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인생은 도가니”

정식으로글쓰는걸배워본적도없고,그래서배워야할게너무도많지만그럼에도오랜시간블러그

를하다보니제소식을알고제가쓴소설을궁금해하시는분들이계셔서부끄러운마음을무릅쓰고

캐나다한인문인협회에올려진걸그대로옮겨봅니다.캐나다한인문인협회에들어가시면글을보실수

있지만절차가번거로우실것같아서라는걸이유로,또제글을읽으시고조언을주시면제자신피드

백도되고좋을거라는기대로말입니다.관심가져주신모든분들께감사드립니다.

2013년신춘문예입선소설

인생은도가니(MeltingPot)/이정생

1.유진

나의이름과얼굴이어울리지않는다고생각하기시작한건어느정도철이들었다고볼수있는내나이여섯살때의일이다.

주변에보이는대부분의아이들이나와는어딘가달라보이는것도그렇고,특별히나의찢어진듯날카로워보이는눈이예전부터맘에들진않았지만그때까진내이름과얼굴이어울리지않는다는생각은하지못했었다.

그런데여섯살이되었을때우연히TV를보다가거기나오는나와비슷하게생긴여자아이가나나주변아이들과는전혀다른이름을가지고있다는걸알게됐다.

그리고생전처음들어보는낯선이름과그아이를보면서왠지그둘이잘어울린다는느낌을받게됐다.

그러면서동시에나의이름과얼굴은어쩐지균형잡히지않은내강아지루비의얼굴과몸매를닮았다는생각이순간들었다.그래서그날,나는일터에서돌아온엄마에게이렇게물었다.

엄마,내이름은내얼굴과어울리지않아.왜그런거지?”

나의이말에엄마는잠시놀란얼굴을하더니내게이런질문을던졌다.

누가너에게그런말을한거니,아니면네가스스로그렇게생각한거니?”

난그건그냥내머리속에서나온것이라고대답했고,그런생각을하게된이유에대해서는제법소상하게이야기했다.그랬더니엄마는냉장고로가서차가운우유를꺼내두잔을따라나를엄마옆에앉게한후,한잔을내게내밀며말했다.

이우유를마시면서우리이야기좀나눠볼까?”

그렇게해서그날나는지금의엄마,아빠를만나게된사연을듣게되었다.

결혼후아무리노력해도아이를가질수없었던엄마,아빠가입양기관에보내졌던나를한국’이라는나라에서데려온이야기전부를알게된거였다.

그리고그이야기를듣는순간,나는TV에서보았던나와비슷하게생긴아이를내심부러워하고있었다.그렇다고지금까지의내생활이불만스럽다거나그런건아니었지만자기를낳아준부모와자기가태어난땅에서살고있을그아이와나는결코같을수없다는생각이순간스쳤다고나할까?

이쯤에서우리엄마,아빠에대한소개를조금해볼까한다.

우리엄마와아빠는두분다대학에서학생들을가르치는일을하고있고,사교적이라기보다는늘조용히혼자만의사색이나책읽기를즐기는분들이고,내가잘못했을때엔아주침착한어조로나를야단치시는많이온건한분들이다.

하지만엄마에비해아빠는나에대한욕심이좀지나친편이라내가학교성적이좀떨어졌다싶으면당장큰일이라도나는듯날훈계하고,가끔은큰소리로내게화를내기도한다.그리고엄마는차분하고이지적이지만,완벽주의자같은면모를가지고있어서차라리때로는솔직하게감정을드러내는아빠를상대하기가더편하게느껴질때도많은데,아무런말없이그저완고한눈으로나를바라보는엄마가더두렵게느껴지는걸보면이건전적으로옳은판단이라여겨진다.

우리부모님의양육방식은대체로자유주의에가깝긴하지만그들이정해놓은어떤기준에서벗어나는것에대해서는호된꾸지람도아끼지않는,말하자면자유주의와원리원칙주의를절충하는식이다.

