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보다 더 좋은 밑천은 없다.(3부)
신용카드를다시발급받은게2003년인가그랬습니다.부도를내고밑바닥인생을살아갈때어쩌다은행에들리면창구의아가씨들은속내도모르고‘신용카드하나만드시죠!’라고친절히안내하면‘난해당이안될거요’라고대답한후전산망을조회해보면,역시‘신용불량자’로등록되어있곤하여,친절히안내해준창구직원과제가동시에머쓱해졌던경험이몇차례있었습니다.어쨌든일단어느정도의식주에활력(?)이붙고난뒤,제지갑에는명함크기의납작한금궤(?2냥짜리:여담이지만,이부분에대해서도잠시언급해야겠습니다.지금도외사촌누님이종로에서금은보석가게를하는데,당시그런2냥짜리금궤를용돈이모일때마다50여매를사두었습니다.그렇게모아두었던그금궤가요즘금값이올라비록일부분이지만,마누라가게의부속재료로쓰였으니얼마나요긴했는지모르겠습니다.)가두장들어있었고,목에도3냥짜리목걸이와닷돈의반지그리고고액권딸라를몇장씩늘지니고다녔습니다.신용카드가없으니혹시라도있을비상사태대용으로그렇게지니고다녔던것입니다.

그러던어느날자주가던은행엘들렸다가또‘신용카드하나만드시죠!’라는안내를받고,아직‘신용불량자’로등록되어쪽팔릴게두려웠으나,무거운(?)금궤를늘지니고다니는불편함을해소해보겠다고,모른척하고발급요청을했더니무사히통과가되더군요.당연히그무거운것들을벗어버렸답니다.장황한얘기가잠시비뚤게나갔습니다.

제가중국의산동성칭따오교도소얘기까지했던가요?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말은정말얼마나유용한얘긴지모릅니다.바이어의오더가점점줄어들때저는이런생각을했습니다.‘언제고거래가끊어질수있다.그에대한대비책을세워야한다.’라는….사람이생각이상으로잘나갈때더몸조심해야합니다.왜그런말있잖아요.“이창업난수성(易創業難守成)일을시작하기는쉬우나이룬것을지키기는어렵다”라는얘기말입니다.

그때는제가중국생활7-8년되었으니능숙하지는않지만,일상어정도는충분히할수있는경지(?)에도달했기에출장을다니며틈틈이이런저런지방의시장구경을열심히다녔습니다.한번은홍콩박람회를들렸다가돌아오는길에광동성성도인광쪼우박람회를(소위‘캔톤무역박람회’라고하여매년4월과10월에열리는지구상에서열리는가장큰박람회입니다.)들렸습니다.그때가밀레니엄시대가열렸다며세계가환호하던2000년이었습니다.‘홍콩과광쪼우’를가게된것도제게오더를주던바이어가늘홍콩쑈를거쳐광쪼우쑈를참관하는데(매년비슷한시기에동시개최됩니다.),그해엔졸지에홍콩에서미팅을하자는것이었습니다.

홍콩과광쪼우는기차나버스로두시간남짓정도면되는거립니다.미팅을끝내고다음날저는기왕그기까지갔으니그호화찬란하다는광주‘쑈’를보기로작정하고광주로이동하였고,수천수만가지의이런저런상품을구경하다가우연히들린‘쥬얼리와악세사리’코너를들렸습니다.그장소가오늘날제운명(?)을바꿔놓을줄은꿈에도몰랐습니다.산더미처럼쌓여있는‘진주와玉가공품,사파이어에메랄드,금은세공품…등등’그어떤것도저와는관계가없는상품들이었습니다.

그런데말이죠,어떤‘진주(이하담수양식진주)‘가게(booth)에발길이멈추어지드라이겁니다.당연히그동안고생만시켰던마누라를위해‘진주목걸이’를선물하기위해서였죠.그런데가격을물어보니상상밖으로싸더군요.진주하면선입견이무척비싸다고생각하지않습니까?그런가격을제시할때저는가짜진주인줄알았습니다.저는그때처음알았습니다.참진주와가짜진주구별법을,그들은제게작은쪽가위로진주의겉표면을열심히긁어보여주었습니다.즉,그것이가짜이면표면에스크래치가나지만진짜는속살이좀깎여도표시가나지않는것이었습니다.솔직히생각이하로워낙저렴했기때문에아내것뿐아니라정말고마웠던몇몇친인척것까지샀습니다.그러자그부스의주인(또는종업원)은제가무슨큰바이어나되는줄알고명함을두장씩이나안기며자신들의공장을꼭방문해달라는것이었습니다.건성으로명함을받아두고또다른장소로발길을옮겼습니다.어쨌든그쑈는그렇게감상을하고명함을잔뜩챙긴채,저의본거지인산동성칭따오로귀환을했습니다.

1부에서바이어로부터오더가점점줄어든다고이미걱정을했었습니다.사채와은행빚도갚고홀가분한처지였지만,모름지기일이이제야풀리나보다했는데오더가줄어든다는것은불안하고초조하다는것밖에달리표현할수없습니다.당시만하더라도모든잡화를총망라하여싸구려중국제품이국내로마구밀려들기시작할때였습니다.저도왠지그대열에합류하고싶은생각이들었습니다.아니그래야만될것같았고,그럴수밖에없었습니다.바이어와거래가끊어지면또악몽같은생활로되돌아갈수있다는절박함이있었기에무엇이든해야했기때문입니다.

