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딩동창들을만나기로한곳에도착해보니한무더기의아저씨들이앉아있는데불행히도
기억나는얼굴은하나도없는겁니다.미안하기도하고,난처하기도하고그랬는데얼굴을
기억하는건나중문제라고해도일단호칭에서부터어색한게영어찌할바를모르겠는게
더큰문제였습니다.솔직하게표현하는평소의저답게이렇게말했죠."호칭을어떻게해
야하나…요?"

그러자모두들"당연히반말이지~"라고하는데거기에전또"그런데앞에계신분들이워낙
저보다한참아저씨들같아선뜻반말이안나와요.ㅎ"라고대답할수밖에없었습니다.그
다음반응은말씀안드려도짐작이되시죠?여기저기서"아고!못말리는분여기또오셨
네~"하는말과표정들이한아름제게쏟아졌죠,뭐.

처음에는그랬는데시간이흐르면서괜찮아졌습니다.나이가먹어서인지(아니사실로말하
자면그것보다는제자체가많이변했다고생각합니다)아무런스스럼없이외간남자들(?)과
대화가잘이어지더라구요.정확히말하자면그아이들과공감되는구석이라곤같은학교를
다녔고,함께기억하는선생님몇분이계시다는그정도인데도이상하게같은시대,같은학
교를다녔다는것만으로도충분히괜찮은(?)공감대를가질수있었던겁니다.

참,제가그아이들과공감되는구석이거의없다고말하는이유는요.저희학교는아주어렸
던초딩3학년까지는남녀합반이었지만4학년부터는여자반,남자반이렇게갈라놓았었기에
기억나는이름,얼굴이없었던건물론,추억도없었던것이너무도당연한일이었기때문입
니다.거기에전또기억력이아주나쁜편이라서더욱희미한기억으로애를먹었구요.

참,그리고또하나제가도착했을때에는여자동창은한명도없었고다남자동창들뿐이었
기에더욱처음에는어색했답니다.태어나처음가본초딩동창모임,가운데토막의세월은
훌쩍뛰어넘고만나게된친구들이니안그러겠어요?게다가다들머리도슬슬벗겨지는진
짜아저씨들이니.참참참….

그런데대화를이어가면서얼굴들을찬찬히뜯어보니기억이조금씩나는얼굴들이있었습니
다.처음에제게전화를했던친구가어린시절에도얌전하고진중한편이었던것도기억나고
또공부만하는학구파였던아이도생각나고,오며가며본것같은친구도있었구요.아무리
노력해도전혀기억이없는친구도물론있었습니다.

처음에도착했을땐네명의친구들이있었는데한명,두명명수가늘어나면서점점더화기
애애,혹은애매한분위기가되어갔고,그중한명이절보더니반갑다면서다른아이들은기
억도못하는이야기를꺼내서친구들의야유를들어야했습니다.제자신도전혀기억에없는
이야기인데아침조회때제가혼자맨앞에나와서북을쳤다네요.교장선생님이시켜서말
이죠.자기는그모습을또렷히기억한다면서제가부채춤추었던것까지다기억을하는겁
니다.어린시절제가고전무용을배웠었거든요.그렇게말하는친구에게당연히다른친구
들의아우성이대단했죠."너,정생이좋았했었구나!~"뭐이런조크를파장때까지들어야
했는데그래도그친구싫은표정없이끝까지잘버티더라구요.ㅎ

삼겹살에술잘못마시는저를배려해서산사춘한병도주문하고,지글보글고기와된장찌게

를먹으며이런저런얘기를나누다가한여자동창에게서전화를받았는데이번에도역시넘

미안하게그아이의이름은기억이안나는거에요.할수없이솔직히얼굴과이름이연결이

안된다고자백(?)하고는분명히얼굴을보면기억이날거라고제자신과그친구를위로했답
다.이럴때난처한기분아시는분들은다아시리라믿습니다.휴~

그친구는다른모임이있지만조금후에합석하겠다고약속을했고,우리모두자리를옮겨
다음장소로갔습니다.여자동창의친구가경영하는카페라는곳으로말이지요.두대의택
시에옮겨타고는도착해서좀있다보니여자동창이도착을했고드디어얼굴을알아본저와
그아이는또한참이야기꽃을피웠습니다.역시시간의공백이무색할정도로이런저런대화
를나누며줌마들의수다가이어졌는데그때부터남자동창들의원성이높아지더군요.끼리
만얘기하기없기!!뭐이러면서말이죠.

그렇게동창들과생전처음으로진하게회포를풀고집으로돌아오려는데여자동창이슬쩍
제게돈을쥐어주었습니다.제가"이게뭐야?"했더니택시타고가라면서회비에서주는거라
고거절하는제게한사코쿡찔러넣어주더군요.제가또"그런데웬돈을이렇게나많이줘?"
했더니그냥택시타지말고모범타고가래요.11시가넘어버렸으니위험하다면서요.ㅎㅎ
그래서할수없이차비까지받아들고카페를나섰습니다.

방향이같은한친구와택시에올라시원한바람을맞으며집으로돌아오는데왜그렇게나기
분이묘한것인지.같은날보고싶었던분들과친구를한꺼번에만나게되면서삶의불예측
성,우연성,오묘함을또한번진하게느끼고나니정말세상살이의본질을조금또맛본것
같은기분이었다고나할까요?그냥모든게다축복이고,감사해야할일인것같았습니다.
그냥차분하면서도뭉근한기쁨으로가라앉는느낌에제몸과마음을맡겼던밤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