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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9월28일부산다대포항에도착한북한만경봉호에서화사한빛깔의한복을차려입은북한응원단여성들이북한의응원단브라스밴드의공연을보고있다./조선DB
북한응원단은만경봉92호라는배를타고동해를17시간이나항해한끝에부산다대포항에도착해있었다.박진호는신문기자로서의취재도취재지만,그이상형아가씨를실제로보기위해다대포항여객선선착장으로자기차코란도를몰고갔다.마침선착장에서열린북한응원단환영식행사가끝나고응원단아가씨들이버스를타고있었다.그들은모두고운색갈의화사한한복차림이었다.해운대그랜드호텔에서있을환영오찬에참석하러가는길이었다.
박진호는TV에서본그이상형을찾았다.그러나그녀가보이지않았다.그는여러대의버스주위를이리뛰고저리뛰며버스안을드려다보았다.이상형은여전히보이지않았다.이상하다.왜보이지않는걸까?혹시배멀미를심하게해서배에남아쉬는것은아닐까?그런생각을하며마지막버스에이르렀을때,운전기사뒤쪽세번째자리창가에앉아있는이상형이눈에띄었다.그는첫사랑소년같이가슴이뛰었다.그는이상형이앉은자리밑으로다가가큰소리로“이름이뭐에요!”라고소리질렀다.두꺼운버스유리창때문에이상형은그소리를듣지못했는지,가지런한이를드러내보이며미소를지을뿐이었다.
박진호는휴대전화를꺼내문자멧시지로“이름?”이라고써서버스유리창에가까이갖다대었다.그제사이상형은버스유리창에다손가락으로“한송이”라고천천히썼다.버스가서서히움직이기시작했다.“나이?”라고박진호가재빨리또문자멧시지를써보였다.한송이는먼저오른쪽손가락두개,다음에왼쪽손가락세개를펴보였다.이래서박진호는그의이상형아가씨한송이가스물세살의꽃다운나이임을알았다.“나는박진호”라고그가다시문자멧시지를써보이는순간버스는떠나가버렸다.‘한송이가내이름을보았을까?’
그는사라져가는버스를바라보고서있었다.그녀가그의이름을보았는지모르지만일단통성명은끝난셈이었다.아쉬었지만기분좋은순간이었다.그는한송이도자기에게호감을가지고있다고일방적으로생각했다.자기를바라보던그녀의눈빛이예사롭지않았다고그는제멋대로단정해버렸다.한송이는몰라도적어도박진호에게그것은loveatfirstsight(첫눈에반한사랑)이었다.
박진호는차를몰고해운대그랜드호텔로달려갔다.그곳에서는부산시장이주최하는북한응원단환영오찬이진행되고있었다.그는PRESS라쓴태그를양복가슴에달고환영회장소로들어가취재하면서한송이를찾았다.그는주황색한복을곱게차려입은한송이를이내찾아내고계속그녀를훔쳐보았다.둘은눈이마주쳤다.박진호가웃어보이자한송이도따라웃었다.그는그녀가자기를금방알아본것이기뻤다.환영행사와식사가끝날무렵박진호는한송이와또다른한명의북한아가씨를상대로잠시인터뷰를할수있었다.
“한반도신문기자박진호입니다.평양음악무용대학학생들이라던데맞습니까?”박진호의첫질문에“아닙니다.우린평양외국어대학학생들입니다”라고한송이가말했다.
“아,그렇습니까?전공이무엇입니까?”
“영어입니다”한송이가말했다.
“그럼영어들잘하시겠네요?”
“그저좀합니다.”그녀가겸손하게대답했다.
“그럼쉐익스피어작품들도읽었겠군요?”
“쉐익스피어가뭡니까?우린그런거모릅니다.우리는실용적인영어만배웁니다.”
“아,그래요?그럼NorthKoreahasnuclearweapons.북한은핵무기를가지고있다,뭐,이런영어만배운단말입니까?”
박진호의황당한질문에두북한아가씨는서로의얼굴만바라본다.
“농담이었습니다.남자친구있습니까?”박진호가또뜻밖의질문을던지자한송이는좀쑥스러운표정으로웃기만했다.그러자옆의아가씨가“네,있습니다”라고말하면서자기손가락에낀반지를보여주었다.남자친구가있는지없는지알려면여자의손가락을보면알수있다고그녀는말했다.박진호는한송이의손을바라보았다.다행히반지가없었다.박진호는믿기지않았다.그러나그는한송이에게확인질문을하고싶지않았다.혹시있다고할까봐겁이났기때문이다.
