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광주광역시 남구 압촌동 99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6호
[고원희 가옥 전경]
임진왜란 때 錦山(금산)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장
高敬命(고경명)의 옛 집터를 그 후손들이 여러차례 고쳐지은 집이다.
현존 가옥은 1917년 소유자 高元熙(고원희)의 父(부) 琮錫(종석)이 건축한것이다.
예전에는 더 많은 건물이 있었으나 현재는 대문과 사랑채, 안채, 곳간채, 사당 등이 남아 있다.
[안내판 글 내용]
[고원희 가옥 사랑채]
대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이지만, 현재는 대문옆
담을 허물어 낮은 대문을 새로 만들어 그곳을 이용하고 있는듯 하다.
[낮은 대문 너머로 담은 사당 내삼문 전경]
대문을 들어서면 사랑채와 곳간채가 나란히 있으며,
안마당을 사이에 두고 안채, 안채 오른쪽에 사당인 不祧廟(부조묘)가 있다.
[고원희 가옥 돌담]
닫혀 있는 대문으로 들어갈 수 없기에 가옥의 우측 담을
따라 오르며 부조묘인 사당과 내부 전경을 담너머로 담아 보았다.
[돌담 너머로 담은 사당 전경]
사당은 고경명장군과 그 아들 從厚(종후), 因厚(인후)형제의 不祧廟(부조묘)이다.
[사당 부조묘 내삼문]
담을 따라 오르며 담너머로 담느라 수고한 나 대신..
가옥 입구쪽에 남아 있던 남편은 때마침 돌아온 주인을 만나
사랑채와 사당을 담았다기에 딱 2장…
내가 남아 있었다면 더 많은 사진을 담아 올 수 있었을텐데…
좀은 아쉬움이 남았다.
[정면에서 담은 사당]
본래 4대가 넘는 조상의 신주는 사당에서 꺼내 묻어야 하지만
나라에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위는 왕의 허락으로 옮기지 않아도 되는
不遷之位(불천지위)가 된다. 따라서 불천지위가 된 대상은 사당에 계속 두면서
기제사를 지낼 수 있다.
[사당 뒤쪽 담너머로 담아 본 사당 전경]
불천위가 된 신주는 처음에 묘 밑에 설치할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종가 근처에 사당을 지어둘 수 있게 됨으로써 부조묘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부조묘는 본래 국가의 공인절차를 받아야 하나
후대로 오면서 지방 유림의 공의에 의해서도 정해졌다.
불천위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둔 사당.
[사당쪽 담너머로 담은 고원희 가옥 전경]
사랑채는 앞면 4칸. 옆면 1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왼쪽에 작은 방 3개를 구성하고 그 옆에 1칸 규모의 대청마루를 조금 높게 조성하였다.
안채는 앞면 6칸. 옆면 1칸 규모이며 왼쪽부터
부엌과 방, 대청마루, 방의 순서로 배치하였다.
부엌 옆에 붙은 방은 앞뒤로 칸을 나누어 2칸으로 구성한 겹집 형태이다.
데레사
2018년 6월 9일 at 8:52 오전
나는 이런 가옥들을 보면 관리하는데 얼마나 어려울까 하는
생각부터 들어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혜택을 많이 주었으면 좋겠어요.
점점 옛것이 없어져가는데 후손들이 애써 지키고 있는걸 보면
반갑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하고요.
초아
2018년 6월 9일 at 8:20 오후
한옥은 아무래도 관리가 어렵지요.
그러나 비워둔 한옥 보다는 거주하고 계시면
관리하기가 좀 났겠지만, 정부에서 해택을 준다면
문화재로써의 품위도 지키며 관리도 쉬울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