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살 소녀!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일 뒤에 깨달은 교훈

“야들아! 저 언니 쮸쮸 진짜 크제?”

연아가 말을 했다.초등학교 1학년인 동네 친구들 5명이 함께 였다.

무더위가 한창인 어느 여름 날 동네 맑은 웅덩이에 멱 감으러 간 날이다.

많이 더운 날은 하루에도 두 세차례 물가로 나갔다.

안동 일직 귀미 우리 동네 제일 가까운 산 언덕  아래의 웅덩이였다.

우리는 여름이면 멱 감으로 가는 몇 곳이 있었다.

동네 아랫쪽의 큰 강으론 골벵이 주으러로 갈 때 주로 갔다.어릴 땐 강에서 잡아 온 골벵이가 우리의 좋은 간식거리였다.

물놀이하면서 골벵이 잡는 즐거움도 컸다.삶아서 그냥 먹기도 하고 또 엄마가 살을 빼서 골뱅이 국도 끓여 주셨다.종종

된장에 넣어 엄마가 된장국을 끓여 주시면 또 그리 맛있을 수가 없었다.골벵이 엉덩이를 이로 깨물어 버리고 쪽쪽 빨면

골벵이 살이 짭잘한 된장과 함께 쏙 나온다.밥과 함께 먹으면 우리의 입맛을 돋구는 맛난 밥반찬이 되었다.

강이 넓어서 물놀이 하긴 최고다.그래도 우리끼리 가기엔 조금 먼 동네 끝이라서 우리보다 큰 언니들이 함께 갈 때 주로 가는 곳이었다.

우리끼리 갈 때는 동네 앞쪽의 생담 정자 밑 웅덩이나, 동네 윗쪽의 머릿골에 주로 갔다.

하루에도 몇번씩 오가려니 동네 바로 곁을 선호했다.

우리끼리 가도 들에 오고 가시는 동네 어른들이 우리를 볼 수 있는 안전한 장소였다.

 

그 날은 동네 윗쪽에 있는 산 아래의  머릿골 웅덩이에 갔다.

물 앞에 자갈이 넓게 펼쳐져 있어서 우리가 놀기도 좋았다.

물 속에서 놀다가 추우면 달려 나왔다.

햇볕에 뜨겁게 데워진 자갈은 우리를 따뜻하게 안아 주었다.수건을 등에 얹고 배를 자갈에 대고 누우면 금방 몸이 다시 데워졌다.

그리고 다시 물에 들어 가고 또 나와서 놀다가 또 다시 물에 들어 가고 하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놀다보면 우리는 덜덜 떨면서 입술이 파래졌다.손가락은 너무 물 속에 오래 있어서  쪼글쪼글 해졌다.

그래도 또 뜨겁게 데워진 자갈 위에 누워 재잘거리며 이야기 하고 놀다가 더 물놀이 하다가 집에 오곤했다.

 

비가 많이 오면 흘러 내리는 강이되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강 줄기는 말라도 산 밑의 웅덩이엔 여름 내내 우리가 멱감기 충분한 물이 담겨 있었다.

이 물은 동네 도랑으로 연결되어 흘러 가기에 고여 있는 물이 아니라서 늘 맑았다.

 

몹시 더운 어느 여름 날이었다.

그 날은 우리 동네서는 좀 부자인  집의 친척으로 그 댁 일을 거들며 그 댁에 와서 사는  분희언니도 자리가 조금 떨어져서 옷을 벗고 있었다.

곁에 있는 또 한 친구가 말을 했다.

“야들아! 저 분희언니 좀 보레이,억수로 젖방티이가 크데이”라고 했다.

그 언니는 우리들보다  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다.가슴이 전혀 없는 어린 소녀들에 비해

풍만한 가슴이 있었으니 아이들은 신기해하며 한마디씩 거들었다.

내 생각에 나이에 비해선 약간은  정신 연령이 좀 낮았던 것 같다.

어린 아이들이 멱감는 곳에  대낮에 큰 가슴을 내 놓고 목욕하러 나온 것이 그것이다.

 

얼굴은 둥실하고 몸집에 살도 많았다.

말도 좀 씩씩거리면서 콧바람을 내면서 말하는  스타일이었다.피부는 하얗고 예뻤다.그런데  얼굴에 여드름 같이 것이 나 있었고 코는 유난히 큰 편이었다.

