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 선교장

강릉선교장



선교장은솔향강릉에자리잡은한국최고의전통한옥가옥이다.해와달과별이있는당신의고향옛이야기가있는집선교장은300년의역사를자랑하는명품고택이다.조선세종대왕의형인효령대군의후손완평부원군(이경두1540~1640)으로부터5세(세)까지200년을충주에서기거하다가강릉입향조(효령대군6세손)가선대부이내번(1692~1781)이강릉으로이거하여족제비무리의안내로길지(길지)인현재의집터에안주하였다고한다.집앞이경포호수였으므로배로다리를만들어호수를건너다녔으며이로인해선교장(선교장)이라부르게되었다고전한다.


6세손이내번이이곳에자리잡고먼저안채주옥을짓고기거하였으나금강산과관동팔경을유람하는조선의풍류와시인묵객들이구름같이찾아오므로100여년동안한옥99칸의건물을꾸준히증축하여열화당,별당,중사랑,행랑채등를지었으며1816년활래정과연못을만들고연꽃을심어배산임수명당에걸맞는현재의선교장이돤성되었다.대궐밖조선제일큰집으로서손님접대에후하여아낌이없고만석군부호임에도겸손하며소작인들이배고품을모르고살게함이상생의원칙으로삼아하늘에덕을쌓았으며그로인해아직도건재함이천복이라예기하고있다.


정부의전통한옥고택문화재관광자원화정책에부응하여건물을개방하고선교장의문화를계승하고나누며,공유하고,전파하며,창조하고자원화하여국익창조에일익을감당하고있다.강릉을관광하려면선교장을빼놓을수가없다.문화해설사의선교장의역사와건물에얽힌이야기와선교장의주인정신을들어야선교장을옳게이해하고관광하는지름길이다..



별당활래정


열화당뒷쪽에우람하게서있는계화나무나활래정뒷산에솟은떡갈나무의거대한모습은선교장전체의배경을이루는노송들과어울려고전미·우아미의극치를이루고있다.주객(主客)이나누는정담에서열화당의진미를맛볼수있다면,그곳은늦가을로부터초봄까지한겨울을나는곳이라할수있을것이고,문을활짝열고바람을맞으며,때로는연잎에듣는빗소리에정취를느낄수있는곳이활래정이라면,그곳은연잎이솟고연잣(蓮養)이맺힐때까지의한여름을보내는곳이라할수있을것이다.들어열개의분합문으로구성된활래정은사시사철로변하는우주의변화와생동감을한복판에서느낄수있는장소이다.이와더불어이정자는선교장에드나드는모든사람과행동을한눈에바라볼수있는곳이기도하다

열화당을폐쇄적이요구수한인정미에비유한다면,활래정은개방적이요정겨운자연미를맛보는곳이라고할만하다.이렇듯조선조상류사회는가장기본집단인가정에서부터풍류의멋을찾았다.선교장은그러한표본가운데가장훌륭한것이라평가할만하다.


선교장의사계(四季)의장원(莊園)


[봄(춘)]

활래정의앞논에해빙(解氷)의물이넘쳐출렁이고,그물위를봄바람이파문을일으키면이곳의봄은시작된다.안채뒤대밭에죽순이움트고,매화가그짙은자태를드러내며,못엔연잎이솟고,활래정뒷산에오죽순이얼굴을내민다.그러면이곳골짜기는한겨울의동면으로부터서서히깨기시작한다.앞냇가아지랑이가움트는버들가지와더불어이곳의봄은생동하는아름다움으로술렁인다.


[여름(夏)]

여름은뒤솔밭으로부터온다.짙은녹음을이루는노송,고목속에깃을친온갖새들의울음소리,매미·쓰르라미소리로한결여름은짙어간다.이때제철을맞는것이활래정이다.연꽃봉오리가솟고꽃봉오리가터지면누마루에올라술자리를벌인다.그때는으례이시서화(詩書畵)가곁들이게된다.비오는날,연잎에듣는빗소리,연잎에괸물이쏟아지는소리역시문객(文客)의시정(詩情)을일게한다.

