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이라는걸처음한것은중국에상주하면서입니다.그전에는아예‘컴맹’이었습니다.사무실에‘컴’이있긴했지만,직원들이다루는사무기기인줄로만알았습니다.
해외생활이라는그렇잖아요?더구나사업한답시고마누라와가족을두고혼자돈벌러갔다면….일끝나고숙소로돌아가봐야마땅히할일도없고,,,,거의매일이런저런꺼리를만들어지인들과술아니면거시기….처음얼마간그런생활이재미도있었지만그것도오래할짓은아니거든요.그때의후유증으로결국바라든돈은좀벌었습니다마는대신위암을얻고건강을잃었습니다.(처음보시는분을위해…5년전에위암수술을했고지금은건강을완전히회복했습니다)
그렇게무료(?)한생활을5-6년할때,보람차게열어준게바로‘인터넷’이었습니다.그런인터넷을알기전엔언제나고국소식이그리워조선일보를그곳에서구독을했었습니다.하루지난신문을받아보는데당시우리돈으로4-5만원(인민폐300위안)을줘야구독할수있었습니다.그런데어느날지인이‘인터넷’에들어가면따끈따끈한뉴스를현시각으로볼수있다는겁니다.돈이아까워‘인터넷신문’을보기시작했습니다.(당시중국은인터넷연결을시간제요금으로받을당시였습니다.또한무선이나광케이블이아닌’ADSL’이든가하는전화선으로만연결되는아주원시적인인터넷이었습니다)
사실따불클릭도제대로하지못해며칠을연습할정도의완전‘컴맹’이었지요.또한영타는서류작성때문에좀치는데(독수리타법)한글타자는전혀칠줄몰랐습니다.그러나뭐신문을보는정도이니크게아쉬울게없었습니다.그렇게신문도보고오락(지뢰밭깨기또는장기두기등등)도즐기고조금발전하여채팅도하고고국의마누라(마누라는원래가타이피스트로타자도잘치고컴을일찍배워기능을알고있었음)와도저녁에채팅(독수리타법.아직도이점은개선이안되어지금이순간에도저는독수리타법입니다)도할만큼‘컴’다루는실력이발전했습니다.
늘다니는길로만다니든인터넷코스였는데,어느날인터넷으로‘조선전자신문’을보다가무엇인가길을잘못들어클릭을했든가봅니다.원치않는페이지(?)가열렸는데그곳이바로‘조선독자마당’,왈‘조독마’였던것입니다.
멋도모르고그것들을읽어내려가기시작했습니다.당시나라엔김대중의빨/정권이막들어선때였고또한그곳(조독마)에는김대중빨/정권의호가호위를받은‘진중권’과그의똘마니들이‘조선일보’와창간자인‘방응모’선생을친일로몰아세우고더하여소위보수언론‘조중동’을마구잡이로음해내지난타하는등난동을부릴때였습니다.
그광경을목도한저는눈에불이나고분노에치를떨며,어떻게든이런놈들과맞서싸워야겠다는전의를다지게됩니다.그길로초안을잡아(빈문서한글프로그램도없었기에,또때로는몇시간씩공들여만든썰이오작동으로날아가버리면허탈해하며망연자실한경우도허다했습니다)독수리타법으로몇시간씩걸려‘썰’을풀기시작했습니다.밤낮을가리지않고(농담이아니고그덕분에종이신문값아끼려다배운인터넷비용을근1년간매월4-50만원씩내기도했습니다)’진중권과그똘마니’들과사상논쟁을하며이전투구를벌였습니다.
솔직히당시엔‘진중권과그똘마니’들이잘정비된이론으로무장이되어있었고보수진영은지리멸렬한상태였습니다.원래빨/들이말잘하잖아요.그런가운데군계일학격으로진중권을필적할만한보수진영의이론가가한분계셨습니다.여러분께서는혹시‘심마니’라는아이디를보셨는지모르겠습니다.‘박정국선생님(요즘도가끔씩토론마당에그분의흔적을볼수있으며심마니라는블로그를치면계십니다)’이라는분이십니다.
놈들과그렇게이전투구를벌이면서도그분의논리정연한사자후에매료되어있었고,따라서저는그분을인터넷상먼발치에서바라보며극치의존경심을가졌던것입니다.무론그분의활약에한이론하는진중권도당하지못하고밀리며늘꼬리를내리는형상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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