그리고두분다자신들의사고와가치관에대한자부심이꽤강한편이고,생활방식이나준법정신또한대단히건전하신분들이라이런자신들이양육하는자식또한그들의의식과행동양식과상당부분같아야하고그들의뜻을이해하고따라와줘야한다고생각하시는분들이다.

두분께선또내가한국출신이니한국어를배우는게좋지않겠느냐고내나이일곱살부터내게줄곧권유하셨는데그때마다번번히난아직준비가안되었다는변명으로거절했었다.그리고이일은그분들의의사에따르지않았던나의첫항명이었던걸로난지금까지기억하고있다.

그럼이번에는내자신에대한이야기를조금해야겠다.

내이름은유진가뇽.내가살고있는곳은캐나다의동부에위치한퀘벡주,몬트리올이다.유진가뇽이내얼굴과어울리지않는다는걸발견한내나이여섯살이후로다소혼란스러운삶을살아온건사실이지만,그래도난그이름이나와대체적으로잘어울린다는생각을하면서지내오고있다.지금난열여섯살이고,세콩대어5학년에재학중이다.

되돌아봤을때지금까지는얼추아빠,엄마가원하는방향으로내자신잘자라왔다고여겨진다.학교생활도그만하면충실하게한편이고,때론부모님을기쁘고자랑스럽게만들어줬던순간도있었으니까.

하지만언젠가부터,아니엄밀히말하자면나란존재와얽힌탄생의비하인드스토리를알게된그순간부터나는진정한나와겉으로보이는나사이의괴리감사이에서심각한고민에휩싸여왔음을고백하지않을수가없다.지우려고해도도저히지울수없는괴물같은형상하나가내가슴속으로깊숙이들어와버려서나는그것에맞서야했으니까말이다.

게다가나는나의정체성을제대로알아내고싶었지만그건애초에불가능한일로여겨졌다.내가알고있는것들과그밖에내가알지못하는것들,그리고무의식,또는잠재의식,그것말고도앞으로내가더알아야할것들,그외아마도영원히내가알아낼수없을지도모르는것들을생각하며나는자주가쁜숨을몰아쉬곤했다.차라리내존재의비밀에대해서몰랐었더라면더좋았을걸하고생각해본적도있긴하지만,그건엄밀히말해서불가능한이야기라는것도잘알고있다.

진실을,더군다나눈에확드러나는진실을영원히감출수는없는법일테니까.

여섯살이후로나는아빠,엄마보다는지금은이세상에존재하지않는나의애완견루비와생사고락을같이했다고보는게더옳을것이다.물론아빠,엄마라는존재에의지하고그들과쌓았던유대감이깊었던것도일면사실이지만,실질적으로내가느꼈던위안또는일종의동류의식비슷한감정에대해말하자면그건루비와더깊었던게진실에가깝다.

그런의미에서보자면나의삶은루비가세상을떠난몇달전,무한한상실감으로크게한번휘청거렸던경험이있다.아니얼마전까지도그여파는대단한것이었다라고말하는게더옳겠다.

루비와의만남에대해말할것같으면루비는동생을원하던내게엄마,아빠가준깜짝선물이었는데,루비가처음우리집에들어온그날의느낌을나는결코잊을수가없다.새하얀강아지가꼬물거리며자그마한쿠션위에서고개를파묻고있던모습,그건내가세상에태어나처음으로맞닥뜨린생명체와의교감이었고,생명의신비를내게느끼게해준첫경험이었다.

새하얗고보드라운털에쌓인생명체가꼬물거릴때마다나는손가락의힘을있는대로다빼고그생명체를쓰다듬었다.

그런데가만히살펴보니그생명체는몸에비해얼굴이좀크다는느낌이들었다.

하지만그럼에도그얼굴은또너무도순박해보여나는단박에그강아지가나의최고의친구가될걸그즉시예감할수있었다.

그렇게만난루비와나는12년을함께동고동락했다.루비는내가가는곳은학교를제외하곤어디든따라다녔고,잠도늘내옆에서잤다.심지어내가샤워를할때조차아빠는못들어와도루비만큼은늘내곁에서나를지켜볼수있는특권을가진유일한이성(?)이었다.

