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지 :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208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
[鼇淵亭(오연정) 표지석 전경]
표지석 옆 경사진 언덕을 오르면
곧장 鼇淵亭(오연정) 넓은 주차장이 나온다.
[주차장 쪽에서 담은 안내판과 오연정으로 가는 길 전경]
[오연정 안내판 글 내용]
[오연정 가는 길]
경상남도 밀양시 校洞(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로
1995년 5월 2일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로 지정되었다.
[오연정 행랑채 景行齋(경행재) 전경]
조선시대 明宗(명종) 때 김제. 울산 군수 등을 지낸
孫英濟(손영제)가 고향으로 돌아와 머물던 別墅(별서)이다.
[景行齋(경행재) 현판]
[景行齋(경행재)]
임진왜란과 1717년의 화재로 불탔다가
1771년 중건, 1936년에 후손들이 확장. 중건하였다.
[景行齋(경행재) 우측 옆 전경]
무언가 애사롭지 않아 보였지만, 우선 오연정부터
둘려본 후 들러보기로 하고 활짝 열린 경행재 문으로 들어갔다.
[대문 쪽에서 담은 경행재 앞쪽 우측 전경]
인기척이 들리는듯하여 주인에게 양해를 구하고
들어가려 소리를 내어 불러 보았지만, 대답이 없다.
[오연정 중문]
경행재에서 오연정으로 통하는 중문 옆에 세워둔 자전거
아무래도 누군가가 살고 계신듯 하여 소리내어 불러보았지만,
대답이 없으니 조심조심 주변을 살피며 열린 중문으로 들어섰다.
[중문 쪽에서 담은 오연정 넓은 뜰 전경]
빨랫줄에는 이불이 널려 해바라기를 하고 있고,
사방은 조용하다. 무언가 잘못을 저지르는 사람처럼
발걸음이 더 조심스러워지지만, 얼른 담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휴대폰에 담기 시작하였다.
[노거수 목백일홍과 오연정 전경]
조선 명종 때 正郞(정랑)을 거쳐 禮安(예안). 金堤(김제).
蔚山(울산) 군수 등을 지낸 雛川(추천) 孫英濟(손영재, 1521∼1588)의
別墅(별서)로 1580년에 창건되었다.
[앞쪽 뜰에서 담은 오연정 전경]
純祖(순조, 1800~1834) 때 경내에
募禮祠(모례사)를 세워 모례 서원으로 발전하였으며,
1971년 서원 철폐령으로 사당은 훼철되어 오연정만 남게 되었다.
1935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어 1936년에 후손들이 확장하여 중건했다.
[欖碧樓(남벽루) 현판]
[남벽루 현판과 주련 전경]
鼇淵亭(오연정)은 밀양강 우안에 있는
추화산의 북쪽 구릉에 북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ㄱ’자형 평면의 木造瓦家(목조와가)로,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온돌방 전후에 툇마루가 있는 툇집으로 전면과 후면 모두가 정면성을 가지고 있다.
‘一’자형의 평면에 좌측 전면에 돌출부에 누마루를 부가한 구조이며,
좌측으로부터 온돌방 1칸, 대청 2칸,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迎楓樓(영풍루) 현판]
[정자 정면의 鼇淵亭(오연정) 현판]
[氷壺秋月(빙호추월) 현판]
[오연정 내부의 편액 전경]
[오연정 내부 편액 애니메이션 편집]
[오연정과 노거수 목백일홍]
공포 양식은 소로로 장식한 소로수장집이며
대청마루는 5량 가이지만 누마루는 3량 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오연정 주련 전경]
[鼇淵亭(오연정) 뒤 전경]
추천은 만년에 밀양 鄒川(추천) 강가 鼇淵(오연) 위에 정자를 짓고
자신의 호는 鄒川(추천)이라 하고 정자 이름은 오연鼇淵(오연)이라 하였다.
오연정 옆 협문]
오연정옆으로 작은 협문이 보였다.
이곳은 문집을 보관하기 위해 지은 건물 연상판각으로
연결되는 협문이다.
[협문쪽에서 담은 연상판각 뜰 전경]
[淵上版閣(연상판각)]
[좌측에서 담은 연상판각 전경]
공포 양식은 소로로 장식한 소로수장집이며
대청마루는 5량 가이지만 누마루는 3량 가이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며 막새기와를 사용하였다.
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우측에서 담은 연상판각 전경]
오연정의 배면에는 사당의 주춧돌이 남아 있고
남서쪽에는 문집을 보관하기 위한 淵上版閣(연상판각)이 있으며
북서쪽에는 대문채 겸 재숙소로 사용된 ‘ㄷ’자형 경행재가 있다.
[다시 담아 본 오연정 전경]
추천의 행적과 문집은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타고 파괴되어
없어졌으나, 200년 후 자손들과 도산서원, 소수서원 등의
노력에 힘입어 그 행적이 밝혀졌다 합니다.
[오연정 경행재 옆 주변 풍경]
무언가 사연이 서려 있을듯한 예감이 들어서 들러보기로 했다.
녹색의 철문과 녹색의 철조망으로 경계를 지어 놓았지만,
철문은 열고 닫을 수 있게 개방되어 있어서 들어갈 수 있어서 좋았다.
[鼇淵(오연) 碑(비)]
여기는 자라와 깊은 관련이 있는즉,
鼇淵亭(오연정)의 전설이 서린 곳이라 한다.
[鼇淵(오연) 전경]
자라와의 깊은 전설이 서린 곳이라 하지만,
소개를 드릴까 하고 검색을 해 보았지만, 찾지 못하여
그냥 통과합니다.
이웃님들이 상상으로 만들어보셔요.
[募禮書院 景賢祠遺趾碑(모례서원 경현사유지비) 전경]
[募禮書院 景賢祠遺趾碑(모례서원 경현사유지비)]
[募禮書院 景賢祠遺趾碑(모례서원 경현사유지비)]
모례 서원이 있던 곳이라 합니다.
[오연정 출입구(대문) 행랑채 전경]
사실 鼇淵(오연)이란 이름은 지명을 따른 것이기도 하지만,
고인들이 鼇峯書堂(오봉서당)에서 講道(강도)하던 제도에
은근히 뜻을 둔 것이라 한다.
鼇峯(오봉)은 본래 신선이 사는 산으로 바다 가운데 떠있는 섬이다.
훗날 翰林院(한림원)의 별명이 되기도 하였다.
오鼇淵亭(오연정) 소개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