차세계대전이발발하기직전독일과소련이불가침조약을체결하면서소련은사실상라트비아의지배에들어간다.이후라트비아는에스토니아리투아니아와함께발트지역의소비에트로 리가항에서배를내려버스나트램을타고얼마가지않아구시가(역사지구)입구가나온다.리가에대한첫인상은깨끗하고아기자기하다는것이다.물론리가는상업과공업이발달한도시다.그리고소련지배시절지어진멋이라고는하나도없는크기만한건물들도적지않다. 리가의구시가는1994년유네스코에서세계문화유산으로지정했다.세계문화유산이라는고정관념이없더라도리가구시가를처음본느낌은,마치아기자기한유럽의오래된동화속으로빨려들어가는느낌이다.거리의건물들은단하나도같은모양이없다.게다가형형색색으로화려하게치장된건물들에는사람이아닌요정이살것같은느낌이든다. 물론여행자들은리가구시가와의첫 ‘소총수의상’을지나구시가로들어가는길에자그마한광장에는리가를대표하는 블랙헤드전당의전면은화려함의극치다.특히건물의상단부에는체코프라하에있는오롤로이천문시계와비슷해보이는천문시계가아름답게달려있다.시간과월령을조각한아름다운시계인데,이시계에전해지는전설도프라하의오롤로이와비슷하다.이시계를만든시계공에대한다른도시의관심이많아지다보니시계를처음주문한길드의수장이이시계공의눈알을빼버려다시는그와같은시계를만들수없게했다는것이다.그러나독일뮌헨과로텐부르크에도비슷한천문시계가있는것을보면전설은그저전설일뿐인것으로보인다. 눈알이뽑힌시계공만큼이블랙헤드전당도순탄치않은역사를지니고있다.제2차세계대전당시독일군에의해건물의80%가파괴된것이다.게다가전쟁이후에소련은이건물이독일의잔재라며아예모조리 블랙헤드전당앞에는한여름에도크리스마스트리같은 크지않은이광장은늘사람들로붐빈다.리가구시가여행의시작점이자마무리장소이기때문이다.광장에모인사람들은늘바쁘지않다. 별바쁜생각없이광장을둘러보다보면까마득히높고뽀족한첨탑이인상적인건물이눈에들어온다.성베드로교회다.13세기길드회원들의헌금으로이교회가처음지어졌을때는분명가톨릭성당이었다.하지만라트비아가16세기종교개혁때루터교를국교로받아들이면서이교회는루터교의성당이되었다.지금은리가시내를조망할수있는가장멋진전망대역할을하고있다.성베드로교회첨탑의높이가123m에이르니이곳에오르면리가시내가한눈에내려다보인다. 구시가안쪽으로들어가는리가의골목들은아름답다.길양옆에서여행자들의방문을환영하는아르누보양식의건물들은,건물이아니라하나의조각품처럼보인다.자우니엘라거리는1899년부터1914년사이에조성된거리다.아르누보건축양식이19세기말부터20세기초에전성기를이룬것을생각하면자우리엘라거리는바로아르누보의전성기에조성된거리다.그러니이거리가유럽아르누보양식의보고라고불릴만도하다. 리가구시가를남북으로나누는카라츄거리를걷다가북쪽으로걸음을옮기면제법큰광장이나온다.이광장의서남쪽엔라트비아루터교의중심인대성당이웅장하게자리잡고있다.알베르트대주교가1201년리가를건설하기시작한후10년뒤에공사를시작한대성당은처음엔고딕양식으로지어지기시작했다.그러나18세기까지증개축을이어오면서바로크양식이더해졌고,또다시바실리카양식이더해지면서지금은세가지건축양식이동시에존재한다.이성당에서가장유명한것은6768개의파이프를가진오르간이다.1884년제작될당시만해도이파이프오르간은세계에서가장큰것이었다.지금은세계에서네번째로크다고한다.여름에운좋은여행자는이성당에서웅장함이온몸에그대로전해지는파이프오르간연주를들을수있다. 