몸 전체에 비해 입술은 정말 앵두입술처럼 귀엽고 예뻤다.

또 한 친구가 분희언니를 힐긋 보면서 가슴이 진짜 크다고 또 말을 했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함께 고개를 끄덕이며 따로 말은 안했지만 놀랍다 싶은 표정은 마찬가지였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컸겠냐? 싶지만 어린 우리 눈에 그리고 전혀 가슴도 없는 초등학교 1학년들 아이 눈에는 엄청 크게 보였던 것 같다.

친구들과 조심스럽게 소곤거리며 팬티만 남기고 이제 옷을 다 벗었다.물에 들어 가기 직전에 몸을 풀고 있었다.

그 때는 주로 운동회 때 입는 검정 팬티를 우리는 다 입고 멱을 감았다.

수영할 때 입으면 수영복이 되고 체육 시간에 입으면 체육복이 되는 겸용이었다.

검정 팬티 양 옆으론 마치 체육복처럼  2개의 선이 박혀있었다.우리 친구들은 단체복을 입은 것처럼 똑 같은 멱감는 팬디입고 즐겁게 물장구치며 신나는 놀이 시간이었다.

그 당시 검정 팬티는  면이 아니었기에  물을 탁탁 털면 또 금방 잘 마르는 천이었다.

 

몸을 어느 정도 풀어서 이제 물로 들어 가기 직전이었다.

분희언니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5명의 어린 소녀가 소곤거리며 조심스럽게 한 그 말이 그 언니 귀에도 다 들렸던가 보다.

내가 마침 분희 언니랑 제일 가까운 쪽이었다.

다가오는 기세가 보통이 아니었다.삼킬듯이 몇 발작 다가와서 겁이 났다.피할 겨를도 없는  나를 탁 낚아챘다.

우리는 언니가 못듣게  작게 말했다 생각했다.그런데 그 표정으론 우리가 자기 이야기 한 걸 다 알아버린 표정이었다.

눈을 부릎뜨고 기분이 사나와져 있는 눈빛이 고개만 끄덕인 한 소녀의 눈과 마주쳤다.

 

제일 자기와 가까이에 앉았던  한 소녀를 덥석 안아서 자기 오른 무릎 위에 턱 걸쳐지게 안았다.

그리곤 성큼성큼 다짜고짜 물속으로 들어 갔다.5명 중에 걸린 그 한 소녀가 바로 나였다.

그 언니는 물 제일 한 가운데다 싶었던지 나를  빠뜨리고 나와 버렸다.

나는 아직 헤엄을 잘 치지 못할 때였다.

엉겹결에 당한 일에 놀라서 헤우적 대었다.

폭이 좁은 웅엉이이긴 하지만 헤엄을 못치는 나는 ‘이러다 정말 죽겠구나!’싶었다.

친구들이랑 멱감으러 가도 그 안에 깊은 곳까지 아직 가 본적이 없었다.

수영을 배운 적도 없고 헤엄을 잘 치진 못하지만  시골서 자란 아이답게 물속에서 놀 때의 경험이 있었다.

평소에도 물 속에서 헤엄을 치면 앞으로 전진을 한 것을 알았다.

물속에서 힘껏 발로 물장구를 치면서 앞으로 나오려 안간힘을 썼다.

다 나왔다 싶어 서 보면 발이 땅에 닿지도 않는 깊은 곳이었다.

또 힘껏 물속 헤엄을 치면서 안간힘을 다 해서 나와서 서보니 역시 발이 닿지 않았다.

숨을 한 번 위에서 쉬고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가서 온 힘을 다해 움직여 강가로 나오려 애썼다.

여전히 발이 푹 내려가고 땅이 짚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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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힘이 다 빠져가고 있었다.

더 힘을 써서 물속에서 평소 멱감으로 와서 친구들이랑 놀 때처럼 물속으로 힘차게 온 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물장구치며 나아왔다.

다시 두 손을 높이 들고 발을 짚어 보았다.

드디어 발이 땅에 닿았다.

 

친구들은 내가 물에 빠져 죽는 줄 알고 어쩔 줄을 몰라했다가 살아 나오니 박수를 치면서 좋아라했다.

