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더듬으며(여섯번째 얘기)

애들아빠가술에취해울먹이며전화한거였습니다.

"내가잘해준것도없는데아프지말아야지…얼마나다쳤어?어디아프지마.마음이아프다."

듣는저까지괜히까닭모를슬픔에젖어울게되더군요.이런건무슨심리일런지요?아직도미련이?아님

그저상대방이슬퍼하니까저까지제설움에?그러면서동시에괜히현재남편에게도미안해지면서말이죠.

교통사고후엔파트타임으로하던강의도그만두고그저집에서요양을더했고가끔외출도하면서그런날들을

보내게되었습니다.

그리고그해여름,월드컵이열려그야말로매일을흥분속에서보내곤했습니다.축구를좋아하는남편도역시

열심히저와시청했는데한국사람들의열광적응원에아주기가질려버린것같았고자기도역시"아….대한민국"

을외치며(물론한국말로요)따라하더군요.그리고애교스럽게"오예,오예"도하면서요.

2002년의여름은그저축구의열기로생에다시맞지못할많은축구관람과축구얘기로장식된시간이었고

이제곧이나라를떠날저로썬특별한감회가느껴지기도했던소중한순간들이었습니다.

또한그여름엔온가족이모두싱가폴로여행을떠나당분간못보게될석별의정을돈독히나누었던기억도

있습니다.아빠만일때문에빠지시고저희가족과어머니,동생,이모,조카둘까지모두함께한신나는여행

었지요.저와남편은이전에도가본적이있기에가이드에게양해를구하고저희가족들은마지막날근사한

저녁을바닷가에서했었던추억도간직하고있구요.

또하나잊지못할얘기가있는데글쎄싱가폴에서말레이지아를다녀오다국경에서여권검사를끝내고버스에

올라조금가다보니우리둘째조카가갑자기"그런데이모할머니는어디계세요?"이러는겁니다.저흰깜짝

놀라찾았더니이모가안보여버스를세워놓고가이드가전화를해보고그쪽에연락을취하고한참난리를

치다가드디어이모를국경에서발견했다는소식을듣고울면서이모와상봉했던슬프고도웃긴추억이있었습니다.

그렇게아름다운가족과의추억거리도많이간직한채마침내그해12월19일저희네명의가족은눈씨울을

붉히시는부모님과동생,이모,조카들을뒤로하고캐나다행비행기에몸을실게되었고그렇게이국에서의새로운

생활을기대하며떠나게되었습니다.

저는짐을꾸릴때남편회사에서경비를다부담해주기에있던물건,쓰던것들을다챙겼고비행기탈때도

역시짐을있는대로다꾸리고우선가서먹을밑반찬이나부식들을알뜰히싸왔었습니다.그런데그게그만

들려가는L.A.공항에서망신을톡톡히당하게되었습니다.

짐을찾아서다시짐검사를받는데워낙많은가방도문제였지만그것보단핸들링하는가방에서이상한냄새가

나는것이었습니다.다른사람들은몰라도저는바로그냄새의정체를알수있었는데사태의심각성을깨달고

화장실로달려가휴지로닦고물로닦고별수를다써보고향수까지꺼내서뿌려보아도좀처럼냄새가사그러들지

않아당황스러웠던악몽이지금도새롭게상기되는군요.

바로냄새의정체는’액젖’이었는데잘싼다고싼것이그만새서냄새가나는것이었습니다.

가서우선김치라도조금담아먹으려면있어야할것같아서가지고온것이다새어버리고냄새가나서화장실에

버리고뒷처리에많은시간을들였는데남아있던’조선간장’까지냄새가나는것같고민망하기그지없었지요.

아이들은얼굴이빨개지면서대놓고뭐라고할수도없고당황해하면서"아..엄마..어떻해요?"이러고또남편도

조금민망해하는얼굴을하는데쥐구멍이있다면찾아들어가고싶을지경이었습니다.

문제는비행기를타러다시한번더미국세관검사대에이르렀을때인데검사원인뚱뚱한흑인여자가큰소리로

"Whatthehellthesmellisthis?"하면서수선을떠는것이었습니다.다른검사원이모여들고가방을열어보고

뒤지는데저가설명도하기전에웬흑인남자검사원이"Iknowthissmell.Ihaveafriend.Thisisthesmellof

fishsauce"이러면서해독성은아니라는친절한(?)설명을해주더군요.

아얼마나고맙던지…그러면서도여전히부끄럽고’아내가정말나라망신다시키네….’하는후회가물밀듯이

드는거였습니다.방향제를뿌리고워낙오버하는흑인녀의수선스러움을충분히(?)감상한후저흰몬트리얼행

비행기에몸을실게되었던것입니다.

비행기안에서도계속냄새가나는것같아불안해하며몬트리얼도착때까지마음을조마조마졸였던기억이

생생합니다.더우기그비행기는소형이었기에공간이많이좁아더욱신경이쓰여지는것이었습니다.

그렇게온갖쇼(?)를다부리며드디어몬트리얼공항에도착하게됩니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