내가학교에가는아침이면루비는문앞을지나스쿨버스앞까지나와서나를배웅했고,내가학교에서돌아올때가되면창문곁에서나를기다리고있던나의충실한벗이자영혼의동반자였다.불어식표현으로하자면루비와나는영혼을반씩나눈<DouceMotié>였다.

그러다교통사고로루비를잃고나서난한동안망연자실하여삶의의욕을모두잃어버렸었다.그건내가가진모든것을다잃은느낌바로그것이었는데세상에서오롯이나만의것을,내가가진모든거라고믿었던걸다잃어본사람이라면나의이말이뭘의미하는지아마이해할것이다.

거의몇달을잘먹지도,자지도못한나는점점바싹말라갔다.동시에나의신경은아주예민해져별것아닌일에도곧잘화가나고,눈물이나곤했다.

그때나는나의껍데기와나의실체가분리되는느낌을경험했다.

의무적으로하고있는식사,배변,사회생활이실제의나는아니라는것을발견하게된것이다.

눈을뜨고있어도눈을감은것과다르지않다는걸,웃고있는것과울고있는게결국은같은것일수도있다는걸그때처음으로알게됐다.

그때,그렇게난나의행위와의식의부조화를경험했다.하루하루가죽지못해이어나가는형국이었는데아무리아빠,엄마가날위로하고걱정해도,내게는그들의말을귀담아들을여력이없었다.그냥루비와함께내실체도죽은거라믿었다.

적어도그당시에는이게나의솔직한심정이었다.하지만그누가그랬다지?아무리큰기쁨과슬픔도결국은<이또한다지나가리라~>라고.그말처럼나또한시간이흐르면서루비를잃은슬픔이점점옅어져갔는데,어찌보면그건극히자연스러운현상일수도있겠지만당시그런사실을의식하는순간이다가올때면난내감성의경박함,무심함에환멸을느끼곤했다.그리고어떻게그토록깊었던슬픔이퇴색할수있는것인지그게그저믿을수없을만치신기할따름이었다.

이렇게루비를잃은상실감에서완전하게벗어나지못하고있던어느가을날이었다.

그때나는풍성한햇살을받아은색융단을깔아놓은듯보드랍게펼쳐져있는교내잔디에드러누워하늘에떠다니는구름중에혹시루비의보드랍고복슬복슬한털의형상을닮은게어디있나열심히살펴보고있는중이었다.

그런데갑자기푸른하늘이테두리만보이면서가운데에왠낯선동양아이의얼굴이나타나나의시야를방해했다.나는얼른잔디에서몸을일으켜그아일쳐다봤고,처음본그아이는아주친근하게내게말을걸어왔다.

뭐좀물어보려고하는데,너한국애맞지?”

한번도들어본적이없는언어로내게말을거는그아이를가만히뜯어보니그는내얼굴과흡사하게생긴동양아이였는데,어투가하도친밀해서나또한초면임에도낯설지않은느낌으로이렇게대답했다.

나는네가무슨말을하는지전혀알아들을수가없어.”

불어와영어로번갈아말하는나를보더니그아이는웃음을툭터트리며,

,참!여기캐나다지.그중에서도불어가우세한퀘벡,몬트리올!내가잠시깜박했네.얼굴만보고한국애라고생각해서아임소리,데졸레!”

그가일단미안하다는예의를갖추는걸보니막되어먹은아이는아니라는게증명된셈이라나도가볍게따라웃어줬다.그랬더니이번에는그아이가영어로내게다시물었다.

너혹시여기행정사무실이어디에있는지아니?”

.저기보이는벽돌건물안에있어.”

그래?아유,바로옆에두고헤맸네.알았어.고마워.참,그런데네이름이뭐니?”

내또래로보이는그아이는내곁에풀썩주저앉으며영어로내게다시물었다.

내이름?유진.유진가뇽.”

!너프렌치캐내디언이름을가지고있구나?내이름은이현이야.만나서반갑다.그런데너한국사람아니니?”

