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릉오죽헌(江陵烏竹軒),
오죽현은사임당신씨(師任堂申氏,1504~1551)와율곡이이(栗谷李珥,1536~1584)가태어난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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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문신이었던경호최치운(鏡湖崔致雲,1390~1440)이지은집으로,형조참판을지낸아들수헌최응현(睡軒崔應賢,1428~1507)에게상속되었으며,이를둘째사위이사온에게물려주게된다.그후,이사온의무남독녀인용인이씨에게상속이되고,용인이씨도아들없이딸다섯을두었는데훗날재산을물려줄때,둘째딸의아들인율곡에게는조상의제사를받들라는조건으로서울수진방기와집과전답을주었으며,넷째딸의아들인권처균에게는묘소를보살피라는조건으로강릉의기와집과전답을주었으니,훗날강릉집주위에검은대나무가많은것을보고자신의호를오죽헌(烏竹軒)이라한것이지금의집이름이되었다.즉,오죽헌은사임당신씨의친정이자,율곡선생의외가집이되는것이다.
집안내력의효(孝)정신은오래전으로거슬러오른다.사임당의어머니인용인이씨는서울에사는신명화와결혼을한후,강릉의친정어머니인최씨가병이나자간호를위해강릉에머물다가사임당신씨를낳았으며,서울의이원수와결혼한사임당역시강릉에홀로계신어머니를모시고있다가율곡이이를낳게된것이다.당시율곡선생의본가는경기도파주로6세까지외갓집인이곳오죽헌에서자랐다.
사임당신씨가율곡을잉태한곳은강원도봉평으로백옥포리라는곳이다.
판관대에서’동해의선녀가옥동자를안겨주는’태몽을꾸었으며,이후홀어머니를모시려오죽헌에머물다가’찬란이빛나는검은용이동해로부터날아오는꿈’을꾼후율곡을낳았다하여오죽헌을몽룡실(夢龍室)로불리기도하였으며,꿈속의용이나타났다하여율곡의아명이현룡(現龍)이된다.몽룡실은조선전기민가의별당에해당하는건물로정면3칸,측면2칸의평면건물로4칸의대청과2칸의방과마루로구성이되어있다.대청에우물마루를깔았으며천정은고미반자를두고삼면에창호를둘렀는데,주심포양식에서이익공양식으로넘어가는변천과정을보여주고있다.당시의건축자료의중요성과율곡이이가태어난곳으로1963년보물제165호로지정되었다.
오죽헌은겨레의스승율곡이이선생과겨레의어머니신사임당이태어난곳이다.역사에큰업적을남긴두분의유훈을계승하고,아울러전통문화도시로서의위상과이곳을찾아오는분들의정서함양을위해1992년유서깊은오죽헌뜨락에오죽헌·박물관을건립하였다.율곡선생의유품은물론신사임당을비롯한큰딸매창,막내아들옥산이우등사임당일가의학문,예술적으로품격높은작품들이전시되어있다.뿐만아니라강릉을중심으로한영동지방의향토사료가함께전시되어있어옛조상들의생활상을한눈에살펴볼수있다.
오늘날박물관은사료수집,연구,전시기능뿐아니라평생교육기관으로서사회교육기능을함께수행하는창조문화공간으로거듭나고있다.오죽헌은조선전기민가건축물의특징을잘보여주는오래된건물중의하나로세계최초로모자화폐인물인신사임당(50000원)과율곡이이(5000원)가태어난곳이어서더욱유서깊은곳이며우리나라역사에큰궤적을남긴인물로추앙받고있는두모자의삶을들여다볼수있는유적지이다.아울러오죽헌·박물관에는강릉지방의선사유적을비롯한역사,민속자료들이전시되어있으며선사시대부터오늘날까지강릉지방을삶의터전으로한사람들의생활과문화를살펴볼수있는공간인점에서현장학습을위한전국초·중·고및여행사를통해서많은관람객들이찾아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