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행을 통해 느낀 독일의 두 면모 外
이글은지난조선일보사이버신춘문예공모가있었을당시디카에세이부문에응모했었던글을다시

올리는것이랍니다.그래서사진이나일부글이제여행기와겹칠수도있을겁니다.재작년부터두

번이나공모에응모했었고,수상에는들지못했지만나름재미있는경험이었습니다.^^*

지난10월말독일의수도인베를린을방문할기회가있었다.이미1997년,같은10월에친구가살고

있는마인쯔를비롯독일의몇도시를여행한적이있었긴했지만그때가보지못했던그곳을얼마

전에가보게된것이었다.10년만에방문한독일은예전에내가기억하고있던그대로의이미지를

유지하고있었다.비록베를린은처음이었지만깨끗한거리,너무친근하지도,너무차갑지도않게

적당히외국인들을대하는그들의사려깊어보이는모습까지10년의세월이무색할만큼익숙하게다

가왔다.그리고타유럽국에비해영어로의사소통하는것이쉬웠던걸기억해내어더욱친근감을

느낄수있었다.그렇게첫날부터전혀어색함이나낯설음없이지낼수있었는데그건아마남편이

먼저도착해있어서나에게배당되는번거로운절차가생략되었기때문이아닐까싶기도하다.

베를린하면우리와는인연이깊은도시라는감회가있는데바로우리나라최초의올림픽메달리스트

인손기정옹께서바로이베를린에서목에금메달을걸었었지만그당시일본의식민지였던우리는기

쁨속에울분까지함께삼켜야했던쓰라린과거를잊을수가없기에그럴것이다.그리고또하나,

일과대한민국이세계에존재했던단둘의분단국이었지만1989년독일은이베를린이라는도시의장

벽이허물어지면서한나라로통합되었기에,이제우리가유일한분단국으로남았다는것역시도베를

린을우리가기억할수밖에없는이유라여겨진다.

베를린은독일이합쳐지기전부터동독의수도였고,통독된지금도여전히독일의수도로남아있는만큼

타독일도시에비해여러가지볼거리가더많은게사실인것같았다.그리고베를린을떠나기전베

를린에대한공부를전혀하지도않았었고,그곳에도착해서남편이미리사놓은책자를봤던게베를

린에대한지식을얻은전부였기는하지만내눈으로직접돌아본베를린만으로도이도시의매력과문

화적,역사적아우라를느끼기에충분했다고생각되어졌다.

유태인박물관

‘TopographyofTerror’

이번베를린여행을통해서내게각인된독일의이미지는크게두가지로나눌수있을것같다.

과거를반성하는독일과과거의영화를기억하는독일로말이다.

우선독일은예전의과오에대해서분명히인정,인식하고,그걸숨기기보다는차라리후손들에게자신

들의치부를드러냄으로그와같은비극이다시는발생하지않기를진실로원하는듯보였다.더불어

그들은자신들이저질렀던만행을적나라하게드러내어그곳을방문하는모든이에게그사실을주지시

키므로자신들을단죄하려는이들에게떳떳해보임과동시에그들스스로충분히대처해나갈수있음을

보여주고있는듯했다.역시이성적이고,자긍심많은민족다운처세라여겨졌다.혹자는그들의그런

태도역시지나친자만심에서나온순수하지못한동기로치부하지만,뻔한사실을여전히손바닥가지고

하늘가리는식으로숨기려고만드는일본과비교했을때그들의용기에일단박수를보내고싶은마음이

드는것이비단나만의심정일까?

그들의그러한반성과용기의흔적을볼수있는대표적인곳이두군데있었는데,바로유태인뮤지엄’과‘TopographyofTerror’(공포의지형학?)이었다.나찌당수히틀러가멸살시키려고했던유태인들의역

사와문화를비롯,그들의비극을기억하자는의미에서역설적으로이름붙여진‘기억지우기’공간까지

갖추고있는유태인뮤지엄’은그곳을돌며관람하는내내숙연한분위기가유지되었는데그곳에서우연

히청소년들에게뮤지엄소개를하고있는선생님을보면서독일민족의저력을다시금느낄수있었다.

절대눈으로보여지기위한학습이아니길소망하면서말이다.

