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拜洞三陵(배동삼릉)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 73-1

20190126_142342[삼릉 입구쪽 전경]

삼릉 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바로 앞의 도로를 건너면 삼릉 입구이다.
이곳이 남산 메인 등산로이기도 하다.

20190126_142400[삼릉 가는 길]

20190126_142413a[경주국립공원(남산지구) 안내도]

20190126_142430-3[문화재와 함께하는 탐방 안내도]

20190126_142430-4[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된 경주 남산 일원 설명글]

20190126_142507[경주국립공원 문화유산탐방로]

등산로 옆으로 남산 명소 사진이 걸러있다.
사진들을 보면서 걷다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삼릉 입구 숲이 보인다.
사진소개는 어제 하였으니 오늘은 삼릉 소개를 하겠습니다.

20190126_142808[삼릉과 남산으로 오르는 탐방길 전경]

주변 풍경에 취하거나, 저처럼 사진을 보거나 담다보면,
자칫 삼릉 입구를 놓치고 남산 정상까지 오를 수도 있으니,
삼릉으로 가려면 주의해야한다.

20190126_142823[우측 삼릉 입구 전경]

바로 이곳이 삼릉으로 가는 입구이다.
삼릉으로 가는 길이란 팻말이라도 세워 놓았으면 좋겠지만…
아무런 표시도 없다.

20190126_142849[솔숲 사이로 보이는 삼릉 전경]

삼릉 앞 소나무 숲이 배병우 사진작가 덕분에 너무 많이 유명해졌다.

20190126_142907[삼릉 숲]

동트기전 이른 새벽부터 안개가 자욱하게 낀 삼릉솔숲의
모습을 담으려 전국에서 사진작가들이 모여드는 곳이라 합니다.

20190126_142910[삼릉 숲 2]

안개가 자욱하게 낀 신비스러운 삼릉 숲
상상을 하며 여기저기 스맛폰으로 담아 보았다.

20190126_142915[삼릉 숲 3]

환한 대낮이라 솔숲의 신비로움이 덜 한듯 하여…
담아온 위 사진을 그림처럼 포토스케이프로 편집해 보았습니다.

20190126_142951[삼릉 숲 4]

어느곳을 구도를 잡든 담는 순간 작품이 되어버리는것 같은 삼릉 숲.
행여나 하고 저도 여기저기 마구잡이로 담아 보았습니다.^^

여기에 뽀얀 안개를 보탠다면 환상적이지 않을까요?

20190126_143029[안내판과 배동삼릉]

20190126_143020[경주 배동 삼릉 안내판 글 내용]

경주 拜洞三陵(배동삼릉)
사적 제219호

이 곳에는 신라 제8대 아달라왕 제 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의 무덤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삼릉이라 부른다.

아달라왕(재위 158~184)은 재위 당시 백제가 침입하여 백성을
잡아가자 친히 군사를 출동하여 전장에 나아갔으며, 이에 백제가
화친을 요청하자 포로들을 석방하였다.
또한 倭(왜)에서는 사신을 보내오기도 하였다.

신덕왕(재위 912~917)은 헌강왕의 사위로 효공왕이 자손 없이 죽자
사람들의 추대로 왕위에 올랐다. 재위 중에는 견훤과 궁예의 침입이 있어
싸움에 진력하였다.

능은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으며, 두 차례에 걸쳐 내부가 조사되었다.
조사결과 굴식돌방무덤으로서 돌방 벽면 일부에 색이 칠해져 있었는데,
신라의 무덤으로는 처음 발견되는 것으로 주목된다.

경명왕(재위 917!924)은 신덕왕의 아들로 재위 기간 동안 신라의
국운이 기울어가고 있었으나, 고려 태조 왕건과 손잡고 견훤의 대야성
공격을 물리치기도 하였다.(안내판 글 내용 옮겨 적음)

20190126_143005[앞쪽에서 담은 배동삼릉 전경]

南山(남산)의 서쪽에 동서로 세 왕릉이 나란히 있어 ‘三陵(삼릉)’이라 불리고 있다.

