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이들어이웃과친인척들의사는모습이눈에들어왔을때다.다른누구보다도작은집과사촌들의모습이정말부러웠다.그부러움의끝에는얼마간의분노같은게분명이맴돌았던게솔직한심정이다.아버지는그런쪽으로한말씀없으셨지만아니언제나생활의고통이집안을내려치고지나간다음넋두리처럼그런얘기들을끄집어내는어머니에게호통으로대신하는아버지의모습을가끔씩은보았다.
5남매(2남3녀)의맏이인아버지는무기력한할아버지를대신하여일찍이가장이기도했었단다.3.1운동이일어났던해에세상에나오셨으니꼼짝없는일제강점기때청.장년기를맞아말도못하는고생을했지만동생하나라도제대로교육시켜보겠다고작은아버지를보성전문(고려대전신)에보냈고,작은아버지는그에화답이라도하듯식산은행(산업은행전신)에당당히취직을했단다.그리고고향땅토호의딸과성대한결혼식을올렸으니그분이우리작은어머니다.(아직도생존해계시고집안의가장어른이시기에명절은물론가끔찾아뵙기도한다)
어느정도세상물정이눈에들어왔을때내눈에비친작은집의생활은그야말로초호화생활이었다.그즈음산업은행(예나지금이나신이부러워한다는국책은행)고급간부의지위에오른작은아버지는운전사가딸린자가용을타고다닐정도로부유했지만찢어지게가난한형님네에게눈길한번주지않았다.지방법원말단서기로재직하던아버지로서는7남매를건사하기가벅찼고결국나의형님과누님은학업을중도에포기하고말았다.
어머니는늘그게불만이었다.나의형님으로치면우리집안의장손임에그장손이찌든가난때문에학업을포기함에이르렀어도학비한푼대주지않는시동생이야속하다며“내가신혼시절너삼촌을단간방에생활하면서도학교를보내고뒷바라지를해줬는데…“로시작하는넋두리가시작되면어느새어머니의두눈가가촉촉이젖어오곤하는걸수도없이목격하곤했었다.그럴때마다혹시라도그자리에아버지가있는날은”저여편네가죽을때가되었는지…“쓸데없는입을놀린다고어머니를향해고래고래소리를치곤하는것이었다.
사촌들도마찬가지였다.나보다한살위인파락호(나와는잘어울리며개구신노릇또는말썽을자주피웠다)같았던사촌형을제외하고나머지는사촌인우리를남대하는것보다더차갑고인정머리없이대했다.어쩌다작은집엘놀러갔다돌아올때나는골백번도더마음속으로다졌다.“요오씨~!!난크면작은집만큼은살고말거야!!!”어쩌면이것은분노같은것이었다.
참,허접한썰이지요?그런데정말한치도다르지않게그랬습니다.우선결론부터말씀드리면,작은아버지는직장에서퇴직하신뒤순간온수기(일본제품을최초로수입)수입상을했는데당시로서는크게각광을받지못하고2년여뒤대궐같은저택은물론어느날부터인가某대학교수로재직하고있는딸내미집의곁방생활을하다가위암으로돌아가셨고,작은어머니는그딸의집에서노후를지금보내고,저희사촌을뱀처럼차갑게대하던사촌동생들은지금모조리직장에서조기퇴출되어하나는보험설계사로재직하며가끔씩보험하나만들어달라며청탁이오고,또다른하나는소식(사촌끼리도입을꽊닫고있으니….)도모르고,한살많은사촌형의형수에게보따리장사비법을전수해주었건만어영부영하고….그렇답니다.
제가이런썰을풀게된동기(?)라면좀거창하고,이유가오늘아침인터넷신문기사를훑어보다가이런칼럼을보았습니다.조선일보선우정도쿄특파원이쓴칼럼입니다.전문을소개하겠습니다.제목:[특파원칼럼]일본열도10만㎞
작은기록을하나세웠다.5년전
전국여행을결심한것은일본부임8개월뒤인2006년2월시마네(島根)란곳에서였다.시마네현이제정한’다케시마(독도)의날’1주년행사를취재하기위해방문했을때다.일본의시골이었다."시골사람들이무슨영토불평이야…."이런기분이앞섰다.작은시골의퍼포먼스를취재하러온기자자신도솔직히한심했다.하지만기사만큼은세게보낸듯하다.한국의독도영유권이당장위기에빠진것처럼….
타지에가면밤이든,새벽이든운동삼아동네를뛴다.시마네현마쓰에(松江)시에선새벽에뛰었다.한참을뛰다가방향을잃었다.개천가서민동네에잘못들어갔다.하지만달리기를멈추지않았다.보도블록한장엇나가고울퉁불퉁한것이없었다.쓰레기하나굴러다니지않았다.허름한목조주택은쓰러질듯했지만,깔끔히정리돼있었다.여든이넘어보이는할머니는화단에물을주고,이웃할아버지는골목을쓸었다.