그아이가한국사람이라는말을했을때난약간움찔했는데,왜냐면나는그때까지내자신을한국사람이라고생각해본적이단한번도없었기때문이었다.

하지만그가그렇게물으니내가한국사람인건지,아니면캐나다사람인건지내자신도그것에대한정확한답을모르고있다는생각이문득떠올랐다.

얼굴만보자면한국인이맞고,실제로도한국에서태어난한국출신이니한국인이라고할수있겠지만,법적으로보자면나는엄연히캐나다국적을가지고있고,이름과성도다캐나다인의그것이고,부모님도다캐나다분이시니,캐나다사람이라는게더맞는얘기일것같아이문제가헷갈려왔다.

나는대체어느나라사람이라고해야맞는걸까?여기표현대로한국에근거를둔캐나다사람이라는말이내게도해당되는걸까?

그아이덕분에그전까지묻어두었던나의정체성에대한의문이다시솔솔일어났다.하지만일단그아이의질문에는대답을해줘야할것같아나는태연한얼굴로이렇게말했다.

.내가한국에서태어난건맞는데,지금부모님은두분다캐나다분들이시고,내국적도캐나다로되어있으니나는한국인이맞는거니?아님캐나다사람이라고해야하는거니?참,내한국이름은서유진이야.”

그아이는조금놀라는듯하더니곧표정을바꿔밝은목소리로이렇게말했다.

그렇담한국에서입양되어온거로구나?그런경우라면내생각에너는캐나다사람이맞아.일단네국적이그러니까.그밖의것들에대해서는이제부터천천히같이생각해보기로할까?”

그렇게해서그날이후현과나는친구가되었다.그것도아주짧은시간에지금까지내가사귀어왔던그어떤캐나다친구보다도더가까운마음의벗이돼버렸는데,이런상태로가다가는어쩜현이루비를능가할수도있는나의“베프”가될지도모른다는생각이들때마다나는루비에게이루말할수없는죄책감을느끼곤했다.

그전까지내마음속에간직된최고의친구이자영혼을나눴던존재는단연루비였지만지금내눈앞에서나에게위로가되고,큰힘이되어주는친구는현이다보니그가더가깝게느껴졌던것인데,그럴때마다내스스로가비열하고충직하지못한사람으로여겨져자책하면서도동시에이런게아마도대개의사람들의속성이아닐까란걸로어느새또합리화를하면서죄책감을덜궁리를하고있는내자신을발견할때면루비에게몹시미안해지기때문이었다.

하지만그모든것에도불구하고나는현과의만남을진정행운으로여길만큼그를만난이후의내삶의변화를기쁘게받아들였다.

현은엄마와함께새아버지를따라몬트리올로이민온아이였다.그의새아버지역시내부모처럼프랑스계캐내디언이었는데,그는일관계로한국에나가있다남편과사별후현과단둘이살고있던현의엄마를서울에서만나결혼했고,두사람과함께자신의고향인이곳으로돌아온거였다.

현과현의엄마가이곳에온지는석달이조금넘었고,내가다니고있는세콩대어에입학한현은나이로는4학년이될나이지만불어를못해지금은“아꿰이클래스”에다니고있었다.

현의엄마는서울에서영어가르치는일을했었다고하는데몬트리올은영어보다는불어를더많이사용하는곳이라불어에익숙하지않은그녀로서는아직풀타임일을갖기가어려워지금은불어를배우면서이곳한인학교에서현지인들에게한글을가르치는자원봉사일을막시작했다고했다.

그리고그런이야기를내게전하던중갑자기현이이렇게말했다.

,너한국말배우고싶지않니?한국말배우면네가태어난곳을언젠가방문하게될때유용할테고,너내가듣는한국가요도좋다고했잖아.그노래도따라부를수있고,또지난번내가빌려줬던한국영화도캡션없이볼수있고,여러가지로좋을텐데말이야.”

.사실,우리부모님께서도내게한국말과글을배우라고예전부터그러셨는데그땐별관심이없었거든.하지만이제한국에서온너랑친구도됐고,너따라듣게된한국노래도점점좋아지고있으니까한번배워볼까?”

