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서울 건축 만담

서울건축만담

이책의저자차현호건축설계사는낮에는설계일을하고주로밤에글을쓰며주말마다도서관에서자료를찾았다고했다.건축이라는것이고귀한예술작품으로만이해될수없는시대에우리가책을읽고영화를보듯건축이충분히흥미있게읽히기를바라며,때로는국영수처럼재미는없더라도삶의필수과목으로서,우리삶의아주가까운자리에서신변잡기의일상을담는존재임을보여주고싶었다고한다.원래건축이란게이런하찮고자잘한우리들의일상을담는것이아니던가?그래서건축이술안주처럼사람들의가장낮은자리로내려와술자리의뒷담화로회자되기를희망한다는말을서두에피력(披瀝)하였다.

1.건축은예술이다

<서울건축만담>은건축설계사차현호와최준석님의공저로그들의일상이야기와서울의건축물에대하여만담형식으로다양한이야기를실타레처럼풀어가는책이다.건축이예술이냐하는문제를집고넘어가는과정에서건축은단순히평면,입면,단면으로설명하는방식에의문을제기하며건축을예술이라정의하는데는건축만큼차갑고추상적인형태를취하는예술도없지만,건축만큼인간이태어나고죽을때까지인간의생활에밀접하게관련된예술도없다고한다.건축은인간이관련되어있기때문에건축은예술이라고말할수있다는것이다.플라톤은모든예술의출발점을’미메시스(Mimesis)라고봤다.미메시스란현실의모방과재현이다.이는모든예술의동기가현실에서출발한다는증거이다.그래서예술은현실을흉내내어또다른현상을만들어내는작업이된다.사진이그렇고,영화가그렇고,회화가,조각이,음악이,춤이,그리고건축이그렇다.우리삶의문제속에예술의본질이있다는이야기다.그러므로건축은예술이라고정의할수있다.

2.마포대교’생명의다리’

이책의첫머리의이야기는마포대교에서시작한다.서울에많고많은건축물가운데왜하필이면지난해미국영화’어벤져스2’를촬영한마포대교인가?최준석님은’마포대교생명의다리’라는짧은광고를보았기때문이라하였다.마포대교는1970년5월16일서울대교(현재마포대교)라는이름으로준공된한강에놓인다섯번째다리이다.여의도에연결된첫번째다리이기도하다.1968년밤섬을폭파하고110일간의혈투끝에여의도를둘러싸는7.6km의윤중제가완공되었다.여름이면홍수로몸살을앓던한강인지라여의도개발에앞서제방을쌓았다.윤중제가완공되고매립공사가시작되었다고여의도개발을위한준비가모두갖춰진것은아니였다.개발을위해사람들이쉽게접근할수있어야하는데,여의도는섬이라섬에가려면다리가필요했다.당시서울의중심이강북이었다는점을고려한다면마포와여의도를연결하는다리가필수적이었고,이다리는여의도에실질적인생명을불어넣는일을해야했다.이것이서울대교가생명의다리가된연유다.

마포대교는지하철여의나루역에서5분거리라는접근성때문인지한강다리중자살률이1위라는오명을뒤집어쓰고죽음의다리로변모했다.2012년모생명보험회사가’생명의다리’라는이름으로기획한광고에는이런나레이션과인터뷰장면이나온다."한강다리투신1,090명(2003~2012서울시소방재난본부통계)그중투신자수1위,마포대교(188건,17.2%)생명을지켜라""하지만우리는사람들을막는것이아니라사람들의마음을되돌리고싶었습니다.불빛,그것이아이디어의시작이었습니다."인터넷기사에는생명의다리설치후투신률이85%나줄었다고한다.다리에설치된광고판은사람이다가가면불이켜지고‘밥은먹었니’하는자동감지자막을뛰우는큰교각의난간대가자살률`을80%넘게줄였다고한다.

