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동산동(대구제일교회 100주년기념관 옆)
[100주년 기념관 옆 현제명 나무 전경]
대한민국의 음악가, 성악가(테너), 작곡가.
1902년 12월 8일 경상북도 대구시 남산동(現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출신.
본관 延州(연주)이며 아호 玄石(현석)이다.
[100주년 기념관과 현제명 나무]
대구 대남국민학교와 계성학교를 다녔고,
대구에 있는 제일교회 성가대 활동을 통해 음악에 눈을 뜨고
계성학교, 평양 숭실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23년에 졸업한 후 전라북도 전주에서 신흥학교의 음악 교사로 활동했다.
[2017년 10월에 담은 사진]
[안내판 글 내용]
[안내판 일본어와 한문 소개 글 내용]
[좌측에서 담은 玄濟明(현제명) 나무 전경]
1926년 미국으로 건너가 시카고에 있는 기독계 무디성경학교에서
음악 교육을 이수하고, 귀국한 뒤에는 조선음악가협회를 창설하고
연희전문학교에서 음악을 가르쳤다.
[우측에서 담은 玄濟明(현제명) 나무 전경]
그 후 조선총독부 학무국이 주관한 조선문예회 정회원으로
가입하다가, 독립 계몽단체인 수양동우회 사건으로 체포되었다.
이 사건 이후 친일 성향 단체인 대동민우회의
정회원으로 가입하면서 친일반민족행위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45년 해방 후에는 한국민주당에 가입해서
극우 보수파로 활동하여 반공, 반북 운동을 전개하였고
1946년에는 경성음악학교(서울대학교 음악대학의 전신)를
설립하여 교장이 되었다.
1953년 한국음악가협회 위원장,
1954년 대한민국 예술원 영구종신회원에 선임되었다가
1960년 10월 16일 간경변으로 생을 마감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가극 ‘춘향전’ , ‘왕자 호동’ 등을 작곡하였다.
이팝나무 꽃말은 : 영원한 사랑, 자기 향상
국내에서는 희망의 나라로를 작곡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친일 행적을 하였다는 사실이 드러나게 되면서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친일인명사전의 인명부에도 현제명이라는 이름이 올라가게 되었다.
역대 음악가들 중 친일 행적이 드러나거나 논란이 된
유사 인물로는 애국가의 작곡가인 안익태와 홍난파 등이 있다.
고향인 대구 중구에는 ‘현제명 나무’라고,
이 사람의 이름을 딴 이팝나무가 있는데, 대구에서는
친일파인 이 사람의 이름을 딴 나무를 없애 버리자 하여 논란이 일었다.
아주 옛날 가난했던 시절 지난해 쌀은 떨어지고 보리날 때까지
먹을것이 없어서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연명한다는 초근목피의
보릿고개 시절에 하얀 꽃이 피면 쌀밥을 담아 놓은것 같다고 해서 이팝나무라
불렀다 하며, ‘입하’ 때 꽃이 피어 난다고 이팝나무로 부른다고도 한다.
외국 서양 사람들은 이나무를 마치 흰눈이 내린 것
같다고 해서 눈꽃나무 (snow flowering)라고 부른다 합니다.
이팝나무꽃이 잘 피면 풍년 들고 그렇지 못하면 흉년이 든다고도 했답니다.
[현제명 나무와 100주년기념관]
예전 2017년 10월에 담아온 현제명 나무 포스팅을 올 3월에 하였습니다.
그제 4월 28일 이팝나무꽃이 폈을것 같아서 시간을 내어 들렸더니
역시나!~ 활짝 개화를 하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