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전경]
광주광역시 광산구 박호동 노동마을 입구,
황룡강을 끼고 있는 들녘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孝烈門(효열문)]
철문은 닫혀 있고, 어디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 없을까?
두리번 거리며 걸음을 옮겼더니, 효열문 옆으로 빈 공터에 碑(비)가
세워져 있기에 가까이 가보았더니,
[光山金氏世葬山(광산김씨세장산) 碑(비)]
광산 김씨 묘역이 근처에 있음을 알리는
光山金氏世葬山(광산김씨세장산)이라 쓰인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현판]
[우측 담너머로 담은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전경]
낮은 담으로 사방이 둘러 쌓여 있어서 들어갈 수는 없었지만,
담너머로 담아 올 수 있었기에 이웃님들과 함께 하기 위해 담아왔습니다.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편액]
17세기 중엽 건립된 것으로 보이는 孝烈門(효열문)이다.
지역 유림들이 광산 김씨 金應期(김응기)의 효행과 羅州羅氏(나주 나씨)의
烈行(열행)을 나라에 천거하자 인조와 선조가 정려를 내릴 것을 명하였다.
효열각은 정면 2칸, 측면 1칸의 골기와
맞배지붕 건물로, 붉은벽돌 담장에 둘러싸여 있다.
[정면에서 담은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건물 외부 전면에 ‘광산김씨효열문’이라는 현판과
두 사람의 행적을 기록한 편액이 나란히 걸려 있고,
내부에 광산김씨효자비와 나주나씨효열비 등 2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좌측 담너머로 담은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전경]
김응기는 3세 되던 해에 모친인
죽산 박씨를 잃고, 백부 김건의 양자로 들어갔다.
15세에 생부마저 별세하자 三年喪(삼년상)을 치뤘으며,
18세에 文化柳氏(문화 유씨)와 혼인하고 양부모에게도 효를 다했다.
[좌측 옆에서 담은 光山金氏孝烈門(광산김씨 효열문) 전경]
34세에 양부가 병을 얻자 명의와 선약을 구해 병구완을
하였으며, 결국 별세하자 3년간 시묘살이를 하였다 합니다.
孝(효)는 百行(백행)의 根本(근본)이며,
누구나 다 행하여야 하지만, 참으로 어려운게 孝(효)인가 봅니다.
孝(효)는 마음에서 우러나야하며,
큰 孝(효)는 하늘도 감동 시킨다 하였다.
아무나 할 수 없으니 이렇게 나라에서 孝烈門(효열문)을
세워 효가 백행의 근본임을 널리 알리는 거겠지요.
데레사
2018년 7월 25일 at 7:33 오전
광주에 갔어도 마음이 내키지않아 아무데도
안 갔어요.
오는길에 옥정호 잠깐 드라이브하고 왔어요.
마음이 이렇게 아픕니다.
여름철 건강관리 잘 하세요.
초아
2018년 7월 25일 at 8:08 오후
좋은 일로 가셨다면 좋았을텐데..
여행도 마음이 편해야 둘러볼 여유도 생기지요.
잘 하셨어요.
그래도 옥정호 드라이브는 잘 하셨어요.
오래 마음 아파하시지 마셔요.
안그래도 기운 빠지는 더위에 건강을 헤칠까 두렵습니다.
저도 조심할게요. 언니도 건강관리 잘하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