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 97호
[沃川鄕校(옥천향교) 전경]
조선시대. 조선 태조 7년(1398)에 창건.
대성전은 세종 22년(1440)에 건립하였다.
선조때 임진왜란의 병화로 소실되었던 것을 그 뒤에
재건하였으며, 홍도당을 비롯한 고직사 등 부속건물이 있다.
태조 7년(1398)에 창건된 향교이며,
1981년 12월 26일 충청북도유형문화재 제97호로 지정되었다.
[안내판 글 내용]
[담너머로 담은 내삼문과 대성전 전경]
향교는 成均館(성균관)의 하급 官學(관학)으로서
각 지방관청의 관할하에 있던 조선시대의 지방교육기관이다.
明倫堂(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집으로,
지방의 英材(영재)를 수용하여 倫理道德(윤리도덕)을 강론하고
학문을 연구하던 최고 학교로서 敎化(교화)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그밖에 弘道堂(홍도당)을 비롯한 庫直舍(고직사) 등 부속건물이 있다.
교직사 : 한자로 ‘校直(교직)’이라 하며 ‘고직’이라고도 한다.
고려, 조선시대 공자를 향사하기 위해 지방에 세워진 文廟(문묘)이자
서울의 성균관과 더불어 지방 교육을 담당했던 향교에는 시설물 관리와
문묘에서 시행하는 祭享(제향)에 따른 여러가지 잡무를 맡았던 사람이 있었는데
이들을 교지기가 불렀으며, 이들이 거취하였던 곳이 고직사이다.
[대성전 현판]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2층 팔작지붕 건물이다.
이 건물은 樓閣(누각) 형식으로, 1층은 모두 개방된 특이한
구조로 되어 있으며 전면 중앙 1칸이 문으로 되어있다.
우리 문화재가 거의 다 그렇지만 이곳 역시
자물쇠가 채워져 있어 내부를 보기가 쉽지 않다.
[담너머로 담은 명륜당 뒷 전경]
대성전(충청북도문화재자료 제214호)
‘경국대전’의 규정에 의하여 종6품의 교수와 정9품의 訓導(훈도)를
두었으며, 정부로부터 5∼7結(결)의 學田(학전)을 지급받아 거기서 나오는
수익으로 유지 비용을 충당하였다.
대성전에는 동, 서 양무가 있으며, 공자를 주향으로 중국의
선현들과 趙憲(조헌), 宋時烈(송시열) 등 유림들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그밖에 홍도당을 비롯한 고직사 등 총 4동의 건물이 있다.
사현 : 증자, 안자, 자사, 맹자.
10현 : 민손, 염경, 염옹, 재여, 단목사, 염구, 중유, 언언, 목상, 전손사
특이한 것은 향교의 내삼문이다.
삼문이 합쳐진 문의 형식이 아니고 세 문 모두
일정 거리를 유지하여 별개의 문으로 내었다.
대개의 경우 하나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향교의 삼문과는 확연한 차이가 있다.
그러나 내삼문의 의미와 기능은 같다.
삼문은 가운데 문을 ‘정문’이라하고 양쪽 문을 협문이라 한다.
보통 때는 양쪽협문만 열어놓고 정문은 닫아둔다.
제사를 지낼 때는 세 문을 다 열어놓지만 정문은 영혼이 들어오시는
문이라 하여 사람들은 드나들 수 없고 협문만 사용하는 것이 법도로 되어 있다.
[내삼문과 대성전 전경]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 노비 등을
지급 받아 운영되었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유안’, ‘청금록’, ‘선안’, ‘교안’ 등 조선 후기
옥천지역의 향토사 연구에 관한 귀중한 많은 책을 보관하고 있다.
옥천향교는 성균관의 축소판이라 할 정도로
성균관과 유사한 건물 배치를 지녔다.
가장 앞쪽에는 목조 기와 건물로 지은 명륜당이 있고
서쪽에는 서재 동쪽에는 고직사가 있으며, 내삼문을 통과하면
대성전과 이를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있다.
매년 2월과 8월 상정일(그달 맨 먼저 일진에 ‘丁’ 자가 들어가는 날)
제사를 지내고 있다.
데레사
2016년 9월 21일 at 7:56 오전
가까운곳에 과천향교가 있고 블로그 이웃 한분이 그곳에서
일했기 때문에 몇번 가봤어요.
그런데 내눈에는 향교들이 다 비슷한것 같던데…..
추석 끝나서 다시 다니시기 시작했군요.
즐거운 날들이 계속되길 바래요.
초아
2016년 9월 21일 at 9:39 오후
과천향교 저도 다녀온 곳이지요.
맞아요. 향교는 거의가 같아요.
조금씩 다른곳도 있긴하지만..
추석 끝나서 다닌건 아니구요.
예전에 다녀온곳을 다시 정리하여 올렸습니다.
사진이 달아나버려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