일본시골의서민동네가그렇게깔끔했다.동네를빙빙돌았다."일본에서무엇을보고,한국에무엇을전해야할까?"’다케시마의날’을기념하는소수의시마네보다밑바닥까지성실한다수의시마네가더절실히다가왔다.하지만그런모습은전하지못했다.정돈된골목,부지런한노인이’다케시마’로흥분한한국에무슨의미가있을까.모두괘씸한일본일뿐이다.
시마네골목에서"일본을몰랐다"는생각이들었다.그후여행을시작했다.어디를가나’멋진일본’과’나쁜일본’이교차했다.교토히가시야마(東山)의멋진문화유산뒤에는한국인의귀무덤이있었고,나가사키의장대한산업유산뒤에는한국징용자의유골이묻혀있었다.일본이자랑하는아리타(有田)도자기마을의사찰은끌려온한국인도공의한(恨)을달랬다.일본은땅전체가’시마네’같았다.감동과분노가오락가락하는….
하지만줄곧"일본은큰나라"란생각을했다.타국에기대지않아도홀로생존할수있는땅이었다.지역반목도없었다.국민은성실했다.메이지(明治)유신처럼국가시스템을바꾸면언제든대국이될수있는체력을가지고있다.이런일본을어떻게극복할수있을까.100년전상처받은국가의영혼을어떻게치유할수있을까.
일본열도를달리면서과거보다미래를바라보고,단점보다장점을챙기는것이우리를위해좋지않을까생각했다.과거에대한분노를거두면수많은장점이부각되는나라가일본이다.일본의장점을배울수록우리가강해졌다면그걸로된것이다.섬나라일본은비뚤어진역사관을가져도존립할수있지만,문명과세력이교차하는반도(半島)한국은과거에집착하고이웃과반목할수록국가의기반이허물어진다.100년전에도그랬고,100년후에도그럴것이다.특파원생활을연말에끝낸다.한국에돌아가면한국에서10만㎞여행을다시시작할계획이다.
이칼럼의소제가“
엊그제가광복절입니다.요즘사람들특히좌경빨/갱/이들은일본을무조건혐오만하면지식인이고애국자인양합니다.그리곤분노를마구합니다.특히3.1절이니815니하는때면그런혐오와분노를더욱가열차게뿜어냅니다.물론독도문제라던가지난날아직도앙금처럼남아있는강점기시절의사과등의문제로우리의공분을사고남는일본의행태가있긴하지만그런다고문제가해결되고일본을이길수있을까요?
솔직히분노를아무리활화산처럼내뿜어도일본열도와일본인은전혀관계가나이데쓰입니다.분노를보내기전그들을향해‘요오씨~!우리도언젠가너희만큼살아보겠다’는각오와다짐을해야합니다.그러지아니하고무조건분노만하고욕지거리만보낸다고그들을이길수있겠습니까?분노는마음한구석에두고그들의장점을배우자는겁니다.저는일본의국민성을볼때마다초한시대의한신을떠올리곤합니다.2차대전의패망으로미조리함상에서항복조인식을하며고개를꺾었지만그들은오늘을이루었습니다.반면광복을맞았다고기고만장했던우리는어땠습니까.
분노속에는어떤다짐이필요한것입니다.분노를분노로만승화시키면한.일은없고원수만되는거죠.일본의질서일본의인내심그런거우리에게가장중요하고필요한덕목입니다.그런게있어야극일을할수있습니다.어젠가그제일본을5-10년사이에따라잡을수있다는기사를보았지만,그따위숫자놀음에서따라잡고이겨본들참극일은아닙니다.부처님같고공자님같은얘기지만,진짜그들을이기기위해선분노뒤의다짐과그들의장점을받아들이고배우는데있습니다.특파원의느낌대로분노는하되감동을할것은해야합니다.그게일본처럼또는일본을이기는겁니다.일본의감동을못느끼고배우지않고는5-10년에일본따라잡겠다는것은공염불에지나지않습니다.
덧붙임,
지극히개인적얘기지만,그래도저는사촌들을도울수있으면돕겠습니다.그들이원한다면….그렇게하고있습니다.지난날부러움뒤의분노가있었지만지금그들보다그래도우위를점하고있다는것과도움을줄위치에있다는것에만족합니다.오늘도이곳되국은푹푹찔것같습니다.그래도어쩝니까.아침먹고……
일하러~가세~~~~
일하러~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