분이 언니도 나를 빠뜨리고 보니 헤엄도 못치는 아이였음이 놀랐을텐데 여전히 분을 못 삭혔는지 식식거리고 있었다.

가슴 크다고 한 것이 그리 분희언니를 화나게 하는 일인 줄 우리는 정말 미처 몰랐었다.

그리고 그렇게 다 들어 버릴 줄도 모르고 우리끼리 소곤대고 했으니 정말 어린 소녀들이긴했다싶다.

큰 가슴을 가진 사람이 멱을 감으러 왔으니 신기하기도해서 한 말이었다.

나는 직접 입밖으로 내진 않았지만 역시 동조자였기에 5명을 한꺼번에 다 빠뜨리지 않고 나 한사람만이었던 것만도 감사해야했다.

동네서 조금 떨어진 웅덩이였기에 누가 도움을 당장 와서 줄 수도 없는 곳이었다.

정말 내가 조금만 더 폭이 넓은 곳이었으면 정말 그 때 물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생각하니 살아 오면서 죽을 뻔한 고비가 몇 번 있었다.

교통 사고가 또 그 하나이다.

오늘 이렇게 살아 있음이 새삼 감사이고 기적이 따로 없다 싶어 더욱 감사하다.

20살에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고 나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라는고백이 되어 감사하다.

예수님 믿지 않을 땐 잘 된 것은 내가 잘 해서 잘 되었고

잘 못된 것은 또 그 이유를 다른 사람이 잘 못해서 라는 식으로 해석하기가 일쑤였다.

 

정말 그 때는 내가 운이 좋아서 그래도 늘 멱감던 익숙한 동네여서

차가 그래도 속력을 많이 내지 않아서 등등…

죽지 않은 이유를 내가 잘 한 부분에서 찾고서 다행이다 싶어했다.

내가 예수님을 믿고 나니 다행이란 표현은 거의 안쓰게 된다.

그저 감사인 것이다.

다행이 아니라 그렇게 섭리해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것이다.

다행이란 말 대신에 감사란 말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나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지!

정말 모든 것이 감사이고 또 감사이다.

그 분희언니는 지금 어떻게 사시는지? 궁금하다.

언니를 지금 정말 만나게 되면 진심으로 사과하고 미안했다고 말하고 싶다.

그 때 얼마나 그 말이 속상하고 상처가 되었으면 어린 아이를 그렇게 물에 풍덩 빠뜨려버릴 정도로 화나 났을까? 싶어진다.

어느 곳에서 사시던지 여전히 건강하게 잘 지내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린다.

지금도 어릴 때 본 그 언니의 그 얼굴이 그대로 기억이 난다.

내가 분희언니 제일 가까이서 멱 감으로 들어가려던 위치였던 것도 감사하다.

내가 또래 5명 중에 제일 몸무게가 가벼웠던 아이였던 것도 감사하다.

분희언니 눈에 내가 제일 물에 데리고 가기 쉬운 아이처럼 보였을 것도 감사하다.

내가 물 속 개헤엄이지만 늘 단련되었던 것이 감사하다.

강 폭이 좁아서 힘 빠지기 전에 나올 수 있었던 것도 감사하다.

그 이후 다른 사람들의 신체에 대해서는 말하면 안됨도 확실히 배울 수 있었기에 감사하다.

같은 동네 친구들과 카톡 방이 연결되어 서로의 어릴적 이야기를 여전히 나누며 오늘의 삶을 감사할 수 있음이 감사하다.

그 때 그래도 개헤엄이지만 물장구 잘 치며 물속에서 잘 움직이던 내가 분희언니한테 잡혀서 살아 나왔음이 감사하다.

혹시라도 다른 친구가 잡혔으면 그 날 또 어떤 일로 이어졌을지 어릴적 일이지만 아찔하기도하고 또 그 일을 내가 당했던 것이 감사하다.

분이 언니가 아마 지금은 60대 초 중반이 되었을 것 같다.

그 때는 정말 미안하다는 말도 못하고 우리 5명은 멱도 못감고 바로 옷 갈아 입고 도망치듯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 이후 종종 멱 감으러 가서 분희언니를 볼 때도 있었지만

우리 모두 절대 가슴 이야기는 안하게 된 것만도 감사하다.

