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섬으로 가을 여행[2]

남이섬으로가을여행[2]

남이섬을아름답게물들인단풍

남이섬의현주소

남이섬은행정구역상으로는강원도춘천시남산면방하리에속해있고,길은경기도가평군으로통한다.둘레가약6㎞,넓이가약46만평으로작은섬이지만1960년대부터나들이터로이름을떨쳤다.현재경춘선복선전철이개통되면서가평역에서남이섬으로바로통한다.원래주인은섬이름이기도한조선의남이(南怡ㆍ1441년~1468년)장군이다.그가유배를당해기거했던곳이자묘가있는곳이기도하다.남이장군은조선세조때의무신으로태종의외증손이며,17세때무과에장원급제하였다.1467년(세조13년)이시애의반란을토벌하여적개공신1등에올랐으며,27세의젊은나이로병조판서가되었으나,평소그를시기하던유자광의모함을받아처형되었다.1818년(순조18년)에복권되었고,시호는충무(忠武)이다.

남이섬전설에담겨전해져오는돌무더기가있어이를흙으로덮어봉분을만들고치장한게현재의남이장군묘라하는데,실제남이장군이묻혀있는지는확인할수없다.참고로경기도화성시비봉면남전리에도남이장군묘(경기도기념물13호)가있다.남이섬관리측은이곳을친환경적인체험관광문화공간으로되돌아가는작업을벌이고있다.드라마겨울연가가한류열풍을타고해외에서인기를끌면서겨울연가촬영지인남이섬이일본과중국의단체관관객을불러모으고있어,남이섬에가면한국인보다오리려일본인과중국인,그외의외국인을더많이만나게된다.

상상으로그려낸문화예술관광지남이섬강우현대표

1960년대중반’경춘관광개발주식회사’를모태로시작된남이섬의역사는90년대까지만해도행락객들의유원지와대학생들의MT촌이고작이었다.’남이섬에뭐볼게있나’라고묻는사람은대개이때의남이섬을경험했던사람들이다.IMF금융위기이후남이섬이현재의모습을갖추게된건2002년10월이다.(주)남이섬(www.namisum.com)CEO인강우현대표가처음남이섬의주인민병도를만나남이섬개발이라는꿈같은마스터플랜을제시했기때문이다.그러한꿈이어느정도실현되었으니,남이섬이꿈과동화의나라,상상과예술의문화관광국남이나라가된것을보면알수있다.

2000년만해도남이섬의입장객은27만명에불과했으나,10년이지난지금은한해200만명이찾는종합관광휴양지로발전되었다.여의도의5분의1밖에안되는가랑잎같은섬,남이섬이거둔실적으로는대단한성과다.매출액도150억원남짓올렸다.그러나강대표에게매출액은별의미가없다.2006년‘나미나라공화국’이라는나라를선포하고남이섬을문화·예술·자연의공화국으로만든것을유치하게보는사람도있다.하지만남이섬이라는브랜드를알리는데사소하고유치한상상만큼큰역할을한것도없다

남이장군의결혼에얽힌전설같은이야기

남이가어릴때에큰길에나가놀고있는데,하인이보자기에무엇을싸서지고가는데보니그위에귀신하나가올라앉아있었다.남이가따라가보니하인은좌이정권람의집으로들어가는것이었다.곧이어집안에곡성이나기에물어보니권대감의딸이방금죽었다는것이라했다.남이는권대감의집에들어가서자기가죽은따님을살리겠다고했다.별당에들어가서보니죽은처녀의가슴에아까본귀신이앉아있는데,남이를보자곧도망을가버리고죽었던처녀가숨을쉬는것이었다.그런데남이가방을나오면처녀는또숨을멈추고남이가들어가면다시살아나곤했다.그는자신이귀신을본이야기를권람에게하고나쁜귀신을완전히쫒아버린후,죽었던처녀를완전히살려내었으므로권람은딸의은인남이를사위로삼았다는전설같은이야기가전한다.

-[http://rubygarden.tistory.com/entry/루비의정원에서옮긴글]-

남만이흐르는남이섬,낭만의길

남이섬의화려함이아름답다

가을이면남이섬의은행나무길을찾는사람들

푸른강가에노란은행나무길-1

남이섬의남쪽끝청정원전망대

남이섬강변을건너가는통나무헛다리길

남이섬의갈대밭에서

남이섬에서웨딩촬영하는모습

모녀의정겨운휴식

가을에피는연꽃봉우리

남이섬에남이장군의묘

남이섬선착장의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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