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하오리까?(7부)
그러니까제가중국으로진출하기1년전쯤이었습니다.어쩌면제생애마지막의용트림을하기위한운기조식(사실은선친의협조로마지막일생일대의도박을하기위해본가를저당하고자금을마련함)에몰입하고있었습니다.연후에올인하여중국진출을모색할때제사무실이여의도(맨하탄호텔.지금도있는지모르겠지만…)에있었습니다.어느날인가처남이(이하‘큰’을생략함.작은처남은이번‘썰’과전혀무관하기로…)그곳에나타났었습니다.

지금은도저히기억이나지않지만,어떤불길한사건을가지고나타나저를몹시화나게만들었습니다.장수(將帥)가중국대륙으로의출진을앞두고심신을배양하고있는그중차대한시기에처남의청탁(請託?)또는제안에저의인내심이한계를보이고난생처음으로폭발하고만것입니다.그때가어떤식당이었는데식사도중에밥상을엎어버리며드잡이를하는사건이일어났던것입니다.그다음날로처가로달려가그상황과지난날처남의패악적(?)행패에대해낱낱이고하고향후처가와는절연(물론딸내미도데려가시려면데려가라며…)을하겠다고선언을하고난장을부린적이있었답니다.(당시는빙장께서생존해계셨고,그일로장인.장모두분이집으로달려오시고,못난아들을위해백배사죄하시고…등등)

그사건이있은후처남과는자연히절연(?)모드로돌입하게되었으며,처남역시얼마뒤지인의소개로‘제주도’로가서귤농장을임차해귤농사를짓는다는풍문을들었고,저는저대로중국으로진출을했으니쌍방간에부닥칠일도간섭하고받을일도없었던것입니다.그렇게훌쩍13-4년이흘렀습니다.물론간간이‘제주도’에서귤농사를짓는처남의소식은듣고있었고,그러는사이장인어른께서돌아가시는바람에장례식때,그리고처남의두딸이결혼을했기에예식장에서만난것을제외하고는교류도없었습니다.장모님께서자궁암으로입원해계셔도또다른조카(제딸도포함)들이결혼을해도서울을한번도올라오지않더군요.뭐솔직하게지난날을생각하면무소식이희소식이고마주치지않는것이오히려고맙고안도했지안타깝거나섭섭한생각이들지는않았습니다.

재작년늦가을이었습니다.느닷없이큰상자의귤이두상자나집으로택배되었습니다.보낸사람을보니제주도의‘처남’이보냈더군요.사실은제가과일을별로좋아하지않습니다.특히‘귤’은시기만할뿐더더욱좋아하지않습니다.그런데개량종밤톨보다조금더큰귤이두상자씩이나배달이되었으니처치곤란이더군요.이웃집도(뺑덕네,앞집등)나누어주고사돈댁도보내드리고그런과정에우연히‘귤’하나를집어먹어보고깜짝놀랐습니다.시기만할줄알았던귤이그어떤과일보다달콤하고시원했던것입니다.(그후로‘귤’을끔찍이좋아하게됨)

13-4년씩이나세월이흐르는사이몇차례조우(遭遇)하더라도소닭보듯한처지에갑자기그런대가없는선물을받았으니기쁘기는커녕당혹스럽고왠지께름칙하기만했지만되돌려보낼수없기에동네잔치(?)를하고,나중에그맛을제대로느낀나머지정식주문을함과동시에친인척및지인들에게한상자씩선물로보내주며저희집으로택배된귤값은따로통크게넉넉히송금을지시(마누라에게)했습니다.상상이상의귤값을보낸후처남으로부터과실송금(過失送金?)에대한인사전화가바로왔습니다.‘그냥먹지뭣하러귤값을보냈느냐’는마음에도없는인사전화말입니다.

아!그런데그게실수였습니다.그게저의패착이었습니다.이제와생각해보면그원수같은귤두상자를모른척하고그냥먹고입싹닦았더라면….(다정도병인양하여…천륜을이기지못해친절을베푼게그만)몇통의전화주고받은것으로우리(저와처남)사이는이미13-4년이전의관계로아주부드럽게복원이된반면,영화‘13일의금요일’에죽여도또죽여도살아나는‘제이슨(?)’처럼처남과의악연의고리가다시살아나기시작하는것이었습니다.

아무튼그일을계기로안부전화라며무시로전화가오는것입니다.그럴때이‘썰’을읽으시는독자제위께서는어떻게하시겠습니까?“형님!전화하지마쇼!:”이럴순없는것아니겠습니까.더구나그토록오랜세월이산가족으로지내왔는데.

결국그때그귤두상자는마음(정성)이담긴선물이아니라,처남의상륙작전의일환이었던것입니다.그두상자의귤이바로제주도에서육지로돌아오기위한교두보마련의신호탄이었고쥐약이었던것입니다.그쥐약을제가덥석깨물고말았던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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