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시대는거대함의시대다.”
-오르테가이가세트가지은‘대중의반역’중
누군가오늘의한국을가장잘알수있는곳을묻는다면저는고개를들어서울시청앞광장을가리키겠습니다.어떤분들은‘다이내믹코리아’의상징적공간이라는점에서흐뭇해하실것이고,어떤분들은민족주의과잉분출의공간이라고미간을찌푸리실지모르겠습니다.저는다른문제의식을말하고자합니다.그것은“대중이한국사회의최대화두(Themassmatters)”라는문제의식입니다.
현대는대중의시대입니다.정치적으로는대중민주주의의시대이고,경제적으로대량생산과대량소비의시대이며,문화적으로는대중문화의시대입니다.그런데새삼대중이왜문제냐구요?한국의대중은20세기비로소탄생하고성장했지만독재권력과독과점재벌이라는강력한경쟁자들이존재했습니다.그러나21세기에접어들면서대중은한국사회의명실상부한주역이됐습니다.이제권력도대중앞에서꼬리를치기바쁘고,자본도대중앞에고개를숙였습니다.
그것을상징적으로보여주는공간이서울시청앞광장입니다.올해초서울시는월드컵기간그광장의사용권을‘경매’에붙였습니다.대기업과언론사들이컨소시엄을구성해이경매에뛰어들면서서울시에엄청난물량공세의공약을펼쳤습니다.도대체무엇이시민의공유공간을상품화하겠다는얼토당토않은발상을낳은것일까요.많은이들은이를추진한서울시를비판하지만그배후에는그공간에모여들어마어마한대중의상품가치가숨어있습니다.얼마만큼많은대중을동원할수있느냐는곧돈의문제(Themassismoney)와직결된다는점은TV가쏟아내는엄청난월드컵관련광고들에서도쉽게찾을수있습니다.
대중이곧권력(Themassispower)이라는점은2002년월드컵의열기를이어받은촛불시위가그해대선의향방을결정지었다는점에서이제한국사회에서는상식이된지오래입니다.마오저뚱(毛澤東)은“권력은총구에서나온다”고말했다지만21세기한국에서권력은대중의심기(心氣)에서나옵니다.2004년총선과올해5․31지방선거의극명한표쏠림현상은이를여실히보여줍니다.바쁜국사를논의해야할국회의원들이무리지어‘꼭짓점댄스’를추는것이무엇보다중요한정치이벤트가된세상은그서글픈초상의일부에불과할뿐입니다.
이를‘민주주의의승리’라고말씀하시는분들도계십니다.그러나제게는이모든것이몹시불편합니다.절대권력은절대부패한다는말이진실이라면이는대중에게도해당돼야하는것이아닐까요.더군다나그대중이민족이니민중이니하는지고의가치를지닌존재로포장된다면그권력의절대화는더욱경계해야하는것이아닐까요.
“대중이란평균인이다.이처럼단순히양적인의미의군중이이제질적특성을지닌존재,곧공통의자질과사회적무소속성을특징으로하는존재,자신을타인들과구별하지않고오히려일반적유형을되풀이하는사람으로전환된다.…대중이란특정한기준에따라자신에대해선악의가치판단을내리는것이아니라,자신을‘다른모든사람들’과동일시하면서불편함보다는편안함을느끼는사람들모두를의미한다.”
스페인출신의문인이자언론인이었던오르테가이가세트(1883~1955)가‘대중의반역’에서매섭게비판한대중의모습은오늘날한국사회의주역이된대중과놀랍도록닮았습니다.1930년출간된이책을현대인이읽는다는것은확실히불편한일입니다.우리가그가그토록비판한대중의시대를살고있는주인공이기때문입니다.특히80년대를거치며민중문화의세례를받은사람에게이책은엘리트주의에빠진철지난자유주의지식인의요설로읽힐가능성이매우높습니다.
“최근의정치혁신이란바로대중의정치지배를의미한다.과거의민주주의는자유주의와법에대한정열로넘쳤다.그원리를실현하기위해개인은까다로운규율을자신에게강제로부과했으며,소수는자유주의의원리와법률의보호아래생활하고활동할수있었다.민주주의와법,그리고그에따른공동생활은동의어였다.그러나오늘우리는과대민주주의를목격하고있다.여기서대중은법을따르지않고,직접적인행동을통해물리적압력을행사하면서자신들의열망과욕망을실현시킨다.”
