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들을 위한 순정 동화.
BY ss8000 ON 9. 22, 2009
사실저희집엔보통의가정보단좀많은책이있습니다.어디이사라도할라치면그것들이가장먼저꾸려지고또가장많은부피를차지합니다만그것들이단한번이라도제게핀잔이나박대를받은적은없습니다.반면이사할때마다번거로운관계로오히려마누라에게지청구를듣곤했지요.이와같은저의책사랑(?)은묘한동기가있습니다.
아주어릴적학령기에접어들자형님으로부터대가리쥐어박혀가며한글을익혔습니다.요즘아이들이야4-5세에한글을떼고영어나외국어를학습하지만그때만하더라도문교부(요즘은지경부인가?)혜택을받기전한글을쓰고읽는다는건똑똑한(실은강제에의한피나는연마의결과지만…)축에속했습니다.
어쨌든한글을읽을줄안다는것은어쩌면행운이었습니다.할아버지의사랑방엔항상언문소설이이리저리뒹굴었습니다.‘심텽뎐,장화홍련뎐,숙영랑자뎐…’등등.할아버지는피난지의5일장에다녀오시면가끔씩,지금으로생각하면조악하기짝이없는그런책들을사오시곤잠이오지않는새벽녘에낭랑(朗朗)하게소리높여읽으시곤하셨습니다.
새벽을깨우는할아버지의낭랑하신목소리인지아니면방광이터질듯고인소변을보기위함인지모르지만,비몽사몽간깨어나시원하게배변을한뒤다시깊은잠으로빠진기억이많습니다.아무튼그런식으로듣기에만몰두하던제가우연히잡아들고읽었던책이바로‘장희빈뎐’이었습니다.어린것이무슨내용인지정확히몰랐지만그것에몰두하고다시잡은책이‘주유텬하’였습니다.세종대왕의형님되시는양녕대군의일대기를그린책이었습니다.
솔직히제가지금도고전을좋아하는이유가어릴때부터고전을섭렵했던탓이아닐까생각합니다마는,아무튼할아버지의사랑방에굴러다니는조악한고전이나중에고전을사랑하는관계로발전했던것같습니다.
혹시기회가있으면소상히밝히겠지만제가고등학교를다섯군데를옮겨다닌꼴통중에상꼴통이었습니다.한마디로표현하면비행청소년이었지요.-.-;;;그렇게비행을저지르고다녔지만언제나책을가까이했습니다.물론고금소총,가루지기전,벌레먹은장미,꿀단지(19세미만禁書)….등등,양악(良惡)불문하고손에잡히는대로섭렵했습니다.
5학년때이던가요?학교에서해마다구연동화대회를열곤했었습니다.그때동급생아이들이대강당강단에나가서구연동화를하는것을보고무척부러워했고,나도한번나가서실력을뽐내보겠다고,동화책을사달라고조른결과아버지(당시서울지방법원말단서기로근무하시며먼저서울에계셨음)께서아동문학(동화동요)전집을보내주셨습니다.강소천박목월이원수선생님그중에서도소파방정환선생님의전집중에있는아래의‘만년샤쓰’라는동화를읽은뒤얼마나눈물을흘리고또그것을읽은뒤모든선생님들의동화를밥때를잊어가며읽어내려간후부터책을가까이하는계기가지금까지이어져오고있는것입니다.장황한‘썰’이너무길었습니다.
위의장황한‘썰’은저의초등학교동창회에서운영하는카페가있습니다.그곳에저의동기생되는여성회원이아직도교직에있습니다.그양반이제가올리는‘썰’에밤낮을잊으시고늘정겨운‘댓글’을달아주심에너무도감지덕지한나머지무엇으로보답드릴까,생각하다가이나이먹도록아직도간직하고있는추억꺼리를또꼴통중의상꼴통이그로인해책을가까이하게된동기를들려드리면,아주미진하지만감사함에대한표시가될것같아아래의동화를그곳에올렸던것입니다.또아직은현역선생님으로계시니아이들에게그‘글’을발췌하여들려줌으로아이들정서함양에미력이나마도움이되지않을까생각합니다.또한다른벗들도아래의동화를음미하며개구쟁이시절로돌아가보실것을권하며……
만년샤쓰(방정환)
1.괴짜학생
동물(생물)시간이었다.
"이없는동물이무엇인지아는가?"
선생이두번씩거푸물어도손드는학생이없더니,별안간’옛’소리를지르면서기운좋게손을든사람이있었다.
"음,창남인가?어디말해봐."
"이없는동물은늙은영감입니다."
"예끼!"하고선생은소리를질렀다.온방안학생이깔깔거리고웃어도,창남이는태평으로자리에앉았다.
수신(도덕)시간이었다.
"성냥한개비의불을잘못하여한동네30여집이불에타버렸으니,성냥단한개비라도무섭게알고주의해야하느니라."하고열심으로설명을해준선생이채교실문밖도나가기전에,"한방울씩떨어진빗물이모여큰홍수가되는것이니,누구든지콧물한방울이라도무섭게알고주의해흘려야하느니라."하고크게소리친학생이있었다.선생은그것을듣고,터져나오는웃음을억지로웃다가참고돌아서서,"그게누구냐?아마창남이가또그랬지?"하고,억지로눈을크게떴다.모든학생들은킬킬거리고웃다가조용해졌다.
"예,선생님이안계실줄알고제가그랬습니다.이다음엔안그러지요."