십여분간의간단한인터뷰가끝난후,박진호는그들두사람과악수를나누었다.한송이의동료가먼저돌아서고다음에그녀가돌아서갈때,그는“한송이씨!”하고불러세웠다.그리고재빨리자기명함에다볼펜으로“나는한송이씨를사랑합니다.한송이씨는이름그대로한송이꽃같이아름답습니다”라고써서주었다.그녀는읽어보지도않고명함을손아귀에접어들고돌아서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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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다대포항에도착한북한응원단들이하선한후버스를타고부산해운대로향하고있다./조선DB
다음날,그다음날,또그다음날,북한응원단이경기종목에따라이경기장,저경기장으로옮겨다닐때마다박진호는그들을따라다니며한송이를만났다.그러나가까이접근하기는쉽지않았다.일반시민들은물론이고기자들도자유롭게접근하는것을보안요원들이막고있었다.그러나아침에그녀들이숙소인만경봉호로부터내려와선착장에서대기하고있는버스를타러갈때만은기자들이접근해서그들에게한두마디씩말을건넬수있었다.이때마다박진호는한송이손에쪽지를쥐어주었다.매일건네주는쪽지에는“사랑한다”는말만되풀이했다.네번째쪽지에는“매일밤송이씨생각에밤잠을설칩니다.송이씨를미칠듯이사랑합니다!”라고썼다.
그네번째쪽지를받은다음한송이는처음으로답장을보냈다.물론아침에선착장에서버스를타러가면서작게접은쪽지를박진호의손에쥐어주었다.그녀는난생처음그에게서이성에대한사랑을느꼈다.평양시당간부아들이라는29세남자와얼마전선을본일이있지만마음에들지않았었다.그녀가마음속에그리던남성상이아니었다.‘나도멋있는남자만나가슴두근거리는연애한번해보고시집을가도갈것이다’라고그녀는늘생각해왔다.그런데그가슴두근거리는설레임을남조선땅에서경험할줄이야!훤칠한키에운동선수같이잘다져진몸매,서글서글한미남형얼굴등한송이는박진호의외모가우선마음에쏙들었다.그래서그녀는처음으로이렇게대담하게답장을쓴것이다.“저도박진호기자님이좋습니다.”
북한응원단을항상따라다니며경호하는보안요원들이눈치를채지않게쪽지를거의매일교환하기는쉬운일이아니었다.북한사람들도우리같이휴대전화를다가지고있다면얼마나좋을까하고박진호는쓸데없는공상을해본다.그러면서도이런간첩접선같은편지교환에짜릿한스릴을느끼기도했다.
쪽지교환은그럭저럭가능했으나단둘이만날수는없었다.며칠후면아시안게임도끝이나고북쪽사람들은북으로돌아갈텐데….박진호는초조했다.그래서그는열한번째만나는날“우리둘이단둘이만만나고싶습니다.무슨방법이없을까요?”라고쪽지에써주었다.그러자그녀는“밤에일단배로돌아오면다음날아침에경기장으로나갈때까지배안에갇혀있습니다.나갈수가없어요”라고쪽지로대답했다.
그러다가아시안게임이끝나기이틀전쪽지에서한송이가묘안을제시했다.“내일밤내가배에서바다로뛰어내리겠어요.난수영을잘해요.내일밤11시에우리배선미(船尾)에서100미터정도되는지점해안가에차를세우고자동차전조등을두번만깜빡거려주세요.그러면내가선착장과반대되는쪽으로배에서뛰어내려선미를돌아진호씨있는데로헤엄쳐가겠어요.죄송하지만제가갈아입을옷을좀준비해주셔야겠어요.”
기발하고대담한아이디어였다.한송이가이런모험을결심한것은박진호를좋아하고있다는사실을웅변으로증명해주는것이다.박진호는행복했다.만경봉호는다대포항여객선선착장에아주가까이정박하고있었으므로그녀가헤엄칠거리는얼마되지않았다.또선미부분은갑판에서수면까지거리도그리높지않았다.문제는선원들이나부산해양경찰순시선에발각되지않고몰래배에서뛰어내려해안가로헤엄쳐가는것이었다.
다음날밤10시30분쯤박진호는만경봉호선미가바로보이는해안가로갔다.한송이가말한대로만경봉호선미에서100미터쯤되는거리에서도로갓길에차를세우고전조등을끈채차안에서초조하게기다렸다.바로그시각,한송이는같은방을쓰는친구에게“속이좀메스꺼워갑판에나가바람좀쐬고오겠다”고말하고운동복차림으로선실을나왔다.마침중천에반달이떠있었으나구름에가려너무환하게비추지않아서다행이었다.그녀는팔뚝시계를보았다.11시3분전이었다.그녀는어스름한달빛이그림자를만든곳에숨어서해안쪽을바라보았다.11시정각이되자자동차전조등이두번깜짝거리는게보였다.그것을보고그녀는박진호의위치를파악했다.
