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소재지 :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 2113-10

20170307_131859[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현판]

20170307_131809[2.28 민주운동 기념회관 전경]

20170307_131839[대구사랑 대구자랑 2.28민주운동 안내 글 내용]

20170307_131850[2.29민주운동기념동산 안내 글 내용]

20170307_131827[2.28민주운동 기념회관 출입구 전경]

20170307_133234[전시실 안내도]

1층엔 기념관으로 2,3층은 도서관, 4층은 복합문화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20170307_131929[민주운동의 문을 열다]

독재와 불의에 항거한 2.28 민주의거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2013년에 개관.

20170307_131940[횃불 조각 작품]

1층 전시실 입구로 사람이 들어가면 횃불에 불이 들어온다.
2.28 민주운동은 우리나라 민주주의 발전사에 있어 첫 횃불을 상징한다.

20170307_131948[2.28민주운동 벽화]

당시 운동을 주도하였던 학생들의 모습이 벽화처럼 벽에 새겨져 있다.

20170307_131955[횃불을 밝혀라 동방의 빛들아!]

20170307_132003[년대별로 세워놓은 안내판]

1960년 2.28 민주운동이 일어나게된 역사적배경을
년대별로 일목요연하게 정리하여 놓아 그때의 상황을 잘 알 수 있다.

20170307_132055[냉돌방의 결의]

2월 27일 밤 당시 경북고등학교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이대우 군 집
냉돌방에는 각 학교 간부들이 모여 회의를 하고 있었다….
2.28 데모의 진통소리가 밤이 깊어가면서 더 높아 가고 있었다.
자정이 넘은 구수회의의 ‘2.28일의 데모 산실’에서는 어둡고 괴로운
일당독재에 항거하는 학생데모의 결의를 마침내 낳았고, 어느 아침보다
더 선명히 밝은 햇살이 빛났다.

3개 고교 학생대표자의 구수회합에서는 자유당의 포악정치에 정면으로
도전하자는 28일의 데모계획이 만들어 졌다. “하자!”는 측은
“12년 이승만 일당독재의 민주공화국은 정치악에 부패되어 조국의 명맥이
흔들리고 있는데 기성인들만 믿고 현실을 좌시하고 우리들만의 안이한
상아의 전당에 묻혀 오불관 할 수는 없다. 역사의 사명을 떠맡은 청년의
기개를 다할 수 있는 3.1의 숭고한 정신을 받들어 독재자에 항거해 봉기하자.”
라는 신중론을 내세웠다.

그러나 이름없이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의 연약한 생명들이 조국 민주주의의
번영에 한줌 밑거름이나마 될 수 있다면 그것으로써 족하지 않느냐라는 결론에
도달해 3개 고교 대표 학생은 “천당에서 만나자”는 결연한 악수를 나누고
28일 거사에 나섰던 것이다.(냉돌방의 결의 옮겨 적음)

20170307_132019[전시실 내부 전경]

빈곤과 불법적 인권 유린이 극에 달한 상황에서
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8개 고등학교 학생들이 일으킨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최초의 민주운동입니다.

20170307_132106[학생봉기 그날의 조각작품]

자유당의 장기집권을 막기 위해 야당이었던 민주당 부통령 후보인
‘장면’ 박사의 선거 연설회가 1960년 2월 28일에 예정되어 있었는데,
자유당은 이 연설회에 학생들이 참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임시 시험,
단체 영화 관람, 토끼 사냥 등의 이유를 들어 일요일이었던 1960년 2월 28일,
학생들에게 학교로 등교할 것을 요구했다.

20170307_132124[중앙 둥근 지점을 중심으로 민주운동 뻗어나간 길 표시]

그날 학교로 모였던 대구 지역 학생들은 이 같은 처사에 크게 분노했고,
자유당 정권의 부정과 부패를 규탄하며 일어났으니, 이렇게 우리나라 최초의
민주운동은 학생들에 의해 시작되었다 합니다.

20170307_132259[미니어처로 만든 1960년대 도청 전경]

학생들은 당시 인구가 밀집했던 중앙통을 거쳐 경북도청과
대구시청, 자유당 경북도 당사 등을 돌며 자유당 정권을 규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많은 학생들이 경찰에 연행되었고, 교사들도 책임 추궁을 받았다.

20170307_132307[1960년대 도청]

이 일을 계기로 독재에 침묵했던 언론도 2.28학생의거를 보도하게
되었고, 전국의 학생들이 잇따라 궐기와 시위에 나서게 되었다 합니다.

20170307_132331[전시장 내부 전경]

중앙 바닥의 중심에 뻗어나간 불빛은
당일 학생들의 이동 경로와 시간을 표시한 것이다.

20170307_132221[전시실 내부 그날의 자료 사진 전시]

독재정권의 힘에 눌려 어른들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공포 분위기를
어린 학생들이 나서 흔들어 놓았고 대구 시민들도 도피하는 학생들을
숨겨주는 등 지지와 성원을 아끼지 않았다 합니다.

20170307_132342[2.28 민주운동의 영향]

20170307_132433[2.28 찬가]

20170307_132447[전시실 내부 전시된 자료 전경]

20170307_132501[영상실]

228민주운동기념회관에서는 시대적 배경을 이해 할만한
당시 사진과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고,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20170307_132507[2.28 관련 자료 사진 전시]

20170307_132516[아직은 체념할 수 없는 까닭]

20170307_132608[보도사진과 자료 전시]

20170307_132705[기념행사 및 활동자료 사진]

20170307_132712[2.28 관련 자료 사진]

20170307_132746[전시실 내부 전시된 자료 전경]

20170307_132842[1960년 2월 28일 대구지역 8개 고등학교]

20170307_132926[경북고교생들이 2.28당시 교문을 박차고 나가는 모습]

그날로 부터 59년이 지난 지금.
서로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부패한 정치권
오늘 2.28 민주운동 59주년을 맞이하여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anigif[2.28 자료사진 애니메이션 편집]

2.28민주운동은 의를 숭상하고 불의에 항거하는 대구정신의 표출이다.
이 운동을 계기로 3.15 마산의거와 4.19 민주혁명이 일어났고,
4월26일 이승만 대통령이 물러났다. 1960년 대구 학생들이 주도한
2.28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민주화 시위로
4.19 민주운동은 대한민국 건국 이후 최초의 민주화 시위로
4.19민주혁명의 도화선을 제공했다.

독재와 불의, 부정부패에 맞서 분연히 일어난
학생들의 땀과 피가 4.19 민주혁명의 씨앗이 되고 디딤돌이 됐다.

20170307_133006[과거 2.28학생의거기념탑(명덕로타리)]

20170307_133000[현재 2.28학생의거 기념탑(두류공원)]

2.28학생의거기념탑은 당초 명덕로터리에 세워졌다가
1990년 2월 28일 현재 위치인 두류공원으로 옮겨졌습니다.

이들의 고귀한 정신과 핏값으로 이룩한 이 나라.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러주기위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해야겠지요.

특히 나라의 윗분… 정치인.. 언론인.. 제발 정신 좀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2 Comments

  1. 데레사

    2019년 2월 28일 at 11:54 오전

    두류공원에 갔을때 들어가 본적이 있습니다.
    저 때의 학생들은 순수했는데 지금은…. 그냥 머리 아프고
    걱정 됩니다.

    • 초아

      2019년 2월 28일 at 10:27 오후

      글쎄 말입니다. 안 그런 학생들도 있지만,
      요즘 학생들은 너무 영악해서 무섭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학생들이 더 많을거란 생각만 하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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