대성당광장에서북쪽으로난작은골목은리가의또다른아름다움이진한향기를내는곳이다.그골목의끝에서나타나는아치형출입문은또하나의전설을지니고있다.스웨덴이리가를점령하던시절한여인이리가주민들의금기를깨고스웨덴병사를사랑했다.이들은남들의눈을피해매일늦은밤이문에서만났는데,어느날잡히고만것이다.이여인은리가의법에따라죽임을당했고,이후이문을지나갈때마다흐느껴우는여인의소리가들렸다는것이다.지금도이문을지나는연인이진실한사랑이라면남녀의속삭이는소리가들린단다.이문을지나는커플마다잠시걸음을멈춰귀를기울이는것을종종볼수있다. 스웨덴문이라고불리는이문은원래성벽도시인리가를둘러싼성벽에난25개의문중하나다.13세기부터18세기까지성벽으로둘러싸인리가에는25개의출입문과28개의감시탑이있었다.하지만지금은스웨덴-러시아전쟁,제2차세계대전등을겪으며모두파괴됐고,스웨덴문이연결된일부의성벽은나중에일부 다시구시가의중심부로들어가면리부광장이나온다.한자동맹시대길드의중심지역이다.당시길드는대길드와소길드로나뉘는데,대길드는부유한독일상인들의길드다.라트비아의소상인과장인들의조직인소길드보다우월한권력을지니고있었고,자연히차별이형성됐다.그래서생긴재밌는이야기도있다. 대길드건물앞에또다른건물을가지고있던라트비아의부유한상인이있었다.그는대길드에속하고싶어애를썼다.하지만대길드의독일인들은그가라트비아인이라는이유로받아주지않았다.화간난라트비아상인은자신의건물꼭대기에대길드건물을향해엉덩이를내밀고있는2마리의고양이를조각해얹었다.대길드상인들은화를내며법정소송까지가기도했다고한다.그런데나중에독일상인들이몰락하면서대길드건물이국립라트비아교향악단의연주장으로바뀐다.그리고나서라트비아상인은고양이가라트비아교향악단의연주를잘들을수있도록180도돌려놓았다는이야기다.그래서이건물을‘고양이의집’이라고부른다. 라트비아리가여행은궁금증과신비로움에대한답을찾아가는과정이다.에스토니아의탈린과리투아니아의빌니우스와함께최근들어우리나라에서도상당한관심을갖는곳이리가지만,그래도낯설고어색한곳이다.그러나리가는유럽문화의당당한한축이기도한다. 유럽근대건축사에큰족적을남겨스페인바르셀로나의가우디와더불어아르누보건축의아버지로불리는미하일에이젠슈타인이리가사람이다.그의아들이면서영화‘전함포템킨’을통해몽타쥬이론을확립하고이후고전영화이론의완성자라는평가를받는영화감독세르게이에이젠슈타인도리가사람이다.또한1985년개봉해국내에서도선풍적인인기를끌었던영화‘백야’의주인공이자세계적인발레리노미하일바리시니코프도리가에서태어났다. 사실여지껏우리에게라트비아의모든것은구소련이었다.그래서더더욱우리에게는낯선곳이었는지도모른다.하지만그런엄혹한시간속에서도라트비아는유럽문화의한축으로제자리를지키고있었다.북유럽이면서도동유럽이고,게르만문화이면서도슬라브문화를지닌독특한곳.참담한파괴와질긴고집의유지가공존하는곳이다. 점점라트비아를비롯한발트3국에대한문호가개방되고있다.아직까지는쉽게접하고,즐기고,알수있는곳이아니라는생각이더크지만,그럼에도불구하고그곳에가고자하는,그곳을알고자하는노력들이나날이늘어나고있다. 수백년에이르는처참한피지배의역사속에서,이제는가장빛나는역사를지닌중세의찬란함이그대로남아있는나라라트비아와그중심에선리가.낯설음에대한깊은동경이있다면만끽할수있는찬연한문화의산소로행복할수있는곳이다. 글·사진이석원여행작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