이런묘사는부산아시아태평양경제회의(APEC)반대농민시위와평택대추리미군기지반대시위등에적용한다고해도전혀무리가없습니다.이시위에앞장서신분들의주장에는분명귀기울일부분이있습니다.그러나그것을관철시키기위해사용하는방법은민주주의나법치주의와거리가멉니다.그들은자신들이곧국민이고,자신들이반대하는것은절대받아들일수없다고엄포를줍니다.자신들의이해관계는처절한생존권이고,다른사람들의이해관계는무조건기득권입니다.자신들의열망과욕망은순수한것이고다른이들의그것은추악한것입니다.
문제는이처럼우리시대권력의핵이된대중을견제할기관이없다는점입니다.정치권력과기업에게얼마나많은대중을동원하느냐는이미사활이걸린문제가됐고,전통적권력견제기관인언론은그속성자체가대중매체(매스미디어)라는점에서대중으로부터자유롭지못하기는마찬가지입니다.아마도법치주의를상징하는사법부가유일한견제기관이라할수있겠지만그최종결정권을지닌헌법재판소역시대중의시선에서자유롭지못합니다.문화계도마찬가지입니다.출판,영화,공연,가요분야갈릴것없이모두작품성보다대중적상품성을강조하는시대입니다.
따라서전면적대중지배의시대에서가장중요한것은어떻게하면더많은대중을효과적으로동원할수있느냐는대중동원의기술입니다.정치에서는정책보다는홍보,경제에서는이노베이션보다마케팅,문화에서는작품성보다흥행성이중요한시대가되는것이지요.우리시대의주역으로주사파출신386세대가부각된점은그래서더욱의미심장합니다.이들이2002년대선에서승리할수있었던것은이론중심의노선투쟁이극심했던학생운동을엄청난규모의학생대중운동으로전환시킨노하우를지니고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주사파를학생운동의주류로전환시킨김영환(일명강철)씨는서울대언더서클에서도비주류서클(고전연구회)출신이었습니다.그런그가단숨에학생운동을장악할수있었던것은복잡한현실문제에대한진단과해법을단순화시키면서학생운동의역량을직선제쟁취라는단일목표아래극대화시키는동시에‘주체사상’이라는금기의영역을건드려대중의호기심을자극하는데성공했기때문이었습니다.이처럼대중화의성공요인은단순화,극단화,자극화입니다.386출신정치인들이내공이부족하다는비판을들으면서도현실정치에서성공할수있었던이유는이들만큼대중을다루는일에잘훈련받은이들이드물었기때문은아닐까요.
자그럼이런대중화의폐해를극복할해법은무엇일까요.그것은대중화자체에대한대중의거부를통해이뤄질수밖에없습니다.프랑스상징주의시인말라르메는소수의청중은곧다수의부재를보여준다는역설적말을남겼습니다.멋을부리자면진정한개인의출현이이뤄질때,쉽게말하자면저마다의개성을추구하는사람이많아질때자연스럽게해결될것이라는것입니다.자신을다른모든사람들과동일시할때편안함보다는불편함을느끼는사람들이점차많아지는세상이될때비로소우리는우리자신으로부터자유로워질수있습니다.80년대우리에게대중이라는거대한신화가필요했다면지금우리는그거대한신화와결별할용기가필요한시대를살고있습니다.
P.S.축구의계절이돌아왔습니다.서울시청앞광장과광화문청계천광장이들썩이고있습니다.축구팬들이이렇게많아졌다는것은고마운일입니다.그러나축구팬의한사람으로서이해하기힘든일이하나있습니다.’내가보면꼭진다’면서축구경기를보지않는팬아닌팬들이TV광고에까지등장하는현상입니다.축구를진정사랑하는팬이라면지는경기라도끝까지시청해야합니다.왜냐하면거기공이던져져있고,국적에상관없이사람들이그공을쫓고있기때문입니다.한국팀이이기면더욱즐겁지만설사진다하더라도경기자체를즐기는일을포기해서는안됩니다.또한한국팀경기만큼다른팀의경기도즐기줄알아야합니다.다수의부재를즐길줄아는소수의청중,그것이진짜축구팬의조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