홀로코스트로희생된유태인들을기억하기위해만들어놓은광장

신기한것이본격적인베를린관광첫날갔던곳이유태인뮤지엄이었다면,방문마지막날가보게된

곳이바로‘TopographyofTerror’이었는데이것또한우연의일치라고만볼수없는분명한의미가있

다고느껴졌다.잘못된과거의행적에대해서용서는하되,절대로잊지는말라’는교훈을새기라는의

미로말이다.흔히우리민족성은빨리끓고,빨리식어버리는냄비에비유되면서‘절대용서못한다.

그러나,잊었다.’로대변되기에,이런악습을반성하고재인식하라는의미에서운명의여신이날거기로

이끌었던건아니었을까?나역시다혈질적이고빨리잊어버리는,전형적인한국인기질이다분하기에

더욱그런생각을해보게되었다.

‘TOT’는동,서를가르는베를린장벽이쳐져있던곳과연결되어있는,옛나찌정권의대표기관인게스

타포와SS본부건물이있던자리에위치한야외뮤지엄이라고볼수있다.1987년베를린750년기념

행사로첫전시가시작된이래열린공간으로유지해오고있는데,1992년에이르러서야마침내재단이

발족되었고새로운건축가를앞세워영구적인뮤지엄의모습을재건하려고했지만,기금문제등으로

인해아직완성되지는않은채여전히설계와건축이진행중이다.

그곳에는나찌당원들의만행이적나라하게전시되어있는것은물론,무고한유태인들을살리려고노

한목회자,일반인들의사진을비롯해게쉬타포감옥,정치범들을가두웠던독방,악명높았던게쉬

타포군인들과SS요원들모습,1945년게쉬타포,SS본부가폭격당했던당시의사진등다양한사진과

문서가전시되어있다.너무도처절한역사의현장을둘러보며처음에는섬뜻함과아울러가슴이싸해

졌지만시간이흐르면서우리가왜역사를보존해야하는가에대한답을얻었다는감동과깨달음이가슴

속에밀려왔다.역시역사란지나간단순한과거가아니라우리에게미래의방향을제시해주는길잡이

된다는걸배운귀중한시간이었다.

이렇게과거를반성하고있는독일의모습을본게한면이라면,또다른면모의독일을느낄수있었던

계기는바로독일의옛영화에대한그들의대단한자부심을보여주는프로이센시대의두성을방문했

을때였다.이름하여‘SchlossCharlottenburg’(샤를로텐부르크성)과‘SchlossSanssouci’(쌍수시

).한곳은베를린시내에있고,또한곳은베를린에서조금떨어진교외이자유네스코에서지정한

세계문화유산도시인포츠담에있었는데두곳다멋지고도넓직한정원과조경이인상적인곳이었다.

건물의양식은바로크와로코코라고하는데,두곳모두성내부를사진찍을수없어그게좀안타깝긴

했지만선조들의문화유산을잘보존하려는그들의강한의지로받아들였다.

먼저샤를로텐부르크성은베를린에서가장큰성으로원래는프리드리히왕이그의아내소피샬롯을

위해여름별장용으로지은것이라한다.2차세계대전때많이손상되어그후다시복원되었고,특히

처음에바로크식으로설계되었던정원은19세기에다시영국식으로재설계되었는데이는독일에서도

손꼽아주는가장인상적인정원중하나라고한다.길게펼쳐져있는정원의오른쪽끝에는‘벨베데르’

라는도자기를전시한곳이있었고,그곳에서대각선으로왼쪽에는프리드리히왕과왕비의묘가있는

마우솔레움’이라는납골당이있었다.내가방문했던날,마침비가조금씩뿌려더욱운취를자아내었

는데가을도좋지만여름에방문하게되면화사한꽃들을구경하면서산책을즐기기에아주안성맞춤일

듯싶었다.

성의내부에는그들의영화스럽고찬란했던과거를짐작할수있는각가지화려함의극치가전시되어

있었는데특히나중국도자기들이2,700여개넘게전시된도자기방’과프로이센로코코스타일의화

한천장과프랑스그림들이인상적이었던골든갤러리’가멋졌고,그밖에도성내부에마련된교회,

고전주의식프리드리히빌헬름2세와그의아내퀸루이즈방까지한때유럽최강의군사대국이었던

프로이센의위용이그대로드러나보였다.