그날내가집으로돌아가아빠,엄마에게한국말을배우겠다는내결심을밝히자두분은의외라는듯놀라면서도기뻐하는표정을지으셨다.

그래서어느토요일,난현과함께한인학교로향했다.그리고현의엄마를처음본순간난약간의충격을받았는데그이유는데자뷰를경험했기때문이었다.

지금내눈앞에펼쳐지는일들이마치어디선가,언젠가한번쯤봤던상황들처럼그렇게느껴졌던것이다.그리고현의엄마의웃는모습을보면서꽤친숙하단느낌을받게되었다.그녀의눈은분명나와다르게쌍꺼풀이고큰눈에다,그녀의코역시나보다더오뚝하고,전체적으로그녀의얼굴은나보다훨씬아름다웠는데왠지그얼굴을처음보는게아닌듯한느낌이날사로잡았다.거기다그녀의목소리를듣는순간난아득한과거로되돌아간듯한느낌까지받게되었다.

,이아이가네가전에얘기했던유진이로구나?만나서반갑다,유진아!”

그녀는날많이반겨줬는데,그게또전혀낯설지않았다.마치이전에도이런일이있었던것처럼.

2.혜린

현이유진이라는아이를한인학교에데려왔다.

그아이는총명하고맑아보였다.마치나의어린시절을보는듯그아이에게선깊은슬픔이감지되기도했지만전체적으로밝은기운이그아이를덮고있단느낌을받았다.아마도그아이의묘한부조화가현의마음을사로잡았는지도모르겠단생각을해본다.아들은대개가엄마에게서감지되는것과비슷한기운을가진여자에게친근감을느끼게된다고하니말이다.

현이유진을만난후새로운환경에점차안정을찾아가고있는것같아기쁘다.

현은겉으로봤을땐다변에다많이활달해보이는아이지만또래아이들에비해감수성이예민한편이고쉽사리친구를사귀지는못하는아이인데,차분하면서다소내성적으로보이는유진이와는잘통하는듯보이니참다행스러운일이다.

자기주장이강하고예민한현과사려깊어보이는유진,아마두아이는서로의다른점에끌리고있는것인지도모르겠다.아무튼현이이곳에맘을붙일수있는이유가하나생긴듯해나로선여간다행스럽지않다.

그런데오늘그아이의눈빛을보면서어떤절박함비슷한느낌을받았는데,이건그저나만의느낌일까,아니면정말그아이는뭔가절박한상황에빠져있는걸까?나이에비해조심성이많고심중이깊어보이는그아이에게무슨일이있는걸까?현의말에의하면그아이는갓난아기였을때이곳으로입양되어왔다던데그게이윤가?자신의정체성에혼란을느껴눈빛이그렇게흔들렸던걸까?나를바라보는눈빛이예사롭지않았던것도그런이유고?

유진이를처음만나고난후이런생각들에젖어있던어느날,난드디어현에게질문을던졌다.

현아!유진이말이야.내눈엔뭔가절박해보이는듯한데넌어떻게생각하니?넌그런느낌받은적없니?”

아니,난절박함뭐그런건못느꼈고,대신처음그앨만난날약간혼란스러워하는듯한느낌을받긴했지만그후론그냥차분하고이지적인아이로만생각했는데…,그리고말이나왔으니하는말이지만한국에서알고지내던여자애들과걔는정말많이달라요.한국에선나보다몇달만빨라도다른학년이면무조건누나라고불러야했는데,걘나보다한살하고도몇달이더많은데도그런말같은건아예하지도않고나이에비해생각도아주깊어보이고,훨씬순수하고.정말때가하나도묻지않은것같아요.참,언뜻언뜻많이외로워보이긴해요.”

현은그아이에게서장점만발견한듯했다.감성이뛰어나사람의장,단점을줄줄이뽑아내던평소현의모습과는많이달라조금놀랬지만그만큼유진이맘에들었다는걸로난그렇게받아들였다.

