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평 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소

소재지 :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금산리 산 69

20181012_134624a[崇祖門(숭조문) 현판]

20181012_134551[재실 崇祖門(숭조문) 전경]

해평윤씨 시조 재실 삼문 崇祖門(숭조문)

새로 지은지 얼마 되지 않은 듯 고풍스럽진 않았지만,
당당하게 보이는 해평윤씨 시조 재실 삼문 崇祖門(숭조문)
재실 앞쪽 넓은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들러보았지만,
삼문은 닫혀 있고 근처에는 사람의 인기척이 없는 조용한 오후
시간에 도착하였다.

20181012_134738[담너머로 담은 재실 慕遠齋(모원재)) 전경]

재실 우측 담 옆으로 난 좁은 계단으로 올라서면
곧장 해평 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소가 보인다.
재실 뒤쪽에도 넓은 공터가 있어 주차를 할 수가 있다.

20181012_134832[재실 뒤쪽 해평윤씨 시조 윤군정 묘소 전경]

해평윤씨의 시조는 尹君正(윤군정)이다.
尹君正(윤군정)은 고려조에서 고종과 원종 2대를 섬겨 벼슬이
金紫光祿大夫(금자광록대부) 守司公(수사공) 尙書左僕射(상서좌복야)
判工部事(판공부사)에 이르렀다.

20181012_134906[해평윤씨 사적비, 숭조비, 공덕비 와 묘소 전경]

20181012_140231a[海平尹氏史蹟碑(해평윤씨 사적비)]

20181012_140236a[崇祖碑(숭조비)]

20181012_140202a[尹世榮公頌德碑(윤세영 공 송덕비)]

20181012_134930[아래쪽에서 담은 묘소로 오르는 돌계단과 묘소 전경]

고종 44년(1257) 4월 原州(원주)에서 安悅(안열) 등이 古城(고성)을
근거로 반란을 일으키자 장군으로서? 將(낭장) 權贊(권찬)과 함께
興元倉(흥원창)에서 적을 크게 파하고 난을 진정시켰다.

20181012_135038[해평윤씨 시조 묘소 전경]

원종 10년(1269) 우복야를 거쳐 2년 후 좌복야가 되어
사공 田賓(전빈)과 함께 府衛兵(부위병)을 사열하고 부족한
인원을 충원하였다.

1273년 수사공상서좌복야판공부사에 올랐다.
시호는 忠簡(충간)이다.

20181012_135220[2세 尹萬庇(윤만비) 묘비와 묘]

아들이 충렬왕 때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尹萬庇(윤만비)이며,
손자가 충숙왕 때 判典理司事(판전리사사)를 역임한 尹碩(윤석)이다.

20181012_135255[3세 尹碩(윤석) 묘비와 묘]

윤군정의 손자인 尹碩(윤석)은 고려 충숙왕의 총애를 받은 인물로,
代言(대언)이 되어 원나라에 사신으로 파견되었는데, 탁월한 외교 수단으로
行省(행성)의 설치를 중지시켰다.

20181012_135053[묘 앞 좌측 무인석. 문인석. 망두석 등 석물]

20181012_135109[묘 앞 우측 무인석. 문인석. 망두석 등 석물]

20181012_135122[우측 아래쪽에서 담은 시조 묘소 전경]

그 공으로 忠勤節義同德贊化保定功臣(충근절의동덕찬화보정공신)에
책록 되고 관직이 壁上三重大匡(벽상 삼중대광) 都僉議司(도첨의사) 左政丞(좌정승)
判典理司事(판전리사사)에 올랐으며 海平府院君(해평 부원군)에 봉해졌다.

따라서 후손들이 해평을 본관으로 삼아 世系(세계)를 이어왔다.

20181012_135319[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 오르는 돌계단과 묘소 전경]

20181012_135433_HDR[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소 전경]

20181012_135357[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

20181012_135544[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비와 묘]

20181012_135521_HDR[묘 앞 좌측 무인석. 문인석. 망두석 등 석물]

20181012_135526[묘 앞 우측 무인석. 문인석. 망두석 등 석물]

20181012_135617[우측에서 담은 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소]

20181012_135635[우측에서 담은 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소 전경]

20181012_135700_HDR[해평윤씨 시조 尹君正(윤군정) 묘 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20181012_140111[2세, 윤만비. 3세, 윤석 묘뒤에서 담은 안산 전경]

20181012_135138_HDR[묘소에서 담은 앞쪽 재실 전경]

본관 海平(해평).
아들이 충렬왕 때 부지밀직사사를 역임한 尹萬庇(윤만비)이며,
손자가 충숙왕 때 判典理司事(판전리사사)를 역임한 尹碩(윤석)이다.

손자 윤석이 海平府院君(해평 부원군)에 봉해짐에 따라
그의 후손들이 소급하여 윤군정을 해평윤씨의 시조로 삼았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8년 11월 22일 at 9:48 오전

    묘소가 아주 화려합니다.
    저 정도로 가꿀려면 후손들이 애 많이 쓰겠는데요.

    • 초아

      2018년 11월 22일 at 9:50 오후

      남편을 따라 묘소를 들리다가 이렇게
      후손들이 잘 가꾸어놓은 묘소를 보면 선조님들을
      생각하고 위하는 후손들의 정성이 느껴져서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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