3.‘미메시스뮤지엄’

서울근교파주출판단지’미메시스뮤지엄’은포르투칼의건축가알바루시자(Alvarosiza)가설계하였다.건축의역활이사용자가원하는쓰임새를충실히반영하는데있다고할때처음이건물을대하면특이한모습이역시미술관이라다르구나하게느껴진다.동물의배속처럼둘글게말린공간은천장에서쏟아지는백색의산란광으로가득차있다.벽면에걸린캔버스와홀중간중간놓여있는조형물들,그것을비추는균질한빛의덩어리,이것이사용자를위해건축가가제시한공간의실체다.미술관이갖추어야할가장중요한것두가지는작품과관람객이다.미술관의역활은작품을보관하고전시하는것이다.작품을통해관람객이예술과친밀하게소통하도록하는게목적이다.미메시스뮤지엄의휘어진벽면은건축가스스로최적의곡선을찾은결과다.건축가의직관은이둘을하나로묶는공간속에균질한백색광선을고루뿌려주면서작품과관람객이서로분리되지않고일체감을느끼도록했다.그로인해작은문제도생겼다.공간이예술이되니정작작품이잘보이지않는것이다.

4.’모두의집(HomeforAll)’

2011년3월일본대지진으로모든것이리셋된도호쿠지역몇몇현에이재민을위한’모두의집’이라는아주특별한건축물이지어졌다.’모두의집(HomeforAll)’이란마을회관같은건물이다.지역마다조금다른방식으로지어졌으나주민들을위한몇개의방과공동거실,화장실등으로구성된단순한형태를띠고있다.가족을잃은이재민들이각자의방을사용하면서주방과거실,화장실은공동으로사용함으로써그들은가족을잃은설펌을달래고서로를위하며,희망을찾아가는이푸로젝트는이토도요(伊東豊雄)라는건축가로그와함께일본의유명건축가들이협력했다.그들이주목한것은재난을통해다친사람들의마음을위로해주는공간을조성하는것이었다.삶전체가사라진판에똑같은건물과도로를다시지어준다.한들그것이이전과같을수없음은자명한일이다.중요한건치유를위한’위로’가먼저라는점이다.그들은현실을부정하지않고똑바로바라보는진실한집짓기를통해이재민들의다친마음을위로해주고싶었으리라.이들은’모두의집’을통해건축의사회적소통이갖는의미를제고시켰다.건축이과시와소비를지향하는자본주의적자가연출에머물지않고지역의풍토,사람그리고삶에대한진지한고민에서출발해야한다는기본을재차강조한것이라볼수있다.

이토도요는’모두의집’을통해건축의사회적소통이갖는의미를재고시켰다.재난이몰고온지울수없는충격과상처를해소하기위해건축이과연무엇을할수있는지,언제나실험적인이슈를던지며건축의첨단을지향했던노장건축가는’모두의집’을통해감동을전하고있다.형태가눈에띄거나특별한기술이돋보이는건물은아니지만지역의새싹을움터게하고,편하게쉴수있는공간을마련함으로써정신의회복을도모한것이다.무너진도시보다더중요한것이재난에쓸려간’삶’이라는관점에서그의메시지는타당하며또감동을전한다.’모두의집’은만드는과정을통해사용자인이재민들과건축가가같은눈높이에서심리적교감을지속해나갔다는데에서더큰의미를찾을수있다.이건물은세상의어떤건축보다강하고단단한희망을품는다.

5.국보1호숭례문(崇禮門)

최초의숭례문은조선태조7년(1398)에완성되었다고사료는전한다.현재서울에남아있는가장오래된목조건물이며그역사적가치와상징성으로1962년12월20일국보1호로지정되었다.불에타기전의술례문은세종29년(1447)과성종10년(1479)에나누어고쳐지은것이고일제강점기와한국전쟁을거치면서크고작은개축을통해600년동안서울의남쪽을지켰다.그런데2008년2월10일20시40분전후에화재가발생하여다음날11일0시40분경숭례문의누각2층지붕이붕괴하였고,이어1층에도불이붙어화재5시간만인1시54분석축을제외한건물이모두붕괴되었다.방화범은채종기(당시69세경북칠곡)로밝혀져구속수감되었다.화재이후5년2개월간의복구공사를마무리하고2013년5월4일준공식을가졌다.복구에든비용은총276억7000만원국비245억원외에기탁금7억5000만원,신한은행12억원,포스코3억원등지원금과서울시가부담한관리동건립비9억2천만원등이포함된금액이다.중요무형문화재등의장인들이참여하고전통기법과재료를살리기위해연구를수행하여,직접손으로만든기와는전통기왓가마에서구웠고,천연안료를사용하여최대한원래의옛모습을살렸다.특히이전과같은일들이일어나지않도록목재문화재의취약점을보안한소방시설로화재감지기,스프링클러,cctv등의신속한대처가가능하도록보강했다.

