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동천리 285
보물 323호
[안내판 글 내용]
[출입금지 경고문]
[淸道石氷庫(청도석빙고)]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어둔 창고이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형태의 紅霓(홍예)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나,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석빙고(보물 제66호) 다음으로 큰 규모이고
쌓은 연대도 오래된 것이다.
[내부 모습]
동. 서로 뻗은 긴 구조로, 서쪽에 문을 두었으며
계단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진 바닥이 보인다.
가운데에는 물이 빠지는 길을 두고 동쪽에 구멍을 만들어,
석빙고 밖의 작은 개울로 물이 빠지도록 하였다.
[석빙고 출입구]
석빙고의 입구 왼쪽에는 石碑)(석비가 서 있는데,
앞면에는 공사에 동원된 인원수·쓰인 자료. 비용 등을
기록해 놓았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연월일과 함께 관계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그 중에 癸巳(계사)년이라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39년(1713)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내부 전경]
물길이 맑고 높은 산에 감싸여
경치가 아름다운 청도에는 돌로 만든 얼음창고였던
보물 제323호 청도 석빙고가 남아 있다.
한여름의 무더위를 피하기 위해 왕실과 중앙은 물론
지방 행정중심지에 석빙고를 마련하여 겨울에 떠놓은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한여름에 사용하였는데, 화양읍에 있는 석빙고도 그 중 하나라 한다.
[내부전경 2]
청도 석빙고는 원형을 일부 잃고 있는데,
봉토는 모두 유실되었고 홍예보 사이를 덮었던 판석들도 대부분 달아나
지상으로는 홍예보 네 줄만이 초승달처럼 솟아올라 내부가 훤히 들여다 보인다.
[밖에서 내부를 보고]
비록 지붕이 없어지고 뼈대만 남아 있어
햇빛과 바람이 수시로 드나들지만 다른 곳의 석빙고와는 달리
내부의 구조를 환히 들어다 볼 수 있어서 좋다.
한여름에도 석빙고 안을 들어서면 지상과는
상당한 온도차를 느낄 수 있어 얼음을 보관하였던
석빙고의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고 하지만,
붕괘위험이 있으니 함부로 들어가면 안된다고 한다.
석빙고 앞 작은 길에 돌로 쌓은 낮은 성벽이
길따라 죽 있는데 그게 바로 ‘淸道邑城(청도읍성)’이다.
소재지 : 경북 청도군 화양읍 교촌리 5외 40필지 (714-901)
경북기념물 제 103호
[안내판 글 내용]
[淸道邑城(청도읍성)]
淸道邑城(청도읍성)은 南高北低(남고북저)의
扇狀地(선상지)에 축성된 石築城(석축성)으로서
山城(산성)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이다.
원래의 城(성)은 고려시대 때부터 있었으며
石城(석성)과 土城(토성)을 혼합해서 쌓은 것이라한다.
조선시대 선조 때 부산에서 서울을 향하는
주요 도로변 성지를 일제히 수축하는 과정에서
청도군수 이은휘가 석축으로 다시 쌓은 것으로 선조 23년(1590)
착수하여 선조 25년(1592)에 준공하였다.
산성과 평지성과의 중간형에 해당하는
평산성으로 평면 형태는 네모꼴이며,
성벽은 자연석을 이용해 쌓은 夾築壁(협축벽)이다.
임진왜란 때 동. 서. 북문이 소실되고
성벽이 파괴되었으며, 일제강점기의 읍성철거정책으로
성벽이 다시 헐리고 門樓(문루)도 제거되었다.
성터 하부의 축조형태는 알 수 없고,
여첩의 구조도 붕괴되어 조사할 수 없다.
현재는 성벽 일부와 基底(기저)만이 남아 있다.
읍성을 따라 안으로 좀더 들어가면 청도향교가 나온다.
향교는 따로 소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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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아
2016년 2월 12일 at 10:23 오후
들려주시고, 댓글도 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요.
새해에는 하시고자 마음 먹으신 모든 일 술술 잘 풀려나가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