그후한인학교에나오는유진이를가까이서관찰할기회를갖게되면서나역시그아이가내가생각하던일반적인십대여자아이들의모습과는많이다르다는걸발견하게

됐다.

그리고그아이에게선다른사람들과좋은관계를유지하면서도어딘지모르게외로워보이는건사실이지만그점이크게눈에띄는건아니라는것도알게됐다.

언뜻보기에그아이는그냥말이별로없고,사려깊고,상냥한그런아이로여겨질만했다.그래서나도유진이를충분히현이칭찬할만한,참괜찮은아이라고생각하기시작했다.

3.유진

엄밀히말해서내가한인학교를빠지지않고계속가는이유는현의엄마때문이다.

한글과한국말을배우는게꽤재미있기도하지만아마현의엄마가선생님이아니라면난벌써학교가길그만두었을지도모르겠단생각을한다.

처음에현의권유로한인학교를방문했던첫날현의엄마를보는순간,난왠지그녀가낯설게느껴지지않았다.

어디선가본듯한모습에그모든상황들이너무도익숙하기도했고,또그녀가내게많이친절하게대해줘마치늘만나왔던사람을다시만난그런느낌이었다.

사실그녀는나에게만특별히친절한건아니다.한인학교에서그녀는모든학생들에게다정하고,재미난말과적절한예제로학생들에게학습동기를유도하면서,언제나활기차다.어떤질문에도막힘없이답하면서학생들에게편안하게질문할수있는환경을늘조성한다.한글과한국말을가르치는것외에도그녀는우리들에게한국문화관련정보도많이주는등한국을대표하는민간외교관역할을톡톡히하고있다.

우리들끼리선생님을한국문화홍보대사로선정해야한다는의견이분분한것도바로그러한그녀의헌신적인교사로서의역할외한국을널리알리려는그녀의뜨거운열정에깊은감동을받아서다.

그녀는이렇게교사로서,한국인으로서자기가맡은일에최선을다하는멋진사람이기도하지만무엇보다난그녀가내엄마보다도더내게따뜻함을느끼게해주는사람이라좋다.

아니단순히좋아한다는말로는부족한,내가심적으로많이의지할수있는나의또다른엄마같은존재가바로그녀다.

그리고현도시간이갈수록마치내피붙이마냥특별하게느껴진다.그래서요즘난학교가끝나고나면집으로돌아와옷을갈아입곤현의집을방문하는게일상이됐다.

현의집에선주로내가현의숙제나현의엄마의불어공부를도와주고있지만간혹현의엄마께서내한국말공부를도와주기도하시고,또공부후엔식사준비도함께하면서시간을보내다집으로돌아오는나날이계속되고있다.이런일이여러번반복되다보니이젠그일을하지않으면하루가끝나지않은걸로여겨질만큼현의집방문은내일과의한부분을톡톡히차지하게됐다.

난평소쉽게내마음을다른사람에게내주거나타인의일상에쉽사리끼어들거나그러지않는사람인데,어떻게현과현의엄마와는이런일들이가능할수있는건지그게신기하고그연유가많이궁금하다.

그들이나와같은한국사람이기때문이라는이유만으론충분하지않은진짜이유가분명있을것같기도하지만지금으로선그게뭔지잘모르겠다.

그런데어제는다소어색하고난처한일이벌어졌다.발단은학교에서기분이별로안좋게돌아온현을나와현의엄마가조금지나치게놀렸고평소와다르게현이발끈한데서비롯되었는데,그게어쩌다보니마치성대결이된듯보이기도했고현만궁지에몰린상황이돼버린듯하다가마침내현이자기방으로화가나들어가버렸다.

그렇게되자순간난처해진현의엄마와내가그상황을어떻게마무리해야할지몰라서로쳐다보며어색한미소를짓다함께웃음을터트린게더욱현을자극하게돼버렸고,결국현은내가집으로돌아올때까지자기방문을걸어잠그곤한번도방을나오지않았다.난미안한마음을가지며집으로돌아와메신저로현의기분을풀어주려노력했지만그는끝까지응답하지않았다.

