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일기: 망국병(9부)
얼마전나는이런썰을푼적이있었다.‘대학을안나왔기에무엇이든할수있었다.’라는.그렇다면대학을나오고안나오고의차이는무엇일까?‘망국병’이라는감당하기조차버거운화제를밑도끝도없이몰고가는것보다는차라리‘대학을안나왔기에유리한점’을역설(逆說)하는게낫겠다싶어오늘은화제를바꾸어볼참이다.

여성분들은그런기분(?)또는감정을느끼지못하시겠지만,군대를다녀온대개의남성들은한두번경험했거나크게공감을가지실것이다.‘예비군복’,이젠나도노년층이되어예비군도민방위도제외된지하도오래되어잘모르지만,젊은시절예비군훈련에동원되면입는예비군복말이다.그예비군복만입으면상하도,학식의많고적음도,유무식도분간이안된다.예비군복만입으면대학을나온놈이든아니든,직장의상사든부하든,대학교수인지막노동꾼인지도통알길이없다.그리고그예비군복만입으면아무리배우고점잖은사람도그신분(?)을알수없을만큼솔직해진다.즉가식없는인간성을회복하는것이다.그기에다막걸리한잔쯤걸치면금상첨화다.용감해지고어떤경우용감함을넘어만용과객기를부리기도한다.노상방뇨는기본이고요즘같으면당장감방에갈일이지만,지나가는아녀자희롱은애교(?)로봐주던그런시절도있었다.그것이예비군복의위력(?)이었다.

대학을안나온나는그런기분으로살아왔다.마치예비군복을늘입은상태로생활을해왔던것이다.못배웠으니남보다더열심히,더용감히삶의창해에서부단히노력을했던것이다.아니부끄러울게없었다.그것은못배워무지몽매한것이아니고양심에털난놈들처럼후안무치가아니었다.많이배운사람들속에서버티려면겸손이필요했다.모르는것은정말모른다고했고아는것만큼만생각하고움직였던것이다.왜?나는언제나마음의예비군복을입고있었기때문에.

얘기를하다가중단을했지만,가수의꿈을버리고직장생활에매진했지만역시대학을안나왔기에불평등한대우(출퇴근거리가멀어사퇴했다고는했지만…)를받고직장을옮기고그곳에서아내를만나고사내결혼을하면서도저히직장생활(늘그놈의학력때문에…)을영위할수가없었다.결국이래선안되겠다며나름사업을시작하게된다.

인생은누구에게나예상치않은계기나우연한터닝포인트가있기마련이다.요즘한참문제가되는‘한수원의비리’.내가직장생활에만족하고자재(資財)파트에서머리가굵었다면아마범법자가됐을지도모른다.많은유혹과향응그리고어머니의‘돈돈돈타령’에납품업자들의덫에걸릴수있었을것이다.그런데내삶의전환점또는반환점을찾는계기가있었다.

당시정부는박정희대통령의‘수출입국(輸出立國)’이라는국가적모토가있었다.단순한수출드라이브가아닌수출만이국민과국가가살수있다는거대한목표였기에,가발에서부터봉재완구,천조각으로만든조화까지아무튼돈이될수있는것은무엇이든수출을하던시기였다.당시내가다니던직장도수출을꽤많이하던도자기공장이었다.바이어상담을위해공장으로양코배기들이수없이들락거리고무엇보다무역부직원들은비즈니스때문에해외를자주나가는게그렇게부러울수가없었다.당시에해외를나간다는것은정말대단한일이었다.나는언제나해외를한번나가보나?그것은꿈이고희망이었다.

그러든어느날무역부장을찾는다.‘저좀무역부에서일하게해주십시오.’,‘영어할줄알아?’,‘아뇨!’,‘그런데무슨수로무역을하겠대?’,‘배우겠습니다.지금부터라도…꼭영어가아니라도가방모찌라도…’당돌하고무식해서용감했던지무역부장님은진짜나를나보다나이어린대졸자를과장님으로모시고가방모찌로일하게했다.나의보따리장사인생은그렇게시작된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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