당시아내는크게할일이없어한-중을오가며제뒷바라지를하고있을때였습니다.그때아내에게제안을했습니다.‘이렇게한-중을오가며무위도식할게아니라싼중국제품을한국으로가지고사서장사를좀하는것은어떻겠는가?오더도점점줄어들고이일도오래갈것같지않은데…당신의사는어떤가?’정말고마운것은아내의긴말필요없는‘OK’싸인이었습니다.

좋은일은겹친다고하나요?인도네시아에서무역업을하던친구가있었습니다.그곳에서10여년사업을하며꽤성공을했습니다.그런데중국의여파로점점한계점에달했다며제가있는청도로날아와이런저런얘기를나누었고드디어는죽이맞아그친구가중국으로완전히옮기기전까지중국제품을‘쏘싱’해주고오더에관해일정부분커미션을받는조건으로함께일을하기로합의를보았습니다.

절강성의오(義烏)라는도시가있습니다.중국의모든공산품이총집합하는곳입니다.전국에산재해있는공장들이그도시에‘쑈룸’을가지고있다고보면됩니다.도시자체가거대한‘쑈룸’입니다.어떤제품을찾으러전국을헤맬필요가없습니다.친구에게‘쏘싱’을해주고커미션이라도챙기려면방법은그곳에사무실을오픈하는길밖에없습니다.하여그곳에사무실을차리고한국인직원1명과현지중국직원둘을두고3년을했습니다.결론부터얘기하자면경비만깨지고소득은전무했습니다.

그러나저는그친구에게늘고마워하고있습니다.금전적인손해는있었지만,그친구의그런제안이없었다면,그렇게쉽게그곳에사무실을오픈할생각을못했을것입니다.어쨌든그친구덕분에계기가되어무모하지만그런곳에사무실을차렸고,그런연유로제인생이바뀌는경험을하게되었으니까요.여담입니다마는,그친구는아직도제가철수한칭따오에서직원20여명을(순전히무역업임에도)두고사업을열심히하고,남들은죽겠다는요즈음도탱자탱자하며잘지내고있지만,잔무처리를위해가끔씩제가그곳에방문하면술과밥은제가삽니다.^^*

아무튼칭따오에서그곳을오르내리며일을보면서도또나름대로이런저런잡화를실어내고있었습니다.아!제가그러는동안제마누라가남대문에가게를오픈했다는얘기를안했군요.마누라가게는크게성업은아니었지만,종업원둘을두고그런대로생활비는충분히나오곤했지요.그래도아직바이어와거래는끊어진상태는아니었으니저는남매를현지에서데리고있으며벌고,마누라는마누라대로생활비를벌고했으니얼마나희망적인삶입니까.

그러던어느날제인생의전환점이되는제품을칭따오에서발견하게발견하게됩니다.칭따오에가면한국관광객이자의든타의든꼭들리는시장이있습니다.즉묵(卽墨)시장이라는곳입니다.우연히그곳엘들렸다가‘진주상’들이밀집해있는것을발견했습니다.2-3년전에광쪼우‘쑈’에서발견했던그‘담수양식진주’말입니다.그것을보는순간정신이번쩍들었습니다.당시에도제가생각했던것이상으로저렴한가격이었으니‘저놈을가져다팔면어떨까?’하는생각이들었던것입니다.그래서망설일것도없이이런저런샘플을사서마누라에게시장조사를시켰습니다.

며칠후마누라의흥분된목소리가유선을타고흘렀습니다.“남대문에도그런제품이있다.그러나똑같은제품이열배이상비싸다”라는목소리가흘렀습니다.사실‘진주’하면보석이고괜히비쌀것같은선입견을보통사람은가질것아니겠습니까.저역시광쪼우현장에서너무쌌기에가짜인줄알았거든요.그‘진주’가10배이상으로폭리를취하며남대문에서팔리고있다니….그런데사실은‘진주’뿐만이아니었습니다.당시는玉가공품이나이미테이션보석류가다그렇게팔려나갔습니다.

아무튼잡화만널려있던마누라가게는어느순간에‘담수양식진주와玉가공품,이미테이션케츠아이,호안석…등등’의준보석류로환골탈퇴(?)하며신장개업을하게되었습니다.난리가난거죠.10배이상의폭리를취하던상점에서‘누구장사망칠일있느냐’고항의와협박이들어오고,그러나마누라와저는굴하지않았습니다.덕분에마누라가게는불티가났습니다.솔직히그렇게쫒아다닐때는뒤도안돌아보며냉대하던돈이제발로기어들어와무릎을꿇을줄누가알았겠습니까.그래서친인척이나지인이장사좀하겠다고나서면,젊잖게일갈하고했답니다.“돈이란놈이이목구비가다있어서아무리따라다녀도맘에들지않으면쉽게마음을주지않는다,돈을절대따라다니지말라‘고득도한양말하곤했습니다.제얘기는’돈과사귀고싶으면기다리라는겁니다.‘내가구애한다고돌아설돈이절대아닙니다.돈이스스로올때까지기다려야합니다.말로만,생각만으로만그리해선안됩니다.그러자면절대’신용‘을지키거나얻으라는얘깁니다.’신용‘’신용‘하지만진짜어째서왜’신용‘을지키고얻어야하는지이제시작하겠습니다.단,오늘은이쯤하겠습니다.기대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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