그녀는육지와반대쪽갑판으로발자국소리를내지않으려고애를쓰며조심조심걸어갔다.그리고난간위에한쪽다리를올려놓았다.그순간인기척이났다.그녀는즉시도로다리를내리고선실벽으로사뿐히걸어가벽에바짝붙었다.인기척을낸것은선원같았다.그선원은피던담배를난간위로던지면서퇴!하고바다를향해침을한번뱉고는선실문을열고들어갔다.그녀는난간을넘기전에주의를살폈다.이따끔씩지나가는부산해양경찰순시정은다행히보이지않았다.그녀는단숨에난간을넘어바다위로다이빙을했다.
첨벙!한때학교수영선수였던그녀는별로큰소리를내지않고물속으로들어갔다.일단물속에잠겼던그녀의머리가수면으로떠오르자부산해양경찰순시정이어디선가갑자기나타났다.그녀는재빨리물속으로완전히잠수,순시정이지나가기를기다렸다.10월중순의남도부산다대포항의물은그리차지않았다.순시정이지나간후그녀는만경봉호선미를돌아인어같이조용히해안으로헤엄쳐갔다.
한송이가해안으로헤엄쳐오자박진호는물가에서기다리고섰다가그녀의손을잡고자기차로데리고갔다.그리고옷이흠뻑젖은그녀를뒷좌석에태우자마자시동을걸고일단그곳을빠져나갔다.잠시후힐끔리어뷰미러를보니차한대가따라오는게보였다.우연히지나가는차인지,아니면자기차를미행하는차인지몰라불안했다.그는“송이씨,우선뒷좌석에있는그옷으로갈아입어요.신발도거기있어요.우린일단이곳을빨리벗어나야겠어요"라고뒤를돌아보지도않고말했다.한송이는시키는대로했다.
“거울로뒤를보면안돼요."그녀는젖은웃옷을먼저벗으며말했다.“보려고해도어두워서안보이니걱정말아요."박진호가웃으면서대꾸했다.한송이는먼저젖은운동복상의와브라자를벗고박진호가미리준비한브라자와여성골프셔츠로갈아입었다.다음에그녀는운동복바지를벗었다.그리고팬티를순식간에갈아입고그위에블루진바지를끼어입었다.팬티를벗을때그녀의미끈한하체가순간적으로가로등불빛에반사되었으나박진호는보지못했다.그가전날국제시장에가서산블루진바지와골프셔츠,그리고팬티와브라자는대충그녀의몸매와키를말해주고산것들이었다.
“옷이대충맞아요?"그가묻자“네.맞아요.맞춘것같아요."그녀가말했다.
“옷걸이가좋은사람은원래무슨옷이나다잘맞는거라구요."그가웃으며말하자
“옷걸이가좋은사람이라니,그게무슨말입니까?"그녀가묻는다.
“아,참,북쪽에선옷걸이란말을모르겠구만.옷걸이는몸매란뜻이에요."
“아,네에!"
“밤이라쌀쌀하니거기내점퍼를걸쳐요.점퍼란말도모르겠구만.거기내가벗어놓은웃옷이라도걸치고있어요."
“고마워요,박기자님."
“박기자님이라고부르지말고그냥진호씨라고불러요,송이씨."
“그래도되겠습니까?"
“그럼되고말구요.난기자로서송이씨를만나는게아니잖아요."
한편만경봉호위에선난리가났다.11시30분취침시각점호때한송이의룸메이트는북한응원단단장에게한송이의실종을신고했다.그녀가겁먹은표정으로“송이동무가속이메스껍다면서갑판에나가바람좀쐬고오겠다고하고나갔습니다”라고말하자단장은“기래?기럼,어두워서발을헛디뎌바닷물에빠진거이가?”했다.“밖에달이있으니까그렇지는않을겁니다.
혹시실족을해서바다에빠졌더라도송이동무는헤엄쳐나왔을겁니다.송이동무는수영을잘합니다”라고룸메이트가말했다.“기래?기럼그에미나이가어디로갔단말이가?땅으로꺼졌단말이가,하늘로솟았단말이가!“응원단장은소리를버럭지르고나서한송이의룸메이트에게“이일에대해서동무한테도책임이있어!같은방에있는동무의동정을잘살펴야하는거아닌가?어쨌든누구한테도절대로말하지말라우,알갔어?”라고명령했다.그러나이사실이외부에알려지면당장큰일나는건단장자신이다.단원들을잘챙기지못한엄중한문책을당할게뻔하다….
