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동(放鶴洞)은행(銀杏)나무
서울특별시도봉구방학동546번지서울연산군묘앞에는연산군묘만큼이나유명한나무한그루가서있다.서울특별시보호수제1호로지정[1968년2월26일]된은행나무가그것이다.서북쪽으로원당샘이라는유서깊은샘물을낀채,북쪽의서울연산군묘로부터남쪽의신동아아파트단지까지그윽이굽어보면서무언가깊은생각에잠긴듯한노거수(老巨樹)이다.나무높이25m,가슴높이둘레10.7m에달하는장대한위용을자랑한다.가지의자람도아주좋아서수형(樹形)이아름답고분위기가신령스럽기까지하다.조선을거쳐일제강점기,해방,6·25전쟁과개발경제시대의구호소리를거쳐지금에이르는역사,그모든것을묵묵히지켜본증인이자파수꾼이다.방학동은행나무앞에서면그래서숙연해진다.
[아들딸점지해주는나무]
“신령한은행나무님,젖이잘나와아이키우는데어려움이없도록보살펴주십시오.”
어느봄날이었다.허름한옷차림을한젊은여인이초저녁어스름에은행나무앞에서손바닥을싹싹비비며치성을드렸다.여인은근처마을에사는아낙으로세번째아이를출산하였는데젖이잘나오지않자이곳을찾은것이다.다음날새벽이었다.아직어둠이가시지않아어둑어둑한은행나무앞에또다른젊은여인이나타났다.여인은은행나무앞에엎드려몇번인지모를만큼수많은절을하면서눈물까지흘리고있었다.
이상한일이었다.당시풍습으로이같은치성은대게절을찾아가법당에엎드려비는것이보통이었는데,이여인들은왜은행나무를찾아와빌었을까?
800년을헤아린다는나이외에도이방학동은행나무에는무언가특별한것이있다.나무줄기에서옆으로살짝뻗어위로올라간큰가지아래로,어찌보면여인의젖꼭지같기도하고남성의성기같기도한유주(乳柱)가신기한모양으로돌출되어있다.유주를단방학동은행나무에치성을드리면산모는젖이잘돌고자식을낳지못한여인은아들딸을낳을수있다고대대로믿어왔다는것이마을노인들의전언이다.그래서소문을들은여인들이무시로찾아와치성을드리곤하였다.
삼각산자락인근에사는여인은혼인한지10여년동안세명의딸을낳았지만아들을낳지못해시어머니에게모진구박을당하고있었다.“삼대독자집안에시집왔으면대를이어야지장차이일을어찌할것이냐.만약내년까지아들을낳지못하면보따리싸들고친정으로돌아가든지씨받이를보게될터이니그리알아라”
시어머니의최후통첩이었다.너무나가혹하였지만거역할수도없는일이어서여인은결국영험하다는방학동은행나무를어두운새벽마다홀로찾았다.은행나무를찾은지3개월째,이날새벽은짙은안개가끼어더욱스산하였지만여인은절박한마음으로은행나무앞에무릎을꿇었다.뜨거운눈물을하염없이흘리며한참을빌고있을때이었다.
여인은꿈결처럼들려오는굵은남자의목소리에소스라치게놀랐다.고개를뒤로돌렸더니,이게웬일인가.조금뒤쪽왕의무덤이있는곳앞에사람이서있는것이아닌가.그것도보통사람이아니었다.화려한금관을쓰고곤룡포를입은귀인(貴人)의모습이었다.여인은놀랍고반가워몇번이고머리를조아리다가얼굴을들어귀인을바라보았으나그귀인은흔적도없이사라진후이었다.
여인은놀란가슴을진정시키며집으로돌아갔다.그런일이있은지며칠후태기를느꼈고,열달후여인은떡두꺼비같은아들을낳았다.여인에대한소문은곧가까운이웃동네에까지퍼졌다.은행나무가죽은왕(연산군)무덤앞쪽에있어영험이두배로강하다는말도덧붙었다.여인의소원을들어준귀인은혹은행나무의신령이된연산군은아니었을까?.