하고병정같이벌떡일어서서말한것은창남이었다.억지로골난얼굴을지은선생은기어이다시웃고말았다.그리고아무말없이빙그레웃고는그냥나가버렸다.
"아하하하하…"
학생들은일시에손뻑을치면서웃어댔다.
00고등보통학교1년급을반창남이는반중에제일인기좋은쾌활한소년이었다.
이름이창남이요,성이한가이므로,비행사안창남(安昌男)과같다고학생들은모두그를보고,"비행사,비행사."하고부르는데,사실상그는비행사같이시원스럽고유쾌한성질을가진소년이었다.
모자가다해졌어도새것을사쓰지않고,양복바지가해져서궁둥이에조각을붙이고다니는것을보면집안이구차한것도같지만,그렇다고단한번이라도근심하는빛이있거나남의것을부러워하는눈치도없었다.
남이걱정이있어얼굴을찡그릴때에는우스운말을잘지어내고,동무들이곤란한일이있을때에는좋은의견도잘꺼내놓으므로,비행사의이름은더욱높아졌다.연설을잘하고토론을잘하므로갑조하고내기를할때에는언제든지창남이가혼자나아가이기는셈이었다.
그러나그의집의정말가난한지넉넉한지,아무도아는사람이없었고,가끔그의뒤를쫓아가보려고도했으나,모두중간에서실패하고말았다.왜그런고하면,그는날마다20리밖에서학교를다니기때문이었다.그는가끔우스운말을하여도,자기집안일이나자기신상에관한이야기는말하는법이없었다.그런것을보면입이무거운편이었다.
그는입과같이궁둥이가무거워서,철봉틀에서는잘넘어가지못하여늘체조선생께흉을잡혔다.하학한후,학생들이다돌아간다음에도혼자남아있다가철봉틀에매달려땀을흘리면서,혼자연습을하고있는것을동무들은가끔보았다.
"이애,비행사가하학후혼자남아서철봉연습을하고있더라."
"땀을뻘뻘흘리면서혼자애를쓰더라."
"그래,이제는좀넘어가든?"
"웬걸,한2백번이나넘도록연습하면서,그래도못넘어가더라."
"그래,맨나중에는자기가자기손으로그누덕누덕기운궁둥이를자꾸때리면서,’궁둥이가무거워,궁둥이가무거워’하면서가더라!"
"제가제궁둥이를때려?"
"그러게괴물이지…."
"아하하하하하…."
모두웃었다.어느모로든지창남이는이야깃거리가되는것이었다.
2.길에서구두가다떨어져서
겨울도겨울,몹시도추운날이었다.손을입에대고호호부는이른아침에상학종이치고공부는시작되었는데,한번도결석한일이없는창남이가이날은오지않았다.
"신문으로치면호욀세,호외야!아니,글쎄비행사가결석을하다니!"
"어제저녁그무서운바람에어디로날아간게지!"
"아마병이났나보다.감기가든게지."
"이놈아,능청스럽게아는체마라."
1학년을반은창남이소문으로수군수군야단이었다.첫째시간이반이나넘어갔을때,교실문이덜컥열리면서창남이가얼굴이새빨개가지고들어섰다.학생과선생은반가워하면서웃었다.그리고그들은창남이가신고서있는구두를보고더욱크게웃었다.그의오른편구두는헝겊으로싸매고,또새끼로감아매고,또그위에손수건으로싸매고하여퉁퉁하기짝이없다.
"한창남,오늘은웬일로늦었느냐?"
"예"
하고창남이는,그괴상한퉁퉁한구두를신고있는발을번쩍들고,"오다가길에서구두가다떨어져서너털거리기에새끼를얻어서고쳐신었더니,또너털거리고해서,여섯번이나제손으로고쳐신고오느라고늦었습니다."그리고도창남이는태평이었다.그시간이끝나고쉬는동안에,창남이는그구두를벗어들고다해져서너털거리는구두주둥이를손수건과대님짝으로얌전스럽게싸매어신었다.그러고도태평이었다.
날이따뜻해도귀찮은체조시간이,이처럼살이터지도록추운날이었다.
"어떻게이추운날체조를한담."
"또그무섭고딱딱한선생이웃통을벗으라고하겠지….아이구아찔이야."
하고싫어들하는체조시간이되었다.원래군인으로다니던성질이라무뚝뚝하고용서없는체조선생님이호령을하다가그괴상스러운창남의구두를보았다.
"한창남!그구두를신고도활동할수있나?뻔뻔스럽게…."
"예,얼마든지할수있습니다.이것보십시오."
하고창남이는시키지도않은뜀도뛰어보이고,달음박질도하여보이고,제자리걸음도부지런히해보였다.체조선생은어이가없다는듯이,
"음!상당히치료해신었군!"하고말았다.
그리고다시호령을계속하였다.
"전열만세걸음앞으로옷!"
"전후열모두웃옷벗엇!"
3.왜샤쓰를안입었지?
죽기보다싫어도체조선생의명령이라,온반학생이일제히검은양복저고리를벗어샤츠만입은채로서있고선생까지벗었는데,단한사람창남이만벗지를않고그대로있었다.
"한창남!왜웃옷을안벗나?"
창남이는얼굴을푹숙이면서빨개졌다.그가이러기는처음이었다.한참동안멈칫멈칫하다가고개를들고,"선생님,만년샤쓰도좋습니까?"
"뭐?만년샤쓰?만년샤쓰란뭐야?"
"매매맨몸말씀입니다."
성난체조선생은당장에후려갈길듯이그의앞으로뚜벅뚜벅걸어가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