6.충정아파트

서대문구충정로에있는이아파트는무려80년동안사람을담아내고있는공간이있다.1930년철근콩크리트와연와등의건축물이날좀보소하는자태로그위대한형체를쌓아올려,서울도처에강철의거리를이루고있던시절,도요다아파트(현충정아파트)가태어났다.극심한주택난으로몸살을앓던경성에서4층짜리신식아파트는선망을넘어환상에가까웠을것이다.그렇게화려한젊은한때를보내던이신식주거지도한국전쟁이라는소용돌이속에서아파트지하실은주민학살장소로쓰였는가하면수복후에는유엔전용호텔로사용되면서주말마다옥상파티가열리곤했다고전한다.자하실에서는사람이죽고옥상에서는춤판이벌어지는아이러니를담고있는건축물인셈이다.이건물은1961년5.16이후여섯아들을모두전쟁때잃었다고주장하던김병조에게불하되었다가그의주장이모두거짓으로밝혀짐에따라국가에몰수되었다.1978년충정로확장에따라건물일부가헐리고몇몇주인의손을거치며우여곡절을겪은끝에마침내서울시는2009년충정아파트를철거하고21층높이의주상복합건물을세운다는’마포로5구역제2지구도시환경정비계획안’을승인했다.결국,이건물도이렇게역사의뒤안길로가는구나했는데,비록늦기는했으나최근소문에의하면서울시는미래유산보존에관한조례제정을통해충정아파트를포함한근대건축물을보전한다고한다.과연극적인반전이가능할것인가,지켜볼일이다.

7.세운상가(世運商街)

건축은삶을담아내는그릇이다.건축은땅을딛고정주하는인간을위해자율적인일상의공간으로존재한다.삶에필요한것이다갖추어진엄청난규모의콘크리트수퍼블록으로남산과종로의남북축을이으며동서를가르는성처럼우리앞에등장한건물이있다.바로건축가김수근의설계로1968년완공된세운상가다.30대패기만만한건축가김수근과당시서울시장이었던불도저김현육,두남자는변변한포장도로하나없던척박한서울을진단하고곧장매스를들이대어새살을붙이기로했다.남산자락과종묘를잇는거대한판자촌블록,세운상가이전속칭종삼’이라불리던이지역은제2차세계대전당시군사목적으로일제에의해집들이강제로철거된지역이다.종묘는조선왕조의신주를모신곳이고,남산은풍수적으로조선도읍이었던서울의기(氣)가모인중요한지역으로여겨젔다.일제패망과한국전쟁을겪으며공터에는떠돌이이주민들이자리잡기시작했고점차판자집과집장촌으로자연취락이형성되면서서울의골치거리가되었다.1960년대는군부정권주도로근대화조급증에시달리던시대였다.현대화발전이라는큰슬로건만만족되면오래된지역은뭐든쓸어버릴수도있었다.가난하고남루한풍경들을치워버리고싶었던권력자는이제껏본적없는크고늠름한건축을상상했을것이다.새시대를향한기념비적인건축,그런건축이야말로지긋지긋한과거를지워버리고새로운미래로나아가는것이라고생각했을지도모른다.

젊은건축가김수근은이곳에거대한슈퍼블록을제안한다.인공대지위에세워질최신식맨션,소란스러운완벽한지면과분리된쾌적한옥상공간,학교와파출소,소방서까지갖춘완벽한시설의작은도시,전자식엘리베이터,자연광이쏟아지는아트리움,자동차를위한필로티공간등당시로서는듣도보도못한기술로치장한건축이었다.한번들어가면나올일이별로없을것을연상시키는대형여객선을연상시키는주상복합빌딩,김수근은이건축물을통해대도시서울이추구해야할미래의비전을보여주고싶어했다.세운상가건물이들어서면서유명인과고위층의사랑을한몸에받던고층맨션은70년대아파트열풍이불면서외면받기시작했고,사람이빠져나간거주공간은빠르게슬럼화되었다.그후전자상가로호황을누리던세운상가역시1987년용산전자상가의등장이후쇄락의길을걸었다.현대적인대형건물한두개만있으면서울도빠르게현대도시의면모를갖추게될거라는천진남만한꿈을꾸던시절,도로부터정비하고인프라에힘쓰느라시간을보내는대신차라리정리안된1층도로공간을자동차에줘버리고사람은콘크리트공중가로에서깨끗하게삶면된다고여긴것이다.2005년당시서울시장은1km에달하는세운상가를철거하고녹지를만들겠다는계획을발표했다.그러나사업성실현논란과각종민원에계획은표류를거듭했고최근철거가아닌존치후보수로최종가닥이잡혔다.그후서울시는건물을보수하면서일부건물을헐어내고녹지화했다.

