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통에게 보내는 빈 찬합(饌盒).

더이상은안된다.더이상의용납은있을수없다.그의대국민패악(悖惡)질을눈감아주거나좌시해서는안되겠다는것이다.임기내내이나라와국민의대다수는그가내지르는공갈이나협박에가까운정치적행패에시달려왔든것이다.그럴때마다심성약하고마음씨착한국민은우는아이에게젖물리는부모의심정으로그를달래온습관적나약함이그를망쳤는지도모른다.


기실떼쓰는아이놈의버르장머리를탄핵이라는명분으로고쳐놓을기회가있었건만,완전히바닥에드러누워하얗게눈을뒤집으며GR발광하며광분하는모습에자식이기는부모없다는심정으로어르고달래며그에게젖을물린게아이놈의버르장머리를더나쁘게했는지모른다는얘기다.


당시그의정치적성숙도가철딱서니없는아이의모습이라면이젠성인으로서제앞가림을할나이가되었음에도오히려망나니가되어여전히부모와집안에패륜적행동을하는것은차치하고,북쪽의인간말종놈과아삼육이되어이웃까지괴롭히는더러운작태를멈추지않음에부모와가문에똥칠을하고있으니집안망할날이풍전등화같은지경이라는것이다.


옛부터우리네는마을의패륜이나부도덕한행위를범한자를실정법으로징치하는것이아니라마을의장로(長老)나존장(尊長)이마을의권위를바로세운다는명목으로치죄한다고해서린치(私刑)를가했다며이의를달지않았다.부락의질서는마을전체의공동의책임이자의무인것이다.이렇듯부모와집안에패륜적발악을하는자를좌시하거나방치한다면그패악의뒤끝이마을전체에미칠것은명약관화하므로더이상의방치는책임이자의무를저버리는결과를낳는것이다.


순욱(荀彧)자가문약(文若).시호는경후.영천영음(하남성허창)사람이다.처음엔원소의막후에서일을했으나원소의사람됨됨이가노무현만큼쪼잔한것을알고조카되는순유와함께조조에게로귀순한다.지혜가풍부하고지모가뛰어났으므로조조가그를처음얻었을때얼마나그를신임했으면그대는’나의장자방(吾之子房也)’이라고할정도였다.


조조를수행하며수많은계략을내놓았고또한많은전공을이루었다.漢헌제건안16년역적들이조조에게아부하기위해조조의계급을승상에서위공(魏公)으로승진시키고구석(九錫)의예를갖추어야한다고제의하는말을듣고더이상참지못하고조조에게군자로서백성들에게더많은덕을베풀고또한겸손과사양의미덕을가지고漢나라황실에충성을더해야한다고진언을했다가조조로부터미움을삼.


얼마뒤조조를따라오나라의손권을정벌하러갔으나병을핑계로수춘(壽春)이라는지방에남게되었다.조조는순욱이자신과함께하지않으려는꾀병이라고생각하고사람을보내어그에게찬합을보냈는데,그안에는아무런음식도들어있지않았다.그는조조의뜻이아무것도먹지말라는즉,굶어죽으라는뜻을알아차리고독약을먹고죽었다.그해가서기212년(단기2545년,중국漢헌제건안17년,신라내해이사금17년,고구려산상왕16년,백제초고왕47년)이다.

논리의비약이거나역설적이기는하지만,우리속언에도숟가락놓는다는말이있다.숟가락들힘도없으니곡기를끊고죽는다는의미다.조조라는놈은자신의정치적목적을위해漢나라의황실과국가에충성을요구하는충신에게빈찬합을보냈던것이다.하물며국가와국민에갖은행패를부리는망나니대통령에게더이상의관용은,이나라와국민은물론이요나아가민족마저이지구상에서말살되는참극의위기에봉착할것이다.


언필칭,민주화,민주화하지만따지고보면민주화의가장큰시혜(施惠)를입은것은노무현과그일당이아니던가?국가와국민과민족에그토록패악질과패륜적작태를벌였음에도이날까지굳건했던것은아니러니하게도민주화의덕이아니던가?옛날같으면벌써쿠데타가일어나도수십번일어났을것이며시혜가아닌시해(弑害)를당했어도여러번당했을것이나이제그민주화의성숙된모습으로그대노무현에게국가와국민의이름으로빈찬합(饌盒)을보내노니,빈찬합의의미를깊이새기고패륜적대통령노무현은국가와국민을나아가민족을위해정치적숟가락을놓아야겠다.차마산사람의생목숨끊으라는부탁은못하겠고,정치적목숨만이라도끊어달라는,절규에가까운주장을해보는아침이다.

Leave a Reply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