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형님의 명복을 빌며

고향형(兪石濬)님의명복을빌며

지난12월24일크리스마스이브라고마음이들떠있는오후에고향향우회친구2명으로부터고향형님이별세를하셨다는연락을받았다.80평생을고향을지켜주신형님께서돌아가셨다는소식은가슴을무겁게억누르고있었다.형님과함께한지난세월의흔적이주마등처럼뇌리를스치고지나가는순간순간들이참으로많은것을생각하게만들었다.고향을방문할때마다가장먼저찾아뵙던형님을이제는뵈울수없다는것이가슴을아프게하였다.친구는내일오전에내려간다고하면서같이갈수있는지물었다.나는약속된일이있어오후5시쯤에나출발하겠다고전했다.


25일오후4:45분쯤에일을마치고택시를타고동서울터미널로향했다.5:30분상주행직행버스를타고고향을향해떠났다.동서울에는고속버스가없단다.남부터미널보다동서울이가까워조금이라도빨리가려고이곳에서출발하였다.상주까지2시간30분이소요된다고하니,저녁8시도착하게된다.버스는28승이라고속버스와다르지않았다.마음도무겁고찾잡하여피로가밀려와우선눈을붙였다.얼마를잦는지창밖을내다보니문경을지나고있었다.잠시점촌에들렸다가상주에도착하니정확하게8시였다.택시를타고장례식장으로달려갔다.택시를타고가는데,먼저내려간친구한테서전화가왔다.지금절골에같이내려온몇명이함께있다고알려주었다.


장례식장에들어서니형님의여동생이먼저다가와인사를하였다.형님의빈소앞에서니가슴에쌓아온형님에대한의지가무너지는슬픔이밀려왔다.형님의영정을바라보니형님께서배풀어주신가르침과배려가더없이크게느껴졌다.형님을보내는마지막예를드리고형님의아들과손자들과애도의인사를나누고나왔다.

여동생이차려온저녁을들면서형님의병세를문의하니형님께서교통사고로인한후유증으로고생을하시고계셨으나별로아프지는않았는데갑자기심장마비로돌라가셨다는설명을들었다.아들과딸들이형님의장례에찾아오신많은손님들을열심히맞고있었다.


조금지나니한동네같이살았던형님의외가의형님과친구의아들,딸,그리고며느리등이들어왔다.그간의안부를나누었다.친구의셋째아들이친구와똑같이닮아친구를보는것같아먼저간그친구가새삼그리움으로밀려오기도하였다.오늘빈소에영정이걸린형님깨서는1990년고향향우회를창립하여1992년향우회의모태가된마을회관건립에도버팀목이되어주신형님이신데,고향을끝까지지켜주신형님은6.25동란시군에가신외에는고향에서묵묵히고향을찾아오는사람들을항상따뜻하게고향의정을느끼게해주시고,삶에고향의정체성을잊지말라고하시던형님의애정어린덕담이가슴을녹이고있습니다.


그동안형님이배풀어주신은혜를생각하면내일장례식에참석하는것이도리인줄알면서도삶의현실에쫓겨9시반쯤에작별인사를하고택시를콜해상주터미널에도착하여10시마지막심야버스로서울을향했다.이렇게한사람한사람돌아올수없는길을떠나는지인들을보낼때마다.그분들과함께한시간들이나를돌아보게만듭니다.나도언젠가는그길을가야하겠지만,슬프하거나,누구를탓하지않고담담하게삶과죽음을받아들이자고마음으로다짐을해본다.다음날0시20분경에동서울터미널에내리니눈발이날린다.택시를타고집으로향하는길에하늘에서눈발이점점세차게내리고있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