응원단장과부단장,그리고만경봉호선장은선장실에모여비상대책회의를열었다.
“한송이,이에미나이가수영을잘한다니까물에빠져죽었을것같지는않고,그렇다면도대체어디로갔단말이가?이거야,큰일나지않았소?남조선경찰에신고를할까?”하고단장이말하자부단장은“안됩니다,기건.우리끼리조용히해결해야디요,한송이가누굽니까?인민군상장(중장)의딸아닙니까?기런아이가남조선에서사라졌다고남조선신문방송이떠들어대면우리는죽은목숨이나다름없습니다!”라고비공개를강력히주장했다.
“부단장동지말씀이옳습니다.”선장이거들자단장은답답하다는표정으로“우리가어떻게조용히해결한단말이요?이넓은부산에서그에미나이가어디로갔는지어떻게찾는단말이요?이거야.정죽갔구만!”하고담배를꺼내불을붙이려고라이터를켰다.그런데라이터가불을붙이지못하자단장은“공화국에선라이타하나도제대로못만드나,젠장!”하고화를냈다.그러자옆에섰던선장이일제라이터를꺼내불을붙여주었다.
이무렵박진호의코란도는다대포지역을벗어나해운대쪽으로가는고속도로로진입했다.다행히뒤따라오던차는어디론가사라지고보이지않았다.미행하는차는아닌모양이었다.
“송이씨,생각보다대담하군요.그용기에감탄했습니다.”박진호가거울에비치는한송이의얼굴을보면서말하자그녀는“두주일동안이나경기장과배사이만왔다갔다하니까답답해서미칠것만같았어요”라고말했다.밤11시가넘은고속도로에는차들이별로없어서박진호의코란도는거침없이신나게달렸다.
한참을달린후코란도가멎은곳은해운대달맞이고개위,바다가내려다보이는노래방“파도”앞이었다.두사람은차에서내렸다.박진호는노래방입구밝은불빛아래서처음으로한송이의전신을자세히바라다보았다.
“옷이대충맞는것같아다행이네요,송이씨.그걸입으니까몸매가훨씬더예뻐요.북에서도블루진입나요?”그가말하자,“이런옷은없어요.러시아영화에서만보았을뿐이야요”라고그녀가대꾸했다.박진호는자기의오른팔을한송이의오른쪽어깨에가볍게올려놓고왼손으로노래방문을열었다.
안에들어가자마자한송이는먼저화장실로들어가바닷물에젖었다마른머리를다시깨끗이수돗물로씻고그곳에비치되어있는헤어드라이어로말린다음빗으로단정히빗었다.그리고나서룸으로들어가자단골손님인박진호와나란히앉아이야기를나누던주인겸마담이“어서오세요.박기자님이오늘은대단한미인과함께오셨네요”한다.그건입에발린소리가아니라진정한칭찬이었다.그러고보니,화장을하지않은한송이는더아름다워보였다.화장품의가면을벗어던진그녀의피부는더하얗고,그녀의볼은연지바른것보다더볼그레했다.화장을하지않았을때예쁜여자가진짜로아름다운여자라고박진호는항상생각해왔었는데,한송이가바로그런여자였다.
수인사가끝난후30대초반으로보이는마담은“말투로보아북쪽사람같은데,옷차림을보면북한응원단아가씨는아닌것같고,그럼중국에서온조선족아가씬가?”한다.박진호는뜨끔했으나“맞아요.조선족아가씨에요”라고받아넘겼다.그리고“우리국산와인한병하고마른안주좀갖다줘요”했다.와인과안주가들어오고두사람만이룸에남게되었을때둘은와인잔을부딪치며건배를했다.
박진호가먼저“조국통일을위하여!”라고외치자한송이도따라외쳤다.첫날인터뷰할때를빼놓고는매일아침선착장에서잠깐씩인사말만나누었을뿐이지만,여러차례쪽지편지교환으로대화를나눈그들은이미오래사귄연인같이전혀서먹하지가않았다.박진호는미리준비해가지고간신문스크랩을한송이에게보여주었다.그것은그가그랜드호텔에서단독인터뷰한기사와칼라사진이었다.
“이사진마음에들어요?”
“네,실물보다더예쁘게잘찍어주었네요.”
“내눈엔실물이훨씬더예쁜데요,뭘.이사진을보고반한부산총각들이청혼을하겠으니만나게해달라고신문사로전화를많이걸어왔어요.”
“그래요?영광입니다.”
–글|조화유재미작가,영어교재저술가/2014-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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