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공의 연민

/익어가는밀감과

서귀포에서재배하는애풀망고..

LA에서전화란다

내평생그쪽하고상관없는곳인지라의외아닌가

미스터띠우…이름을대고서야베트남의기억이다

나에게7년의사이공은사랑보다연민에가깝다

94년7월,사이공탄산누트공항에첫발을딛고

후덥지근하고메케한열기와마중나온현지사람들의

후질구레한모습으로베트남의첫인상을그렇게느꼈다

지금생각하면세월만낭비한채살아온베트남은

마치7년동안꾼꿈속처럼아득하다

아이들전화한통에며칠을설레이며보낸기억,그외

그어떤것도행복하게해준적이없던사이공의삶이었다

지금은21살로전화조차없는첫손녀지만,

기도중에도분심들게하는,내가장아픈사랑으로

그곳에사는동안가장보고싶어안타깝게한존재였다

마치그그리움이살아가는이유인것처럼살았다

일상이무료해궁리한다는게게스트하우스였다

배낭족들의낭만적인추억여행을맞이한다는목적과달리

당시베트남을황금알로여기고너도나도몰려오던시기여서

결국한국에서오는비지니스인들이상대가되었다..

베트남을오가는한국남자들의부도덕한본성내지욕정의발광은

불신을넘어분노미움갈등상처,더러움…그런것들에서

짖눌리는무게는마음을점점피페하게만들었다

한국남자들의사업은현지여자들과의비지니스일뿐이고

또한현지여자들조차돈과오토바이에눈멀어걸리는한국남자들은

말그대로그녀들에게는로망이었다..그러다보니현지처를두기도하고

거의비지니스는핑게일뿐백프로성매매라보아야맞다

그중베트남띠우(후추)를수입하려들어와미스터띠우라고

불러던당시청년은,남편의부도덕한행동을보고는,곧바로

그자리에서짐싸들고나갔던사람이다

무언으로내상처를대변한것으로본다..

어찌하든베트남에정들리고살고자인터넷주부교실을오픈하고

한국주부들을상대하면서생활에새로운빛이보이기시작하는듯,그러나…

내의지와전혀상관없이느닷없이떠나온사이공…

장애는밖에있는것이아니라안에있다는걸탄식하면서..

베트남에서의마지막비상구인터넷교실의아쉬움..

오로지현지성당자매들과만나는..메콩강줄기의

탄다강변에서반짱을먹던즐거운추억..

그래도손님중성실하게기억되는몇몇에대한기억만이있을뿐

그리좋은추억없이살았던베트남으로슬며시

전화한톻으로사이공의연민이살아났다..

사이공을떠나온지11년…그때도여름이었다

그렇게잊을만하면..2,3년에한번씩안부전화를하는것같다

누가나같은늙은이에게전화를해주겠는가..

한쪽문이닫히면받듯히다른문이열린다는믿음하나로

아무런준비없이노지로내몰린한국땅…

가도가도타향..다시섬제주로..자연을벗삼아

꽃잎날리고바람흐르는대로흐르리라..

얼마전몸살을몹씨앓았다

마침보성교감샘이망고두개를놓고가고

암튼이래저래사이공의연민에쌓인날이다

12/09/06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