그 때 언니가 혼을 내지 않았으면 아마 우리는 분희언니 가슴 큰 것을 또 장난삼아 말하곤 했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언니는 성숙했고 풍만한 가슴이 참 아름다운 시기였는데 이제 겨우 초등학생이 되어

엄마 젖가슴이 더 가까운 어린 소녀들에게 자기들과 다른 모습으로 멱감으로 온 분이 언니가 정말 신기하기도했기에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저 언니 쮸쮸 좀 보레이,진짜 크데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정말 철부지가 따로 없다.

내가 바로 그런 철부지 시기를 가졌던 아이였다.

우리끼리 정말 무슨 신기한 것을 본 듯이 말했으니 분이 언니가 화도 날만했다 싶다.

정말 살아 오면서 어릴 때 그 철없어 몰라서 남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것이 있었다는 것을  내가 알게 된 것도 있지만

여전히 내가 한 말과 행동이 다른 사람을 속상하게 했고 힘들게 했던 것을 모르고 있는 것도 많을 것이다.

혹시라도 내가 한 말과 행동으로 그 때 분이언니처럼 화나고 속상한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모르고 지내고 있으니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친히 찾아가셔서 나를 이해 할 수 있게 하시고 또 용서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엊저녁에 친정 언니가 지난 주말에 형제들이 모여서 시골에서 어릴적 자랄 때의 이야기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갖었다는 말에

나도 내가 어릴 적 있었던 일들이 생각나서 아침에 새벽 예배드리고 오면서 남편에게 이야기를 했다.

그 가운데 제일 생각나는 어릴 적 이야기가 내가 물에 빠져 죽을 뻔 했던 바로 이 이야기였다.

 

정말 그 때 안 죽게 살려 주신 하나님께 늘 감사를 드린다.

그 때를 생각하면 정말 매일이 보너스이고 특별한 선물임이 감사하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너무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이

예수님 믿고 나니

정말 더욱 깊이 감사의 제목들로 다가오는 모든 것이 정말 은혜라는 고백이 된다.

 

내 삶에 온통 새로운 생각의 전환점,가치관의 전환점이 되어 만나 주신

구주 예수님을 자랑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오늘도 새 날을 주시고 생명 있는 자로서 또 허락해 주신 자리에서

기쁘게 감사하게 삶을 성실하게 아름답게 가꾸며 살아가게 하심을 감사드린다.

 

“다행”이란 말 대신 “감사!”란 표현으로 말을 바꾸는 훈련도 참으로 유익하고 좋다.

“그 때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이 정말 다행이야”

대신에

“그 때 물에 빠져 죽지 않은 것이 정말 감사야!”라는 식이다.

내가 예수님 믿고 나의 언어 표현도 여러 부분에서 많이 바뀌었다.

그 가운데 다행이란 말을 거의 잘 사용하지 않고 대신에 다행이라고 표현되는 부분에 감사로 바꾸어 사용해왔다.

참으로 내게 더 큰 기쁨과 감사가 된다.

내가 그 표현하는 속에 감사가 정말 더욱 풍성하게 커져서 오기 때문이다.

감사하는 표현 속에서 행복은 더욱 더 커져옴을 감사드린다.

 

2017,6,6,현충일 아침에,우리 조국을 위해 희생하신 많은 분들을 생각하며 고개 숙여 감사하며 어릴적 추억 속의 잘못을 통해 새롭게 삶의 교훈을 얻으며 여전히 성장하고 있음을 감사드린다.

2 Comments

  1. ss8000

    2017년 6월 7일 at 6:26 오전

    암만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어린 소녀를 물 속에….
    그래서 그 말이 꼭 맞는가 봅니다.

    갱상도 말로…’까스나 몬 땐 거 젖티만 크다.’이카는 거.ㅎㅎㅎ…
    아무튼 그 분의 가호로 오늘을 영위 하십니다.

    할렐루야!

    • 김 수남

      2017년 6월 7일 at 11:11 오전

      아멘! 네,선생님! 감사합니다,정말 그 분의 가회이세요.선생님이 올려 주신 갱상도 말 보면서
      지금 한 밤 중에 혼자 크게 막 웃었습니다.밭의 고추가 그렇게 타 들어 간 소식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사모님의 온유하신 성품도 뵙는 것 같습니다.영농의 기쁨과 즐거움이 날로 더해 가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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