8.청담동”비욘드미술관’

청담동’비욘드미술관’은가장청담동스러운미술관중하나로꼽는다.그첫번째이유는냉담하면서도고급스러운외관때문이다.일단건물앞에서면빈틈하나보이지않는예루살렘골드대리석벽이방문객을맞는다.두번째는뮤지엄의위치다.청담동에47개갤러리대부분은대로변에서한불록물러선이면도로에면해있는반면,비욘드뮤지엄을비롯한몇몇갤러리들은땅값과임대료가어마어마한대로변에면해있다.특히비욘드뮤지엄은삼성로6차선도로에접한3층짜리건물을통째로사용한다.위치로보면아르마니명품관이부럽지않다.세번째는태생이다.이곳은이전에반얀트리클럽의멤버스라운지로사용되던곳이다.반얀트리클럽은회원권가격만억대를넘어서는VVIP사교장이었다.이건물중앙홀은2개층이오픈되어중앙에키큰소나무가자라고천창에서는환한빛이쏟아져들어왔다.그야말로슈퍼울트라하이퀄리터도심속오아시스다.이런히스토리를알고서야미술관입구에계단을둔게이해가되었다.

아무리고급을지향하는청담동이지만공적인성격이강한뮤지엄입구에접근을어렵게하는계단이어색했었는데,VVIP를위한사교장이라면사람들이다니는지면에서분리된장소에그들만의리그를만들고싶었을것이다.하지만미술관으로변신하고나니이모든형태가거리를거부하는듯한냉담한표정으로읽힌다.이곳4층옥상에는테라스카페가있다.늦가을전시를보고날씨가쌀쌀해아이가마실만한따뜻한음료를부탁했더니친절한카페아저씨가코코아두잔을건내며메뉴에없는거라공짜라고했다.그저따뜻한마음씀씀이에감동했다.그날오후따뜻한코코아를앞에두고푸르게변해가는서울의가을하늘을배경삼아일곱살아이와의추억을카메라에담았다.낯선도시에서해매고있을때친절하게다가와길을알려주는여인의미소한방에그도시가좋아지는것처럼나도그날’저너머미술관'(비욘드미술관의다른이름)이마음에들었다.

9.당양소쇄원(瀟灑園)

친절한계단하면떠오르는공간이있다.기억에남아있는공간의장소들은한가지공통점을지니고있다.자연과친하고,땅과싸우지않고,사람차별하지않으며존중하고,편하고,뽐내지않고편안한기분을느끼게한다는점이다.이런공간은만든사람과사용하는사람의정서를건축을통해이어준다.공간을매개체로사람간의교감이실재하는것처럼느껴지는것이다.그중최고는담양’소쇄원’이다.조선중종시대,급진적계획을펼치다훈구파의모함으로희생된조광조의죽음에충격을받고낙향한제자양산보가남은생을보내기위해고향땅에지은별서정원(別墅庭園)이다.꽃피는봄이나,녹음우거진여름,계절이탈색하는가을,흰눈이가득내려앉는겨울에도이정원은한결같은편안함을품고있다.모든욕망을다내려놓은사람이자연에게무엇이되고싶은지물어서만든공간이라고해야할것같다.녹음우거진숲속에깊게들어앉은소박한몇채의집들과주변의마당들,마당과마당을잇는길과계단,그리고작은토벽들이합창을하듯어우러진다.산경사면을타고내려오다생긴집터들,그사이를잇는다양한생김새의계단들은원래거기에있었던듯부담스럽지않게,오히려산책의재미와즐거움을선사한다.눈이편안해지는푸른녹음이정원의주변을병풍처럼감싸는천혜의파노라마풍경들,원래있던풍경속에필요한만큼인공의손맛을적재적소에개입시킨집지은이의탁월한감각은수백년이지난지금도충분히느낄수있다.