그리고베를린을조금벗어난곳에위치한쌍수시성은일단그광활한성의규모에서부터나를압도

했는데독일의베르사이유라는명성대로드넓은대정원,궁전과중국찻집,지역이름을붙인여러정원

들이독특하면서도단정하게자리잡고있었고,무엇보다멋졌던것은넓은공원에그림처럼흩뿌려져

있던늦가을의낙엽과상큼한공기가아니었나싶다.또이성을방문했던날은전형적인가을하늘의

청명함이맘껏드러나는,눈이부시게푸르른날이었기에더욱자연앞에서미약해지는내자신을느

끼며동시에겸허한마음이될수있었다.그리고이곳을거닐면서문득,프리드리히2세역시나와같

은감상에젖은적이있을까궁금해졌다.

쌍수시가의미하는대로아무런‘걱정없이’이공원을맘껏거닐다보니또문득이런의문이뇌리를

스쳤다.과연대프로이센제국의왕이나왕비쯤되면아무런걱정이없었을까,아니면일반사람들

보다훨씬많은걱정으로이렇게따로마련되어진궁에서머리를식혀야만했을까란거였는데역시

지위가높이올라가면갈수록챙겨야할것도많고,봐야할것도많으니당연히골치가더아팠을

라고,그렇지않은나는오히려얼마나행복한사람인가란내나름대로의결론이내려졌다.물론

런내결론이내멋대로식해석이라고누가비난한다해도반박할순없겠지만말이다.

이밖에도독일의영광스러웠던과거의흔적을엿볼수있던곳은여러곳이었지만이야기가너무길

어질듯하여이쯤에서멈춰야겠다.대신지금의독일,통독후18년이지난베를린의현재모습에서

느껴지는독일이라는나라는여전히세계적으로인정되는그들의견고함이두드러져보였다는것이

.뭐라고표현해야할까?웬지독일의제품들은무조건믿을수있다는높은신뢰성이느껴지면서

뭐든좋아보였다고말하다면충분할까?아님지나친표현일까?그들과함께일을하면서다소까다

로워보이는그들의완벽주의적사고방식이결국은서로에게이익이란걸깨달게되었다는남편의말

에서도그들의합리성,실용성을발견할수있었지만,나는하다못해내가먹어보았던음식에서부터

사용해본생활용품들까지내가경험한독일의모든것에다대만족이었다.무엇이든기본에충실한

그들의태도와성실성이오늘의강인하고도견실한독일이미지를만든게분명하다는것을재삼느

꼈고,또확인한셈이었다.

그리고이번베를린방문에서또하나느낀점은베를린의건축조형미가빼여나다는것이었는데뭐

하나똑같아보이는건물을발견하기가어려웠던게사실이었고,인간의아이디어란참으로무궁무진

이란걸새삼깨달았다.실용적일뿐만아니라그들의심오한심미안과철학이엿보이는건축미학에

탄성과경의를보내게되었다.후에마인쯔에있는친구와통화를하면서나의이런감상을이야기했

더니그러지않아도베를린이건축학으로유명한도시라서많은이들이이곳에건축과설계를공부

하러유학온다는얘길들려줬다.~역시그랬구나~하면서다시한번눈여겨그들의건축물들을

관찰하게되었고,이후더욱부러움과애정어린눈길을보내게되었다.

이렇게해서나의짧고아쉬웠던8일간의베를린여행이끝마쳐졌다.그러나훗날을기약하며기대

와설레임속에다른곳에서,또다른느낌으로미지의세계를다시만날것을고대하는마음으로비

행기에오를수있었다.왜냐면이번방문에서는열차노조파업으로인해마인쯔에있는친구를만나

보지못해많이섭섭했는데남편의일로마인쯔와가까운프랭크프루트를내년초쯤재방문할기회

가있을듯해서말이다.더불어그동안그리웠던아이들과동생네가족을빨리만나흥미로왔던여

행이야기를비롯이곳에서의생활을들려줘야지~결심하면서,잠시의외유를마치고다시일상으로

돌아가는마음의준비를다지면서베를린에서의그간즐거웠던추억들을뒤로한채마침내비행기와

함께날아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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