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옛선인이말하기를,,,,의인물용용인물의(疑人勿用用人勿疑)믿지못하면아예쓰지를말고,일단사람을쓰면의심하지말라.이말은춘추시대관중이춘추오패(春秋五覇)의한사람인제환공에게아뢴말이다.기왕사람(자신)을쓰려면이정도예우는해달라는주문이다.이말이최근(?)에각광을받은것은,죽은노무현시절‘고건국무총리’가그직을그만두며했던명구이다.
위연(魏延).자는문장(文長)이며의양(義陽:지금의하남성동백)사람이다.원래는형주목사유표(劉表)의부장이었으나나중에유비에게귀속하였다.용맹하고싸움을잘하여여러차례혁혁한공을세웠다.유비가한중왕이라고칭할때그를한중태수로삼았고,유비가황제가된후에도여전히한중을지켰다.제갈량이한중에진주하여북벌을준비할때전감독으로삼고승상사마에양주자사를겸임토록할정도로중용을하였다.뿐만아니라제갈량이북벌을하는동안언제나선봉장으로있었다.제갈량이죽자마자곧바로반란을일으켰으나제갈량이죽기전만들어준금랑비계에의해마대(馬岱)에게죽임을당했다.그해가서가234년(단기2567년,중국촉후주건흥12년,신라조분왕5년,고구려동천왕8년,백제고이왕원년)이다.
위연그는태생적으로반골기질이었다.제갈량은그가언젠가는모반할것이라는것을이미알고있었으나,그의무용이출중함을알고항상그를지근거리에두고중용했던것이다.이는그렇게함으로서제갈량자신이살아있는한그의역심(逆心)을잠재우겠다는용의주도함을보였고,과연그의죽음에이르러서야위연이모반을못하도록마대에게금낭(錦囊)의비책(秘策)주며용도폐기를했던것이다.개인적감정으로본다면있을수도,있어서도안되는일이지만정치적으로나국가를위해서어떤것이유리한것인지곰곰이생각해볼대목이다.
이엄(李嚴).자는정방(正方)이며하남성남양사람으로제갈량과는동향이다.원래한중왕유장의부하였으나유장과유비의싸움에서그에게명하여유비를저지하라고하자,군사를거느리고유비에게투항하였다.유비가익주목이된뒤그를건위태수로임명하였고,유비가황제가된후에는상서령(尙書令)으로발탁되어제갈량과함께유선(아두)을보좌하라는유조를받았고,제갈량이북벌을할때는총감독의신분으로군수(軍需)를운반감독했다.제갈량이기산으로출병했을당시군량이부족하자사람을시켜오나라의손권이촉을치려한다고허위보고를함으로서제갈량이군사를즉시철수하게하였다.반대로후주유선에게는군량이충분히준비되었다고아뢰어자신의과실을숨겼다.제갈량이그사실을밝힌뒤그를평민으로폐출시켰고,제갈량이죽자“이제자신을알아줄사람이없다.“고통곡을하다가병들어죽었다.그해가역시서기234년이다.
제갈량은한때이엄(李嚴)을자신의후계자로점지했으나귀재(鬼才)강유를만나며그마음을접는다.물론이러한정신적갈등이제갈량본인과이엄과는정치적갭이생기는불행이초래되지만,제갈량으로서는국가를위한다는대의앞에서어쩔수없는선택이었을것이다.과연그러한제갈량의탁월한선택이촉(蜀)나라의운명을좀더연장해주었던것이다.반면이엄으로서는일인지하만인지상의자리가보장되었다가탈락하는아쉬움을안고제갈량에게모함으로화풀이하지만,그것이국가의초석을허무는결과를가져왔고결국에는자신을망치기도했다.
요즘정가에요상한소문이떠돈다.박근혜대통령의최측근중의한사람이라던‘진영’이새누리당의계륵‘이재오’와손을잡고안철수를도울수있다는소문이들린다.엄밀하게보면태산명동서일필(泰山鳴動鼠一匹)할수도있겠지만,용인(用人)하는입장에서는뒤통수를맞은것은분명하다.어차피이재오는열외(논외)로치고,진영이위연(魏延)만큼출중했는가는모르겠지만반심을품은것은틀림없는것아니겠는가.
또한가지있다.신.구기무사사령관자리를두고여러낭설이오간다.어느것이옳은것인그른것인지는잘모르겠다.다만제갈량은어떤사람이더국가에이바지할수있는지를염두에두었다.이엄역시능력있는사람이었다.그러나강유라는인재가나타남으로나라를위해어쩔수없이장수를바꾼다.이과정에서이엄은자신의운명을알아채고후주유선에게제갈량을모함한다.구기무사령관의입장이어쩌면이엄같을수도있다.그러나그어느것도국익을먼저생각하는용인(用人)이됐으면좋았을것이다.
의인물용용인물의(疑人勿用用人勿疑)믿지못하면아예쓰지를말고,일단사람을쓰면의심하지말라.참쉽게표현은할수있지만행(行)하기에는정말어려운문구이다.제갈량이존경받는이유는,선공후사(先公後私)와멸사봉공(滅私奉公)의정신에있다.우리의임명권자도그런마음이었으면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