10.신갈’지앤아트스페이스’

건축가조성룡이설계한신갈의’지앤아트스페이스’는갤러리와아트숍,도예공방,화원,레스토랑과북카페가각각의작은집으로쪼개져서계단,길,마당으로연결된재미있는공간이다.소쇄원이자연속에은둔한별서정원이라면,지앤아트스페이스는도시속에은둔한별서건축이라할수있다.돌아다니다보면지앤아트스페이스는실제로점유한땅의면적보다더넓게느껴진다.크지않은공간이지만다양한레벨로연결된건물과건물도그렇고,그사이의외부공간들이다채롭고풍부하다.외부울타리나담없이완전히열린공간이라주변도시의풍경들까지집의영역안으로들어와경계자체가무의미해진다.개념을간단히요약하면’길위의풍경’이라할수있는데스페이스의내부를걸어보면그의미를알게된다.건축은뒤로물러나방문한사람들의풍경을담는배경이되고미로처럼얽힌길과마당이적극적으로공간구석구석과연결되어산책로를이룬다.한정된대지위에길과외부공간이있을곳을먼저배치하고남는곳에집을지은것같다.아니면필요한만큼집을먼저삽입시키고크고작은외부공간을사이에끼워넣은것일수도있다.어쨌던빈땅을건물로만채우는방식이아니라내,외부를동등한비중으로고민했다는것은건축에접근하는과정자체가일반적인방식과는전혀달랐던게아닐까싶다.

건축은결국삶을반영하는것이니,말하자면삶을바라보는관점자체가다른것이다.계단은공간과싸우지않고오르거나내리거나길과마당의기분을잘맞처준다.주변진입도로에서바로지하마당으로내려가는큰계단역시어색하거나불편한기색이없고그자리에딱들어맞는다.오히려외부의소음과대지밖의산만한풀경들에서적당한격리감을두어산책의편안함을유도한다.오밀조밀하게숨은외부공간들도마찬가지다.계단들은건물과건물사이에서몇개의세트로분리된다.그리고한세트가끝날때마다계단창옆의마당과연결되어독자적인영역을형성하는데,그마당의풍경이모두조금씩다른분위기를담고있다.건물과마당,계단이하나의패키지타입으로묶이고,바로이지점에서장소의풍경들이다양하게생산되는것이다.계단앞건물의사이.마당의끝,건물과건물을가로지르는공중다리,물위에비친하늘,이곳의실제적주인같은나무와꽃들…..그리고사람들이이장소의두번째주인공으로남은여백의틈을매운다.모든건축가는건축을통해삶에서중요하다고여기는메세지를전하고싶어한다.지앤아트스페이스가특별한것은눈에띄는장식적수사도없고기억에남는강한건축의웅변도없지만,삶을소중히다루겠다는어떤태도를보여주고있다는점이다.그래서이곳에갈때마다마치좋은사람을만난듯한포근함을전달받는다.

11.갤러리팩토리(GalleryFactory)

종로구창성동127-3의사람얼굴을닮은작은집갤러리팩토리(GalleryFactory)는모던의백색주의에작은반기를든건물이라할수있다.건물을처음보고,아니얼굴에표정까지갖고있군,했다.건물은2008년란디앤드카르티네(Randi&Kartine)라는덴마크예술가듀오가리모델링한"하우스인유어헤드HouseinYourHead)라는작품이다.얼굴은인중(人中)을기준으로윗부분은나무널을쌓아올려각질이일어나울퉁불퉁하고아랫부분은전면유리로입을쩍벌리고있는형상이다.유리안쪽으로내려놓은블라인드가치아처럼보여전체적으로우락부락한크로마뇽인을닮았다.밤에2층창에불이들어오면빛이새어나오는방향에따라눈알을이리저리로굴리는것처럼보인다."집이라는것은친근하면서도기묘한대상입니다.밖에서봤을땐모두멀쩡해보이지만그내부에는무엇이있는지모르죠.그러한이중적면모는사람의속성과매우비슷합니다.한세상을산다는것은세월을견져내는일이고도시인들에게는평생도시를버텨내야하는일일테니,일본의건축가안도다다오(安藤忠雄)처럼’도시게릴라’로전투적삶을살든하릴없는만보객이되든,도시의발랄한표정이우리의일상에호기심을자아낸다면사는게조금수월해지지않을까.그런데이렇게말을하고나니’사는게어려운것도건축이해결해야할’일이아닌가하는의문이든다.