그리고오늘아침학교에서날본현은아직도기분이풀리지않았는지나를외면했고,그순간깊은상실감과외로움을느끼게된난급기야눈물까지보이고말았는데,그런내모습을보자현이놀라는표정을지으며드디어내게말을걸었다.

유진!왜우는거야?나때문이야?그렇다면미안해.난그냥좀생각할시간을갖고싶었을뿐이야.”

생각?뭘생각해야하는데?설마너…,내가지금생각하고있는그런생각을한건아니겠지?”

현이이번에는많이놀라는듯한표정을보이며내어깨를툭쳤다.

무슨소리야?난혹시유진네가내친누이가아닐까뭐그런생각을하면서나보다엄마와훨씬더친해보이는널위해네출생의비밀을한번깊게파볼까그런생각을하고있던참이었는데!”

그의농담인듯,진담인듯들리는이한마디에난순간숨이멎는듯했다.그리고정말그런일이현실이될수도있는걸까를시작으로해서어쩌면그런일이전혀불가능한일이아닐수도있을거란결론까지내멋대로내봤다.그리곤현에게이렇게말했다.

그래!너기억하지?네가나의정체성을함께찬찬히연구해보기로했던거?그러니까이제부터내출생의비밀을네가한번파헤쳐봐.아니어쩌면그건비밀이라고할것조차없을지도모르긴하다.내부모님께여쭤보면내생모의이름을금방알아낼수있을지도모르니까.”

그시간이후어떻게학교수업을받았는지기억이나지않는다.아마도내가즉흥적으로주절거렸던말을되새기는일로수업시간을다보냈던것같다.그리고진이빠져집으로돌아왔는데,이번에는아빠가날기다리고있었다.

유진!너요즘무슨문제있는거냐?요즘네얼굴보기도힘들고,왠지네주변에뭔가일이벌어지고있는데네엄마와나만모르고있는것처럼느껴지는구나.”

아빠는애써태연함을가장한체이렇게내게지나가는말처럼한마디를던지고있지만실은이말속에는내게대한서운함이많이담겨있다는걸난즉시간파할수있었다.아빠!요즘제게문제가좀있긴해요.하지만크게걱정하실일은아니에요.그냥시간이흐르면저절로제자리를찾아갈그런일이에요.그러니까조금만기다려주세요.

아빠,저믿으시죠?”

확실히엄마보다는아빠가상대하기수월한존재라는건분명한사실이다.아빠는나의친절한이한마디에안심을하는듯했고,내이마에키스를해주었고,날안아주었다.아빠의포옹에난얼마전부터느껴왔던미안한마음이갑자기폭풍처럼밀려와이번에는내편에서아빠를더꼭껴안았는데이런나의반응이의외였던지아빠가순간멈칫하는느낌이들었다.난그게또아주많이미안하게느껴졌다.

4.

오늘유진이눈물을흘리는걸처음봤는데마음이많이아팠다.마치내누이가나때문에마음을다친듯해여간놀란게아니다.

엄마와유진이친모녀지간처럼가까울땐약간어이가없기도하고어색하기도했는데막상유진의눈물을보게되자그녀가내피붙이같이여겨지며마음이아픈이심리는또뭐람?

사실유진을처음봤을때앳되어보이는그녀가나보다두살정도는어린줄알았다.그러다가후에그녀가나보다한살이많다는걸알게됐어도그녀에대한감정은여전했다.

특히한국에서봤던여자아이들과는많이다른그녀만의매력까지더해져그녀에대한애틋한감정은쉽사리사그라질것같지않았다.

하지만오늘난분명그녀에게서친남매같은감정을느꼈다고믿어진다.애틋한감정과피붙이같은감정은과연다른걸까,같은걸까?

엄마도나못지않게유진을많이좋아하는것같다.하지만유진은엄마를단순히좋아하는것이상으로느끼고있는게분명해보인다.나와대화를나눌때의유진의모습과엄마와이야기를나누고있는그녀의모습에는확실히차이가있다.

