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구박물관 ‘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展

소재지 : 대구광역시 수성구 황금동 70

20190117_155635[국립대구박물관 현판]

20190117_155221[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

20190117_154339[국립대구박물관 특별전시실 출입구 전경]

20190117_154409[입구에서 담은 첫 번째 사진 자료]

20190117_154444[금강사를 만나다 안내도와 안내글 내용]

20190117_154455[전시실 내부 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20190117_154933[塑造塔片(소조탑편)]

20190117_154505[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20190117_154921[청자 장고, 청자 대접]

청자 장고 : 절에서 행사가 있을 때 사용

20190117_154914[청자 병, 정자 접시, 청자 뚜껑, 벼루 등]

20190117_154527[불상 대좌]

20190117_154535[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20190117_155000[나무 주걱, 봉숭아 씨]

20190117_154601[금강사를 발굴하다. 유물 발굴 안내도]

20190117_154544[금강사를 발굴하다 설명 글]

20190117_154544-1[금광리 석탑(고려) (망실 이전)]

20190117_154544-2[금광리 석불좌상(나말여초)]

20190117_154553[금강사를 발굴하다 설명 글 2]

20190117_154518[금강사 터 유구 조영 시기 및 유물 출토 위치]

20190117_154512[금강사 터 유구 조영 시기 및 유물 출토 위치(사진제공 : (재)한국문물연구소]

20190117_154618[우물에서 보물을 만나다]

20190117_154629[우물 유구 측면 사진]

금강사의 우물의 깊이는 5.5m.
유물의 상태가 좋아서 절의 위급한 사태가 생기자 우물에 넣은게 아닌가
추증한다 합니다.

근처 절터에서 화재의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화재가 나서 절의 보물을 우물에 넣은거나 아닌지….

20190117_154624[철솥, 광명대, 향완, 나무주걱 출토 상황]

20190117_154609[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20190117_154642[광명대, 다시 빛을 보다]

20190117_154647[무자명 광명대(사진제공 : 경북대학교 박물관)]

다른 명칭 燈燭臺(등잔대)
光明臺(광명대)는 촛대를 말하는 것으로 한자로는 燭臺(촉대) 등으로 사용한다.
금강사 터 우물에서 발견된 높이 33.2㎝의 ‘光明臺(광명대)’에는 제작 시기, 동기
등을 밝혀주는 38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어 주목받는다.

20190117_154653[광명대 명칭 및 명문]

20190117_154706[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20190117_154712[鏡像(경상)]

거울의 반사면에 불교의 尊像(존상)을 선으로 새긴 것을 鏡像(경상)이라 한다.

20190117_154718[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

20190117_154718-1[거울, 합장 인물상, 경자]

20190117_154803[‘卍’자명 기와]

절이라는 걸 확실히 알 수 있게 한 건 기와에 새겨진 절을 나타나는 ‘卍’자

20190117_154825[전시된 일부 자료 전경(앞줄 철솥)]

20190117_154815[대부완, 향완]

대부완(굽 달린 사발), 향완(향을 피우는 그릇)

20190117_154724[향로 뚜껑]

20190117_154700[발굴 현장 사진제공 : (재)한국문물연구소]

20190117_154848-vert[발굴 현장 사진제공 : (재)한국문물연구소]

20190117_154740[금강사를 기억하다 안내글과 발굴 현장 사진]

20190117_154729[금강사를 기억하다]

이번 전시는 금강사 터에서 출토된 광명대 등
고려 시대에 제작된 출토품 34점을 전시하였다 합니다.
금광리는 영주댐의 건설로 수몰되어 더 이상 갈 수 없게 되었지만,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은 대대손손 이어져 내려가겠지요.

국립대구박물관 ‘영주 금강사 터에서 만난 보물’展 소개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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