12.환기미술관

건축가들사이에서’환기미술관’은한국을대표하는건축중에늘상위권을차지하는곳이다.일반인의눈에는환기미술관이대체뭐가멋있는지,어떤의미가있는지알듯모를듯한모양이다.갤러리팩토리처럼눈코입그려진확실한표정도없고,전철역옆에우뚝서있는검은벽돌집처럼수상한구석도없으니말이다.하지만얼핏보면단순해보이고별특징없게느껴지는이곳으로들어가돌아다녀보면겹이참많은공간이라는것을감지하게된다.굳이비교하자면무표정하고황량한추사김정희의세한도와닮은것같다.설마이그림이조선후기를대표하는문인화중하나냐고반문하는누군가에게환기미술관도그런것입니다.무표정을가장하며풍부한표정을감춘공간이바로환기미술관이다.겉모양만봐서는건물의존재감이잘드러나지않고크기와모양도한눈에파악되지않는다.집을짓기위해거친경사지형을살살달래가며조성한자연스러운외부공간이있고,그외부의흐름속에기능이필요한만큼의크기로들어앉았다.땅과대립하지않으려는절제와관용이돋보인다.미술관터는본래대지의끝과전면도로의고저차가8m나되어건물을앉히기위해반듯하게절토를하고나니막상집지을공간이남지않는난망한상황이었다.

건축가는화가김환기가평생에걸쳐화폭에표현하려했던한국적인정서를공간으로치환시켜미술관을세채로각각분리한다음.급한경사지를다시세단으로구분하여배치의기본틀을잡았다.입구좌측으로산책로가시작되고계단을오르면소나무정원과정갈한박스형태의집이하나,그사이로지형에어울리는오솔길이열린다.길끝에는단위에주전시장건물이서있는데집의형태가정면을강조하지않고약간빗겨나있어실제크기에비해소탈한공간감을갖는다.전시장의내부홀은1~3층이모두열린공간으로천장에서쏟아지는고른볕을계단벽면에전달하면서공간마저작품이된다.또한나선계단둘레를돌며각층의전시장을하나의산책로처럼연결하는데,이는동선을의도적으로길게늘려관람객으로하여금작지만큰전시를경험하게해준다.작품을관람하며나선개단과훌주변을산책하다보면크지않은단순한공간임에도마치미로를헤매는느낌이든다.이는단순하지만복잡한김환기의작품세계와정서적으로닮아있다.전시관람을모두마치고다시입구로나오면미술관측벽을타고위로오르는외부계단이방문객의발길을끌어당긴다.내부산책의끝에서연결되는외부산책의시작점이다.길은외벽을따라도는또하나의나선형계단으로코너마다작은마당을거친후옥상정원에닿게되는데,옥산정원한편에는실내로이어지는문이있으니종합해보면시작도끝도없고내,외부가경계없이흐르는무한의공간이존재한다.