이곳의단오절은큰민속행사의하나다.농사에바쁜계절이라일꾼들이밤에모여모닥불을피워놓고,베를틀게된다.이럴때는농주(農滴)가담긴술동이가반드시곁들인다.그렇게하여만들어진그넷줄을뒷산노송가지에달면,단오를전후하여동네아낙들이그네솜씨를다투게된다.뒷산은노송수백그루가밀집한솔밭이라그밑에돗자리를펴고누워땀을식히는정원이되기도한다.노송에깃을튼소리개가날아하늘을맴도는것도한여름오후의정경이다.


[가을(秋)]

가을은풍요의계절이다.선교장곳간으로밀려오는곡식은이곳이씨가의부(富)의면모를알리는것이다.또‘교당마당’(東進學校校庭을이렇게부른다)옆에자리한곳간은전주이씨가의부의상징이기도했다.남북촌에분산시키고도이거대한곳간에가득찰만하다면그것은경이적인것이었다.소작물에대한품평회가있는날이면강원도의농정(農政)업무를이곳으로옮겨놓은듯요란했다고한다.그즈음산을온통붉게물들이는것은감나무다.주렁주렁달린감은가을철풍요를한층미화시키는모습이다.빨갛게물든감은따서아낙네들이한방에모여밤지새워가며깎아새끼줄에걸든지싸리나무가지에꿰어말려곶감을만든다.이같이처마밑에곶감이널린이곳농촌풍경엔정서가넘친다.감껍질은껍질대로바구니에담아햇볕에말린다.이렇게말린곶감을접는작업은한가한겨울밤으로미루어야한다.곶감을만들고남은감은잎이다떨어지고서리가내릴때까지나무에달린채익어홍시가된다.

그렇게익은홍시는장대로하나하나따고몇개는까치밥이라고하여잡새들이먹도록나무에남겨두는여유를잊지않는다.밤나무밑에서아람줍는것도가을의한정경이다.떨어진아람은누구의것도아니다.줍는이가임자가된다.그것은강릉의인심을보여주는것이기도하다.앞내뚝에서면,마주보이는태백준령의줄기가블타오르듯붉게물들고,어느날밤,그산줄기에산불이일어붉게타오를적이면,동심에젖은아이들은할머니로부터“저렇게나무가타버리는해는큰난리가인다”는이야기에,가슴조이기도하는가을이다.


[겨울(冬)]

이곳의겨울은시운(詩韻)에오를만하다.강릉은눈(雪)의고장이다.더우기선교장의설경은그가운데서도일품이다.눈에덮인노송,그위에때때로날아드는학,그건선간(仙間)의경(景)이다.굳게닫힌활래정에눈에덮이고,연못의물은얼어말라비틀어진연줄기의모습에시정이자극되기도한다.연못이나앞내는아이들의얼음지치는곳이다.내를따라경포호수까지달리곤한다.겨울은정적의계절이다.그러나선교장엔많은내객이있어,빠르면한주,길면수개월을머물고간다.특히겨울철의손은길게머무는경우가많은데인물들의교류는선교장의면모가된다.



선교장박물관

강릉선교장에서300년동안사용되고소장된유물300여점을전시하고있다.

박물관전시물의일부

박물관에서가장탐나는안평대군이그렸다는’책걸이일지’8폭병풍




좌측이행랑채이다.

행랑채-행랑이안채와경계를이루며줄처럼서있다하여줄행랑이라는하였다.이곳은관동팔경과

경포대를유람하는선비들의숙소로사용되었다.





열화당(悅話堂)은남자주인이전용하는사랑채이다.이건물은1815년(순조15)이후(李厚,鰲隱處士)가건립한건물이다.건물이름은도연명(陶淵明)의「귀거래사(野去來離)」22)의구절에서연유하였는데“삼형제가늘열화당에모여정담을나누고싶다[悅親戚之情話]”는의도를담고있는데,즉‘전주이씨일가친척이이곳에서정담과기쁨을함께나누자’라는뜻으로지어진이름이다


효령대군(세종대왕의형)의6대손인가선대부(嘉善大夫)무경(茂卿)이내번(李乃蕃)에의해처음지어져무려10대에이르도록나날이발전되어증축되면서오늘날에이르렀다.99칸의전형적사대부가의상류주택으로서1965년국가지정중요민속자료제5호로지정되어개인소유의국가문화재로서그명성을이어오고있다.현재도후손들이실제거주하며관리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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