[은행나무제(祭)]
신령스러운나무라서그랬을까?예부터나라에큰변이있을때마다방학동은행나무에는원인을알수없는불이났다고한다.박정희대통령이서거하기1년전인1978년에도화재가났다.나무의영험은경외를낳는다.영물이라는말도있지않은가.사람들은방학동은행나무의영험한힘을믿고기리며해마다정월대보름이되면나무에제사를지내오고있다.이원당골에오래전부터깃들어살아온파평윤씨(坡平尹氏)집안이주축이되어마을의안녕과평화를기원하는뜻을담았다.
그러나1960년대부터산업화가진행되고더불어새마을운동이옛것에메스를들이대면서맥이끊겼다.이제사풍습은1990년대말이되어되살아났다.그러나이제는영물에대한제사의성격을버리고경로잔치를겸한동네잔치성격으로틀을바꾸었다.젖이나오지않으면우유로대신하고,아들을낳기위해치성을드리기보다산부인과를찾는오늘날의세태에서더이상은행나무는영물로대접받기힘들기때문이리라.그러나그옛날원당골터주대감으로버티고있으면서마을사람들을하나로묶었던신목답게은행나무가오늘날에도방학동사람들을결속시키는역할은여전히계속되고있다.
[도시개발과은행나무]
수나무인방학동은행나무의동남쪽200m지점에는원래은행나무가한그루더있었다고한다.먼저간이암나무까지를일러‘부부은행나무’라불렀다.두나무는몇백년을서로마주보며사랑을속삭여왔다.그렇게정답던암나무는1990년대초인근의신동아아파트건립당시벌목되고말았다.보존가치보다개발가치를더높게치던어두운시절이었다.하지만암나무가쓰러지기전맺은열매들은이땅어딘가에서멋진아들딸나무로자라고있으리라고생각된다.
암나무를잃은수나무는1990년대초부터시름시름앓기시작하였다.홀로남은외로움뿐만아니라나무의왼편에들어선신동아아파트와오른편빌라에막혀뿌리와가지를제대로뻗을수없었기때문이다.동네주민들이그대로두고볼수없어1995년에‘은행나무의주변환경을개선해달라’는민원을제기하였다.마을근처에서수백년이상자라온신물(神物)을우리대(代)에망가뜨린다는것은수치가분명하였기때문이다.
2007년도봉구에서는약40억원을들여주변빌라한동을철거하여은행나무의최소한의생육공간을확보하였다.그리고지지대를만들어힘없는가지를군데군데받치는한편,병충해로썩어들어간부분을잘라내는외과수술을네차례나하였다.그결과현재의생육상태를확보할수있었다.
산림청에서는나무의생육상태를따져‘매우양호,양호,보통,불량,매우불량’의5가지로분류한다.방학동은행나무는최고령할아버지임에도건강상태가좋은편이어서현재‘양호’등급을부여받았다.그덕분에시민들은푸른나무그늘을만들어주는은행나무밑에서수백년동안이어져온전설을들으며마음의안녕을얻고있다.
[서울특별시기념물제33호로거듭나다]
기존에관리되고있었던서울특별시보호수목록에는방학동은행나무의추정수령이880년에달하는것으로알려져있었다.그러나서울특별시기념물로지정하기위하여국립산림과학원의과학적수령조사방법을적용한결과약550년[±50]으로측정되었다.이결과도천연기념물및서울특별시지정문화재로지정된수목과비교하면최고령그룹에속하는것이다.천연기념물로지정된서울특별시소재수목중에서도최고령에해당하는천연기념물제59호‘서울문묘은행나무’[수령702년]다음으로오래되었다.
이에서울특별시는2013년3월28일자로방학동은행나무를서울특별시기념물제33호로재지정하기로결정하였다.서울특별시는지정이유에대해“이은행나무는조선전기에식재된나무로수령이오래되어지역의역사를상징적으로보여주며,수형또한아름다워문화재적가치가크므로서울특별시기념물로지정·보존할필요가있다.또한수목의생육환경의보호를위해보호구역을지정하여보존하고자한다”라고발표하였다.진실되고착하고아름다운것은가만히있어도그본성을만천하에저절로드러낸다는것을보여주는드문사례가‘방학동은행나무’가아닐까한다.
[출처]한국학중앙연구원-향토문화전자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