13.북촌(北村)의골목길

북촌의마법은작은집들이반복적으로집힙된배치의특징과미로처럼얽힌골목들의공간구조와관련이있을것이다.1920년대이전가회동을중심으로한북촌지역은방만수십칸이넘는저택을소유한권세가들이많았다.지금보다길도넓고집도켰다.하지만이들은일제강점기를거치면서무너졌고토지는개발업자의손에넘어갔다.이후저택이헐리고작은규모의개량한옥들이대량으로신축됐는데,이런집들이지금에이르렀다.당시상황에서보자면일종의중산층아파트단지라고해야겠다.새로입주한이들에겐밤마다집을오르는길에보이는언덕의불빛이신도시베드타운의명멸하는불빛을보는지금의풍경과크게다르지않았을것이다.좁은길과작은집,그것들의반복으로이루어지는작고세밀한풍경들이북촌의공간을이룬다.산책하다보면시점이원경보다는근경에맞춰지고눈의피로감이줄어든다.북촌은불과10년전만해도계륵(鷄肋)같은지역이었다.개발과성장을내달리던시대가미처처리하지못한퇴물취급을받기도했다.북촌은이제600년고도(古都)의흔적을간직한역사적장소라는훈장을달고새롭게각광받는핫플레이스가된것이다.평일과주말을가리지않고이곳을찾는방문객수가굉장히늘었다.따지고보면그저사람사는주택가일뿐인데이곳거주자들은이러한현상에불만이있지않을까,골목초입에는사람이많지만북촌은넓고골목은많으니잘만피해다니면금세영화의한장면에나올법한조용하고시대구분안가는길목을만나게된다.그곳에서천천히산책하다보면복잡했던머리속이이내편안해진다.쉴곳을찾다가마침언덕끝에있는집대문이열려있어서문틈으로고개를비죽들이밀고상황을살폈다.한50평쯤될까말까한대지,ㄷ자로한옥이있고작은마당이‘잘왔어,여기서쉬어가"하는표정으로우리를바라보았다.살림집겸전통의복을만드는장인의작업실이다.입장료도붙어있다.돈을지불하고안으로들어갔다.

막상들어가보니장인의실력이발휘된근사한전통의복은보이지않고,보물같은자개장과100년은넘어보이는반닫이가있었다.쉴목적으로들어온터라어쨌든장인이만든다른물건들을대충훓은다음마루에걸터앉아마당과초클릿빛옹기들을보기좋게모아둔장독대와그너머담밖으로보이는북촌의전경을내다보았다.그때함께간딸이불쑥이런말을던졌다."이집참살기좋은것같아,아빠."여덟살짜리입에서나온그말이재밌어서"뭐가그리좋은데?"하고물으니"응방끼리서로이어져있어좋고,막히지않아좋고,집이커서좋아"라는대답이돌아온다.그말을듣는순간나도모르게’예가신동인가?어린나이에도한옥의공간구조를제대로파악하고있구나’하고진지하게말해주고싶었다.아이가크다고한이집은넉넉잡아도대지가50평정도의공간이었다.집안과집밖이나뉘어있고안팎풍경이겹쳐져확장되면서실제의경계가없는탓에오리혀두배쯤더커보인것이다.방과방이연결되니내부가한눈에얽혀공간의깊이가보이고안과밖이연결되어있으니공간이연속적으로이어져보인다.마당을때리는볕이수돗가의그림자방향을북쪽에서동쪽으로조금씩바꾸고있었다.장독대옆작은꽃밭에찾아든아얗고큰나비한쌍이하늘거리며우리쪽으로다가오자딸아이는얼른내등뒤로돌아숨는다.바깥에익숙하지않은탓이다.나는딸과툇마루에앉아긴시간이집에대해그리고우리가사는집에대해이야기를나눴다.집으로돌아가는길,딸은다음에또북촌에오자고했다.참좋은것,말로는설명이되지않고돈으로도살수없는그느낌을만나러또오자는것일게다.

14.리뷰에못다한이야기

‘서울건축만담’에는서울을건축가의눈으로확인하고건축가의입장에서보고느낀점들을엮어놓은주옥같은이야기가서울의산남산만큼이나많이그려져있다.리뷰에모든이야기를다늘어놓을수가없어여기서마무리하려고한다.이외에도한강,서울성곽길,윤동주문학관,서대문형무소역사관,경인찻집,안중근의사기념관,신당동창작아케이드,광화문광장,선유도공원,동대문디자인플라자,서울시신축청사.신사동가로수길,김포공항,국립현대미술관서울관,청와대,역사박물관등여기에소개하지못한글들이아직많이있다.우리인생의삶에는좋은일이있으면나쁜일이있고,성공할때가있으면실패할때가있고,오르막뒤에내리막이있는게인생이다.최준석님이디자인하는비정형건축은이렇게알수없는인생,오르내리락하는인생,명확히규정되지않는인생을담느라그렇다고하였다.재건축은인생을담고있다.그러니인생을모르는자본인의건축을논하지마라고하였다.자신을손가락질하는건축가들에게마지막으로묻고싶다고하면서"니들이인생을알아?"이렇게반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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