서쪽으로부터 각각 신라 제8대 아달라이사금,
제53대 신덕왕, 제54대 경명왕 등 박씨 3왕의 능으로 전하고 있다.

20190126_143049[拜洞三陵(배동삼릉)]

아달라이사금은 ‘삼국사기’ ‘삼국유사’에 왕릉소재에 대한 기록이 없다.
아달라이사금의 遠孫(원손)인 신덕왕은 ‘삼국사기’에서는 竹城(죽성)에
장사지냈다고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화장해 箴峴(잠현) 남쪽에 묻었다고 하였다.

또, 신덕왕의 태자로서 왕위를 이은 경명왕은 ‘삼국사기’에서는 黃福寺(황복사)
북쪽에 장사지냈다고 하고, ‘삼국유사’에서는 황복사에서 화장해 省等仍山(성등잉산)
서쪽에 散骨(산골)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90126_143137[우측에서 담은 拜洞三陵(배동삼릉) 전경]

따라서 신덕왕릉이나 경명왕릉의 위치는 불분명한 상태이고,
게다가 신라 초기의 아달라이사금과 700여 년이나 시간적 간격이 있는
하대 신덕왕과 경명왕의 능이 한 곳에 모여 있다고 보기도 어려워서
이 삼릉이 앞의 세 왕의 능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합니다.

20190126_143203[우측 옆에서 담은 拜洞三陵(배동삼릉) 전경]

세 고분 모두 외형은 원형봉토분으로 통일신라시대 왕릉의
규모와 비슷하나 아무런 장식이나 석조물이 없고, 현재 놓여 있는
3개의 상석도 모두 최근에 만들어놓은 것이라 한다.

20190126_143227[삼릉 墓碑(묘비)]

20190126_144132[뒤쪽에서 담은 배동삼릉 전경]

신덕왕릉은 1935년과 1963년 두 차례에 걸친 도굴을 계기로 내부가 조사되었다.

내부구조는 통일신라시대의 일반적인 橫穴式石室墳(굴식돌방무덤)으로
평면은 사각형에 가깝고, 穹?形(궁륭형) 천장으로 되어 있는 널방은
自然塊石(자연괴석)으로 축조되었다.

이 고분에서 가장 주목되는 점은 북벽과 동서 양벽의 일부에
연속해 마치 병풍을 돌려세운 것처럼 채색된 벽화가 있는 것이다.

20190126_144200[삼릉 뒤쪽에서 담은 안산 전경]

입구에서 볼 때, 정면인 북쪽 벽면에 6폭, 그리고
그 좌우로 연속해 동서 벽면에 각각 3폭씩 모두 12폭으로 된 채색면이 있다.

고분의 벽화는 단순한 채색면에 지나지 않지만
벽화자료가 거의 없는 신라고분에서는 주목되는 자료이다.

20190126_144205[배동삼릉 뒷 전경]

더욱이 경주 일원의 신라고분에서는 지금까지 확인된 유일한
채색벽화로서 중요하다. 이 벽화가 의미하는 내용을 확실히는 알 수 없으나,
그러나 5색은 五行說(오행설) 혹은 그와 결부된 方位神思想(방위신사상)과
관련이 있을 것이고, 그림의 너비가 12폭이라는 것도 十二支神(12지신)의
사상과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합니다.

20190126_144224[拜洞三陵(배동삼릉)]

경주에서 노천 박물관이라 하면 바로 이곳 ‘남산’을 말한다 합니다.
경주 배리삼릉 소개를 마칩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2월 16일 at 7:46 오전

    삼릉 가는길 배반에 살던 내친구 서종분이가
    생각납니다.
    종남이라는 여동생과 같이 다녔는데 그 먼길을
    걸어서 읍내 학교까지 다녔던 종분이가 동창회에
    안나와서 물었드니 죽었다고 하더라구요.

    남의 좋은 포스팅 읽다가 갑자기 그 친구가
    시닝각나서… 미안해요.

    • 초아

      2019년 2월 16일 at 9:10 오후

      괜찮습니다.
      어차피 우리도 가야할 길.
      이르게 늦게 차이가 있다 뿐이지요.
      제가 다니는 복지관에서 매일처럼 만나든 분이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고해서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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