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경복궁 서쪽마을 서촌(西村)엔 역사가 숨쉰다.

서울경복궁서쪽마을西村이뜬다는데…무엇이있기에

西村엔역사가숨쉰다
북촌,조선사대부·부호살았다면서촌은중인·아전까지더불어살아
정선의그림,김정희의글씨를낳고이상·윤동주가예술혼불태웠다

풍화된동네,시간의순례
50년간솥뚜껑떡볶이할머니,영화의소재가된형제이발관,
경복고생이담넘어먹던짜장면집…발길닿는곳어디나명물

서촌은아름답지않다
한옥·양옥·전깃줄뒤엉켜있고양팔너비의골목은비좁고옹색
여기에工房·카페·갤러리가모인다,이야기보따리가득한곳을찾아

서울대국어교육학과로버트파우저(51)교수는서촌(西村)에’미친’사람이다.미국인인그가사랑하는서촌이란효자동·누하동·통인동·옥인동·필운동·체부동·신교동등경복궁의서쪽에있다하여이름붙여진구역.서촌에서1년살다가집앞에높은건물이세워지면서인왕산을볼수없게되자북촌으로이사한그는,서촌의난개발이염려돼강의없는날이면서촌으로달려와대책을궁리하는오지랖넓은인물이다.

서촌에미친사람은파우저교수만이아니다.누상동에서태어난서촌토박이설재우(32)씨는서촌지키기를아예업으로삼았다.사비를털어’서촌라이프’라는소식지를펴내고,’효자동닷컴’이라는블로그에지역주민들의소소한일상을퍼올린다.문닫은오락실자리에’서촌연구소’를연그는,생업은교사인아내에게맡긴채당분간더서촌지킴이로살아갈계획이다."요즘은서촌의옛풍경이담긴사진들을수집하고있어요.찍어낸듯획일적이고인위적인전통마을이되어버린북촌(北村)처럼서촌이변질되지않도록노력을다할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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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팔을벌리면닿을듯좁고옹색한서촌의골목길.서울대로버트파우저교수는‘서촌주거공간연구회’를발족,서촌문화지킴이로나섰다./이덕훈기자

서촌은결코아름다운마을이아니다.1920년대이후지어진생활형개량한옥이대부분이고,그외곽을일제가남긴적산가옥과콘크리트양옥들이들쭉날쭉둘러싼형국이다.지붕들사이엔전깃줄이뒤엉켜있고,골목은양팔을벌리면닿을만큼비좁고옹색하다.그런데도사람들이서촌으로몰려온다.예술가들의공방이들어오고,작은식당과카페,갤러리들이잇달아문을열고있다.강남의인테리어업체와광고회사들,시민단체사옥들도옮겨왔다.서촌열풍,이유가뭘까.

역사와예술이살아숨쉬는

"오래된집,오래된나무,오래된골목길이좋아요.거기에얽힌이야기를사랑합니다."

지난해가을통인동에문을연유러피안식당’가스트로통’의셰프롤랜드히니의말.스위스사람인그는북촌에서살다가전세금이치솟고동네가번잡해져서촌으로이사왔다.히니의한국인아내김영심씨는"동네를산책하다보면누구의집터,생가였다는걸표시한지표들이곳곳에있어재미있다"면서"서촌은이야기보따리"라고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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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의명물은오래된가게,착한사람들이다.청와대직원들의단골집이었던‘형제이발관’,경복고등학교학생들의사랑을받아온중국음식점‘중국’,설명절이면토박이는물론외지인들까지몰려와분주해지는‘통인시장’이다./이덕훈기자

실제로서촌엔역사의숨결이살아있다.조선시대경복궁과창덕궁사이에자리한북촌이사대부집권세력과부호들의거주지였다면,서촌은고관대작부터중인,아전에이르기까지다양한신분층이함께살아온곳이다.세종대왕이도(李�i��)가태어나고영조가어린시절을보냈으며,아호(雅號)가’필운’이었던조선중기의재상이항복과겸재정선,추사김정희가서촌에서살았다.‘사라진서울’을쓴강명관교수에따르면,서촌은서인,그중에서도소론이살았고,특히누하동에는대전별감파들이많이살았다.신교동은사도세자의생모인영빈이씨가살던선희궁자리로,안동김씨의발상지로도유명하다.

서촌의가장큰매력은예술적풍취다.정선의명작’인왕제색도’가서촌에서그려졌고,근대에들어서는소설가이상,한국화가이상범과박노수,시인윤동주,천재화가이중섭등문인과화가들이이곳에적을두고예술혼을불태웠다.소설가박완서가다녔던매동초등학교가서촌에있고,배화여고는육영수여사의모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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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형개량한옥들이머리를맞대고있는체부동풍경이시간의간극을느끼게한다.조선시대고관대작과중인,아전들이어우러져살던서촌엔역사의숨결이고스란히묻어난다.거미줄처럼이어진골목길산책은여행자들의사랑을받고있다./이덕훈기자leedh@chosun.com

이밖에통의동백송터는1690년경부터자라온천연기념물백송이있던자리다.1990년태풍으로고사된뒤지금은나무밑동만남아있는이곳은서촌여행의출발점으로애용된다.누상동에있는백호정(白虎亭)도숨은명소다.오사정(五射亭),즉5대국궁터중한곳으로인왕산기슭에있었던무인의궁술연습장.지금은백호정이란글씨를새긴바위가하나남아있을뿐인데,조선명필중한사람으로꼽히던엄한붕의글씨라고한다.설재우씨는옥인동언덕배기에자리한’서울교회’에도꼭가보라고권했다."이승만박사가독립운동자금을마련하기위해만든교회인데,그교회종은1년에딱두번울립니다.서울교회에서내려다보는서촌정경이일품이지요."