보통사람들은이성에게더친절한경향이있는데,유진은엄마를처음소개받았던첫날부터그간내겐보이지않던관심과흥분까지내보였다.

그녀의눈에서광채가났다고해야하려나?아무튼난그녀가그렇게흥분하는모습은첨보았고,평소차분한모습과는너무달라마치딴사람을보는것같은기분에휩싸였었다.도대체우리엄마의어떤점이그녀에게그렇게어필한건지그걸물어보고싶은정도였으니.

그리고유진이우리집에드나들기시작하면서내짐작이맞았다는걸난마침내확신할수있었다.

우리엄마를단순히좋아하는그이상이라는징후를여러차례내보였으니까.또엄마도유진을많이예뻐하는기색을숨기지않았고,그렇게둘이점점더가까워지더니결국어젠둘이합심해서날놀리기까지했다.

물론아직엄마는유진이를아들이좋아하는여자아이자착한아이,또엄마의귀여운학생그이상으로생각하는것같아보이진않는다.

하지만난그둘사이에흐르는이상한기류의정체를꼭찾아내고싶다.그게우리엄마에게서비롯된것인지,아니면그저유진이혼자만들어낸것인지그걸확인해보고싶어졌다.

그런생각은오늘학교에서유진이우는모습을처음보게되면서더굳어졌다.차분하고자기의감성을잘드러내지않는유진이가내가한말한마디에그렇게눈물을흘리는걸보면서정말캐내보고싶단생각이불현듯들었다.

유진이는어쩜이미자기양부모에게자신의생모이름을물어봤는지도모르겠다.내게그렇게말했으니까.

그러나저러나만약정말우리엄마와유진이가특별한관계라면난어떻게되는거지?세상에존재하는수많은사람들중에이렇게우연히혈연관계를찾는다는게실제로가능한일일까?

소설에서나일어날수있는그런일이내게,아니우리가족사에벌어진다면참어처구니가없을것같다.

더군다나내가이성상대로관심을갖기시작한유진이내친누이라면그건더더욱말도안되는황당작렬한사태가아닐수없다.!말도안돼!절대그런일이일어나선안된다.대충이런생각만으로도난힘이빠지기시작한다.

도대체어떻게태평양을건너내가살던대한민국에서멀리떨어진캐나다에와내핏줄을찾는일이가능하지?그리고그게사실이라면우리엄마의과거사를난어떻게받아들여야하지?나이전에아이를낳았고,그아이를버린내엄마를용서하는건결코쉬운일이아닐것같다.

교육자로살아온내엄마가그렇게도덕적으로흠집이있는사람이라면내엄마라는걸떠나서도이해하기가쉽지않을것같다.이런엉뚱한상념에사로잡혀있던난엄마가날부르는소리에현실이라는제자리로돌아왔다.

현아!오늘유진이가안오네?너희들학교에서혹시무슨일있었던거야?너혹시어제일로유진이에게안좋은소리한건아니지?”

아뇨.오늘학교에서유진이만났었는데어쩜학교숙제때문에우리집에며칠못올지도모른다고했어요.걔도자기숙제도있고,친구들과해야하는프로젝트도있고하니까맨날우리집에올순없죠.왜안오니까기다려져요?”

아니,어제그런일도있었고매일오다오늘안오니까그런거지.학교숙제때문이라면됐어.그럼걔도자기일이있는데어떻게맨날올수있겠니?알았어.”

엄마와대화를끝낸나는곧메신저를통해유진에게메시지를보냈다.

지금뭐하고있느냐,아직도울고있는건아니겠지,뭐이런내용으로.보통때같으면곧바로응답이오는데,이상하게오늘은응답이없다.

혹시유진이지금자기의양부모에게생모의이름을물어보고있는건아닐까?아니면이미생모의이름을알아내곤내게확인하기위해이리로달려오고있는중일까?

만감이교차하면서아까부터난컴퓨터의모니터만계속응시하고있다.마치거기에해답이라도있는듯.그러다용기를내엄마에게로갔다.(다음회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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