오래된가게,착한사람들

흥미로운건서촌의진짜명물은현재살아있는사람들,그들의가게라는점이다.금천시장한귀퉁이에서50여년동안무쇠솥뚜껑에떡볶이를만들어파는김정연할머니."길거리에서평생떡파는사람이연세는무슨…"하면서손사래를치는이할머니의나이는90세가훨씬넘었다.할머니의떡볶이는고추장양념이아니라간장양념이다."개성살때불고기해먹고남은양념으로떡을볶아먹었지."비가오나눈이오나할머니가시장통에나와떡을볶는사연이있다.김할머니는6·25전쟁통에남편은물론11살,9살,7살짜리세아이와생이별했다.죽기전자식들을한번이라도만나기위해갖은노력을다했지만꿈을이루지못한할머니는떡볶이를판돈으로어려운형편의아이들을돕는다."날위해쓸일이있어야지.그렇게라도보람을느껴서좋아요.일안하고집에오도카니앉아있으면뭐해.자식들생각에미쳐나갈것같은데."그래서어버이날이면할머니의도움을받아공부하게된청년들이보내온카네이션이좌판에가득쌓인다고했다.

청운동’중국’도서촌의명소다.경복고등학교학생들이공부하다말고담넘어와한젓가락에쓸어넣었다는짜장면으로유명한식당.지금은일반에게도널리알려져오전11시부터줄을서야음식을먹을수있고,배달은절대사절이며,하루분재료가떨어지면가차없이문을닫는다.식당주인문경철씨는하루영업이끝나면동네순찰을돌면서아이들을돌보는자원봉사자로도이름이높다.

청와대옆동네라는이유로서촌에서는오래된이발소와미용실도명소가된다.영화’효자동이발사’의소재가된’형제이발관’은20년넘게청와대직원들의머리를깎아온집.동네아저씨들사랑방으로,머리도안깎으면서커피한잔씩들고수다떠는사람이이발소에그득하다.유정미용실은정주영전현대그룹명예회장의부인인변중석여사를비롯해현정은현대그룹회장,장하진여성가족부장관등정재계여성들의단골집이다.불에달궈머리카락을마는구식고데기를아직도사용해일부러구경오는사람들도있다.

몇달전문을닫았지만60년역사의’대오서점’도서촌도보코스에서빠지지않는명소.주인권오남(81)할머니와서점이야기를다큐로찍기위해오는대학생들이있을만큼’스타’다.경복궁영추문맞은편길가에있는통의동보안여관도재미있다.1930년대에문열어2004년영업을종료할때까지여관으로서기능해온곳.재건축이결정되자여관의역사성을안타깝게여긴사람들이2010년복합문화공간으로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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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하지않아서,그리워서온다

건축가임형남은서촌을’풍화된동네,그래서보이지않는시간의순례가가능한곳’이라고묘사한다.최첨단건축물이즐비한도심한가운데60~70년대영화를찍기위해마련된세트장처럼서촌은낯설고특별하다.설재우씨는"마을에서린역사,현재의모습을갖추기까지의이야기를알아야서촌의진정한멋을느낄수있다"고말한다.파우저교수는"나는서촌의골목길그자체,누덕누덕기워지고이어붙여진남루한집들을사랑한다"고말했다.

실제로서촌을찾는도보여행자들의절반이상이40~50대중년들이다.김영심씨는"자기어릴때살던모습이랑똑같아서,고향에온듯푸근해서온다는분들이많다"고했다.설재우씨는"서촌엔치유의힘이있는것같다"고말한다."정비되지않은채시간의흐름을간직한날것그대로의모습에사람들이위안을받고돌아갑니다."

그러나서촌이떠안고있는숙제도적지않다.서울시의’서촌일대한옥663가구보존계획’이일종의관광코스개발로변질돼서촌고유의문화와지역성을훼손할우려때문이다."외지인들을위해인공적으로단장된한옥마을이되어서는안됩니다.밥값이8000~9000원하는북촌의식당들은결코원주민을위한공간이아니지요.서촌의보존과개발은철저히주민의일상을존중하는방식으로진행돼야하고,한옥의내부는주민들이살기편하게현대식으로수리하되,세월의흔적이남아있는붉은벽돌담같은것을전통한옥의요소가아니라는이유로철거하는무자비한방식이어서도안됩니다."

-글김윤덕조선일보기자W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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